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늪지대 (2)
변이한 기생 창선충을 보는 시선은 미덥지근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지속됐다. 전주 대피소의 책임자는 군인이었다. 생물학자는 고사하고 생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가 있으면 했지만, 헛된 소망이었다. 밤이는 별 감흥 없이 선충을 내려다보는 군인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계속 보고만 있으면 답이 나오나요?”
“갑자기 나타나서 애벌레 하나 뚝, 던져 놓고 본부에 보고를 하라니. 그쪽이 더 말 안 되는 겁니다. 바이러스야 생명체면 무엇이든 감염시킬 수 있겠죠.”
“그런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요 지금? 인간 몸에 식물이 기생하는 게 끝이 아니라니까요. 인간 몸을 아예 지들이 살 수 있게 바꾼다고요. DNA를 파괴하고 신경조직계까지 조종해요! 지금은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것들이 생기면요. 그때 가서 구충제 드세요, 하고 말하게요? 지금 날벌레나 바람에 이 선충들이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밤이가 책상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임자는 귀찮은 일을 떠맡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말이 안 통하는 여인네네. 이봐, 나는 여기 통솔하기도 바빠. 이 조그마한 게 인간의 세포를 파괴해? 그럼 그렇게 된 인간을 데려와 봐. 눈앞에 데려다 놓으라고.”
“당신 미쳤어?! 변종을 지금 대피소에 데려오라는 거야?”
밤이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운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밤이를 말렸다.
“누나, 참아요. 좆 같아도 비위 맞춰야 돼요. 저 사람들은 안 믿어도 본부에 연락하기만 하면, 누군가는 들어줄 거예요.”
지운이 책임자를 등진 채 밤이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았다. 저들의 눈에 자신들은 그저 떠돌아 다니는 이방인일 뿐이고, 애벌레 한 마리 데려와서 상상 속 이야기를 늘어놓는 미치광이였다. 그럼에도 청주엔 전달해야만 했다. 저들이 속는 셈 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게 만들어야 했다.
“어……, 전달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변종이 되면 후각이 굉장히 발달한다는 건 들으셨을 테고……, 그럼 신경계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건 사실이죠. 그죠?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 신경계를 자기들이 살기 좋게 뒤바꾼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새 변이 바이러스가 생긴 거고,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변종이 진화를 시작한 겁니다.”
지운은 침착하게 책임자를 향해 말했다. 겉으론 아무리 어리고 철없어 보여도, 지운은 항상 저한테 달린 몫은 해내는 아이였다. 밤이가 거친 숨을 다스리고 있을 때, 지운은 선충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나면 답이 없어요. 지금 청주에서 백신 만들고 있다고 하죠? 그거 다 수포로 돌아가요. 쓸 데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니까요.”
“……어디서 이걸 발견했지?”
나한텐 말 까네, 이 아저씨. 지운은 구겨지려는 미간을 억지로 참아 내고서 입을 꾹 다물었다. 반쯤은 넘어온 것 같았다. 그러니까 출처만 분명히 밝히면―
“임실. 삼박골이요.”
“홍지운!”
된다고 생각했는데.
노부부가 사는 마을 이름을 꺼내자 밤이가 버럭 소리쳤다. 순간 막사 안이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지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밤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삼박골……. 완전 깡촌이네. 거기서 찾았다, 이거지.”
“……뭐……, 왜요.”
책임자는 거만한 표정을 짓고서 산적처럼 난 수염을 벅벅 긁었다. 그리고는 뒤에 서 있던 병사 둘을 부르더니 지운과 밤이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지시했다.
“삼박골로 병력 보내. 감염된 것 같은 생명체는 모두 불태우고.”
“이봐요!”
“되도록 빨리 준비해. 청주에 보고 올리는 건 병사들 돌아온 이후에 내가 한다.”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운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병사들에 의해 제지됐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당분간 격리시켜 놔.”
책임자는 밤이와 지운을 가리키며 말하곤 막사를 빠져 나갔다. 곧 병사들이 지운과 밤이를 대피소 뒤편으로 끌고 갔다. 입을 막은 탓에 소리를 질러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
시체도, 변종의 흔적도 없는 집을 찾았다. 밤이가 정해 준 마지노선, 5층의 맨 끝집이었다. 해화는 밤이가 말한 대로 문고리에 빨간 머리끈을 매달아 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는지 물 반 통과 라면 세 봉지가 남아 있었다. 저녁을 넘기고 밤이 되었지만 복도에선 인기척 하나 나지 않았다.
“얘기가……, 잘 안 풀리나?”
해화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낙조는 생라면을 먹기 좋게 부수며 대답했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웬 민간인들이 와서 주장하니까. 그래도 밤이 누나랑 지운이가 갔잖아. 둘 다 전문가니까, 잘 될 거야.”
