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잠깐의 외출
“사흘 정도면 음식이 동날 것 같아요.”
해화가 미지근하게 데운 인스턴트 수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동휘와 물품을 관리하며 보급품이 필요하겠다고 얘기가 나온 게 어젯밤이었다.
“밖에 나갔다 와야겠네.”
낙조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삼 시 세끼를 모두 채울 순 없더라도 굶주림에 익숙해지는 건 안 될 말이었다. 다시 옥정호를 건너 근처 카페를 뒤져 보거나, 영 물건이 시원치 않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할 듯했다.
저녁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기로 하고, 밤이를 제외한 넷이 짐을 꾸릴 때였다. 밤이가 낙조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자료 보관실 쪽으로 턱짓을 했다. 낙조는 안경을 고쳐 쓰고서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백무흠 말인데. 어제 피 뽑은 거 좀 봤거든. 근데 피에서 피마자에서 나오는 독이 검출됐어. 피가 곧 독인 거지. 피를 독으로 쓸 수 있는 몸이라는 거야. 그래서 살려둔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식물과 인간의 교배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니까. 뭐, 일단 그렇다 치고.”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요?”
“백무흠이 변종들을 꺼낸 다음에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해?”
“…….”
“연잎을 태웠어. 그랬더니 비척거리면서 힘도 못 쓰던 애들이 괴물이 됐다고.”
말도 없이 뛰어가 자신이 뽑은 연잎을 끝까지 챙기던 무흠. 전우들을 모두 꺼낸 후 연잎을 태웠던 무흠. 그리고 그 연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 변이가 완벽히 되지 않았던 이들 모두 완벽한 변종이 되었다. 낙조는 고개를 뒤늦게 끄덕였다.
“그리고, 변종은 후각이 예민하다. 냄새로 서로 소통을 하고. 즉 특수한 냄새가 변종에게 자극이나 신호를 준다는 말이야.”
밤이는 밖에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낙조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입을 뗐다.
“근데 왜, 이런 중요한 얘기를 저한테만 해요?”
“백무흠 따라다니는 군인 애 하나 있잖아. 나는 걔가 좀 못미더워. 백무흠은 이미 연잎을 태우면 변종들이 각성한다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인데, 그걸 졸졸 쫓아다니는 애가 모르겠어?”
“그럼 다른 냄새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수 있다는 확률이…….”
“그거지. 근데 왜 우리한테 말을 안 해 주냐고. 찝찝해.”
밤이는 아랫입술을 껌처럼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곤 꽤 길게 얘기했다 싶었는지 낙조를 이내 내보냈다. 동휘가 짐을 마저 챙기고 자료 보관실에서 나오는 낙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생각보다 오래 겹쳤다.
“홍해화, 너는 나랑 가자.”
어쩐지 밤이의 말을 들으니 동휘의 시선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낙조는 운동화 끈을 묶고 있던 해화에게 말을 건넸다. 동휘가 무어라 입을 떼려고 하는 듯했으나 애써 쳐다보지 않았다.
*
옥정호 근처엔 규모가 큰 카페가 몇 개 있었다. 거리는 고요했지만 어디서 온몸이 나무껍질이나 풀로 뒤덮인 변종이 덤빌지 몰라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에 왼쪽과 오른쪽으로 찢어지기로 했다. 해화는 지운과 동휘와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고 느껴질 무렵 입을 열었다.
“어제 밤이 씨가 너무 뭐라고 한 거 신경 쓰지 마.”
“어제? 아……, 혼자 있으면 이틀도 못 간다고 했던 거.”
“이틀 정도는 살아남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내가……, 든든한 사람은 아니니까.”
“벌써 기 죽었네. 그렇게 맘 약해서 얻다 쓰냐?”
해화는 타박하듯 말했지만 무흠이 잡혀가고 난 후 밤이가 했던 말이 꽤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낙조는 이내 괜찮다며 그 대화를 잘라 냈다. 더 이상 어제의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카페 앞에 도착했을 땐 숨을 죽이고 주위를 둘러보는 데에 열중했다. 이미 현관 유리는 모두 깨져 있었고 바닥엔 간간이 핏자국과 말라붙은 노란 진액이 보였다. 최대한 그것들을 밟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카페 주방 쪽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차게 식은 커피 머신 아래에 일렬로 놓인 냉장고가 보였다.
“와, 바나나 있다. 안 상한 것 같아.”
“샌드위치는 곰팡이 슬었다. ……과일청은 좀 무거운데 오래 먹을 수 있지 않나.”
냉장고 안에 거의 고개를 파묻은 채 유통기한과 상태를 살펴가며 한눈이 팔려 있을 때였다.
잘그락.
무언가가 유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와 해화는 동시에 말하는 것을 멈추고 손에 쥐고 있던 것도 놓았다.
잘그락, 잘그락. 탁. 타닥.
보통 사람이 걸을 때 내는 소리라고 하기엔 불규칙적이었다. 숨을 죽인 채 냉장고 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낙조는 해화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몸을 바싹 엎드린 후 커피머신 옆으로 고개를 아주 살짝 내밀었다.
