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그들을 이끄는 것들
밤이는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다. 낙조는 조용히 무흠을 따라가면서 절로 움직이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흠이 걸음을 멈춘 곳은 아무 팻말도 붙지 않은 방문 앞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쾨쾨한 냄새가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오랫동안 환기를 시키지 않은 방인 듯, 이곳저곳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무흠은 느린 손짓으로 서랍을 뒤졌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곤 이불도 깔리지 않은 철제 침대 하나, 3단 서랍 세 개, 작은 옷장 하나가 끝이었다. 무흠은 열리지 않는 서랍을 빼놓고 남은 서랍을 다 열어 보더니 곧 많이 헤진 밧줄을 꺼냈다.
“이것뿐입니다.”
“끊어지지만 않으면 돼요.”
낙조는 무흠에게서 밧줄을 건네받았다. 누가 물어뜯은 것처럼 매듭이 뚝뚝 풀려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낙조는 그 부분을 매만지다가 방을 나섰다.
“생포해야 해요. 총 너무 잘 쏘면 안 됩니다.”
어둠뿐인 복도를 걸으며 낙조가 말했다. 무흠은 말없이 작게 웃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멱살을 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얼굴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려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제는, 죄송했어요.”
느긋하게 걸음을 걷던 낙조가 무흠의 어깨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낙조 씨도 많이 놀란 상태였으니…….”
“언제 이곳에 와 보셨어요?”
특별한 뜻을 품고 물어본 질문은 아니었다. 플래시 라이트를 비추며 길을 걷던 무흠은 그 질문에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무흠의 대답은 낙조에게도 혼란스러운 폭풍을 몰고 왔다. 이곳까지 오면서 무흠은 언제나 여유로웠고 자신만만했다. 이곳에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 분명하다는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이상하게, 여기에 온 이후로 불안합니다. ……제 의견이었는데, 그래서 많이 미안합니다.”
그늘진 그의 얼굴 위론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렸다. 서리가 낀 창문처럼 불투명하고 차가운 것이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괜찮아요. 중사님이 안전하다고 하셨으니까.”
막상 낯선 무흠의 모습을 마주하니 쓴소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낙조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그리고 아직까진 모두 무사하잖아요. 그럼 된 거예요.”
무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낙조는 무흠의 걸음걸이가 조금 느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주위를 살피는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불 들까요?”
낙조가 물었다. 무흠은 곧장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손전등을 든 손이 약간 떨리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갈래길이 나왔다. 낙조는 변종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나 싶어 왼쪽부터 귀를 기울였다.
“조용한데요.”
“…….”
대답이 없어 고개를 돌려보니 무흠은 오른쪽 길을 향해 불을 비추고 있었다. 낙조는 그를 한 번 더 부르는 대신 무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흠은 낙조의 발걸음 소리가 들림이 분명한데도 목석처럼 오른쪽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 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낙조가 무흠을 불렀으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무흠은 재빨랐다. 여차하면 그를 놓치고 미로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었다.
“허억, 헉, 중사님, 헉…….”
마침내 무흠이 걸음을 멈춘 곳은 양쪽으로 작은 문들이 일렬로 박힌 곳이었다. 천장엔 작은 백열등 하나가 겨우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무흠은 그곳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어느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고리엔 자물쇠도 달려있지 않았다. 낙조는 손에 쥔 밧줄을 꼭 잡고서 무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끼이이익, 끽.
그저 걸쳐져 있는 잠금장치를 옆으로 밀어내고 무흠이 문을 열었다. 안은 캄캄하기 그지없었다.
“끄으으으으윽…….”
안쪽에서 비명과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낙조는 조심스럽게 무흠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흠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손전등으로 방 안을 비췄다.
“씨발…….”
낙조는 불에 비친 것을 보자마자 욕을 읊조렸다. 무흠은 아무 미동도 없이 그것을 계속 비추기만 할 뿐이었다.
빛에 드러난 것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인간이었다. 머리카락도 없고, 눈썹도 없이 살가죽만 겨우 남은. 아니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누리끼리한 것을 보니 변종일 수도 있었다.
“중사님, 중사님!”
