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늪지대 (3)
군인들을 가로막자 그들을 지휘하는 위치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낙조에게 다가왔다. 험상궂은 인상에 흰머리가 종종 나 있는 모습은 위압감을 당당하게 내풍기고 있었다.
“물러나십시오!”
낙조에게 다짜고짜 소리친 그는 백무흠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큰 풍채를 갖고 있었다. 낙조는 물러서지 않은 채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기밀입니다.”
“거기, 거긴 민간인들이 살고 있어요.”
“보균자일 가능성을 없다고 할 순 없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요!”
낙조가 열에 받쳐 소리쳤다. 남자의 눈매는 얇고 매서웠다. 그는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로 낙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때 낙조가 뛰쳐 나왔던 막사에서 안경을 쓴 남자가 해화를 붙잡고 나왔다. 그리곤 군인들을 향해 일제히 소리쳤다.
“이것들 변종입니다! 변종의 피예요! 아직 신원조회는 못 했는데―”
말싸움할 시간이 없는데. 낙조는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기도 전에 관자놀이에 닿는 감촉에 두 눈을 감았다.
“포박해.”
“예? 사살해야 하지 않습니까?”
“변종의 피를 갖고 있는데도 외관이나 어투에 조금도 변형이 오지 않았다. 그 고낙조라든가, 홍 씨 성 가진 여자일 수도 있잖아. 이렇게 보니까 퍼즐이 딱딱 맞네. 그 여자가 갖고 온 기생충이 피에 섞여 있는지 확인해 봐.”
군인의 지시에 남자는 해화를 낙조의 곁에 내버려 두고서 막사로 돌아갔다. 남자는 여전히 낙조에게 총을 겨눈 채 말을 이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출발해.”
“예!”
‘저 개새끼들이……!’
낙조는 이를 악문 채 군인을 살기 어린 눈길로 노려보았다. 곧 병사들이 낙조와 해화를 포승줄로 묶었다. 그제야 군인은 총구를 내렸다. 그는 줄 맞춰 서 있던 병사들이 각자 군용 트럭에 탑승하는 걸 지켜보았다.
‘뭐가 먼저지. 누나랑 지운이를 구하고, 그 다음에 어르신들을 구하러 가면……, 너무 늦어.’
누구를 선택하든 다른 한쪽이 그 시간 동안 어떤 짓을 당할지 몰랐다. 낙조와 해화는 병사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 불도 켜지지 않는 조그마한 방이었다. 병사들은 낙조와 해화를 그곳에 내팽개치곤 문을 걸어 잠갔다. 줄을 끊을 수 있을 만큼 날이 선 물건을 찾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었다.
“홍해화. 어디 있어.”
“여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해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여 겨우 등을 맞붙일 수 있게 된 둘은 빛 한 톨조차 들지 않는 곳을 하염없이 둘러봤다.
“다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늦어.”
낙조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해화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좋은 장비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괴짜 같은 놈이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내세운다면 당장 머리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었다. 적어도 밤이와 지운이 어디 있는지만 안다면 대략적인 동선이라도 짜 볼 텐데. 낙조는 숨을 고르게 내쉬면서 바람이 흘러들어오는 곳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렇게 적막한 곳에선 공기의 흐름을 읽기가 수월했다. 낙조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틈 가까이 몸을 붙였다. 그리곤 방 한가운데에 있는 해화에게 말했다.
“변종인 척 소리를 내 봐.”
“뭐?”
다짜고짜 자신에게 변종 소리를 내 보라는 낙조의 말에 해화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낙조는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변종 소리를 들으면 사살하러 문을 열겠지. 그때 나가는 거야.”
다른 사람이 만든 작전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낙조였기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화는 보이지도 않는 모습에 약속을 걸고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은 찬성의 의미였다. 낙조는 발소리가 잘 들리는 곳에 몸을 기댔다.
“헉, 아아아악! 으아악!”
변종과 완벽하게 같진 않더라도 내야만 했다. 목을 긁으며 비명을 내지르던 해화는 차라리 빛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곧 비명을 들었는지 군사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남자 소리는, 안 들렸나?
