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그들의 낮과 밤
며칠 동안 쓰지 않았던 힘은 잎사귀가 다 자라나기도 전에 몸을 휘감았다. 총알이 관통했던 곳은 아문 지 꽤 되었다. 온갖 힘을 짜내도 괜찮을 정도로.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낙조는 목을 비튼 변종을 길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아직 노부부의 집에서 많이 멀어지지 못했다. 혹시나 그들이 총 소리에 놀랄까 싶어 총도 꺼낼 수가 없었다. 해화는 산길 옆 밭에 넘어져 있는 곡괭이를 들었다. 지운은 짐가방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밤이는, 총에서 탄알을 모두 빼낸 후 총구와 개머리판으로만 놈들을 당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종에게는 2차, 3차 변이가 생긴다고 봐야 한다. 어떤 환경에 놓여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건 식물과 완전히 융합되거나 바이러스를 새 영역에 퍼뜨려 자신들의 활동 범위를 넓힌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잎사귀로 변종의 머리를 녹이고,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었다. 제발 보이는 숫자만이 삼박골 근처에 있는 변종의 전부이길 바라면서.
“헉, 허억…….”
숨이 끝까지 차올라 날숨이 마구잡이로 엉켰다. 낙조는 두 명을 한 번에 제압하고서 넘어뜨린 후 그 위에 올라타 잎사귀로 녀석들의 목을 조였다. 뱀처럼 변종의 피부를 서늘하게 감은 잎사귀는 푸릇푸릇한 혈색을 띠면서 놈들의 숨통을 막았다.
“끄억, 꺽, 꺼억…….”
숨을 급하게 잡아먹는 소리가 아래서 들려왔다. 낙조는 자신이 붙잡은 두 놈들이 괴로워하는 신음을 내뱉는 것을 들으면서 더욱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투둑, 툭.
잎사귀는 조금 더 두터워지더니 아예 녀석들의 입안을 타고 들어갔다. 입안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낙조가 마지막으로 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날리듯 앞으로 내리꽂았다.
푸욱.
그대로 두 놈의 목을 꿰뚫은 잎사귀가 땅속에 처박혔다. 아침이슬을 먹은 흙도 차갑고 축축했다. 낙조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면서 잎사귀를 빼냈다. 워낙 길게 늘렸던 터라 빼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노란 진액과 피가 잎사귀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러나 팔엔 상처 하나 없었다. 진액이 파고 들어갈 틈 하나 없이 일을 끝냈다.
“고낙조.”
뒤에서 해화가 불렀다. 그녀의 얼굴 또한 많이 지쳐 보였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낸 해화가 수건을 물에 적셔 낙조에게 내밀었다.
“닦아.”
주위에 널브러진 변종들을 둘러보며 수건을 건네받았다. 끈적거리는 진액을 먼저 닦아 내면서, 낙조는 가만히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노부부의 집은 보이지 않았으나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자신들이 며칠 동안 보았던 그 적막함, 말이 많지 않더라도 깨지지 않은 일상이 계속되길 바랐다. 적어도 이 마을에 생존자가 있다는 게 알려질 때까진.
차에 다시 올라탔을 땐 기운이 조금 빠져 있는 상태였다. 물을 아껴야 했기에 각자 한 모금씩만 물을 삼켰다. 지운은 살짝 긁힌 상처에 노인의 아내가 준 데일밴드를 붙였다. 낙조는 클락션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서 노인이 일러준 주유소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완전 딴 세상 같네, 이젠.”
조수석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있던 해화가 중얼거렸다. 머리가 길었을 땐 옆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머리를 자르니 그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해화는 산 중턱에 걸린 커다란 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변종만 있을 땐,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태계가 다 무너진 것 같아.”
심연이 드리워지는 공간에서 혼잣말을 하듯 해화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어딘가 낯설었다. 날을 넘길수록 맞부딪치게 되는 변종의 모습은 갈수록 기괴해져만 가고, 알아내는 것들은 그에 비해 적으니 겁이 날 만도 했다.
“계속 이렇게 쫓기면서 살아야 하나?”
“새로운 변종이 발견될수록 너희 같은 사람들도 더 발견될 거야. 그럼 그쪽에서도 굳이 너희를 잡으려 지금처럼 날뛰진 않겠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밤이가 대답했다. 해화는 창문에서 이마를 떼어 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서연우 그 사람이 그럴 양반이 못 되니까.”
