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59화 (59/202)

59화. 옛날 옛날에 (5)

마당으로 들어서는 낙조와 해화를 보고 개가 짖었다. 그러다 곧 낙조가 든 낙엽 위의 버섯 냄새를 맡았는지 심히 경계하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낙조는 서둘러 마루에 낙엽을 내려두고, 그 위를 유리컵으로 덮었다. 안 그래도 낙조와 해화를 찾고 있었는지 인기척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왔다.

“말도 안 하고 어딜 갔다가 이제 와.”

밤이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목소리로 낙조를 타박했다. 그 앞을 해화가 가로막았다.

“제가 깨웠어요. 산에 다녀오자고. 그리고 이걸 발견했는데……, 언니가 봐야 할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해화의 말에 밤이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유리컵 안에 든 녹색 버섯, 그리고 쉬지 않고 구멍을 파먹으며 움직이는 애벌레들. 밤이는 점점 인상을 찡그리면서 유리컵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창선충 유충이야.”

밤이는 한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다 입을 열었다. 낯선 단어였다. 모두가 집중해서 밤이를 응시했다.

“식물에 기생하는 선충 중에 하나인데, 크기가 보통 선충보다 원래 크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큰데.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면 천 배는 더 큰 거야.”

“얘도 변이된 거 아니에요?”

말없이 유리컵 안을 들여다보던 지운이 물었다. 밤이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다가 짐가방에서 일회용 장갑을 끼고 돌아왔다. 그녀는 유리컵을 살짝 들춰 유충 한 마리를 집게로 꺼내 낙엽 위에 올려놓았다. 현미경 같은 장비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맨눈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게 흠이었다. 도구 없이 생물을 확인한다는 건 아무래도 확언을 하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새 개체를 발견했을 땐 더더욱.

“어르신, 여기, 주변에서 선충 발견된 적 있나요? 뿌리가 썩어서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 죽었다거나, 이유 없이 시들었다거나…….”

“아주 예전에 약을 친 적이 있을겨. 뿔쑥뿔쑥 애들이 죽어 나갔응께.”

“그 뒤론 아무 일 없으셨어요?”

“하나도 안 죽었어야.”

노인은 강단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인의 대답에 밤이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창선충은 외부기생선충이야. 뿌리 바깥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꽤 식물화가 진행된 변종의 몸에 들어갔다가 같이 변이된 거로밖에 설명이 안 돼.”

“그럼…….”

“알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장비 같은 게 없으니 더 알 수도 없고…….”

답답하다는 듯 밤이가 토로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밤이는 조그마한 유충을 다시 유리컵 안에 넣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예 다른 생명체에게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거잖아요.”

“그래.”

“청주에선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해화의 말에 밤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낙조 일행이 바이러스에 관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끝없는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은 청주였다. 계속해서 샘플이 들어올 것이고, 백신 개발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있을 것이다. 백 중사가 그곳에서 어떤 짓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청주’라는 지역명에 밤이는 잠시 얼굴을 굳혔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까 우리가 직접 얘기라도 하자는 거야?”

창선충 변이 발견 이후 밤이는 꽤 날이 서 있었다. 바짝 가시가 돋친 말에도 해화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실 앞에선 적이고 아군이고 구별할 필요가 없잖아요. 기술력 좋은 쪽에 정보 전달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일이야. 너 자신 있어? 위치 추적 당해서 쫓기다가 개죽음 안 당할 자신 있냐구.”

“그럼 가만히 있어요? 저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가 알아낼 때까지? 여기 어르신들 같은 사람들이 더 얼마나 있을지 알고요. 변종만 안 오면 안전지대라고 하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 것 같아요.”

해화도 져주지 않았다. 언뜻 첫 번째 대피소 앞에서 총에 맞은 서연우를 구하러 뛰어들었던 해화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낙조는 유리컵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입을 열었다.

“근처 대피소에 가서 정보를 전달해요. 신원은 밝히지 않고.”

“말이야 쉽지. 지금 대피소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찾아가서 본부에 이 정보를 알려라, 이게 가능할 것 같아? 어르신들 걱정이면 모시고 같이 가든가 해.”

“이거 큰 문제라는 거 누나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래서 무서운 거고. 그러니까 누나의 용기가 필요해요.”

낙조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밤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요 며칠 잠을 푹 자지 못했는지 생기 없는 얼굴이 괜히 안쓰러웠다. 밤이는 낙조와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칫했다간 홍해화랑 너 둘 다 끌려가. 그 군인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데 내가 내 입으로, 내 손으로 너네를 팔아?”

