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친구는 어디에 (2)
남자 둘이 쓰러지자마자 해화도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몸을 심하게 떨면서 숨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과호흡이 온 듯했다. 낙조는 그녀의 어깨를 쥐고서 자신을 따라하라며 심호흡했다. 몇 번 콜록거리던 해화가 얼추 비슷하게 박자를 맞춰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었어. 무슨, 어떻게 된 거야.”
침착하려고 해도 말이 계속 엇나갔다. 낙조는 떠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해화의 몸이 조금이라도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해화의 몸에선 비릿한 피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 피가 해화의 것이 아님을 확인한 후에야 낙조는 시름을 조금 덜었다.
“지운이, 지운이를 어디로 데려갔어.”
심하게 운 것처럼 숨을 헐떡이던 해화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홍지운을 데려갔다고?”
“밤이 언니는, 모르겠어. 우리가 먼저 잡혔는데, 언니는 도망쳤거든.”
“…….”
자신을 지키던 남자 둘의 대화로는 여자‘들’이라고 했다. 그럼 지운과 해화가 먼저 잡힌 후, 도주하던 밤이도 붙들렸다는 말이 된다. 낙조는 멍하니 해화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어디로 데려갔는지, 특징 같은 거……, 못 들었어?”
“신관한테, 데려간다고 했어.”
숨을 중간중간 삼키면서 겨우 뱉은 말이었다. 신관……. 남자 둘이 내뱉었던 단어다. 낙조는 더 이상 해화를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맨발이었다. 발목에 자란 작은 이파리에도 피가 맺혀 있었다. 발바닥 여기저기엔 생채기가 남았다. 어떤 마음으로 어두운 골목을 달렸을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파란 지붕이 있는 곳에 갔을지도 몰라.”
낙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아는 정보는 그것뿐이었다.
“이거라도 신어.”
낙조가 자신의 양말을 벗어 해화에게 건넸다. 낙조에게 딱 맞는 양말은 해화의 발목을 덮고도 남아서, 종아리 아랫부분까지 아슬아슬하게 가릴 수 있었다. 그리곤 해화에게 등을 보인 후 앉았다.
“업혀.”
“걸을 수 있어.”
“빨리.”
몇 번 재촉하자 해화는 어쩔 수 없이 낙조의 등에 업혔다. 그녀를 가볍게 업고 자리에서 일어난 낙조는 손전등을 해화에게 건네주었다.
“앞 좀 봐줘.”
“응.”
그녀는 한손으론 낙조의 어깨를 쥐고, 남은 손으로 손전등을 잡았다. 쓰러진 남자들은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었다.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치고서 낙조는 오른쪽 골목을 따라 쭉 걸었다. 귓가에서 해화의 숨소리가 맴돌았다.
“여자들은 따로 할 일이 있다면서 어떤 빈 집으로 끌고 갔어.”
문득 해화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조는 그녀를 한 번 고쳐 업고서 말했다.
“얘기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거기에 우리처럼 잡힌 사람들이 많았어. 다들 이 날씨에 얇은 티 하나만 입고 있더라. 내가 끌려왔을 때 다들 바라보기만 했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면서 양말을 벗기자마자 끌고온 남자들이 소리를 질렀어. 날 변종이라고 하면서 죽이려고 하길래, 쏴 버렸어. 죽었을지도 몰라.”
“죄책감 가지고 있는 거 아니지?”
“모르겠어. 이게 죄책감인지…….”
아주 오랜만에 해화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낙조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당장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몰랐겠지. 사람을 죽이게 되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고작 살고자 하는 사람일 뿐인데 감당해야 하는 불행이 너무나도 커다랗고 생소했다.
“…….”
해화가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손전등이 한 곳을 향해 있었다. 파란 지붕. 낙조의 시선도 그곳에 박혔다. 집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불은 2층에만 켜져 있었다. 낙조는 반쯤 열린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섰다.
‘왜 지키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지.’
상황이 예상을 빗나갈수록 마음이 착잡해졌다. 낙조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 사이를 지나 현관문 계단을 올랐다. 해화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주고선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꽤 무게감을 지닌 문이 저항 없이 열렸다. 거실은 어두컴컴했다.
‘함정인가?’
분명 그들은 파란 지붕이라고 했는데. 낙조는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좀처럼 안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계속해서 망설이며 손전등으로 애꿎은 집 내부만 이리저리 둘러볼 때였다.
“읍!”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해화가 낙조의 소매를 붙잡았다가 놓쳤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큰 덩치에게 뒤에서 붙잡힌 그녀가 입이 막힌 채 낙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의 주위엔 무장한 남자들이 일제히 낙조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중이었다.