왜앵, 왜앵, 앵-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피부는 노란 포자가 증식한 지 오래돼 보였다. 개중엔 고름처럼 부풀어 건들면 곧장 터질 것 같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은 변종의 허리를 다 덮을 정도로 길었고 입고 있는 니트 원피스는 누군가에 의해 찢긴 듯 엉망이었다. 변종은 비틀거리면서 유리 조각을 밟았다. 그가 내려찍는 발자국마다 노란 진액이 묻어났다.
거기에 파리들이 쉴 새 없이 변종의 몸에 달라붙었다. 워낙 조용한 탓에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위협적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파리들은 주로 변종의 얼굴에 붙어 있었는데, 마치 벌집에 모여든 꿀벌처럼 틈도 없이 옹기종기 서로 몸을 붙여댔다. 시야를 가로막을 정도로 파리가 들끓었는데도 변종은 얼굴엔 손도 대지 않고 걷기만 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중 다행인 건 부엌 쪽으로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챙긴 것만 들고 조용히 나갈까. 낙조는 여자의 발바닥에서 흐르는 노란 진액 향에 자꾸만 움찔거리는 오른손을 붙잡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때와는 달리 파리 날갯짓 소리에 오른손이 멋대로 튀어 나가려고 애를 썼다.
“왜 그래?”
해화가 보다 못해 속삭였다. 낙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여자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오른손을 붙들고 있는 게 힘겨워졌다. 분명 지금까지는 자신의 의도와 결합이 되어야 변했는데, 이번만큼은 오른손이 단독적으로 움직이려는 낌새를 보였다. 낙조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붙잡았다가 아예 바닥에 짓눌렀다.
“카아아아악.”
변종이 제자리에 서서 쉰 울음을 내질렀다. 무엇을 발견해서 내지르는 비명은 아니었다. 인간의 혼잣말처럼, 그저 허공에 의미 없이 내지르는 소리 같았다.
“어, 잠깐, 잠깐……!”
파리의 날갯짓이 더욱 심해지고, 변종이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다시 발을 떼려 하는 순간이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무거운 덩어리가 팔을 타고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손가락에서 이파리가 자라났다. 그것은 원통 모양으로 형태를 갖춘 후 아주 조그마한 틈을 만들어 냈다. 낙조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변한 모습에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왜앵, 왜애애앵-
다른 때보다 크게 자라난 이파리가 꿈틀거리며 투명한 액을 흘렸다. 제발 멋대로 튀어나가지만 않길 바라며 오른손을 꼭 숨기고 있던 중이었다. 변종의 얼굴에 붙어있던 파리들이 일제히 낙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자력에 이끌리듯 날아온 파리들은 이파리가 만들어 낸 조그마한 틈새로 자진해서 몸을 던졌다. 손바닥 위로 파리들이 투둑, 툭,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낙조는 이를 악문 채 주먹을 쥐고 말았다.
“으아아……!”
곁에 있던 해화가 입을 막은 채 소리를 질렀다. 벌떼처럼 몰려드는 파리들은 일제히 낙조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파리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크게 부풀리며 파리들의 무덤을 열었다. 투명한 액체에서 벌레에게만 느껴지는 페로몬이 있는 걸까.
“윽, 아, 씹……!”
낙조는 가쁜 숨을 겨우 정리하려 노력하면서 살갗을 간지럽히는 이 감각을 없애기 위해 주먹을 쥐어 짰다. 하다 못해 이파리가 된 주먹을 냉장고와 벽 여기저기에 쳐댔다.
쿵, 쿵, 쾅!
“씨발, 좀, 떨어져, 떨어지라고!”
낙조는 아예 왼쪽 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잡고 비틀어댔다. 그러나 이미 피부와 하나로 연결된 줄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칼이 옆에 있었다면 당장 손목을 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손바닥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각은 낙조를 광기에 차게 만들었다.
이파리는 곧 입구를 막더니 온몸을 꼬았다. 안에 틈도 없이 담긴 파리들은 계속해서 아우성을 쳐댔고, 손바닥 위로는 어떤 액체가 치솟고 있었다. 영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곧 액체에 감긴 파리들은 변종의 머리가 녹는 것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식사를 끝낸 이파리가 다시 손가락의 형태를 따라 돌아왔다.
“단내……, 단, 내.”
망할. 낙조는 미니 냉장고에 등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 방금 전의 끔찍한 감각 때문에 다시 오른손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꼭 온몸에 파리 시체가 쌓인 기분이었다.
“제발 좀…….”
낙조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변종을 힐끗 바라보았다. 완전히 방향을 부엌 쪽으로 튼 변종이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파리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제야 낙조는 변종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무껍질이나 포자로 뒤덮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우스웠다. 변종의 얼굴은 푹 파인 구멍 천지였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구멍을 들쑥날쑥거리는 구더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포자에 모자라 파리의 집결지가 된 것이다. 낙조는 차오르는 토기를 억지로 눌러 참고서 잠시 고민했다. 파리 무덤에 이어 구더기까지 집어 삼키고 싶진 않았다.