-여자 비명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사살해.
-예.
손바닥 안쪽이 뜨거워졌다. 당장 나가자마자 총알받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밤이와 지운을 찾아야 했다. 밤이가 준 이파리 없이 힘을 완전히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이제는 정말 스스로 해내야 하는 때가 왔다. 몸속에 응어리진 채 풀어지지 못하고 있는 힘. 의문이라거나 두려움을 품지 않고, 그 힘이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어도, 온전히 몸을 내주는 것. 오롯이 나만의 것인 ‘의식’만 지키면 된다.
투둑, 툭.
애초에 낙조를 줄 하나로 묶어둔다는 것부터 그들은 스스로에게 패널티를 부여한 것이었다. 낙조는 조금 더 힘을 주어 줄이 힘에 못 이겨 뜯길 때까지 이를 악물었다.
철컥, 철커덕, 쾅!
무거운 자물쇠 따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은 바깥에서 쏟아지는 빛과 병사들의 그림자를 모두 잡아먹었다. 라이트를 켜고서 병사들이 해화를 조준할 때, 낙조는 조금 느슨해진 팔로 가장 맨 앞에 선 녀석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으아아악!”
우드득, 뼈가 속절없이 부러지는 소리가 손바닥 안에서 울렸다. 방에 들어온 병사는 셋이었다. 곧장 뒤쪽에 따라붙은 둘에겐 발을 썼다. 한 녀석의 정강이를 후려친 다음 첫 번째 병사의 손을 놓고서 마지막 병사의 총을 쥐고 끌어당겼다. 낙조는 자신의 힘에 비틀거리며 넘어진 병사의 군모를 세게 걷어찼다.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을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 매듭은 더욱 느슨해졌고, 낙조는 손목에 흉터가 남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팔을 비벼가며 줄을 벗었다. 그리곤 해화를 묶은 매듭을 풀어냈다. 한 시간도 갇혀있지 않았으나 바깥의 빛이 이리도 반가울 줄 몰랐다.
-칙, 치칙, 사살했나?
그때 바닥에 떨어진 무전기에서 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낙조와 해화를 포박하라고 지시한 군인의 목소리였다. 낙조는 무전기를 집어 들어 바깥의 바리게이트 너머로 던져버렸다.
“여기는 좋은 총 쓰네.”
낙조가 중얼거리며 병사들이 떨어뜨린 소총을 주웠다. 해화도 꽤 맘에 들었는지 금세 조준하는 법을 배우곤 건물 뒤에 몸을 숨겼다.
“협박용으로만 쓰는 거지?”
해화가 속삭였다. 낙조는 잠시 고민하며 건물 주위를 순찰하는 병사들을 살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자신들이 갇혀있던 곳은 막사와 조금 동떨어진 곳인 듯했다. 역 안에 있는 창고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 그저 작은 컨테이너 박스 안이었다. 창문은 모두 테이프로 막아둔 것뿐이었다. 주변엔 비슷한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가 줄줄이 박혀 있었다. 어쩌면 저 중 한 곳에 밤이와 지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다. 저쪽에서 자신들의 신원을 완벽하게 알아내기 전에 밤이와 지운을 구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변이 선충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는 건 다른 간부를 찾아보거나 직접 연락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낙조는 자신들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병사 둘을 유심히 노려 보았다.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듯한 앳된 얼굴들이었다. 그들의 사각지대에 박힌 채 숨을 죽이고 있다가, 그 둘 중 하나가 낙조의 그림자를 밟기 직전 팔을 뻗어 병사의 목을 감쌌다.
낙조가 총을 쥐고 있다는 것과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겐 충분한 공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낙조는 컥컥거리는 병사를 건물 뒤쪽으로 끌고 온 후 목소리를 낮춘 채 물었다.
“어제 여기로 온 여자랑 남자,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그건, 콜록, 기밀사항이라…….”
“그럼 이렇게 하자. 나도 비밀을 알려줄 테니까, 당신도 말하는 거야.”
