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옛날 옛적에 (1)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피가 나는 구멍이 어디인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익숙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같았으나 대답할 힘이 없었다. 꿈도 갈피를 잡지 못한 모양으로 머릿속을 유영했다. 소음은 계속해서 귓가에 머물렀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던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땐 아침이 밝은 후였다.
“고낙조, 나 보여?”
“……네.”
흐릿했지만 눈앞에 있는 얼굴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퍽 반가운 얼굴이었다. 밤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낙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나는요?”
“구멍 뚫린 네 팔 걱정부터 해.”
웃음이 버석하게 흘러나왔다. 밤이는 완전히 기운을 차린 듯 보였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낙조는 자신의 곁에 얌전히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안 내보냈어?”
“아는 마을에 데려다준대. 우린 길을 모르잖아.”
차를 몰던 지운이 대신 대답했다. 밤이는 낙조의 팔에 둘렀던 붕대를 새 것으로 갈면서 남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꽤나 날이 선 시선이었기에 남자는 눈을 돌렸다.
“산, 산길을 타야 갈 수 있는 마을이라…….”
남자는 변명하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낙조는 밤이와 마찬가지로 그리 반갑지 않은 얼굴로 그를 잠깐 응시했다. 어떤 사연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런 단체에서 자신들을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던 일행 중 하나였다. 살기 위해 무엇인들 못 하겠느냐만, 남자가 보여 준 모습은 용기라기보다 배신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당신은 산길에서 내려.”
“네?”
“못 믿겠으니까.”
낙조는 단칼에 남자를 잘라 냈다. 자신도 당연히 마을까지 같이 갈 줄 알았는지, 남자는 낙조의 말에 크게 동요하면서 눈치를 이리저리 살폈다. 눈동자가 해화와 지운을 향해 왔다갔다거렸다. 낙조는 밤이가 붕대의 매듭을 묶어 주자마자 다시 한번 말했다.
“산 밑에 내려 줄 테니까 당신도 거기서부턴 알아서 살아.”
“나, 나 때문에 도망칠 수 있었던 거잖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서늘함이 내려앉은 목소리가 차 내부를 울렸다.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남자가 일러준 대로 길을 찾은 지운은 백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며 핸들을 꺾었다. 산길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난 당신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 처음 봤을 때 날 죽이려던 건 당신이었잖아!”
“과연 끝까지 우리 편을 들었을까, 당신이?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밤이가 낙조의 살벌한 시선을 느끼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올라탄 남자의 두 눈을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다 왔어.”
지운이 말하며 차를 멈춰 세웠다. 낙조는 턱짓으로 남자에게 차에서 내리라 가리켰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매정해! 이런 세상에서, 그래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참 고맙네.”
차게 식은 시선이 남자에게로 던져졌다. 낙조는 땀에 젖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건넸다.
“혹시 몰라, 다시 거기에 돌아갔을 땐 다들 정신 차려서 다시 맞아줄지.”
“이, 이……!”
“내 힘이 아니었으면 당신은 우리를 죽게 놔뒀을 거야.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니까 우린 여기까지라고. 내려.”
낙조는 손을 뻗어 남자 어깨 너머로 문을 열었다. 남자가 낙조에게서 건네 받은 권총의 방아쇠를 마구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사되지 않았다. 총알 하나 없이 텅 빈 총이었다. 남자는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장 난 것처럼 움직이는 방아쇠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밤이가 문을 닫았다. 지운이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진짜 외진 동네인가 봐. 비포장 도로는 진짜 오랜만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오르며 지운이 말했다. 맨 뒤칸에 탔던 해화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속도를 늦추라 말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낙조 또한 속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근데, 며칠 동안 변종 안 보니까 뭔가 좀 이상하네.”
지운이 핸들을 꽉 잡은 채 중얼거렸다. 낙조는 도로를 파느라 들춰진 나무의 뿌리들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운의 말대로 변종을 보지 않은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본 게 진동휘와 육탄전을 벌였을 때니. 괜히 그날 밤이 떠올랐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이마를 짚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더 이상 당해 주지 않을 거란 생각이 몸을 점령한 듯 움직이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나.