밤이는 서연우와 마주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긴장의 연속이었는지 알 리가 없다. 낙조는 핸들을 툭툭 치며 해화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해화가 고개를 돌리자, 낙조는 입모양으로 ‘더 얘기하지 말자.’라고 중얼거렸다.
밤이에게 서연우에 대한 얘기를 해 줘야 한다면, 분명 그렇게 해야만 하는 때가 올 것이다. 불필요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할 여유 같은 건 없다. 낙조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린 후 기어를 쥐었다.
‘이번에 가는 주유소는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한낱 꿈일 수도 있는 바람을 지니고.
*
백무흠은 죽여서도, 죽어서도 안 될 몸이었다. 일전에 비슷한 실험을 당한 당사자인 사실과 그의 몸에 남은 실험의 흔적은 연우에게 좋은 표본이 되어 주었다. 가끔은 연우도 생각했다. 인간의 몸으로 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시 정신을 놓기도 했다.
“팀장님, 혈압 수치 정상입니다.”
연구원이 던진 말에 연우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투명한 벽 안에 갇힌 무흠은 시체처럼 앉아 있었다. 그의 팔에 달린 링거 줄만 수 개였다.
처음엔 그도 반항이란 걸 했었다. 몸에 바늘을 꽂는 것을 거부하며 연구실을 한바탕 뒤집어놓았다. 그러나 그 일이 하루에 서너 번이 되고, 일주일에 대여섯 번쯤 되니 어느 순간부터 반항하지 않았다. 연구는 그때부터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우는 더 이상 무흠과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고, 무흠의 피를 일정량 빼낼 수도 있었다.
혹여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릴까 봐 입에 재갈을 물렸다. 영양 균형을 위해 식사를 어떻게 시킬까 고민하던 차에 소장이 지시를 내렸다. 필요한 영양분은 주사로 놓으라고. 무흠을 위한 식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무흠이 잠들어 있을 때마다 몰래 연구원들이 링거 팩을 갈아줄 뿐이었다.
“팀장님?”
“……수고했어요.”
연우는 연구원이 방을 나선 후에야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피처럼 보이는 액체가 담긴 주사기였다. 그녀는 유리벽에 가까이 다가가 무흠을 향해 노크했다. 똑똑, 청아한 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울렸다.
무흠이 고개를 살짝 비틀어 시선을 들어올렸다. 실핏줄이 터진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받아쳤다. 그리곤 자리에 쪼그려 앉아 시선의 위치를 맞추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연우가 손에 쥔 주사기를 흔들며 말했다. 깜박, 무흠의 두 눈이 닫혔다가 열렸다. 꼭 대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우는 주사기와 무흠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
“나도 고생 많이 했지. 그동안 얼마나 닦달을 해대든지. 괜히 팀장 달아 준 게 아니었나 봐.”
“…….”
“그런데 고낙조랑 홍해화는 아직도 못 잡았고……, 도대체 어디에 숨겨 뒀어요?”
연우는 꼭 그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태도로 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이런 시간은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무흠은 느리게 눈만 깜박이며 연우를 응시할 뿐, 입술 한 번 꿈쩍하지 않았다. 갈라진 입술에선 간간이 날숨만 흩어져 나왔다.
“에이, 물어봐서 뭐하나. 이제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직접 찾을 텐데.”
연우는 고개를 저으며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문에 달린 잠금 장치 패드 위에 손바닥을 찍었다. 연우의 손바닥을 스캔한 장치의 잠금이 풀렸다. 옆으로 밀려나는 문을 넘어 무흠 앞에 선 연우는 천천히 무흠의 팔에 박힌 주사를 하나씩 빼주었다. 무흠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연우의 손을 따라 눈동자를 힘없이 굴릴 뿐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주삿바늘을 빼내고, 연우가 멍투성이인 무흠의 팔을 들여다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무흠의 입에 물린 재갈을 빼냈다. 시선이 그제야 맞닿았다.
“이걸 맞으면, 당신도 고낙조처럼 강해지는 거예요. 어쩌면 더 강해질 수 있어요. 고낙조는 자기 힘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으니까……, 전면으로 붙는다면 당신이 이길 수도 있다는 거죠. 서울에서 내가 놔줬던 주사보다 더 빠르고, 오래 지속될 거예요.”
“…….”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난 날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무기는 만들면 된다고.”
“……너…….”
