66화. 악어와 새 (1)
해화가 오토바이를 멈춘 곳은 어느 건물의 지하주차장이었다. 오는 길에 봤던 동네의 거리는 깨끗했다. 변종이나 사람 시체 하나 없이, 그저 고요한 시골 풍경을 그린 듯 아름다울 뿐이었다.
뒤따라온 지운과 무리가 해화를 둘러쌌다. 해화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해화는 고글모를 벗어 던지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결과만 봤을 때 성공적인 작전이었으나 변수가 워낙 많아 걱정도 꽤 했던 모양이었다. 낙조는 끌어안고 있던 밤이의 짐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이분들은 어디서 모셔왔냐.”
낙조가 해화에게 넌지시 물었다. 해화는 고글모를 들고서 가만히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옮긴 곳엔, 무리 중 가장 키가 커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 또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헬멧을 쓰고 있었는데, 낙조가 바라본 걸 알아차렸는지 곧 헬멧을 벗었다.
‘녹색 눈?’
헬멧 안에 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보는 게 힘들었다. 남자의 외모는 아시아계 쪽이 아닌 듯 보였다. 머리카락과 같은 밝은 갈색 눈썹에 길게 트인 눈매, 녹색 눈, 흰 피부. 순간 낙조가 어떤 언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지 머리를 굴릴 때, 해화는 주저하지 않고 한국말로 말했다.
“당신들이 궁금해 하던 사람이에요. 고낙조.”
“반가워요! 무사해서 기뻐요.”
녹색 눈의 남자가 마스크를 아래로 내리며 낙조에게 다가왔다. 그가 말하는 한국어는 억양까지 한국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앞으로 내밀어진 그의 큰 손을 내려다보던 낙조는 얼떨결에 그와 악수했다.
“우리는 낙조 신고할 생각 없어요.”
“그럼 왜 날 궁금해 합니까?”
“다들 낙조 잡으려고 하니까.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요.”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대답이다. 낙조는 오히려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음흉하게 노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저는 막시안. ‘악어와 새’라는 곳에서 머물고 있어요.”
‘악어와 새?’
어쩐지 반가움보다 경계심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일까. 낙조는 무표정한 얼굴로 해화를 돌아보았다. 해화도 이 단체에 많이 아는 건 아닌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먹을 것도 있고, 씻을 수도 있어요. 진짜 도와드리고 싶어서 말하는 거예요. 여기 근처에서 길 잃은 분들은 다 데려오거든요.”
그 말에 밤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시체 하나 없이 유난히 깨끗한 골목, 변종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동네. 이미 신평에서 사이비 집단을 만난 뒤라 경계는 완전히 풀 수 없었으나 그간의 피로를 풀어 줄 공간은 절실히 필요했다. 밤이는 낙조를 한 번 돌아보았다. 동의를 구하는 표정이었다.
“저희가 안내할 테니까 따라만 오시면 돼요.”
“진짜……, 종교, 뭐, 그런 거 아니죠?”
“아니에요. 그리고 저 불교예요.”
막시안은 해맑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잠시 어색하게 침묵이 흐르고, 낙조는 해화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물었다.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어?”
“없었어. 우리가 먼저 구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저쪽이 먼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봤어. 일단 급하니까, 도와 달라고 했지.”
해화는 혹여 자신이 잘못했는가 싶어 낙조를 잠시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구하고자 한 결정을 어떻게 나무라겠는가. 낙조는 애써 웃으면서 ‘잘했어’라고 대답했다. 그게 완벽한 진심이 아닌 거란 건 해화는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낙조는 뒤돌아 막시안에게로 다가갔다.
막시안에게 잠시 동안 머물 곳을 내줄 수 있겠느냐 부탁했다. 그는 마스크를 다시 쓰고서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막시안은 자신의 오토바이로 돌아갔다. 그의 오토바이 뒤에 탄 저격수는 키는 컸지만 체구가 작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저격수는 뒤로 긴 생머리를 묶은 흑인 소녀였다. 이제 갓 스물이 될까 말까 하는 얼굴. 그녀의 이목구비는 은은하게 아시아인의 아우라를 풍겼다.