오른팔은 변화를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니 미세한 변화라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이것은 자신의 몸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호흡하고 있다. 뇌가 따로 달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하는 게 달랐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낙조는 붕대가 묶인 오른팔을 내려다봤다.
“근데 진짜 완전 촌인가 봐. 마을 이름이……, 뭐였지?”
“삼박골.”
지운 대신 해화가 대답했다. 그녀는 두통이 심한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삼박골…….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랑 어감이 좀 비슷하기도 하고.’
한때 몇 번이고 돌려봤던 영화였는데. 낙조는 가만히 입안으로 마을의 이름을 혀로 굴려보았다. 그곳은 안전할까.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모두 대피소로 갔을까. 텅 빈 마을이라면, 아무것도 없다면…….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근데 아저씨, 괜찮아?”
“갑자기 왜.”
“말이 없어서. 원래 좀 조용하긴 했지만. 근데 지금은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
“앞이나 봐.”
낙조는 뒤를 슬쩍슬쩍 돌아보며 말하는 지운에게 태평히 대답했다. 곁에 앉은 밤이가 잠시 낙조를 바라보긴 했지만 무어라 말을 걸진 않았다.
‘내가 표정이 잘 읽히는 편이었나.’
가족과는 두 해마다 한 번씩 얼굴을 볼까말까 했고, 친구라는 이들과도 거리를 두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된 일이었다. 사람을 쉽게 마주하지 않으니 감정의 기복이나 표정이 타인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무용지물이 됐다. 낙조는 왼손으로 이마를 짚는 척 얼굴을 가렸다.
‘시골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변종도 여기는 아직인가.’
“어, 집이다.”
지운이 감탄하듯 말을 내질렀다. 시선의 끝엔 허름하고 작은 집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산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모양새였다. 기와는 거의 허물어져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고 대문은 녹슨 채 반쯤 열려 있었다. 그 누구도 차를 멈추란 얘기를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산길을 타고 굽이굽이 안으로 들어가니 논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을 멀리 내다보던 지운이 문득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이야!”
그의 말대로 작은 고추밭 사이로 누군가 허리를 굽힌 채 잎을 정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지운은 고추밭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내가 보러 갈게.”
지운은 자처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가 조심스럽게 밭에 발을 내디뎠다. 남은 이들끼리 가만히 그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밤이가 낙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회복력이 더 빨라졌어. 쉴 곳을 찾으면 피부터 좀 뽑아보자.”
“회복력이랑 관련이 있어요?”
“아무 이유 없이 몸이 변할 것 같아? 다른 부분이 퇴화했거나 제 능력을 상실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누나 몸은 괜찮고요?”
“내가 여기서 제일 몸 멀쩡할걸.”
그녀는 짐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밤이의 말대로 붕어섬에서 애써 가져온 샘플이나 자료를 빼앗겼다면 참 난감한 상황이었을 텐데. 낙조는 더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너무 조용해서 이상해.’
낙조는 창문을 내리고 마을을 슥 훑어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람이 살 만한 집은 몇 개 없었다. 젊은이는 전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을 중앙에 있는 마을회관 앞엔 작은 정류장이 있었다. 버스는 더 이상 다니지 않겠지. 텅 빈 정류장을 응시하다가 지운의 목소리에 눈을 깜박였다.
“여긴, 여기선 변종을 본 적이 없대요. 뉴스 난 이후로 마을 밖으로 나간 사람도 없다고…….”
“몇 개월 동안? 아무리 시내랑 멀다고 해도 그게 가능해?”
