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친구는 어디에 (1)
“이걸로 될까요?”
“단단히 묶었어.”
먼 곳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먹먹하기만 했던 귓가에 낯선 목소리들이 너도나도 끼어들었다. 서서히 돌아오는 정신에도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깨어났다는 기척에 그들이 어떤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손발은 단단한 것으로 옥죄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근처에 있는 이들이 눈치챌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지?’
기절한 이후로 떠오르는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낙조는 감은 눈꺼풀 위로 어두운 조명이 흔들거리고 있다는 것만 간신히 알아챘다.
“근데 저렇게 놔두는 것도 좀 불안한데……, 완전 괴물이랑 다를 게 없었잖아요.”
“그래, 나도 봤다고. 그리고 방송에서도 나왔잖아. 사람 행세를 하는 변종이라고.”
남자 둘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리로 알아챌 수 있는 건 이곳을 지키는 이는 저 둘뿐이라는 거다. 낙조는 아주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흐릿한 시야엔 두꺼워 보이는 철문 앞에 서 있는 두 남자의 다리였다.
눈을 아무리 굴려 봐도 자신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들에게 잡히긴 한 걸까? 낙조는 엉망이 되어 버린 머릿속을 좀처럼 정리하지 못했다.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몰려올 것 같았다. 나 혼자서 이 세상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낙조는 좀처럼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손을 먼저 풀고, 그 다음에 생각하는 거야.’
일행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방법은 자신이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서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빌어먹을 이 창고 같은 곳을 나가야 했다. 손발을 묶은 건 고작 헌옷이었다. 테이프를 쓰기엔 아까웠나 보지. 낙조는 소리가 나지 않게 이를 악물고 힘을 손목에 힘을 줬다.
무력으로만 상대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총을 맞은 곳이 아직 아렸지만 저 둘을 뿌리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모습을 본다면 해화가 분명 한 마디를 거들 테지만, 그 잔소리를 듣기 위해선 나가야만 했다.
투둑, 툭.
실밥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낙조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대화에 빠진 남자들을 주시하며 손이 조금씩 헐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앞쪽을 바라보며 주절거리다가 담배를 꺼내 들었다. 마침내 한 손을 빼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생기자 낙조는 오른손을 먼저 빼내고 발 쪽으로 가져다댔다.
“근데 잡은 여자 중에 한 명 있잖아요, 걔는 진짜 보통이 아니던데. 신관님이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둘 다 악바리였어. 나 어린 애 잡다가 여기 긁혔잖아, 씨팔.”
묶인 매듭을 풀던 낙조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남자들은 담배를 쭉쭉 빨아들이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여 주며 킥킥거렸다.
신관, 이란 생소한 단어에 멈칫거리는 것도 잠시였다. 마침내 발까지 모두 풀자마자, 낙조는 겁 없이 남자들에게로 다가가 양쪽 손으로 각각 그들의 머리채를 쥐고 잡아당겼다.
“아악!”
“억!”
속절없이 끌려온 둘은 당황한 표정으로 낙조를 올려다보았다. 낙조는 말없이 그들의 머리를 세 번씩 문에 내리치고선 다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
낮게 깔린 목소리는 위협적이었다. 남자들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덜덜 떨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머리에 가한 충격이 꽤 컸는지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낙조는 왼손에 잡힌 녀석은 아예 문 손잡이에 이마를 찧어 버리고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실신했는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억, 어억, 살, 살려 주세요.”
남은 오른손에 잡힌 남자가 겨우 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낙조는 손을 내려 목을 움킨 다음 다시 한번 물었다.
“다른 사람들. 어디 있냐고.”
“여기서 조금, 조금만 가면, 켁, 돼요. 파란 지붕, 파란색 지붕 집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낙조는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남자의 명치에 정확히 꽂았다. 흡,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손아귀 안에서 남자는 추욱 늘어졌다. 낙조는 남자의 허리춤에 꽂힌 권총을 쥐고서 그를 바닥에 버려 두었다.