병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겉으로 늘어놓기만 하면 우스운 말이긴 했다. 어린 아이처럼 비밀을 교환하자는 제안이 이 상황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는 낙조도 잘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비밀은 그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갖고 싶은 이야기가 되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내 이름은 고낙조야.”
“그게……, 예?”
“내가 고낙조라고. 사람인 척하는 변종. 걔.”
병사의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남은 한 명은 해화가 총으로 조준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부대에게 알린 수배 명령을 아는 이들은 간부급 병사들이 대부분인 듯했다. 간부의 태도로 봐서는, ‘그런 변종이 있을 리 없다’라는 생각 하에 지시를 일부러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디로 보나 간부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더불어 낙조의 일행에겐 더없는 행운이었다.
“어제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그럼 살아서 돌아가게 해줄게. 그리고 내가 고낙조라는 것도, 말해.”
낙조는 병사의 귓가에 속삭였다. 언제부턴가 평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여유가 함께 피어나는 듯했다. 나긋한 시선으로 병사를 바라보던 낙조는 천천히 그의 목을 졸랐던 팔에서 힘을 빼냈다. 병사는 해화와 낙조를 번갈아 보며 고민하는가 싶더니, 손을 들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반대편 왼쪽에서 세 번째 건물입니다.”
낙조는 위치를 완벽하게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좀 끌어줘. 문은 우리가 알아서 열 테니까.”
그리곤 병사 둘을 다시 그림자 밖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뻣뻣한 움직임으로 코너를 꺾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겠지. 낙조는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둘이 그 건물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를 데리고 반대쪽으로 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가자.”
해화에게 신호를 주곤 잰걸음으로 그 컨테이너 박스 앞까지 다가갔다. 낙조는 왼손에 총을 넘기고서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돌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냈다.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이 그 말만 되풀이하며 오른쪽 팔에 힘이 모여드는 걸 생생히 느꼈다. 어디서부터 피가 도는지, 어디의 근육이 힘차게 뛰고 있는지 모두 느껴졌다. 곧 손가락에서 이파리가 피어나 서로의 몸을 엮어 단단한 구체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쾅!
그대로 자물쇠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자물쇠는 문고리와 함께 싱겁게 나가떨어졌다. 문고리가 떨어진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문을 잡아당기자, 안쪽으로 바깥의 빛이 흘러 들어갔다.
“아저씨!”
둘은 다행히 묶이진 않았다. 벽에 기대어 있던 지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낙조를 불렀다.
“저기다! 다들 조준해!”
‘소문이 빨리도 퍼졌네.’
낙조는 해화를 자신의 등 뒤에 세워 가린 후 이파리를 완전히 펼쳤다. 혈관이 펄떡이는 것처럼, 잎사귀 위로 붉은색을 띠는 잎맥이 두근거렸다. 낙조는 손가락 하나하나를 느리게 움직이면서 그들을 면대면으로 대치했다.
어쩌면 이곳은 상상한 만큼 빠져나가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져나가려 할수록 깊게 가라앉는 늪지대처럼. 이곳은 엄연히 통솔자가 있는 곳이고, 그의 지휘 아래 어떤 행동도 허용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고낙조라는 이유로 일행 모두가 다칠 수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드는 걸 저들은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고낙조.”
“…….”
“네가 투항하면, 원했던 대로 변이 선충에 대해서 보고하겠다.”
병사들을 헤집고 나와 맨 앞에 선 군인이 말했다.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군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낙조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낙조가 해화를 지운과 밤이가 있던 컨테이너 박스에 밀어 넣었다. ‘고낙조!’ 해화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낙조는 문까지 닫아버린 후였다.
“당신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별로 구하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손바닥 가운데가 뜨거웠다. 혈액이 응고되어 탄알처럼 동그랗게 맺어졌다. 그것들은 모두 잎사귀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장전되었다. 오른팔은 화염에 잠식당하는 것처럼 타들어 갔다. 진동휘를 상대할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잎사귀는 단단해짐과 동시에 뜨거워지고 있었다. 낙조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이 아닌, 그 사이로 보이는 군인을 향해 자신의 총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