“무기에겐 명령을 내릴 뿐, 감정을 바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 당신도 이해해 줬음 좋겠어요. 우리가 내린 선택을.”
신음 같은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지만 연우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마치고서 챙겨온 주사기를 쥐었다. 주삿바늘이 살갗에 가까이 닿았을 때였다.
“…….”
턱, 무흠의 왼손이 연우의 손목을 잡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사납게 솟은 눈매가 연우를 향하고 있었다. 무흠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은 해봤어?”
항상 존대를 하던 무흠의 모습은 없었다. 살기도 아니고, 독기도 아니었지만 어둡고 캄캄하기만 한 감정에 휩싸인 얼굴이 오롯이 연우를 향해 있었다. 연우는 잡힌 팔을 빼내려 했지만 무흠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동안 반항하지 않았던 건 무흠의 선택일 뿐이었지, 어쩔 수 없이 당해준 게 아니었다.
“고낙조 씨, 홍해화 씨……, 왜들 그렇게 됐는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너는 알잖아.”
무흠의 말에 연우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있는 힘껏 무흠의 손을 뿌리쳤다. 손목이 얼얼했지만 그 정도의 고통이 연우를 짓밟은 게 아니었다. 다시 주사기를 쥐었을 때, 무흠은 모든 것을 체념한 것처럼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바싹 마른 얼굴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불규칙한 숨소리……. 유리 감옥 안을 메운 무흠의 모든 것이 연우를 압박했다.
주사기를 쥔 손이 떨렸다. 연우는 반대쪽 손으로 주사기를 쥔 손을 잡고 혈관을 찾았다.
‘이게 끝이야. 이게 끝이야. 정말로 이게 마지막이야.’
바늘은 너무나도 쉽게 무흠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무흠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까 자신을 붙잡은 힘이라면 당장 떠밀고 이곳을 나갈 수 있을 텐데도. 물론 그래 봤자 이 건물을 나가진 못하겠지만.
연우는 주사를 마저 놓고 도망치듯 유리 감옥을 나왔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 저절로 장치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무흠은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푹 숙였다가, 느리게 손을 들어 주삿바늘이 놓인 곳을 움켰다.
“윽…….”
곧 그가 몸을 잘게 떨면서 신음했다. 연우는 뒷걸음질 치며 그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텅 빈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넣고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흠에게 놓은 샘플이 독처럼 그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면, 저 유리 감옥 안에 분사할 차례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큭, 으윽, 끅…….”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간 강도 높은 고문을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무흠이 고통을 외부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무흠은 내장을 비롯한 뼈와 근육이 모두 짓뭉개진 사람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길게 자란 손톱으로 바닥을 긁고, 견디다 못해 주먹을 쥐어 유리 벽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유리 벽이 흔들릴 때마다 연우도 흠칫 놀랐다. 그러나 무흠은 절대 저 벽을 넘어오지 못할 것이란 걸 알았다. 그는 끝내 비명을 지르면서 벽을 두드리다가 혼절했다. 거대한 나무가 꺾인 것처럼 무겁게 소리가 울렸다.
“…….”
연우는 손으로 더듬더듬 벽을 짚어 가며 컴퓨터로 향했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떨리는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았다.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샘플 FV-C 접종 완료했습니다.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잠시 손가락이 머뭇거렸다. 연우는 고개를 들어 벽 안에 쓰러져 있는 무흠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샘플 FV-C 접종 완료했습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이나 되찾는 대로 고낙조의 피를 실험관 안에 분사하겠습니다. 변종의 DNA가 완전히 갖춰졌다면, 피 냄새로 사냥감을 추정할 것입니다.」
몇 개 되지 않는 문장이었지만 쉽사리 보낼 수가 없었다. 연우는 몇 번이고 문장을 고치고 다시 적었다. 똑같은 문장을 세 번이나 넘게 되풀어 적기도 했다. 그동안 무흠은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자정이 되기 전에는 보고서를 올려야 했다.
「백무흠의 힘을 훈련시킨 후 위치추적기를 심겠습니다. 소장님이 지시하신 대로 피 냄새를 맡기 전까진 인간과 동일한 행색을 보일 수 있게끔 조작했습니다. 공격성을 더욱 높이는 것도 성공했습니다. 백무흠이 의식을 차리는 대로 진행 상황 보고 드리겠습니다.」
딸깍. 어두운 연구실 안을 밝히는 유일한 모니터의 빛이 연우의 얼굴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