자신이 처음 이곳에 들어와 환영을 봤을 때 이런 모습이었을까. 무흠은 멍한 눈으로 변종을 응시하고 있었다. 낙조는 결국 그의 뺨을 조금 세게 내리쳤다.
짝.
흐리멍덩하던 눈동자가 점점 선명해지더니 낙조 쪽으로 돌아왔다.
“저거 변종 맞죠?!”
“……예.”
뒤늦게 무흠이 대답했다. 변종은 흰 반팔 티셔츠 하나에……, 군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군복 바지? 낙조가 의아함을 품기도 전에 빛을 향해 변종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절대 공격해선 안 된다, 라는 생각으로 낙조는 밧줄을 슬슬 풀어냈다.
오랫동안 먹은 것이 없었던 듯 변종의 움직임엔 힘이 없었다. 시력도 좋지 않은지 코앞에 무흠을 두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빛과 어둠 정도밖에 구분을 못하는 거야. 낙조는 긴장이 가득 도는 복도에 서서 생각했다.
순간 변종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낙조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아아악!”
억지로 쥐어짠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었다. 변종은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뛰더니 이내 낙조의 상체 위로 펄쩍 뛰었다. 이때다, 싶어 변종의 상체를 밧줄로 묶으려던 낙조는 피부에 밧줄이 스치자마자 더욱 날뛰기 시작하는 변종의 몸에 깔려 쓰러졌다.
“으윽.”
변종은 목을 긁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마구잡이로 낙조의 몸을 공격했다. 일반 변종처럼 진액을 토해 내거나 몸 일부를 씹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반항하듯 주먹을 쥐고 낙조를 두들겨 팼다.
“윽, 진짜……!”
자신의 온 힘을 다해서 쓰면 상처가 남을까 봐, 낙조는 변종을 밀어낼 만큼만 힘을 쓰기로 했다. 뼈만 남을 만큼 마르긴 했지만 뼈대가 두꺼워 맞는 족족 몸이 움츠러들었다.
“읏, 으윽, 중사, 중사님!”
위의 포지션을 잡고 계속 내려치는 손목을 겨우 붙잡았을 때 낙조가 무흠을 불렀다. 무흠은 꿈에서 이제 막 깬 사람처럼 눈을 깜박이다가 뒤늦게 바닥에 널린 밧줄을 쥐어 변종의 몸을 묶었다.
“칵, 칵!”
그때 흉부를 압박당한 변종이 몸이 불편한 듯 상체를 배배 꼬더니 텁텁한 가스 같은 것을 내뱉었다. 진액과 비슷한 것인가 싶어 손으로 코와 입을 급히 막았지만, 그 작은 입자를 모두 피할 순 없었다.
“콜록, 헉, 흐윽, 콜록!”
아주 소량만 몸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도 온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낙조는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순간적으로 변종을 놓쳤다.
“낙조 씨!”
무흠이 낙조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겨우 눈을 떠 보니 무흠이 변종의 상체를 단단히 포박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기침을 터뜨리는 순간에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툭, 투둑. 불안하다 싶던 부분들이 하나둘씩 끊어져 나갔지만 상체를 포박하니 변종은 금세 날뛰던 것을 멈추고 쪼그려 앉은 채 숨만 색색 쉬어 댔다.
계속해서 공격성을 보이는 변종과는 달랐다. 공격할 기회를 잃게 되니 순순히 포기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낙조는 처음 보는 모습에 콜록거리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걸을 수 있습니까?”
“콜록, 헉, 네……. 이제 좀, 콜록, 괜찮아요.”
호흡은 여전히 가빴지만 기침의 횟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낙조는 얼굴을 닦아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구석에 몸을 웅크린 변종의 뒷덜미를 잡은 무흠이 말했다. 낙조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을 닦아 낸 후 눈을 깜박였다.
무흠이 쥔 티셔츠 자락 아래로, 무언가 반짝거렸다.
군번줄이었다.
*
“진액이라거나 포자가 있는 변종이 아닌데?”
예상했던 말이었다. 밤이는 무흠이 끌고 온 변종을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근데, 몸에 뭐가 있긴 있어요. 먼지 같은 걸 내뱉었는데, 기침이 막…….”