낙조는 가장 귀엽게 부스러진 라면 조각을 해화에게 건넸다. 해화는 머뭇거리다 그것을 받아 입에 물었다. 오독, 오독. 생라면 씹는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너 다친 덴 없어?”
한 조각을 다 삼킨 해화가 문득 낙조에게 물었다. 낙조는 남은 라면 조각을 오물거리다가 마저 삼키곤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해화에게 안방의 일을 맡기고 나름 거실에서 살벌한 육탄전을 벌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겪은 상처에 비하면 피죽도 못 되는 것들이었다.
스프봉지는 일부러 뜯지 않았다. 짜서 물을 과하게 섭취할까 봐. 사실 밤이가 지운이 언제 돌아올지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지. 해화와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서 스스로 나선 둘에게 어떻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지 정해놓지도 못했다. 낙조는 뜯지 않은 스프봉지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멍하니 깜박였다.
“문 잠가 놔야 할까?”
해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낙조는 고개를 들어 잠그지 않은 현관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만약 우리가 잠든 시간에 온다면, 문을 열어 둬야 하긴 할 텐데. 그렇다고 지운과 밤이가 아닌 이들이 들어오게 된다면?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렇게까지 오래 끌 얘기도 아닌 것 같은데.’
밤이는 맨눈으로 보고도 창선충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라는 것도 곧장 추측해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변종이 들쑥날쑥한 세상에서 새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걸 알 텐데. 괜한 의심과 함께 걱정이 맴돌았다.
‘물증이 없어서……, 안 믿나?’
억울함이나 괴로움을 호소할 때마다 사람들은 눈이나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원한다. 정확한 수치를 알고 싶어 하는 거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아픈지, 어떻게 그 일을 당했는지, 왜 그곳에 갔는지……. 물론 엄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증거가 필요하다는 거지만. 이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증거라고 내세울 수 있는 건 변종을 두 눈으로 보여 주는 수밖에 없는 사실 때문에 이성이 자꾸만 흐릿해진다.
“내일 아침까지 안 오면……, 가 보자.”
낙조가 어렵사리 입을 떼어 냈다. 가만히 손톱만 만지작거리던 해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 층 이상으로 올라가지도 않을 테지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사이 불청객들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거실 바닥에 누웠다. 해화는 현관 바로 옆에 있는 방의 침대로 보냈다. 그곳은 변종이나 시체의 흔적 따위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서 눈을 붙일 수 있을 테다.
거실 천장엔 여전히 변종의 뿌리가 남아 있었다. 해화가 본체의 신경계를 완전히 끊어 냈을 때, 변종은 힘을 잃었다. 이파리에 둘둘 싸여 있던 가족의 시체는 비어 있던 옆집에 옮겼다. 그 모든 일을 하고 나니 밤이 되어 있었고, 그때까지도 밤이와 지운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같이 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진짜 팀처럼.」
‘너는 처음부터 용감했어, 홍지운.’
낙조는 주먹을 쥔 팔로 눈가를 가렸다. 긴장했던 몸이 녹아내리듯 밑으로 가라앉았다. 몸의 무게가 바닥에 못박힌 것처럼 늘어붙었고,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평안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적막함이……, 그동안 바라왔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니 불안함은 더욱 증폭됐다. 남은 라면 한 봉지를 뜯어 생라면을 오독오독 씹다가 낙조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대피소에 가자.”
해화는 낙조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발목엔 이제 막 이파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해화는 붕대 대신 노부부가 준 데일밴드를 붙였다.
“대피소에 어떻게 얘기하지?”
대피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해화가 물었다.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했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하얘지는 듯했다. 낙조는 해화보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민간인처럼 행동하자. 살려고 온 것처럼.”
대피소 주변은 확실히 변종의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군인들이 순찰을 시간마다 나가는 건지는 몰라도, 거리는 깨끗했고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함도 크지 않았다. 마침내 ‘전주역’의 글자가 크게 보이는 건물 앞으로, 흰 막사가 여러 개 뭉쳐져 있는 곳이 보였다.
막사 주변은 수십 개의 바리게이트로 뒤덮여 있었다. 군인들은 일 미터씩 간격을 두고 서 있었는데, 개중 한 명이 낙조와 해화를 발견하고 조준 자세를 취했다. 낙조는 조용히 먼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서 천천히 막사 쪽으로 다가갔다.
“민간인이십니까.”
“예, 둘 다 변종과 접촉한 적은 없습니다.”
낙조는 태연하게 말했다. 군인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낙조와 해화를 슥 훑어보더니 바리게이트를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만큼 열어 주었다.
“대피소에 들어오기 전엔 간단한 검사를 거쳐야 합니다. 저쪽 막사로 가십시오.”
