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메
“내가 그런 걸 무서워했으면 여기에 살아서 있지도 않았을 거다.”
남자는 거만하게 말하며 낙조와의 거리를 좁혔다. 해화가 빨리 총을 쏘라는 듯 낙조의 옷소매를 매만졌지만, 낙조는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기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미친 싸이코 집단에 동조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삶을 사시겠다.”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구더기만도 못한 변종 주제에.”
“네 몸이 파먹혀도 그런 소리를 하나 보자고.”
서로 한숨도 돌리지 못할 만큼 빽빽한 긴장감이 돌았다. 살기로 가득 찬 눈을 가진 남자는 금방이라도 식칼을 휘두를 것처럼 손목을 돌렸다. 낙조 또한 총구를 정확히 남자의 이마에 겨눈 채 숨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호흡을 골랐다.
“쏴 봐, 어디 한번 날려 보라고.”
남자는 낙조를 자극하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몇 발자국 남지 않았다고 생각됐을 때, 낙조는 먼저 몸을 움직여 총을 돌려 개머리판으로 남자의 이마를 세게 찍었다. 오른손의 힘을 사용했으니 일반인이 쳤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힘이 이마를 강타했을 테다. 예상대로 남자는 억, 소리를 내며 잠시 제자리에 서서 비틀거렸다.
“이 새끼……, 변종이라 다르다 이거냐?”
“아직도 사리 분별이 안 되는 놈이네.”
머리에 시뻘겋게 난 자국을 매만지며 남자가 오싹하게 웃었다. 낙조는 남자의 뒤에 서서 그가 치고 들어올 공격 시간을 예측했다. 칼을 휘두르는 범위까지도. 남자는 조금 성급하게 팔을 들었다. 잘 갈린 칼날이 촛불의 빛에 반짝거렸다.
“야, 넌 뭘 보고 서 있어. 쟤네 잡아!”
“예, 예?”
칼을 든 남자가 수척해진 얼굴을 한 이에게 외쳤다. 낙조의 일행을 안내한 남자는 그의 지령에 잔뜩 겁을 먹은 눈으로 낙조를 응시했다. 남자의 시선이 낙조에게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낙조는 주먹으로 남자의 턱을 박아 올렸다.
“으억!”
육중한 몸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쿵, 소리와 함께 남자가 눈을 번쩍 뜨고 입을 벌려 외쳤다.
“씨발, 다 안으로 들어와! 비상, 비상이라고!”
“쪽수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낙조가 남자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곧 문의 잠금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몇 번 문이 뒤흔들리더니 한쪽 문이 벌컥 열렸다. 낙조는 고개를 들어 해화와 지운에게 옆으로 비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해화는 지운을 부축해 곧장 왼쪽 벽 구석으로 몸을 붙였다.
“들어오면 다 죽어.”
낙조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진심이라는 걸 똑똑히 새겨 줘야 했다. 귓불을 스친 총알에 한 경비가 왼쪽 귀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촛불에 일렁이는 낙조의 얼굴에선 자비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낙조는 왼발로 남자의 칼을 쥔 손목을 지그시 밟았다. 살이 텁텁하게 붙은 손목은 꼭 변종의 것마냥 물컹거렸다.
“넌 이미 안에 있으니까 당연히 죽는 거고.”
말을 마치자마자 힘을 주어 손목을 내리눌렀다. 무게를 가득 실은 힘에 남자가 꿰엑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경비들은 문턱에서 주춤거리며 총을 꺼내고 있었다.
“죽는다고 했어.”
낙조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낙조의 총구는 여전히 경비들에게 향해져 있었다.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는 태세가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귀를 맞은 남자는 피가 철철 흐르는 걸 보면서 여전히 비명을 질러 댔다.
“씨, 씨발, 안 잡고, 뭐 해! 아아악!”
남자가 강력하게 저항할수록 낙조는 더욱 무게를 실어 그를 짓눌렀다. 남자가 반대쪽 손으로 낙조의 발목을 쥐어뜯고 때려 봐도 물러서지 않았다. 낙조에게서 나오는 살기는 변종에게서 느낄 수 있는 공포와는 다른 것이었다. 경비들은 총을 겨누면서도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남자의 외딴 비명만 떠돌 뿐이었다.
“홍해화, 누나 좀 챙겨 줘.”
낙조는 모두를 무력화시킨 후 해화에게 말했다. 해화는 지운을 문에서 멀리 떨어지게 데려다 놓은 후 철제침대로 다가갔다. 밤이는 손발이 묶인 상태로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워 겨우 끌어안은 해화가 말했다.