‘씨발, 좀 더 신중했어야 했던 건데.’
낙조는 낙담하면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덩치는 턱짓으로 낙조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한꺼번에 감당하기엔 총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해화가 붙잡혔기 때문에 리스크가 컸다. 낙조는 순순히 두 손을 들고 뒷걸음질 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괴물들끼리 쌍으로 잘도 도망다녔네.”
덩치는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중얼거렸다. 그의 품에 꼼짝없이 붙들린 해화는 겁을 잔뜩 먹은 채 눈을 굴렸다. 손에 들린 권총도 빼앗겼다. 낙조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한 걸음씩 물러나며 숨을 골랐다.
“니네 잡겠다고 풀어 놓은 애새끼들만 몇인지. 다 나사 하나씩 빠진 놈들이라 아깝진 않지만 말이야.”
“동구야, 그런 쓸 데 없는 말은 안 해도 된다. 안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것들 힘 안 쓰고 처리했잖니.”
덩치의 말에 2층에서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며 대답했다. 덩치와 일행은 낙조의 뒤에 있는 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낙조는 직감적으로 그가 이들의 보스임을 알아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키가 큰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기껏 해봐야 50대 초반으로 보였으나, 한 갈래로 묶은 긴 백발이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구만. 진동휘가 같이 못 온 건 아쉽지만.”
그는 낙조를 반기는 듯 웃으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낙조는 악수를 위해 내밀어진 손을 무시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인심 좋은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자, 올라가세. 나도 자네랑은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아.”
“일부러 내가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겁니까?”
“그렇지. 믿음도 없이 식량만 축내는 놈들을 거둬 주는 것도 일이었으니까. 자네 솜씨도 한 번 보고 싶었고.”
“치사한 방법을 쓸 만큼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겠죠.”
낙조의 대답에 백발의 남자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리곤 덩치와 일행들을 향해 2층으로 데리고 오라 지시했다. 몸을 붙잡는 손길에 몇 번 저항해 봤지만 그때마다 덩치가 해화를 압박해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올라 불이 켜진 방에 들어간 낙조는 바닥에 쓰러진 한 남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 친구도 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억센 놈이었어. 혼자서 일곱을 쓰러뜨리고도 서 있었지. 지금은 진정제를 놔서 자는 중이니 걱정 말게.”
백발의 남자는 쓰러진 지운을 두고 말했다. 도대체 그가 어떤 목적으로 자신들을 이용하려 하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는 부하를 시켜 낙조를 자신의 맞은편에 앉혔다. 테이블 위엔 소주 반 병과 소주잔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당신이랑 말장난 할 시간 없습니다.”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내가 웃고 있어서?”
그는 소리 내어 웃더니 낙조의 앞에 놓인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이곳 주변엔 변종이 없어. 우리가 다 천계로 보냈거든. 청정구역이란 말이지.”
“천계?”
“죽은 후 가는 곳 말이야.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마다 보초를 서고, 중심지에선 생산 활동을 해. 자급자족이 가능하게끔 생활의 터전을 만드는 거야.”
“말 한 번 거창하게 하시네. 힘 과시하고 강도질 하면서 얻어 내는 거잖습니까. 이거 완전 사이비 집단이네.”
“외부인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신도가 되어 보면 달라. 안전하고, 안정적이지.”
남자는 자신의 잔에도 스스로 소주를 따르더니 벌컥 들이키고서 해화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덩치에게 붙들려 있었다. 한동안 해화를 빤히 바라보던 남자는 낙조에게 말을 건넸다.
“총을 다룰 줄 알더군, 저 여자. 좋은 소식이지.”
“서론이 너무 긴데요. 그래서 할 말이 뭡니까.”
“자네를 신고하면 안전한 집과 넉넉한 식량을 준다고 했지.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미 이곳은 청정구역인데다가 안정화가 돼 가고 있는데.”
“…….”
“그런데 이 안정을 유지하려면 힘이 필요하지. 줄어들지 않는 인력. 나는 자네가 변종이라도 좋아. 서로를 믿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안 그런가?”
“손을 잡자, 이겁니까?”
“자네는 도망 다닐 일 없이 여기서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면 돼. 신주님을 모시면서.”
남자는 빈 잔을 흔들며 낙조에게 웃어 보였다. 낙조는 보란 듯이 소주가 가득 찬 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모습에 웃음을 거둔 남자가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의자 아래에서 식칼을 주워 낙조에게 겨눴다.
“나는 나대로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야.”
“이 친구, 성질 급하군. 잘 생각해, 자네도 이 친구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남자가 예리한 칼끝을 낙조에게 비췄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지운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당신 같은 사람들 지키는 데에 내 힘을 보태고 싶진 않아.”