군인이 작은 막사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군인은 낙조와 해화를 지켜보며 함께 그 막사까지 걸었다. 막사 안에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앞에 놓인 책상은 이런저런 책과 문서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남자는 낙조와 눈을 마주치고서 안경을 치켜세웠다.
“자리가 남아나는 줄 아나. 또 민간인을 들여?”
“둘 다 젊어 보이니 훈련만 잘 따른다면 병력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병사가 조금 낯선 말을 늘어놓았다. 한동안 청주에서의 연락을 귀 담아 듣지 않아서였을까. 본부에서 내려진 명령이 자신을 체포하라는 명령 말고 또 있었나. 낙조는 놀라지 않으려 입을 앙 다물고선 천천히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피 뽑고, 결과 나올 때까지 여기 있어요.”
남자는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키면서 귀찮다는 어투로 말했다. 낙조와 해화는 순순히 그곳에 앉아 남자가 차례로 피를 뽑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었다. 다만 피를 뽑는 게 마음에 걸렸다. 분명 일반인과는 다른 혈액 구조를 갖고 있을 테다. 자신과 해화 모두.
‘대피소 내부에 누나랑 홍지운이 있을까?’
그들은 정보를 전달하러 갔지, 피신을 목적으로 갖고 있지 않았는데. 낙조는 어딜 보아도 찾을 수 없는 둘의 흔적에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걸 느꼈다. 섣불리 그들에 대해서 물어봤다가는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일방적인 힘으로 몰아붙이기엔 수적으로 너무 불리해. 둘이 어디 있는지만 알면…….’
낙조는 자신의 피를 담은 메스실린더가 기계에 꽂힌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해화 또한 낙조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는지 곁눈질로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근데, 최근에 남자랑 여자 두 명이서 찾아온 적이 있지는 않았습니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그……, 전주 대피소 위치를 알려 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함께 오려고 했는데, 도중에 변종을 만나 흩어지는 바람에……. 무사히 도착했나요?”
“어제 남녀 둘이서 찾아오긴 했어요. 근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더라고. 그걸 청주에 전해 달라느니, 어쩌니. 뭐, 그래서 좀 난리가 났었죠.”
남자는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분명 오긴 왔었어.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낙조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밤이와 지운이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정보를 전달했는지 모르기에 그들의 말이 진짜라는 걸 증명해 주기 위해선 유심히 단어를 골라야 했다.
“혹시……, 변이 기생충……, 같은 것에 대해 말했습니까?”
“…….”
남자가 안경 너머로 삐끗한 시선을 던졌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이들이 밤이와 지운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자신과 해화는 그들과 같은 무리가 아니라는 점을 내세운 다음, 목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낙조는 긴장하지 않으려 하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도 봤습니다. 저희를 쫓는 변종들이 그 변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남자가 안경을 벗고서 주름이 낀 눈으로 낙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낙조는 여전히 기계에 꽂힌 채 돌아가는 메스실린더를 잠깐 곁눈질로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모두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여자 분이 생물학 쪽으로 굉장히 박식하신 분이셨거든요. 유충을 보자마자 어떤 유충인지 바로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대피소에 간다고 하셨어요. 이 정보를 전해야 한다고.”
“잠깐, 잠깐. 당신들은 그럼 그런 쪽에 대해서 잘 아나?”
“…….”
남자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이 더욱 깊어진 눈길로 낙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식은땀이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무너지면 지식의 경계도 희미해집니다. 그 틈을 타 그럴 법한 이야기를 만드는 건 그저 재난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조그마한 사건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무슨 이유로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저희 둘이 똑똑히 봤는데―”
“―내가 보지 못했으니까. 이 근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남자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곤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설득은 그쯤 해둡시다. 우리는 여길 유지하는 것만 해도 바빠. 그리고 아예 그 사람들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냐. 확인하려고 준비를 했으니까.”
“준비요?”
어쩐지 밀려드는 음습한 공포에 낙조가 되물었다. 남자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메스실린더 앞으로 다가갔다. 낙조와 해화를 등진 채로,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서 말했다.
“임실 촌에서 발견했다지요. 그래서 거기로 군사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근원지를 미리 없애면 더 퍼질 일도 없을 테니까. 워낙 사람의 왕래도 적은 곳이라…….”
낙조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으라는 듯 눈길을 주었으나 낙조는 막사를 뛰쳐 나갔다. 밖엔 2열 종대로 모인 군인들이 모여 있었다.
‘안 돼……!’
첫 대피소 앞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떠올랐다. 마구잡이로 민간인들에게 달려들던 총알들, 변종과 구별 없이 도로에 널브러진 시체들. 낙조는 맨 앞쪽으로 달렸다. 자신들을 배웅하던 노부부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