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늪지대 (4)
낙조는 주저하지 않았다.
탕.
누군가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가 쏜 화염의 탄알은 군인의 왼쪽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캉, 군인의 뒤쪽에 서 있던 철문에 박힌 탄알은 곧 검붉은 혈액 색깔을 띠며 녹아 흘러내렸다.
“여기에 남은 사람들은 당신들만 믿고 있을 텐데. 너무 영웅 놀이에 심취한 게 아닌가 싶네.”
팔을 내리지 않은 채 낙조가 말했다. 군인은 병사들에게 낙조를 잡으라고 소리쳤지만 그 누구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저 팔에서, 어떤 것이 튀어 나왔는지 모두가 봤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어느 정도 두고서 병사들이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고 있자, 낙조가 닫혀있던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건 결연한 해화의 시선이었다.
“이제 깍두기 노릇 하는 것도 지겨워.”
해화는 그렇게 말하고서 낙조의 곁에 나란히 섰다. 소총을 쥔 해화의 자세는 모날 곳 없이 깔끔했다. 뒤따라 밤이와 지운이 컨테이너에서 나왔다. 병사들은 낙조를 비롯한 일행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지만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죄 없는 민간인을 적으로 두는 건 이제 합법이 됐습니까?”
낙조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려움 따위에 짓눌린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자들과 팽팽하게 신경전을 하는 도중에도, 군인들은 노부부의 마을로 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따라잡을 수 있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힌 와중에도 이곳에서의 일은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제거해야지.”
군인은 볼에 난 상처를 손등으로 슥 닦아내며 말했다. 손에 가득 힘이 실렸다. 낙조는 그의 가슴을 당장 쏴버릴 것 같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 눈에 나는 뭐로 보입니까.”
“너는 가능성이 아니라, 확신이지.”
“그런데 나는 살려둬야겠다?”
“어떤 확신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군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총이 아니라 수류탄을 쥐고 있는 듯했다. 안전핀만 뽑아 버리면, 그리고 저 웃는 얼굴에 던져 버린다면. 낙조는 이를 갈면서 부득부득 참아냈다.
“민간인의 감염 가능성은 사살로 결정된다. 하지만 너는, 확실하면서도 특별한 변종이지. 네가 가진 게 도대체 뭐길래, 너만 그렇게 됐는지 알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소리다.”
“헛소리 좀 작작해!”
격앙된 목소리가 주위를 메웠다. 시퍼렇게 불거진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댔다.
“그곳은, 그곳은 우리가 이미 다 둘러봤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싹 다 죽여 버렸다고. 그러니까 다시 송환해. 명령 나간 새끼들 다 다시 부르라고!”
“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야, 고낙조 이 씨발 새끼야. 애초에 니 하나만 순순히 청주에 갔으면 백신이 만들어지고도 남았어. 하이, 이 새끼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상부에서 존나 쪼길래 그냥 우리들 압박하는 줄 알았더니 이 새끼 보니까 그동안 당했던 게 존나 올라오네. 씹새끼야 거기서 니 심장이라도 꺼내겠대? 아니면 배를 가른댔냐? 니가 이곳에서 지랄하고 있는 이 순간도 다 니가 자초한 거야. 그러고도 씨발 나한테 명령질을 해?”
군인의 목소리는 워낙에 컸다. 그가 선명한 발음으로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낙조의 손은 더욱 떨려만 갔다. 낙조는 그의 말에 집중이 흐려지지 않도록 잔생각을 떨치려 하며 손에서 아귀힘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더욱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 이제 생각났네. 너 회복력도 괴물 같다며. 총을 존나게 맞아도 안 뒤진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씨발 나는 진짜 세상이 미쳤구나 싶었는데 말이야. 사람이 어떻게 안 죽나 싶어서.”
군인이 거만하게 낙조를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해화가 낙조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총을 조준했다.
“누구는 총 없는 줄 알아!”
“너는 까불다 뒤져도 신경 안 쓴다. 고낙조 잡으면 원 플러스 원이잖아.”
“날 살려서 가야 훈장을 더 받을걸. 죽은 세포 데려가서 어디에 쓸 건데.”