말을 마치고 낙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칼을 만지작거리던 남자는 낙조를 곁눈질로 훑다가 그의 멱살을 잡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시에 문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일제히 총을 들었다.
‘살려 둘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야.’
그동안 참고 있었던 분노가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바닥을 적신 소주에서 알코올 향기가 코끝을 멤돌았다. 낙조는 마음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이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홍해화와 홍지운만 살려. 저 둘만 지키면 돼.’
그에 응답하듯 오른손이 꿈틀거렸다. 변종의 진액에만 반응하던 손이 처음으로 낙조의 감정에 응답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이파리는 혈관처럼 붉은 잎맥을 내보이면서 날카롭게 허공을 치솟았다.
“뭐 해, 당장 안 잡고!”
뒤에서 백발의 남자가 소리쳤다.
‘저놈은 맨 마지막에.’
낙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크게 휘둘렀다. 가장 먼저 남자의 손목을 강하게 내려쳐 식칼을 떨어뜨렸다. 무엇도 뚫을 수 있을 것처럼 뾰족하게 한곳으로 모인 이파리가 맨 앞에 있던 이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방아쇠를 마구 당겼으나 모두 창문을 뚫거나 벽에 박혔다.
물컹거리는 변종이 아닌 사람의 몸을 꿰뚫는 건 처음이었다. 뜨거운 혈액이 오른손 전체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낙조는 단번에 손을 빼내고서 다른 이들에게로 손을 던졌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진 이파리는 총알을 튕겨 내며 남자들의 가슴을 하나의 실로 꿰매듯이 빠르게 통과했다.
“아아악!”
“악!”
“억, 헉, 끄억…….”
길고 붉은 줄기에 한 번에 꿰인 세 명의 남자는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탕, 탕, 타탕!
“윽.”
가까운 곳에서 해화를 붙잡고 있던 덩치가 구석에 등을 진 채 총을 마구 쐈다. 그중 한 발이 정확하게 낙조의 오른팔에 박혔다. 고통은 살벌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낙조는 세 명을 꿰뚫었던 이파리를 빼내고서 덩치에게로 걸어갔다. 덩치는 낙조가 다가오자 총구를 해화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소리쳤다.
“씨, 발, 오면, 쏠 거야!”
“그렇게 멍청하니까 저런 놈 아래에서 따까리나 하지.”
낙조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긴 이파리로 덩치의 손목을 붙잡고 바깥쪽으로 꺾었다.
“으아아! 신관님, 신관님!”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지는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낙조는 덩치가 쥔 총을 떨어뜨리고서 왼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 눌렀다. 목울대를 왼손 손바닥으로 꽉 누르니, 그는 해화를 놓고서 낙조의 팔목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켁, 컥, 허윽…….”
이런 놈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낙조는 곧장 뾰족하게 모인 이파리 끝을 왼쪽 가슴에 찔러 넣었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솟구치며 낙조의 얼굴 위로 흩뿌려졌다.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낙조는 이내 축 늘어진 놈을 바닥에 떨어뜨리곤 왼손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쨍그랑!
순간 뒤쪽에서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백발의 남자가 깨진 소주병을 들고서 쓰러진 지운의 목을 감싸 안고 낙조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 같이 멍청한 협박이다.’
낙조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서 일단 가만히 그를 노려보았다. 해화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 남자를 향해 겨누었다.
“내 동생 건들면 진짜 가만 안 둬, 이 개새끼야.”
“후회할 거다, 너희들은 반드시 후회할 거야.”
남자는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깨진 소주병을 허공에 휙 쳐들었다. 낙조의 눈이 번득였다. 살기에 가득 찬 눈동자가 남자의 손을 따라갔다. 동시에 몸이 쏜살같이 시선을 따라 나아갔다. 낙조는 남자를 덮치듯 허공을 가로질러 그의 손목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눌렀다. 완전히 낙조에게 압박당한 남자는 이리저리 몸을 빼내 보려 했지만 낙조의 힘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청정구역 좋아하네, 씹새끼가. 날 여기에 들인 순간부터 그건 깨진 거야.”
낙조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서 남자가 쥐고 있던 깨진 소주병을 빼앗았다. 남자는 분노에 가득 차 몸을 덜덜 떨면서 외쳤다.
“이곳을 망가뜨린 걸 평생 후회할 거다.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라!”
낙조는 오른손 대신 깨진 소주병을 남자의 가슴에 내리찍었다. 피가 울컥, 하고 튀었다. 힘을 주어 더 깊숙하게 병을 남자의 몸에 꽂아 넣으니, 곧 모든 소음이 멎었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정적이 셋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