“몸이 너무 차가워.”
“맥박 확인해 봐.”
낙조는 경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어디서 총알이 먼저 날아갈지 몰랐다. 해화는 급하게 철제침대 뒤쪽 바닥에 밤이를 눕힌 채 그녀의 몸상태를 확인했다.
“맥박이, 너무, 너무 약해.”
“홍지운,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지운이 아직도 제대로 못 걷는 상태야. 일단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총을 쥔 손에서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낙조는 총을 고쳐 쥐고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품에서 숨겨둔 권총을 한 자루 더 꺼냈다. 양손에 총을 쥔 그가 벽에 기대어 덜덜 떨고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당신, 제물한테 무슨 약 투입하는지 알아?”
“……어, 어……, 총, 총 좀 내려 주세요.”
“아냐고 물었어.”
마저 꺼낸 권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하며 낙조가 한 번 더 물었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이름만 알아요. CCL, CCL이라고만 들었어요.”
“일시적으로 심정지를 유발하는 약이야. 맥박이 옅다면 투여한 지 얼마 안 지났을 수도 있어.”
바닥에 앉아 두통에 시달리던 지운이 말을 듣자마자 입을 열었다. 낙조는 긴장감이 가득 당겨진 방안에 서서 지운에게 물었다.
“일시적이면 다시 맥박이 돌아온다는 거지?”
“응. 그러니까 일부러 약물 주사해서 죽인 척하고 제사 지내면서 되살리는 연극을 하는 것 같은데.”
지운은 쓰레기를 보듯 문턱을 넘어오지 못하는 경비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낙조는 고개를 왼쪽으로 한번 까닥거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가 깨어나서 직접 당신들 잡는 걸 봐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네.”
“뭐, 뭐예요. 저는 아는 거 다 대답했잖아요!”
“지금까지 당신들이 해 온 짓을 보고도 도망을 치려고?”
서리가 낀 듯한 낙조의 말에 남자는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낙조의 일행을 도왔던 이유는 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비틀린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억지로라도 택해야 했다. 그는 낙조의 눈이 경비들에게 붙들려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살며시 손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요. 당신만 총 있는 거 아니거든.”
숨을 가쁘게 내쉬던 지운이 권총을 꺼내 들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 더 추가됐다. 경비들은 자신들끼리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를 낮추고 서로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이 상황을 넘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는 중이는 듯했다.
‘그럴 여유 같은 걸 내가 줄 것 같아 보이나.’
낙조는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곤 일부러 닫힌 문을 향해 총 한 발을 쐈다, 쾅, 하고 철문을 꿰뚫을 듯 박힌 총알 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낙조를 바라보았다.
“대화는 우리랑 해야지.”
낙조의 말에 경비들의 눈동자가 바쁘게 굴러갔다. 낙조의 발에 깔린 덩치는 점점 팔이 마비되어 가는 느낌에 그냥 총을 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결정할 때가 왔다. 어느 선을 끊든, 당기든, 엉키면서 발생하는 모든 순간은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 불을 지피는 게 누구일지는 모르지만.
낙조는 여전히 시선은 경비들에게 둔 채 손만 내려 덩치의 머리를 쐈다. 걸쭉한 피가 턱까지 튀어 올랐다. 비명이 멎자 제단 내부는 침묵에 깔렸다. 꼼짝없이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경비들과 남자는 몸을 주춤거렸다.
“여기는 대화가 안 되면 이런 방법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더라고. 맞지?”
낙조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때 경비들 사이에서 한 명이 튀어나와 낙조에게 총을 겨눴다. 해화는 침묵한 채 밤이의 몸을 흔들며 그녀의 의식을 깨우려 했다.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더 이상 우리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건 못 참겠다.”
“그딴 대사는 신주가 가르쳐 주나? 신주님이 슬슬 뵙고 싶어지네.”
“네 입에 함부로 올라갈 정도로 가벼운 분이 아니야!”
“나도 가벼운 사람이 아니야. 이제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아져서.”
낙조는 말을 마치자마자 총구를 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일부러 그의 어깻죽지를 맞췄다. 총을 그대로 떨어뜨린 남자가 어깨를 붙잡고 무릎을 꿇어 주저앉았다. 어깨를 쥔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그래도 한편으론 부럽네. 이렇게 충성스러운 신하들도 다 있고.”
“…….”
“신주님은 그 다른 신처럼 인간을 사랑하신대? 누구든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나?”
“…….”
“그런 신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이용해서 납치극을 벌이지? 사랑하는데 고통도 같이 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하셨을까?”