“그러니까 신원을 밝히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

“밖에서 여기 어르신들처럼 스스로 살아가시는 분들,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거잖아요.”

“…….”

“그러니까, 우리 처음에 만났을 때 누나가 갖고 있던 용기, 다시 한 번만 보여 줘요.”

낙조의 낮은 목소리가 주변을 맴돌았다. 한참 고민하는 듯하던 밤이는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홀로 마당을 나섰다. 지운이 뒤따라가려 했으나 낙조가 붙잡았다. 곁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노부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가 말이여, 여서 나고 자랐당께. 원래는 저 짝에 집이 있었는디……. 안사람이 나한티 시집 왔을 때 나병이 한참 돌았어. 마을서 그 병 걸린 사람들은 다 잡아다 내쫓았어야. 근데 큰아들 낳고서 을마 안 됐을 때여. 그때 헛소문이 났다. 갓난쟁이를 삶아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문앞에 고추 꿴 줄을 달아놓고 밭일 나갔는디, 그 망할 놈의 후레자식들이……, 집에 쳐들어 온 거여.”

노인은 아주 오래 전 일을 회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인의 아내도 그때를 생각하는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낙조를 비롯한 해화와 지운은 절로 입을 다물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이 갑작스럽게 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밭일을 하고 있는디, 건니집 안사람이 막 뛰어오데. 그러믄서 곽 서방! 곽 서방! 큰일 났당께! 소리를 지르는 거여. 문둥병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싸꼬, 우리 집 대문을 때려 부수고 있다는 거여. 기냥 바로 낫 들고 집으로 뛰어갔다. 참말로 그놈들이 문을 이미 반은 부수고 들어가려는 거여. 애 우는 소리가 빽빽 나니까 그 미친 놈들이 눈이 아예 돌아갔당께.”

특별하게 이야기에 살을 붙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생생히 와 닿았다. 해화는 양쪽 다리를 끌어안고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낫을 막 휘두루믄서, 다 죽일라 혔다. 온몸에 옷을 칭칭 두르고 온 놈들이 무춧거리더니, 그러니까,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하는 거여. 자기들 좀 살려 달라고. 애는 또 낳을 수 있지 않냐 그러는 거여. 미치는 줄 알았다. 증말로 미쳐서 다 죽일라고 혔는디, 누가 날 부르는 거여. 그 속에서 말여. 여기, 나 좀 보게, 나 좀 보게나, 시방 그러는디 이게 꿈인가 헛소린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영감, 그만 혀요.”

가만히 듣고 있던 노인의 아내가 노인을 막아섰다. 그녀는 감추고 싶은 게 있는 사람처럼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옛날 얘기는 꺼내서 뭣 혀요. 애들 괜히 기분만 더 안 좋아져야.”

“뵈니까 갓난쟁이를 안고 있더라고. 허, 참. 갓난쟁이도 문둥병에 걸려가꼬 이미 피부가 다 뒤집어졌으야. 애미가 꾀벅은 애를 나한티 막 떠밀면서 그랬다. 가장 큰 나무 밑에 묻어 달라고. 쎅히기 전에 꼭 묻어 달라고.”

“…….”

“묻어 줬다. 이미 내가 안고 있을 때부터 죽어 있었어야. 그래서 쎅히기 전에 묻어 달라고 한 근가……, 하믄서 묻어 줬다. 멀리서 애미가 스럽게 울면서 보고 있었다. 거기가……, 예전에 나무가 쌔도 읍시 죽어 나갔단 곳이 그곳이여.”

노인은 말을 마치고 낙조와 해화, 지운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나는 안 간다. 대피소든, 청주든. 죄 없는 사람들 쫓아낸 죗값은 여기서 치러야 혀.”

“할아버지…….”

지운이 조금 떨리는 두 손으로 노인의 주름 자글자글한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께 우리 걱정은 말라고 너이들이 할 일 하러 어여 가.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섭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지운의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 짧고도 긴 이야기가 그쳤을 때, 밤이가 대문 문턱을 건너 들어왔다. 이 이야기는 당분간 밤이에게 비밀이 될 것이다. 아무도 자처해서 얘기하지 않겠지. 낙조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쩐지 축 가라앉은 분위기에 밤이가 눈치를 보며 마루 끝자락에 앉았다. 그녀는 운동화 앞코로 바닥을 툭툭 치다가 입을 열었다.

“근처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고 가야지.”

