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훼방꾼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걸었다. 차가 주차된 곳까지 걸어갈 동안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 하나 잘못 흘렸다가 변종이 냄새라도 맡을까 주의해야 했다. 호수를 지나니 안개는 걷혔지만 여전히 하늘이 흐렸다.
지운이 안내한 길에는 그의 말대로 중형 차 몇 대가 주차돼 있었다. 언제, 무슨 이유를 갖고 이곳에 정차했는지 알 수 없으니 섣불리 접근할 수는 없었다. 낙조는 밤이 대신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 차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거…….’
발걸음이 멈춘 곳은 검은색 스타렉스 앞이었다. 낙조의 눈은 번호판에 가 있었다.
[바 2471]
동휘가 적은 메모에 있던 글자였다. 대충 차 번호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잘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어딘가 찝찝했다. 낙조는 지운을 한 번 돌아봤다가 고개를 이내 내저었다.
‘의심할 사람을 의심해야지.’
최근 며칠 새 일어난 일들이 괜한 신경을 곤두세운 것 같았다. 운전석 문은 당연하다는 듯 열려 있었다. 낙조는 다른 차들을 살피던 일행을 불렀다. 차 키는 얌전히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이 차가 제일 구린데.”
지운은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금세 짐을 나르는 데에 열중했다. 뒤쪽에 모두의 짐을 싣고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꽤 오랜 시간을 달린 차였는지 세월의 소리를 그대로 분출해내는 엔진에 모두가 잠시 놀랐다.
주차장을 막 빠져나올 무렵, 낙조의 눈에 익숙한 인영 하나가 들어왔다. 조수석에 앉은 해화도 곧 그를 발견했는지 낙조를 힐끔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는 듯이.
정면엔 온몸이 물어뜯긴 곳마다 썩은 나무껍질이 솟은 진동휘가 서 있었다. 고개를 힘없이 까딱거리며, 비척거리는 모습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하얗게 뒤집힌 눈은 한 번씩 깜박였지만 그 어떤 것도 보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낙조는 얇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단 하나뿐이었다. 그의 성격에 과연 만족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어를 올린 후 엑셀을 밟았다. 차는 크게 떨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해화는 급하게 손잡이를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도 낙조의 선택을 방해하지 않았다.
퍽, 우당탕, 퍽!
“으악!”
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창문을 넘어 뒤쪽으로 넘어간 동휘의 몸이 어떻게 됐는지 낙조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유리에 드문드문 막힌 나무껍질 조각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죽었, 겠지?”
해화가 숨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확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차는 유유히 옥정호를 벗어나고 있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밤이가 입을 열었다.
“어디 가는 거야. 주위를 뭐 둘러보지도 않고, 속도는 왜 그렇게 내.”
“신평이요. 거기에 파출소가 있어요.”
낙조는 머릿속에 각인된 것처럼 박힌 신평 파출소의 주소를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어딘가 중압감이 실린 대답이었다. 파출소엔 당연히 무기고가 있다. 표지판을 따라 차는 거침없이 속도를 내질렀다.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목적지가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기, 앞에 뭐 있는데.”
묵묵히 먹구름을 올려다보던 해화가 문득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낙조도 이미 발견했는지 말없이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처음엔 공사 현장에 두는 마네킹이 움직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움직임을 보니 사람이 맞았다. 4차선 도로 위에 주차금지대를 세워두곤 차의 출입을 확인하는 듯했다.
양쪽으로 두 명씩 뭉친 그들은 검은색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손엔 경광봉이 들려 있었는데, 차를 멈추라는 듯 허공에서 그것을 휘저었다. 낙조는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신평면까지는 아무 일 없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입구부터 난관이었다.
차가 완전히 멈추자 경광봉을 든 남자가 운전석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창문을 내리라는 듯 몇 번 두드렸다. 낙조는 눈이 마주칠 정도로만 창문을 내리고서 고개를 바깥 쪽으로 돌렸다.
“진동휘?”
“…….”