낙조는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마치 마음속에 미리 말을 준비해 둔 것처럼, 그는 경비들과 남자를 향해 쏘아붙였다. 낙조에게 총을 맞은 남자가 숨을 헉헉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핏발이 가득 선 눈이 정확히 낙조를 향했다.
“믿음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신을 의심하느냐!”
“너는……, 좀, 눈치가 있어야겠다.”
낙조는 고개를 까닥이곤 한숨을 얕게 내쉬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지운이 조금 정신이 선명해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으로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날렸다. 남자는 커흑, 하고 남은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옆으로 쓰러졌다. 지운은 일정하게 숨을 내쉬며 남자의 몸 위에 침을 뱉었다.
“그럼 나는 너희를 훼방하러 온 악마다, 이 새끼야.”
“이, 이, 보잘것없는 것들이…….”
쓰러진 남자는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지운은 총을 내리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가와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자신이었다. 경비들의 낯에 전반적으로 깔린 공포와 독기, 그리고 망설이는 표정이 볼 만 했다. 지운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서 입을 열었다.
“하긴, 악마를 본 적이야 있겠어. 니들이. 이제야 좀 겁이 나나?”
지운의 피투성이 옷을 보고서 감히 뛰어들 용기를 가진 이는 아무래도 없는 듯했다. 경비는 족해봐야 이제 겨우 넷이었다. 무전기를 쥐고 있던 경비는 숨죽여 대치 상황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오소리, 오소리. 제단에서 문제가 생겼다. 용병 긴급 출동 바람.”
그리고서 그는 누가 붙잡을 새라 허겁지겁 열린 문을 닫았다. 밖에서 잠그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야 안에 낙조 일행과 함께 있던 남자 둘은 비명을 질렀다. 낙조 일행을 안내했던 남자는 닫힌 문으로 달려가 두 주먹으로 문을 세게 내리치며 열어 달라 애걸했다. 어깨가 뚫린 남자는 거의 기다시피 하여 문가로 다가갔다. 그는 아는 이름들을 줄줄 내뱉으면서 살려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호중아, 김호중! 나, 나 데려가야지. 어? 나 여기서 어떻게 하라고!”
“야, 이, 일단, 주 신관님이랑 백 사제님 모셔올 테니까, 그, 그때까지만, 있어 봐라. 어?”
“김호중! 이 개새끼야!”
그가 아무리 외쳤지만 다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촛불 몇 개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휩쓸려 꺼졌다. 더욱 어두워진 내부 안에서 서로의 위치와 얼굴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상태였다. 문가에 붙었던 남자 둘은 더 이상 밖에서 돌아오는 기척이 없자 문에 등을 딱 붙인 채 몸을 돌려 세웠다.
“죽, 죽일 거예요? 진짜로? 나는 당신들한테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다 알려 주고, 하라는 대로 했잖아요…….”
낙조 일행을 제단까지 안내했던 남자가 빌 듯이 말했다. 그는 두 손을 등 뒤로 숨긴 채 울먹거렸다. 낙조는 가만히 그를 지켜보다가 드디어 발걸음을 시체에서 떼어 냈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걸을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지원 인력이 올 때까지 이곳에 대해서 다 얘기해. 여기가 왜 이렇게 됐는지부터 설명하면 돼.”
“그건, 신도가 되려고 하는 자만 알 수 있는―억!”
어깨에 총상을 입은 남자가 입을 뗐으나 낙조를 데려온 남자가 그의 뺨을 쳐 말을 막았다. 남자의 머릿속엔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찌 돌아가든 자신만 살면 됐다. 그걸로 괜찮았다. 자신은 믿음보다 안전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했다.
“믿음만으로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저도 다 그냥 살려고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안전하게 잘 곳도 주고, 먹을 것도 준대서……. 우리 집에 들어오려던 변종들 다 죽인 게 그 사람들이거든요.”
남자는 무릎을 꿇고 질질 끌어 낙조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꼭 구세주라도 만난 것마냥 눈물 맺힌 눈을 반짝이며 낙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신의 서사를 줄줄이 얘기했다. 낙조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동정심 같은 것이라곤 들지 않았지만 원하는 정보를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니까 저랑 약속만 해 줘요. 그냥 살려 주겠다고. 죽이지 않겠다고요.”
“너는 내가 고발할 거야! 감히 신주님을 배신해!”
“닥쳐! 그 전에 넌 죽어. 이 사람들이 안 죽여도 내가 죽일 거야.”
남자는 광기에 떨면서 말했다. 그가 쓰러진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낙조는 자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남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춘 후 총구를 그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너무 시끄러워. 지금 네가 그런 걸 정하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