낙조는 일행들과 한곳에 모여 짐을 나눠 들었다. 흑인 소녀는 낙조 일행을 힐끗 보고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자 센서가 인영을 인식하고 불을 밝혔다. 뒤따라 막시안의 일행들은 각자 구역으로 돌아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흩어졌다.
“다 같이 가는 게 아닙니까?”
낙조가 슬쩍 묻자 막시안이 대답했다.
“아직 일하는 시간이에요. 삼십 분 밖에 안 남았지만.”
일하는 시간이라. 이 단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사이비 무리처럼 어쩔 수 없이 각자 구역을 맡아 변종을 처리하는 일을 하나. 골똘히 그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전기가……, 있네.”
지운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소녀는 맨 꼭대기 층을 눌렀고, 그렇게 여섯이서 엘리베이터 안에 발을 디뎠다.
문이 닫히자마자 막시안이 마스크를 아래로 내렸다. 그도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는 해화가 들고 있던 상자를 자신이 들겠다며 대신 가져갔다.
“이제 이름 알려 줘요.”
고요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막시안은 해화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해화는 그 시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어렵사리 입을 떼어 냈다.
“홍해화……요.”
“화? 꽃 화? 맞나요?”
“어, 네…….”
한자도 아네. 아 불교랬지. 낙조는 시큰둥하게 막시안을 바라보았다. 저거, 왼쪽 손목에 염주 차고 있는 거 아니야? 허튼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서 있자니 엘리베이터는 어느 새 맨 위층에 도달해 있었다.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소녀가 내렸다. 낙조 일행은 눈앞에 드리워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막시안! 왔어?”
“야, 김도연! 빨리 와!”
혼혈로 보이는 소녀의 이름은 도연인 듯했다. 꼭대기 층은 아무 풍파도 겪지 않은 것처럼 안온했고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파티션으로 각자의 구역을 맡은 채, 얼굴엔 웃음을 띠고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빈 집을 오갔던 지난 시간과는 분명 달랐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막시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말했다. 지운은 감탄만 연발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낙조 일행을 보았는지 어떤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갖고 있었다.
“새 친구들인가 보네요. 안녕하세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낙조는 주위를 둘러보다 벽에 그려진 악어 모양의 마크를 발견했다. 밑엔 ‘악어와 새’ 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다문화가정의 복지를 위해 일하던 센터인데, 지금은 대피소에 가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그녀는 유창한 한국말로 그곳을 소개했다. 그녀의 뒤로 어린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뛰어다녔다.
‘악어와 새…….’
낙조는 가만히 상자를 든 채 멍하니 악어 그림을 응시했다.
자신을 켈리라고 소개한 그녀는 한국에 온 지 20년은 넘었다며, 센터의 곳곳을 소개해 준다고 말했다. ‘좀 이따 봐요!’ 막시안은 낙조 일행이 머물 방을 청소하겠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이 층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가지는 곳이에요. 회의를 하기도 하죠.”
“무슨, 회의요?”
밤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켈리는 말없이 웃으며 다른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곳은 비닐하우스처럼 텁텁하고 따뜻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자급자족이 앞으로도 계속 가능할 수 있게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회의를 해요.”
그녀는 채소와 야채, 과일을 기르는 곳도 있으며 아래층에선 소와 닭 등의 가축을 키운다고 말했다.
“그럼 물은요?”
지운이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켈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에 두 팀이 나가 산에 있는 약수터에 다녀온다고 대답했다. 산길이지만 변종과 마주친 적은 아직 없다고도 덧붙였다.
켈리의 설명을 들을수록 놀랍기도 했지만 의아함이 더욱 커졌다. 마치 이런 재난이 일어날 줄 알고 준비한 듯,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구현돼 있었다. 낙조는 입을 꾹 닫은 채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다문화가정 센터였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한국인을 비롯한 여러 유색인종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고, 그들은 마치 한가족처럼 웃고 떠들었다.