남자가 먼저 동휘의 이름을 꺼냈다. 굳이 캐내려고 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진동휘와 이전에 접촉한 적이 있었던 자들이다. 그러나 얼굴은 보지 못한. 낙조는 얼굴을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하려 하면서 고개를 뒤늦게 끄덕였다. 쌍꺼풀 없는 민눈이 오랫동안 낙조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건 가져왔어?”
‘그거?’
차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뭘 걸었나. 낙조의 머릿속이 단번에 혼란스러워졌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자, 남자의 눈매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고낙조 데려온다며, 이 개새끼야.”
낮은 목소리가 일정한 톤을 이루며 말을 뱉어 냈다. 화가 담겨 있지 않지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과도 같았다. 둔탁한 손가락이 조금 열린 창문을 턱 붙잡았다.
“니 혼자 왔어? 씨발, 타산이 안 맞잖아.”
이쪽에서 진동휘에게 어디까지 주기로 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낙조는 잠시 침묵하다가 기어에 올린 오른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다들 숨죽인 채 남자의 음성만 듣고 있었다.
상대는 넷, 무장했을 확률이 크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낙조는 정면을 바라본 채로 목소리를 낮추고 밤이에게 속삭였다.
“저번에 나 줬던 거, 남았어요?”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남자가 투박한 말투로 창문을 두드렸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와중에, 밤이가 조심스럽게 말린 잎사귀 두 개를 낙조에게로 건넸다.
“문 잠그고, 내가 열어 달라고 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
낙조는 해화에게 당부하고선 잎을 인중에 두고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어지러운 것도 잠깐이다. 곧 눈앞이 흐물거리기 시작하자, 낙조는 운전석에서 내려 남자들을 마주했다. 남자들의 키는 낙조보다 조금 작았으나 덩치는 꽤 두둑했다. 무언가 상황이 시원하게 흘러가지 않자 건너편에 있던 남자 둘도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굳이 죽이고 싶진 않다. 이곳만 지나가게 해 준다면 딱히 해칠 마음도 없었다. 말로는 해결을 보지 못할 것 같은 위인들처럼 보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이다. 낙조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뭐야, 옆에 누구 태웠는데? 여자 아니야?”
문 닫는 그 틈을 보았는지 경광봉을 든 남자가 껄떡거리며 중얼거렸다. 낙조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는 낙조가 답답한 듯 그가 낙조의 어깨를 붙잡고 문으로 밀쳤다. 낙조는 머릿속으로 어떤 무기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한숨을 짧게 내쉬곤 무작정 주먹을 휘둘렀다. 아직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손이 정확하게 남자의 안면을 강타했다.
“억!”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이 두 개가 떨어졌다. 뒤를 이어 피가 줄줄 새기 시작했다. 바닥에 고이는 검붉은 피를 보고 남자가 욕을 지껄이며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가―”
조금 샌 발음으로 낙조를 향해 몸을 일으킨 남자는 다시 고꾸라졌다. 그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낙조가 남자의 가슴을 발로 차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스팔트에 갈리듯 넘어진 남자는 콜록거리며 숨을 허겁지겁 삼켰다.
“진동휘는 죽었어.”
낙조는 낮게 중얼거렸다. 남자의 일행이 급하게 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장전을 마친 후 총구를 낙조에게 겨누었다.
“니 누구야, 씨발!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진동휘가 여기로 가려 했거든.”
낙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손이 완전히 형태를 잡았다. 뒤늦게 낙조의 오른손을 본 남자의 일행은 소리를 빽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너, 너……, 너!”
“진동휘랑 어떻게 연락했어. 굳이 피 보지 말자고, 우리. 별 거 아닌 얘기잖아.”
“씨발, 야, 야 본부에 연락해! 고낙조 왔다고!”
남자의 일행은 낙조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딱히 없어 보였다. 그는 뒤쪽에 서 있던 남자들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선 총을 쥔 손을 허공에 들어올렸다. 낙조는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는 걸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다. 계속 떨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자신을 맞출 거란 생각은 없었다.
“너도 말할 생각이 없는 거지.”
“으아아!”
낙조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마구 방아쇠를 당겼지만 모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날아갈 뿐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조차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낙조는 그를 비웃어 주는 대신 발로 턱을 날려 한 번에 기절시켜 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남은 둘을 응시하자 그들은 뒷걸음질 치면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본부, 본부! 여기, 1차 출입 토, 통제소, 고낙조가, 고낙조가 왔다. 진동, 진동휘는 죽었고…….”
