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외로이 남은 군번줄
쾅, 쾅!
잠가 놓은 문 너머에서 굉음이 들렸다. 무흠은 권총을 장전한 후 일행에게 말했다.
“모두 중요한 짐만 싸고 따라오십시오.”
문은 꽤 튼튼한 편이었다. 문을 부수기까지 시간은 어느 정도 벌 수 있었다. 밤이는 바쁘게 책상 위에 정리해 둔 자료들을 가방에 넣었다.
“어디로 가게요.”
낙조가 무흠에게 물었다. 무흠은 한 치 흔들림 없는 눈으로 문을 응시한 채 대답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입니다. 어차피 모두 숨진 못하겠지만.”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없앨 정도 만큼만 정리하라는 말에 모두의 손이 급해졌다. 여전히 문을 부수려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흠은 잠시 제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료 보관실 쪽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으나 어디로 가느냐고 물을 경황이 없었다.
곧 그는 낙조가 뜯어온 연잎을 갖고 돌아왔다. 왜 그것을 들고 왔느냐고 물으려 했지만, 무흠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날이 서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모두 숨지 못한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간단하게 짐을 챙긴 낙조가 물었다. 무흠은 무리를 이끌고 복도를 앞장 섰다. 그는 한 손엔 연잎을 꼭 쥐고서 입을 열었다.
“헤어질 시간이 왔다는 뜻입니다.”
무흠이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한때 그의 전우들이었던 변종의 독방이 놓인 복도였다. 낙조는 단박에 알아차리고 무흠을 바라봤지만 무흠은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꺼낸 문 속을 가리키면서.
“저곳에 숨어 계십시오. 그리고 조용해질 때까지 나오시면 안 됩니다.”
“또 뭘 혼자 하려고요. 나보고는 혼자 하려고 하지 말라고 그랬던 사람이!”
낙조의 말에도 무흠은 조용했다.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무흠은 숨을 가다듬고서 말했다.
“남은 사람들을 잘 지켜 주십시오.”
“죽으러 가는 것처럼 말하지 마요. 맞서 싸우기라도 해보자고요!”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기운이 낙조의 화를 돋웠다. 무흠은 쓸쓸한 시선으로 낙조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곳에 내 친구들을 구하러 온 겁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들이 다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소리를 높였지만 말은 끝낼 수 없었다. 무흠이 억지로 어깨를 쥐고 방에 밀어 넣은 탓이었다. 그는 해화와 지운도 따라 들여보낸 후 동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동휘는 아주 짧은 사이에 무흠과 눈을 마주치고 짧게 경례를 올렸다.
쾅!
기어코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여러 개의 발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낙조는 나뒹군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동휘가 낙조를 막았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표정으로.
“비켜요.”
“중사님의 계획을 망치지 마십시오. 닥치고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다.”
동휘는 평소답지 않게 낙조의 가슴을 떠밀면서 말했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낙조는 다시 한번 그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동휘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아예 손바닥으로 낙조의 코와 입을 막고 바닥으로 함께 엎어졌다.
철컹, 철컹, 끼익.
그때 잠긴 문들을 하나씩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몸부림 치면서도 그 소리에 눈을 뜨고 아주 옅은 빛 사이로 무흠을 보았다. 그는 전우들이 갇힌 독방 문을 하나씩 열어 주고 있었다. 곧 목을 긁는 울음소리를 내며 변종 여러 마리가 바닥을 기어 나왔다.
“변종 소리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외쳤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알아내고 찾아왔지. 그 정보도 중요했다. 낙조는 몸부림 치는 것을 멈추고 눈을 깜박거렸다. 변종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자 무흠은 손에 쥐고 있던 연잎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곧 이파리가 타면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캬아아악!”
“하아악!”
연기가 자욱하게 사방을 감쌌을 때, 기운 없이 비척거리던 변종들이 늑대들의 하울링처럼 한곳을 향해 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흠은 조용히 커다란 연잎이 타들어 가는 걸 지켜봤다.
“변종이다!”
“백무흠은 무조건 생포해!”
“사격 개시!”
백무흠은 생포하라, 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무흠은 타고 있는 연잎을 바닥에 내려두고 반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동휘는 조금 더 세게 낙조를 끌어안았다. 곧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무흠이 뛴 곳을 따라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총알이 이리저리 튀는 소리도, 변종들이 군사를 잡고 포효하는 아우성도……, 고스란히.
“으아아악!”
“쏴! 씨발, 쏘라고!”
눈앞에서 핏방울이 휘날리고 변종에게 당한 군인들의 몸이 굴러다니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동휘가 말한 무흠의 작전이란 게 무엇인지 낙조는 알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계획된 작전이었을까? 동휘에게 붙들린 채 낙조는 무력하게 눈을 깜박였다.