“그럴 줄 알았어요 누나!”

지운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밤이는 일부러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갔다.

“대신 위험하니까 대피소 근처에 홍해화랑 고낙조 너희 둘은 숨어 있어. 지운이랑 내가 얘기하고 올 테니까.”

“알았어요.”

낙조는 곧장 대답했다. 밤이 나름대로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걸 알았다. 이전에 일어났던 말싸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도 이 일행들이 잃고 싶지 않은 존재가 조금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선 하염없이 고마워해야 할까. 낙조는 밤이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밥은 묵고 가야지.”

노인의 아내가 마루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해화가 노인의 아내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이젠 조금 차가워진 늦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낙조는 개집에 들어간 채 낮잠에 빠진 개를 바라보았다.

‘너라도 끝까지 곁에 있어드리면 좋겠다.’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부탁하는 게 염치없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

식사를 끝내고 곧장 모든 짐을 차에 실었다. 세탁기에 돌린 옷에선 향긋한 냄새가 났다. 해화는 발목의 붕대를 풀고 지금까지 자라난 풀들을 모두 뽑아 노부부에게 건넸다. 정말 만약, 변종들에게 물리거나 진액을 삼킨다면 이 풀을 꼭 드시라는 말을 하면서. 풀을 건네는 해화의 얼굴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노부부는 말없이 해화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프지 말거라.”

노인의 아내가 해화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작은 데일 밴드를 있는 대로 다 쥐어 주었다. 해화는 울음을 토해 내는 대신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해화의 품이 남을 만큼 노인의 아내는 마르고 작았다.

노인은 종이 지도에 주유소와 대피소의 위치를 빨간색 매직으로 체크해 주었다. 주유소를 지나면 이내 전주로 통하는 길이 나오니 대피소까지 기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단 얘기도 덧붙였다.

모두 차에 오른 후 차창을 내렸다. 운전석에 앉은 낙조는 노부부를 바라보다가 어렵사리 입을 떼어냈다.

“신세만 지고 가네요. 대피소 무사히 도착해서, 어르신들 안전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꼭……, 말 잘 전달할게요.”

“욕 봤다. 조심해서 가래이.”

노인의 인사는 짧지만 다정했다. 그는 꼭 명절에 자식 녀석들이 다녀가는 느낌이라며, 잠깐 허탈하게 웃었다. 이내 기어를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보이는 노부부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 갔다. 낙조는 산길의 귀퉁이에 차가 올라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할머니가 먹을 것도 너무 많이 주셨어.”

밤이가 뒷좌석에서 중얼거렸다. 김치나 반찬 같은 것은 쉴까 봐, 간식 위주로 싸주셨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간식 중에는 지운이 잘 먹던 약과도 있다고 했다.

「거기가……, 예전에 나무가 쌔도 읍시 죽어 나갔단 곳이 그곳이여.」

노인의 말이 새겨진 장소를 지나쳤다. 아직까진 조용했다. 해화와 산을 내려온 이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 낙조는 한 번 탔던 산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속도를 줄였다. 되도록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면서, 주위를 꼼꼼하게 훑기 위해서였다.

“…….”

차가 천천히 멈추었다. 모두 낙조가 보고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누구 하나 입 한 번 벙긋거리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엉킨 넝쿨과 잎사귀 사이사이로 흰 눈알과 썩은 손발이 튀어나와 있었다. 산을 하나 다 넘어가기도 전이었다. 일행과 눈이 마주친 눈알들은 눈꺼풀을 껌벅거리더니 곧 몸을 웅크렸다가 펴냈다. 못박힌 듯 움직이지 않던 손발이 일제히 낙조가 탄 차 쪽으로 몰려 들었다. 낙조는 숨을 가득 들이마신 후 차에서 내렸다.

「나는 안 간다. 대피소든, 청주든. 죄 없는 사람들 쫓아낸 죗값은 여기서 치러야 혀.」

‘죗값을 꼭 지금, 치르실 필요는 없어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엉켜 있던 변종들의 몸이 수풀과 넝쿨을 헤집고 튀어 나왔다. 낙조는 아직 향긋한 냄새가 올라오는 옷을 벗고서 운전석 위에 올려 두었다.

진액 냄새를 맡은 팔이 울렁거렸다. 피가 빠르게 온몸을 도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맞닿는 힘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낙조는 가장 먼저 가까이 다가온 녀석의 목을 왼손으로 잡고 비틀며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한 녀석도 산을 내려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낙조는 노부부와 이별하면서 다짐한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