급하게 채널을 맞추고 덜덜 떨며 상황을 보고하는 남자는 남은 손으로 주섬주섬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낙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상태였다. 낙조는 오른손에 힘을 잔뜩 준 채 몸을 이파리로 막았다.
탕, 탕! 탕!
연속으로 세 발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곧장 손등과 팔에서 화끈거리는 열감이 돋았으나 고작 세 방으로 넘어질 낙조가 아니었다. 그는 총을 재장전하는 일행들에게로 다가가 무전기를 빼앗았다.
“으악!”
“어, 어디 가, 이 개새끼야!”
본부와 연락했던 녀석의 멱살을 먼저 쥐어틀자, 남은 한 놈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일행을 보며 잡힌 녀석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낙조는 더욱 세게 멱살을 움킨 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얘기해. 진동휘랑 어떻게 연락했어.”
잡힌 녀석은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우비 아래에서 휘휘 굴러가는 작은 검은자가 꼴 사나웠다. 낙조는 아예 녀석을 아스팔트 바닥에 깔아뭉개고서 목을 조였다. 켁, 하고 금세 얼굴이 벌게진 놈은 두 손을 휘젓다가 낙조의 손목을 붙잡았다.
“무전, 무전기에, 컥, 갑자기, 흐억, 무전기로, 구조 요청이, 왔……, 콜록, 콜록!”
“언제, 뭐라고 왔어.”
“일, 켁, 일주일 전, 자기가, 헉, 너랑, 고낙조, 고낙조랑, 으윽, 같이, 있으니, 자기를 구하러, 와 달라고…….”
놈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낙조는 세게 조이고 있던 목에서 손을 풀었다. 놈은 온몸을 웅크린 채 거친 기침을 내뱉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 낙조는 땅에 떨어진 권총을 모두 줍고서 차로 돌아갔다.
무전기로 모든 채널을 맞추면서 그런 말을 지껄였던 걸까? 낙조는 오히려 더욱 꼬여 버린 것 같은 진동휘의 행동에 대해 결국 확실한 대답을 정하지 못했다. 운전석 창문을 두 번 두드리니 곧 안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운전석 문을 열고 해화에게 권총을 건네줄 때였다. 뒤쪽이 스산하다 싶더니 이내 고함과 함께 쓰러져있던 놈 하나가 낙조의 등에 뛰어 매달렸다.
“너를 그냥 내가, 씹, 보낼 것 같아?!”
그는 꽤 단단한 팔뚝으로 낙조의 목울대를 압박했다. 콱 조이는 숨통에 낙조가 잠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낙조의 등에 완전히 달라붙은 녀석은 낙조를 기절시킬 작정으로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아직 힘이 남았어.’
낙조는 턱턱 걸리는 숨에서도 오른손에 남은 힘을 감지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어떤 것도 벨 수 있는 날카로운 것, 손끝에서 이파리가 가느다랗게 모이는 상상을 했다. 이내 손가락이 한 곳으로 뭉쳐졌다.
“흐, 흡, 헉.”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녀석의 목 가까이에 가져다댔다. 녀석은 이미 눈이 돌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더욱 낙조의 목을 조르는 데에 열중해 있었다. 주도권을 완전히 자신이 가져갔다고 느낀 듯했다. 낙조는 그대로 녀석의 목을 뚫을까 하다가 그저 베어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사악―
“어억……!”
생명에 위협이 갈 만큼 깊게 베진 않았다. 낙조는 살갗을 푹 파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이내 녀석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걸 느끼고 막힌 숨을 토해 냈다. 허리를 굽힌 채 기침을 잦게 내뱉다가 곁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몸을 경련하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목을 붙잡고 있었다.
낙조는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운전석에 올랐다. 피가 맺힌 잎사귀도 서서히 원래의 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시동을 걸고 숨을 다잡았다. 곁에서 해화가 손을 뻗어 피가 묻은 곳을 닦아 주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조용히 입술을 움직여 말없이 속삭였다.
‘미안해. 못 도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