문을 여니 가로등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밤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낙조는 잠시 생각하다가 안으로 다시 들어와 남자들의 품을 뒤졌다. 곧 휴대용 손전등 하나를 발견했다. 배터리가 얼마 없는지 불빛은 시원찮게 반짝거렸다.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 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손전등 불빛이 까딱이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낙조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어둠 속이니 쉽게 찾아내지 못할 테다. 그들은 낙조를 감시하는 이들과 교대를 하러 왔는지 하품을 내지르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뭐, 뭐야, 씹!”
뒤늦게 기절한 남자들을 발견한 이들이 총을 꺼내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명은 무전기로 ‘고낙조가 탈출했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썩 좋지 않았다. 낙조는 저들을 상대할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빨리 일행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총알도 아낄 수 있는 한 아끼는 게 좋았다.
주택가로 접어들 무렵, 자신을 찾는 건지 남자들이 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걸 보았다. 마땅히 몸을 숨길 만한 두꺼운 나무도 없었다. 낙조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대충 그들의 수를 세었다. 못해도 족히 열 명은 넘어 보였다.
“저기 있다!”
한 놈이 손전등을 낙조 쪽으로 비추며 소리쳤다. 낙조는 피하지 않고 불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한곳으로 모아진 불빛은 강하게 낙조의 얼굴을 비췄다. 낙조는 왼손으로 불빛을 살짝 가린 후 시커멓게 모인 녀석들을 응시했다.
“생포하라 그랬어, 총 맘대로 쏘지 마!”
누군가 소리쳤다. 청주에 넘길 생각이었나.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진 말을 뒤로 넘기고서, 낙조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낙조의 위력을 어느 정도 아는 모양인지 녀석들은 성급하게 덤벼들지 않았다. 낙조가 다가가는 만큼 뒤로 물러서는 놈들은 한눈에 보아도 싸움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야, 야, 안 잡아?”
“그럼 니가 먼저 잡아 보든가.”
세상이 이렇게 뒤집히기 전까진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테다. 각자의 직업을 갖고 개인의 삶이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갔던, 낙조와 이런 경계심을 품을 인연도 없었을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낙조는 어느 새 가까워진 그들을 눈앞에 두고 입을 열었다.
“굳이 이러지 맙시다.”
“…….”
맨 앞에 선, 중년의 남자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살짝 파인 이마의 주름을 구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곧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낙조의 이마에 겨누었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식이 있듯이, 이것도 우리가 찾아낸 살기 위한 방법이다.”
그가 끌고 온 분노는 어디서 왔을까. 가족을 잃었을까. 낙조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그를 향해 떴다. 그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지 낙조에게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으라 소리쳤다.
“방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셨어야죠.”
낙조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으로 총구를 잡고 위로 치켜 올렸다.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뒤였다. 총알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낙조는 총을 감싼 손을 그대로 꺾었다.
“으아악!”
남자의 손목이 거꾸로 접히며 기괴하게 비틀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신호탄이었다. 주위에 몰린 이들이 각자 무기를 쥐고서 낙조에게로 달려들었다.
‘총은 파란 지붕에 갈 때까지 아껴 두자.’
낙조는 짧게 생각을 마치고 곧장 몸을 움직였다. 죽이고 싶진 않았다. 이들을 해치우고서도 일행들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이 이미 죽었다면 이후에 몰려올 죄책감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만큼의 용기는 얻지 못했다. 누군가를 지키는 방법으로 여기까지 살아남은 낙조에겐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다. 자신만 어째서 변종이 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알아낸 횟수는 적었다. 처음엔 연우가 있었고, 지금까진 밤이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연구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는…….’
손전등 불빛이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낙조는 자신의 허리를 잡아채고 뒤로 밀치려는 남자의 어깨를 쥐고서 손쉽게 던졌다. 속에서 끓는 은은한 분노가 힘을 더욱 재촉하고 있었다.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비단 낙조 자신이 남들만을 살린 건 아니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자신에게 뛰어들었다. 이번 차례는 낙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 한 조각도 마음을 찌르지 않았다.