금방 공격성을 잃었던 변종이었는데, 왜 갑자기 일반 변종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했을까. 눈앞을 스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무흠은 왜 연잎을 태웠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휩싸여 조용히 숨만 죽이고 있을 때였다.
“백무흠 잡았습니다!”
아찔한 소식이었다. 곧 총상을 입은 듯 상체가 피범벅이 된 무흠이 포박 당한 채 질질 끌려왔다. 무릎 꿇은 무흠의 앞에 선 사람은 마지막으로 남은 변종에게 총을 쏜 후 말했다.
“데려가. 고낙조랑 홍해화는. 없어?”
“아무리 뒤져 봐도 없습니다.”
“에이 씨팔, 청주 가서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야, 백무흠. 니 씨팔놈아, 니가 애들 빼돌렸지. 어?”
“빼돌리다니. 누가 내 이름을 믿고 그 애들을 지켜 주겠어. 다 도망쳤어. 니들 오기 한참 전에.”
“이 개새끼가!”
남자가 군화로 무흠을 세게 짓밟았다. 무흠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냈다.
“이 개새꺄! 씨팔, 니 하나 잡자고 내가 이 개고생을 해야 해?! 어딨어, 애새끼들 어디로 보냈어!”
“나도 몰라. 벌레만도 못한 새끼야…….”
무흠은 힘겹게 입을 열면서 웃었다. 그리곤 피가 섞인 침을 남자의 군화 위에 뱉어 냈다.
청주에서 왔구나. 청주에서 기어코 위치를 알아내서 놈들을 보낸 거야.
꽉 깨문 이가 아렸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것도 몹쓸 짓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쪽수가 적다 한들 자신은 총알받이가 되더라도 살아남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무흠과 동휘의 계획이 결국 모두가 살기 위한 한 명의 희생이라면, 그 한 명은 자신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동휘를 무지막지한 힘으로 뿌리치고서 밖으로 나가려 하자, 동휘는 아예 낙조의 머리채를 잡고 안으로 끌었다.
“얌전히, 있으시라고 했습니다. 다 당신이 망치고 싶지 않으면.”
왜 희생을 자처하지. 희생의 당사자가 왜 자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그만큼 살려 둘 가치가 있는 놈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들이 내 힘에 대해 더 잘 알잖아. 이대로 중사님 보낼 거예요?”
“시간을 버는 겁니다. 중사님께서 미끼가 되는 거라고요. 서연우의 추적을 미루는 방법이라고, 직접 말씀하셨다고. 당신한텐 계획이 있어? 그냥 무작정 뛰어드는 거잖아. 와중에 여기 이 사람들 다 잡혀서 목에 칼 들어가도 그딴 소리 할 수 있냐고.”
동휘의 두 눈이 벌겋게 섰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중얼거리느라 쉰 소리에서 식은땀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동휘는 낙조의 멱살을 잡고 한참 몸을 벌벌 떨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곧 무흠은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 그가 끌려간 곳엔 검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피비린내가 감돌았다.곧 모든 인원이 철수했는지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제야 동휘는 낙조를 막고 있던 손을 풀었다. 아직도 연잎 타는 냄새가 사방을 휘젓고 있었다. 낙조는 바닥을 기어 문밖으로 나갔다.
“…….”
무흠이 있던 자리에 군번줄이 떨어져 있었다. 낙조는 조용히 그것을 쥐었다.
*
자료 보관실은 처참할 정도로 뒤집어져 있었다. 일행이 잠을 자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변종의 방이라 생각했는지 낙조와 일행이 숨어 있던 곳만 손을 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밤이는 말없이 책상을 정리했다. 해화와 지운은 바닥에 떨어진 음식과 물품을 주웠다.
“작전을, 왜 우리에겐 안 알려줬어요.”
멍하니 무흠의 군번줄을 쥐고 뚫린 문밖을 바라보던 낙조가 동휘에게 물었다. 동휘는 소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후 대답했다.
“당신이 날뛸 걸 아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고낙조 당신의 흔적을 찾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힘, 능력, 뭐 그런 것들 다……. 본 사람들이 청주에 돌아가면 서연우의 연구가 더 빨라질 테니까 말입니다.”
“자기가 뭘 안다고……, 자기는 어떻게 될지 알고 그런 말을 해요?”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곳에 온 이유도 비슷합니다. 고립된 채 사는 거라고 볼 수 없는 분들을 구해 주는 게 아니라, 풀어 주고 싶어서 오신 건데.”
동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무흠과는 꽤 오래 전에 얘기를 마친 건지,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낙조는 바닥에 나가 떨어진 문을 주워 입구에 얼추 끼워 맞췄다. 조금 찌그러진 부분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바람이라도 막아야 했다.