고개를 들어 부엌에 있는 식기와 도구들을 둘러보았다. 변종은 골반이 뒤틀렸는지 걸음걸이가 비틀린 만큼 걷는 속도도 느렸다. 시야에 들어온 건 시럽이나 파우더와 에스프레소를 섞을 때 사용하는 긴 스푼이었다. 반대편이 포크처럼 되어 있고, 길이도 꽤 긴 편이니 조금 거리를 두고 찌른다 해도 구더기가 튈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했다.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오만한 짓일까? 낙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푼을 집어 들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할 일은 없을 텐데.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변종 살덩이에 깔려 보고도 버릇이 고쳐지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낙조는 한 번 숨을 내쉬고 변종의 이마에 스푼을 그대로 꽂아 넣었다.
“까아아악…….”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피부를 쉽게 뚫은 스푼은 뒤통수까지 찢고 나왔다. 변종과 낙조와의 거리는 딱 15cm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변종은 꼭 말을 하려고 했던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거의 녹아내린 입안에서도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윽…….”
낙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남은 힘을 쏟아 변종을 밀어냈다. 머리가 꿰뚫린 변종은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싶더니 이내 완전히 엎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변종의 얼굴에서 구더기 몇 마리가 바닥으로 튀었다.
“우웩.”
해화가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포자에 이어 구더기까지 몰고 다니는 변종이라니. 상상조차 하기도 싫은 조합을 맞서고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낙조는 못 본 척 몸을 돌려 짐을 챙겼다.
“고낙조. 여기 전화기 있는데.”
“어차피 안 터질걸.”
“……그렇겠지?”
카운터 옆에 놓인 수화기를 바라보다가 낙조는 유유히 자리를 떴다. 유리 밟히는 소리가 잘그락, 잘그락, 길을 남겼다.
*
백무흠을 찾은 이후 연우가 수호를 찾는 일은 줄었다. 아직 낙조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는지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신고 건수가 없다는 말에 더 이상 화를 내진 않았다.
“분명히 그 주변에 있을 텐데.”
하루는 시간이 여유로웠는지 수호의 시스템 실에서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수호를 감시하기도 했다. 백무흠이 임실에서 잡혔으니 이동수단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낙조와 해화라는 여자가 멀리 도망치진 못했을 거란 추측이었다.
홍해화란 여자는 전에 시간이 날 때 프로필을 본 적이 있었다. 정보가 많진 않았지만 핵심적인 내용만 담겨 있어, 연우가 왜 그렇게 그녀에게 집착하는지 조금은 알 법했다. 백신의 치료제로 쓸 수 있는 식물이 몸에서 자라난다. 한 문장뿐이지만 연우에겐 엄청난 기회일지도 모른다.
수호라고 시스템 실에만 처박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들은 얘기는 많았다. 백신 개발 프로젝트 팀장이 연우라는 것, 그 외에도 변종에 맞설 수 있는 계획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후자의 경우엔 백무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다. 연우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고낙조를 잡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얘기도 돌았다.
“백무흠을 잡았는데도 고낙조가 필요해요?”
“원본이랑 복사본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요. 말이 복사본이지, 복사본처럼 보이기 위해 만드는 거고.”
연우는 머그잔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항상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정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뜻은 알았지만 백무흠이 청주로 잡혀오고 난 이후부터 센터가 굉장히 시끄러워졌기 때문에 수호 또한 궁금증을 차마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임실에 있는 모든 CCTV에 접속해 관찰하라는 일은 떠안았으나 수호의 눈에 들어오는 건 비척비척 돌아다니는 변종뿐이었다. 연우가 곧 시스템 실을 떠나고, 수호는 갈색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백무흠이 있는 곳은 실험실 E. 안에 들어가는 건 연우 정도의 직위가 되어야만 가능하지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복사본처럼 만든다는 거야.’
수호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시스템 실을 나섰다. 백무흠이 5년 전 실험체로 살았다는 건 연우도 모르는 사실일 테다. 극비로 주고받은 메시지를 연우가 알 리는 없을 테니.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계단으로 실험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간 수호는 벽에 붙은 채 걸었다. 늦은 시간이라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실험실 E]
팻말이 걸린 문이 보였다. 수호는 후드를 더 단단히 조이고서 창가로 다가갔다. 정확히 반을 갈라 아래쪽은 불투명한 시트지로 가려져 있었고, 위쪽으론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까치발을 들어 겨우 시트지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 씨발 깜짝이야.”
수호는 안을 들여다보다가 미리 자신을 발견한 무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허겁지겁 뒷걸음질 쳤다. 온몸이 묶인 채 의자에 앉아있던 무흠의 몸엔 피멍을 비롯한 여러 생채기가 가득했다. 지금도 그의 팔엔 여러 개의 바늘이 꽂혀 있었다. 자신을 응시하던 두 눈은 실핏줄이 터져 벌건 상태였다. 도저히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호는 불투명한 시트지만 가만히 응시하다가 도망치듯 비상구로 뛰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