낙조의 몸에 달라붙은 들이 벌떼처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살갗을 가격하는 고통은 느껴졌으나 지금까지 버틴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낙조는 다리에 붙은 놈부터 떼어 내기 시작했다. 장성한 성인 남성도 거뜬히 들어 내팽개치는 모습에 몇몇이 숨을 삼켰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누군가 볼을 내리쳤다. 고개가 돌아갔으나 낙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둠에 휩싸여 녀석들의 표정이 어떤지 알아볼 수 없었다.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손전등은 하체를 겨우 비출 뿐이었다. 낙조는 녀석을 두 손으로 들어 한곳에 모인 놈들에게 집어 던졌다. 볼링핀처럼 쓰러진 이들은 다시 비척비척 일어났지만 쉽사리 달려들진 못했다.
“이 씨이이이이바아아알!”
그때 곤봉을 두 손으로 쥔 청년이 욕을 내지르며 낙조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스파이크로 곤봉을 휘둘렀으나 낙조는 몸을 뒤로 물러 세워 손쉽게 타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몇 번이나 그가 휘둘러도 마찬가지였다. 낙조는 보다 못해 공중에서 도는 곤봉을 손으로 쥐고서 자신의 앞으로 확 끌어 당겼다.
“어, 어?”
질질 끌려온 청년이 당황한 듯 허겁지겁 곤봉에서 손을 떼어 냈다. 그래 봤자 낙조의 반경 안이었다. 낙조는 똑같이 곤봉을 휘두르는 대신 한손으론 멱살을 잡고 오른손 주먹으로 턱을 날렸다. 청년은 억,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나가 떨어졌다. 그는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칙, 치직, 고낙조는, 잡았나?
그때 손목이 부러진 중년 남성의 무전기에서 걸쭉한 음성이 들려왔다. 대장임이 확실했다. 순간 낙조의 눈빛이 돌변했다.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던 눈동자는 서슬 퍼렇게 빛났고, 자신의 몸을 붙드는 놈들의 손발을 무참히 짓밟기 시작했다. 아무리 여럿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도 낙조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낙조는 오직 주먹만 사용했다. 품에 숨긴 총은 꺼내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일행을 찾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누구의, 어디를 때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주먹이 닿는 대로 힘을 줬고 몸에 거슬리는 게 달라 붙으면 발로 짓밟았다. 살면서 이만큼이나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마주쳐본 적이 있었나. 낙조는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마지막 남은 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물컹, 하고 근육 없는 살에 주먹이 파묻혔다. 남자는 커흑, 하고 숨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배를 감싸쥔 채 바닥에 뒹굴었다.
낙조는 아예 꺼진 자신의 손전등을 바닥에 버리고서 새 것을 집어 들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는 건 이제 이 세상에서 딱히 필요 없는 짓이었다.
한꺼번에 힘을 쏟아 낸 게 아무 무리가 없을 리 없었다. 시체처럼 드리워진 남자들을 지나치니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잠시 비틀거린 낙조가 어느 주택의 담벼락을 짚고 숨을 골랐다. 오른손엔 아까 청년에게서 빼앗은 곤봉이 쥐어져 있었다.
‘파란 지붕…….’
손전등을 들어 주택들의 지붕을 확인했다. 기와집 형태로 된 집이 많았다. 주황색, 검은색……. 색들도 다양했다. 낙조는 주택가에 조금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그때까진 조용했다. 잠복하다가 튀어나오는 이들도 없었다.
“잡아! 잡으라고!”
“썅년, 존나 빠르네!”
파란 지붕이 하나쯤 있을 법한데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아 갈래길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오른쪽 골목 끄트머리에서 누군가를 쫓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황급히 손전등을 그곳으로 비췄다.
“비켜!”
빛에 삼켜진 하나의 인영이 빠르게 낙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낙조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굳는 걸 느꼈다. 곧 빛에 완전히 드러난 인영은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공포와 절망이 뒤죽박죽 섞인 표정이 오롯이 낙조를 향했다.
“홍해화.”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해화가 낙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손엔 피가 적셔진 권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
그녀의 뒤를 쫓아오던 남자 둘은 숨을 헉헉거리며 낙조와 해화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이 손짓하며 입을 열기도 전에, 낙조는 쥐고 있던 곤봉으로 그들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