“죽지는 않을 거야. 걱정 마.”
자료 보관실에서 나온 밤이가 말했다. 그녀는 테이블 의자를 하나 빼서 편히 앉더니 고개를 젖혔다.
“실험체 중에서 백무흠 빼고 다 변종이 됐어. 근데 백무흠에게 특별한 증상이 있기라도 했나? 아니지. 근데 왜 살려 뒀냐, 이 말이야. 그냥 죽여서 실패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왜 살려서 훈장까지 줬겠냐고. 이유가 있을 거야. 아까 그 개놈들 쳐들어오기 전에 피 뽑아 놔서 다행이야. 그걸로 이유를 대충 추측할 수도 있겠지.”
“직접 들었잖아요. 살아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런데도 계속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낙조는 자꾸만 차오르는 숨을 삼켜가면서 말했다. 밤이는 미간을 조금 좁힌 채 입을 열었다.
“그럼 죽길 바라? 더 이상 고통 없이 평안하시길, 하고 기도라도 해?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어떻게 구해낼지 생각이나 해 봐. 애처럼 좀 징징거리지 말고. 고낙조 니가 대단한 놈이라서 지금까지 너를 살려 준 게 아니라고. 혼자 있으면 이틀도 못 가서 잡혀갈 것 같은 게. 짜증나게 굴지 마.”
밤이는 거침없이 말했다. 낙조는 그녀가 말 한 마디씩 끊어 말할 때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반박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자신은 겁 많고, 대책이 없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흘러가게 놔두는 놈팽이였다. 군번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닥을 바라보는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강해져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힘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 하나에 마음을 깎아먹는 짓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해. 어떤 일을 마주해도 등 돌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낙조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더니, 아니, 닭보단 오골계? 에 더 가까운가.”
연우는 침대에 묶인 무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몸에 박힌 총알을 모두 빼내고 꿰맨 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무흠은 의식을 차렸다. 그의 팔에 남은 수많은 멍과 바늘 자국을 보면서 연우는 혀를 찼다.
“순탄한 삶은 아니었나 봐요. 그걸 미리 못 알아 줘서 미안하네.”
“딱히 당신한테 위로 받는다고 감동 먹지는 않아.”
“여기까지 와서 신경전을 하고 싶어요? 당신 꼴을 봐, 지금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라구. 게다가 총도 맞았어. 그런데 우리가 살려 줬네? 그럼 딱 상황 파악을 해야지. 당신을 살려서 우리가 뭘 하겠구나. 이 정도는.”
“무슨 짓을 하든 입을 움직일 수 있는 한 할 말은 다 해야지. 고낙조랑 홍해화 못 잡아서 열 받은 것 정도는 아는데, 뭐.”
무흠은 힘겹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마 미미하게 남아있던 연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한 번에 사라졌다. 꼭 트라우마처럼 남은 ‘고낙조’라는 이름은 연우의 귓가를 송곳으로 찌르듯 따갑게 울렸다.
“그래, 당신은 그 예의 없는 입이 문제였어. 대화를 더 해서 뭐 하겠어, 내가.”
연우는 헛웃음을 치고서 데스크로 돌아갔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둔 주사기를 들고 무흠의 침대 곁으로 돌아왔다. 주사 바늘은 일반 주사기보다 조금 더 굵었다. 이미 새카맣게 물든 무흠의 팔뚝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연우는 말없이 바늘을 꾹 찔러 넣었다. 무흠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바늘은 피부를 뚫고 깊게 들어갔다. 연우는 천천히 주사기 안의 용액을 넣었다. 아무 말도 없이. 어떤 것을 주사하는 건지, 무얼 실험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무흠은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기가 없으면 만들면 되지. 이건 간단한 문제야.”
연우가 주사기를 빼내고 말했다. 무흠은 이전에도 느꼈던 것 같은 감각이 소용돌이 치는 기분에 주먹을 꽉 쥐었다. 연우는 가만히 무흠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고낙조한테 주사한 샘플을 찾아냈어. 그대로 복사품을 찍어 냈지. 고낙조를 못 잡으면, 고낙조랑 비슷한 게 있으면 되니까.”
“…….”
“당신 몸이 고낙조와 똑같을 순 없겠지만, 최대한 그렇게 만들 거야. 고낙조처럼.”
감염병 관리본부에 있을 때. 청주로 떠나기 전날 밤, 연우가 자신에게 주사했던 약물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때보다 온몸을 휘젓는 힘이 몇 배는 더 강했다. 참으려고 할수록 끓어오르는 힘에 숨이 가빠졌다. 무흠은 눈을 부릅 뜨고 연우를 응시했다. 그녀는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서 가만히 무흠을 지켜봤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안개에 싸여 공중에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으로, 무흠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