“센터 이름이……, 왜 악어와 새입니까?”
낙조가 처음으로 질문한 내용이었다. 일행의 눈길이 낙조에게로 쏠렸다. 낙조는 무표정한 얼굴을 지우지 않고 켈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켈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센터장님이 지은 거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공생 관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그림 같아서 그렇게 지으셨다고 해요.”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가장 낭만적인 공생 관계…….’
겉은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말이었다. 그러나 낙조는 어딘가 자꾸 들어맞지 않는다는 기분에 휩싸여 켈리를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거울 속을 들여다봤을 때, 이따금씩 거울 속 자신에게서 낯섦을 느끼는 것처럼.
“이곳에선 각자 할 일을 맡아서 일해요. 밖으로 나가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옥상에 올라가면 하늘은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죠.”
켈리는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새 친구들이 왔으니 노을이 가장 예쁘게 지는 시간을 알려 준다면서, 저녁 식사 전에 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낙조 일행이 머물 방을 배정해 주었다. 지운과 낙조, 밤이와 해화가 두 팀으로 나뉘어 한 방씩 머물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이루어져서, 낙조 일행은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드디어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지운이 머리를 털며 말했다.
“근데 진짜 신기하지 않아? 어떻게 여기서 자급자족이 다 가능하지?”
“신기하긴 한데……, 좀 묘해.”
“뭐가?”
지운은 낙조의 표정을 살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이곳이 꽤 맘에 드는 듯 침대 커버를 계속 매만졌다.
“아무리 자급자족이 가능하다고 해도……, 갑자기 먹을 입이 늘어나는 건 그렇게 반갑지 않을 텐데.”
“원래부터 좋은 일 했던 사람들이잖아. 그냥 도와주고 싶은 거겠지.”
“홍지운, 정신 잘 차려야 돼. 신평에서 사이비 집단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못 봤어?”
“거기랑 여기는 완전 차원이 다른데. 아저씨 너무 사람 못 믿는 거 아냐? 아저씨 지금 살아 있는 것도 이 사람들 덕분인데.”
지운은 오히려 낙조를 타박하면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 이게 얼마 만의 침대냐.”
그는 실실 웃음을 흘리며 침대 이곳저곳을 굴러다녔다. 낙조는 방에 나 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은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트여 있었고, 맨 위층에 있는 만큼 시내의 전경을 내다보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거리, 꼬인 실타래처럼 얽힌 차들……. 밖에만 겨울이 닥친 듯 그 모습들은 여전히 서늘했다.
‘누나와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가장 이성적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은 밤이였다. 해화에게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해화가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꽤 크다고 생각해 섣불리 이 의심을 공유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들과 어떻게 만났는지조차 듣지 못했다. 낙조는 켈리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얌전히 방에 있다가, 노을을 보러 가자는 말에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밤이의 뒤에 바짝 따라붙은 낙조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호의적이라 좀 이상해요.”
밤이는 올곧게 정면만 본 채로 대답했다.
“나도 그래. 근데 대놓고 뭐라고 할 부분이 없잖아. 완벽해서 이상한 거야.”
“……맞는 말이네요.”
완벽하기 때문에 이상하다. 낙조가 짧은 순간 동안 느꼈던 감정이 한 순간에 정리됐다. 여태껏 밖에서 겪은 고초는 사람에 대한 의심을 가장 먼저 키웠고 의심한다고 해서 결과가 나쁜 적이 없었다. 노부부의 얼굴에서 이런 안정감 있는 웃음을 본 적이 있던가. 변종이 없다고 해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이 평화가 당연히 찾아올 수는 없었다.
혹여 아직 알지 못한 내부의 규칙이 있기 때문일까. 낙조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켈리는 낙조 일행을 ‘새 친구들’이라 불렀고, 그곳의 ‘주민’들은 일제히 새 친구들을 환영했다. 다함께 저무는 노을을 보기 위해 일렬로 섰을 때, 낙조는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