낙조가 덧붙여 말했다. 그의 말에 감흥 없는 눈길로 변종을 내려다보던 밤이가 목소리를 낮추고 낙조를 끌어당겼다.
“먼지?”
“네.”
밤이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몸을 움직였다. 피를 뽑으려는 듯 주사기를 든 그녀는 얌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변종의 팔에서 피를 뽑아냈다.
노란 진액이 섞인 피가 아닌, 그저 거무죽죽한 붉은 피가 빨려 올라왔다. 밤이는 아무 말 없이 뽑아낸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현미경에 눈을 가져다댔다.
“…….”
여전히 변종은 미동도 없이 숨만 쉬고 있었다. 무흠은 이곳에 변종을 데리고 오자마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뜬 상태였다. 의아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변종을 찾으러 나설 때부터 그는 망상 속에 갇힌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낙조는 천천히 변종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군번줄. 군복 바지를 입고 있는 것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악!”
낙조의 손끝이 피부에 닿자, 변종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몸을 굴려 구석으로 도망갔다. 낙조는 두 손바닥을 활짝 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준 후 다시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투둑.
군번줄은 쉽게 풀렸다. 낙조는 군번줄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황태안…….”
밤이를 부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이마를 짚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그래요?”
“피마자. 어제 내가 말한 피마자……, 그게 보여. 리신 성분도 검출됐고. 양이 꽤 많아서 곧 죽을 거야.”
“……군번줄에 황태안이란 이름이 적혀 있어요. 명단, 확인해 볼 수 있어요?”
낙조의 말에 밤이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구겨둔 파일을 다시 꺼냈다. 언제 무흠이 돌아올지 몰랐다. 빠르게 종이를 넘기는 손길에 덩달아 낙조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2016년, 2016년…….”
종이를 넘기던 손길이 문득 멈추었다. 그리곤 가지런히 정렬된 이름을 따라 다시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태안/31세/남성/피마자]
“…….”
보란 듯 적힌 이름에 머리가 아파왔다. 왜 군인들이 이곳에서……. 모두 저런 식으로 당했다면 무흠은 어떻게 밖으로 나왔던 걸까. 그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지내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을 했지?
“그럼 여기 적힌 이름들, 다……, 군인들일까요.”
“네가 본 문이 몇 개였는데.”
“아……, 열 개는 넘었어요.”
“거기에 다 있다는 말이네.”
밤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낙조는 뒤돌아 구석에 앉아있는 변종을 응시했다. 그는 고개를 다리 사이에 푹 파묻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았다는 건, 여기에서 일했던 이들이 그래도 계속 죽지 않을 만큼 먹을 것을 줬다는 건데.
“검사 하셨습니까?”
그때 무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밤이는 파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덮으면서 말했다.
“진액이나 포자는 안 나왔어. 다른 식물로 변이된 것 같아.”
“그렇습니까.”
무흠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곤 구석에 있는 변종을 힐끔 돌아보았다. 꽤 오랫동안 변종을 바라보던 무흠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낙조는 무흠의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눈으로 쫓았다. 그는 변종 앞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변종이 확실하긴 합니까?”
침묵 속에서 무흠이 말을 꺼냈다. 여전히 무흠은 변종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냐고 묻는 겁니다.”
무흠의 말에서 어쩐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밤이에게서 듣고 싶은 대답이 있다는 것만큼은 느껴졌다.
“증거야 만들려고 하면 만들 수 있지. 변종이 확실하다고 하기엔 공격성도 없고……, 근데 확실히 해두려면 신경조직이랑 뇌 CT를 찍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잖아.”
밤이는 파일을 보이지 않는 구석에 슬쩍 끼워 넣고서 대답했다. 밤이의 대답에 무흠은 다시 잠잠해졌다.
“구조대가 이들도 죽인다고 하면, 찬성하실 겁니까.”
무흠의 말은 계속해서 미지의 부분을 파고 들어갔다. 그가 등을 지고 있었기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낙조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채 무흠의 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중사님.”
조용히 그를 불렀다. 무흠은 조금 뒤늦게 뒤돌았다. 아까처럼, 초점이 흐릿한 눈이 낙조와 마주쳤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시죠.”
“…….”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