해화가 머리를 짚은 채 물었다. 지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할아버지가 그러셨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곧 파란 봉투에 고추를 반쯤 따다 담은 노인이 밭에서 나왔다. 주름에 낀 눈은 작았지만, 낙조의 일행을 응시하는 시선만큼은 젊은이에 뒤지지 않았다. 팔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은 허리가 조금 굽었음에도 무척이나 컸다. 그는 가만히 차를 둘러보다가 경운기 뒤칸에 고추를 담은 파란 봉투를 올리고서 말했다.
“따라오려믄 따라와. 여기는 안전혀.”
사이비 집단의 소행으로 ‘안전하다’라는 말을 완전히 믿을 순 없었지만 당장 믿을 사람이 노인뿐이었다. 지운은 다시 운전석에 올라 덜덜거리며 길을 타는 노인의 경운기 뒤를 쫓았다. 노인의 집은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었다. 열린 회색 대문 앞에 경운기를 세운 노인이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갔다. 곧 개가 반갑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봐도 시골 개였다. 개는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본 게 신기한지 꼬리를 흔들면서도 사납게 짖었다.
“어허이, 조용 안 혀.”
노인이 개에게 말하며 빈 물그릇을 집어 들었다. 곧 물을 가득 담아 내려주니, 개가 허겁지겁 물그릇에 코를 박았다. 그 새에 낙조를 비롯한 일행들이 옆쪽에 달린 현관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 어…….”
“인사혀. 안사람잉께.”
“아, 안녕하세요.”
노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작고 허리가 많이 구부정했다. 그녀는 꽃이 자수로 수놓인 빨간 티를 입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니, 그녀가 뒷짐을 진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서 왔어?”
“아, 예.”
“서울 사람은 오랜만이구만. 자식들은 다 대피소로 간 뒤로 연락도 안 되는디.”
“……왜 할머님이랑 할아버님은 대피소로 안 가셨어요.”
“가서 뭣혀. 여기가 더 안전헌디.”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으세요? 뉴스에 나온…….”
“못 봤당께. 근디 저, 앞쪽에 사는 양반이 차 끌고 마트 갔다가 안 돌아온 지 꽤 되었어. 아마 죽었을 거여.”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며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해화가 급히 부축했지만 그녀는 손을 내질렀다.
“다들 얼굴이 피죽도 못 먹어 뵈는구만. 김치밖에 없는디 괜찮어?”
“어우, 물이랑 밥만 주셔도 좋아요.”
지운이 너스레를 떨면서 냉장고를 열었다. 확실히 이곳저곳이 비어 있긴 했지만 아직 먹을 것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노부부는 살아온 삶만큼 세상에 느닷없이 나타난 존재에 대해서 그리 놀라워하지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평온한 얼굴이 어쩐지 조용히 석양을 지켜보는 것처럼 곤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자식들 올 때만 쓰는 상인디. 이것 좀 옮겨.”
노인이 큰 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덟 명이 널널히 앉고도 족할 정도의 크기였다. 낙조와 지운이 상을 거실에 펼쳤다. 그리곤 노인이 말하는 대로 그릇에 밥을 푸고 김치를 나눠 얹었다. 자식들이 많은 편인지 수저와 젓가락, 그릇들이 꽤 많았다.
“자녀 분들은 그래도 다 대피소에 가셔서 다행이네요.”
“그럼 뭣혀. 연락이 안 되는디. 죽었는지 살았는지두 몰러.”
노인이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말했다. 그의 밥그릇엔 생각보다 적은 양의 쌀밥이 담겨 있었다. 노인은 물끄러미 낙조의 일행을 훑어보다가 물었다.
“여까진 어떻게 알고 온 거여.”
“……원래 신평 파출소로 가려 했는데, 거기에 사이비 종교가 쫙 깔렸더라고요. 겨우 도망치다가 오게 됐습니다.”
낙조는 수저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노인은 시선을 낙조에게 옮기더니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꽤 숨막히는 정적이 흐른 후, 노인은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은 이들도 눈치를 보다가 밥을 떠 먹었다. 낙조만이 수저를 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낙조는 가라앉은 눈으로 수북히 뜬 쌀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