해화가 소리쳤다. 군인의 눈빛이 순간 번쩍이는 듯했다. 낙조가 황급히 왼손으로 해화를 잡아당겼지만, 그녀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이야……, 우리 아가씨가 내 마음을 좀 잘 읽네.”
신경전은 더욱 팽팽해졌다.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자신들에게 불리할 뿐이다. 낙조는 그렇게 생각하고 해화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뒤로 끌었다. 해화는 최대한 버티려 했지만 낙조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투항할게.”
“고낙조!”
“그러니까……, 군인들 송환해.”
해화가 뒤에서 악을 지르듯 낙조의 이름을 외쳤으나 낙조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인을 향해 겨누고 있던 손도 내렸다. 잎사귀가 천천히 손가락으로 돌아가는 걸 본 병사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너랑 거래를 한다고 했나?”
“내가 당신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당신이 아는 대로 나는 총알을 몇 발이나 맞든 쉽게 죽지 않아. 그런데 죽을 수도 있지. 나를 죽이면 당신은 어떻게 될 것 같아?”
낙조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낙조의 말이 이어질수록 군인의 얼굴은 험상궂게 구겨졌다.
“사람은 원래 쉽게 죽지 않아. 너는 더더욱 끈질기다는 거겠지. 그러니 재미없는 말싸움은 그만하자고.”
군인은 말을 끝마치며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낙조에게 겨누었다. ‘안 돼!’ 밤이가 곁에서 소리침과 동시에 탕, 하고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을 한 번 깜박이기도 전만큼 찰나의 순간이었다. 오른쪽 쇄골 바로 밑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고낙조랑 저 총 든 여자 잡아!”
군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휘청거리는 낙조를 붙든 밤이는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다가 해화와 지운을 향해 외쳤다.
“나가! 나가서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빨리 나가!”
그녀가 지운의 등을 떠밀었다. 지운은 해화의 손목을 붙잡고 막사 뒤편으로 뛰었다. 몇몇 병사들이 그 둘을 뒤따랐다. 밤이와 낙조는 순식간에 포위당했다. 낙조의 입에서 탁한 숨이 터져 나왔다. 밤이는 낙조를 부축하면서도 이들에게 완전히 말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낙조의 무게는 밤이가 견딜 수 없었다. 같이 제자리에 쓰러지면서, 밤이는 겨우 낙조를 받쳐 잡았다.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되나?”
병사들을 헤치고 나온 군인이 쪼그려 앉아 밤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의 볼에 난 상처를 응시하다가, 밤이는 대답하지 않고 낙조를 빼앗기지 않으려 힘껏 붙잡았다.
“그냥 길에서 만난 사이가 아니잖아. 어디서 날 속이려고.”
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군화로 밤이의 어깨를 걷어찼다.
“아!”
맥없이 쓰러진 밤이는 곧장 다시 상체를 일으켜 낙조를 껴안았다. 낙조의 호흡은 가팔랐다. 한시라도 빨리 지혈을 해야 했다. 밤이는 욱신거리는 어깨는 뒤로하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변하지 않은 상태는 우리랑 똑같아. 이렇게 계속 놔두다간 죽어. 죽었으면 좋겠어?”
“아쉽군. 어떻게 생긴 괴물인지 궁금했는데.”
군인은 말을 마치고서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장 병사들이 밤이와 낙조를 떼어냈다. 낙조는 피부가 안쪽으로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눈앞은 점점 흐릿해졌고 졸음 비슷한 것이 쏟아졌다. 밤이의 체온이 아닌, 차갑고 딱딱한 손들이 자신의 몸을 붙드는 것이 불쾌했다. 낙조는 지혈하고 있던 손을 떼어내고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손들을 모조리 치워냈다.
“끈질기긴…….”
군인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낙조의 멱살을 잡아챘다. 덜렁 붙잡힌 낙조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낙조는 목에 겨우 힘을 주어 군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입술 새로 기어 나오는 날숨은 좀처럼 차분해지질 못했다. 군인은 반대쪽 손으로 주먹을 쥐어 낙조의 볼을 세게 쳤다.
“쿨럭, 컥, 허억…….”
그대로 나가떨어진 낙조는 팔꿈치로 바닥을 짚으면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침이 길게 흘러나왔다. 입안에서 모래알이 굴러다녔다. 겨우 총알 하나 맞았다고 이렇게까지 체력이 떨어질 수 있나. 낙조는 뒤늦게라도 팔에 힘을 모아보려 했지만 이미 통각은 온몸에 전파된 상태였다.
“총알 빼내고 진정제 놓은 다음 가둬놔.”
군인은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계속해서 쓰러지는 낙조를 내려다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병사들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낙조의 몸을 일으켰다. 낙조의 고개가 앞으로 푹 꺼졌다.
‘군의병, 군의병!’
‘고낙조! 야, 정신 차려!’
밤이와 병사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낙조의 귓가에 맴돌았다. 낙조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탁, 끊기는 것 같은 따끔함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
백무흠을 이용한 실험이 거의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호는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 커피를 쭉쭉 빨아들이며 스크린만 멍하니 응시했다.
고낙조와 홍해화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백신 개발팀은 백무흠으로 고낙조를 잡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다. 처음엔 기밀인 작전이었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자 본부 내부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저께부터인가, 훈련이 시작됐다고 했지. 백무흠을 완벽히 사냥개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수호는 처음 무흠을 훔쳐봤을 때를 떠올렸다. 호랑이 같은 눈매, 굳게 다물린 입술, 상대를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시선……. 아주 잠깐 마주쳤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직무는 바뀔 것이다. 고낙조와 홍해화의 위치를 추적하고, 그들이 잡히면, 백무흠에게 가한 인체실험과 그 용도가 적힌 모든 기록을 남김없이 지워야 한다. 인류를 구한 방법은 그저 정부를 가장한 본부가 인력을 기울여 백신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쓰일 것이다.
‘그럼 백무흠에 관한 자료들을 내가 발견했다는 사실도 들키면 안 될 텐데.’
수호는 몰래 자신의 외장하드에 옮겨 놓은 <붕어섬 실험 일지>를 생각했다. 중요한 단어는 모두 빠져 있지만, 순조롭게 이어지는 대화들. 그 중심에 있었던 백무흠. 백무흠이 잃어버린 5년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 바뀔까. 자신 또한 이곳에서 주는 돈을 받고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과연 이미 체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전에 비인간적인 실험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함께 분노해줄까?
이미 세상은 군사정부 위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총칼을 쥐고 있지 않으면 힘없는 약자가 된다. 자신은 총칼 대신 머리를 써서 그들을 도와야 했다.
‘고낙조와 홍해화가 잡힌다고 해서……,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백무흠이 겪었던 실험에 대해 파고들수록 어쩐지 고낙조와 홍해화를 잡는 일이 껄끄러워졌다. 그들이 잡힌다고 하면 그 서연우라는 인간이 어떤 실험을 저지를지 알 방도가 없다. 백무흠에게도 그렇게 무시무시하다던데, 고낙조는 이를 갈고 찾고 있으니 빤히 결과가 보였다.
빨대의 끄트머리를 으적으적 윗니와 아랫니로 깨물고 있을 때였다. 조용했던 방 안이 벨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수호는 또 어느 대피소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는 보고이리라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수호 씨, 전주 대피소에서 보고가 들어왔어요.
“네, 네. 뭐가 필요하대요?”
-그게 아니라, 고낙조를 잡았다네요.
“……에?”
-그리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기생충 샘플도 확보했대요. 바로 청주로 이송해서 오겠답니다. 서연우 팀장―
“―어어, 팀장님께는 제가 직접 보고할게요. 지금 백무흠 훈련 때문에 좀 바쁘셔서.”
-아, 그래요. 수호 씨, 최대한 빨리 전해주세요.
수호는 멍하니 서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했지?’
고낙조가 청주에 온다. 잡혀서.
‘그럼 홍해화는?’
둘이 분명 같이 다닌다고 했었는데. 수호는 다급하게 스크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전주 대피소라면 붕어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백무흠이 잡혔을 때 도망쳤다고 하더니, 그렇게 멀리는 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전주 대피소……, 라고 했지.’
수호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크린 속에선 전주에 설치된 모든 CCTV들의 화면이 하나씩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