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축축하고 마르지 않는 마음
헤엄치는 것까진 아무 문제 없었다. 무언가가 발목을 잡아채지도, 몸을 안아 밑으로 끌어내리지도 않았다. 낙조는 꽤 멀어진 주택을 보면서 호흡을 다스렸다.
이 밑부터 보는 거야. 어느새 차가움에 익숙해진 몸은 자유롭게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낙조는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안경을 벗은 데다가 물속이라 시야가 그리 밝지 못했다. 물이 그리 깨끗하지 않은 것도 한몫 했다. 낙조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부력을 휘저으면서 내려간 바닥엔 연구소로 보이는 긴 건물이 보였다.
‘숨 막혀.’
그제야 한계에 다다랐는지 숨이 막혔다. 낙조는 참고 있던 숨을 쏟아 내며 그 자리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고통이 끝나면 다시 호흡이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돼. 했던 거잖아.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면서 호숫물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빠르게 낙조 곁을 지나간 게 느껴졌다. 물결이 낙조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낙조는 힘겹게 눈을 떠 주위를 살폈다. 그 와중에도 물은 계속해서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숨이…….’
코와 입안으로 물이 거침없이 들어왔다. 낙조는 점점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어떤 형상이 잡히는 걸 보았다. 조금 열린 입술 새로 물거품이 보글보글 쏟아져 나왔다.
‘안 되겠어.’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온몸을 지배했다. 낙조는 위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힘이 빠졌지만 어떻게든 올라가서 숨을 쉬고 싶었다. 허겁지겁 팔다리를 움직여 위로 올라가는데, 무언가가 발목을 아래로 확 끌어당겼다.
‘!’
조금만 더 올라가면 수면이었는데. 얼굴을 내밀 수 있었는데. 낙조는 다시 멀어진 물결에 손을 뻗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차마 자신의 발목을 붙든 것을 내려다보지도 못했다.
힘이 점점 빠져갔다. 낙조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정신은 멍해졌고, 온몸은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천천히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자신의 발목을 휘어잡은 것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발목에 추를 매단 듯 가장 먼저 발목이 추락하고 있었다.
“하악……!”
눈이 완전히 잠기려고 할 즈음, 낙조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가라앉고 있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낙조는 몇 번 눈을 깜박거렸다. 빛이 들어오고 있는 물길 아래에서 자신의 몸이 가라앉고 있음이 느껴졌다.
“……된 건가?”
입으로 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거품이 보글보글 새어나갔지만 아주 미세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들이실 때마다 물이 미미하게 몸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마비가 된 것만 같았던 몸도 가벼워졌다. 낙조는 그제야 아래쪽을 내려다 봤다.
“미친…….”
욕을 뇌까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 변종이 맞았다. 머리엔 연잎을 덮고 있고, 온몸은 뿌리로 돌돌 감겨 있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눈으로는 가늠이 가지 않았다.
물 아래에서 감염이 된 건가? 변종의 시작은 자신이 임상시험을 했던 연구소였다. 거기선 분명 진액과 포자로 시작됐는데. 저 변종에게선 진액이라거나 포자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떼어 내는 게 급선무였다. 낙조는 힘껏 발을 굴려 봤지만 변종은 완전히 두 팔로 다리를 끌어안고서 낙조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퀭한 두 눈은 다른 변종과 다름없이 새하얗게 뒤집혀 있었다. 물결에 따라 흐느적거리는 연꽃 뿌리가 낙조의 피부에도 종종 스쳤다.
진액이 없으면 오른팔을 쓸 수 없다. 게다가 여기는 물속이잖아. 그 식물이 물속에서도 힘을 쓸 수 있을까? 오만 생각이 서로를 뒤집히고 뒤집으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당장 쓸 수 있는 힘이라면 주먹뿐이었다. 낙조는 몸을 아래로 숙여 두 손으로 변종의 손목을 붙잡았다.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았다. 변종은 낙조가 자신의 손을 떼어 내려 하자, 입을 크게 벌리고 괴성을 질렀다.
“까아아아악!”
돌고래가 초음파를 쏘듯 귀를 찢을 듯한 울림이 호숫가를 집어 삼켰다. 낙조는 눈을 감았다가 이를 악물었다.
약점을 찾아야 했다. 보통 변종의 약점은 머리나 심장. 이들도 같을까. 심장을 뚫을 만한 것은 없었다. 연못 바닥에 가라앉은 것들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쓰레기나 녹슨 동전뿐이었다.
낙조는 눈을 돌려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찾았다. 정리되지 않은 전선처럼 엉킨 뿌리는 모두 한곳에 몰려 있었다.
연잎 아래. 머리.
생각보다 쉬운 결말이었다. 낙조는 잡고 있던 변종의 손목에서 방향을 바꿔 변종의 머리에 있는 연잎을 붙잡았다.
“까악! 까악! 까악!”
연속으로 세 번, 변종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짧게 소리를 내질렀다.
낙조는 개의치 않고 연잎을 한 손으로 구긴 다음 뿌리째 뽑듯 힘을 위쪽으로 주어 잡아당겼다. 변종의 몸부림이 심해졌다.
우득, 하고 뿌리의 일부분이 머리에서 빠져 나왔다. 꼭 뇌를 뽑는 느낌에 낙조는 손을 덜덜 떨었다. 하면 안 될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한쪽이 뽑히자, 변종의 몸부림은 천천히 잦아졌다.
“……미안해요.”
낙조는 작게 중얼거리고서 마저 연잎을 세게 잡아당겼다. 우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뿌리가 완전히 머리에서 뽑혔다.
변종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연잎과 뿌리가 뽑힌 변종은 빈 껍질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물결에 실려 둥둥 떠내려갔다.
낙조는 손에 쥔 연잎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칠까, 하다가 밤이를 생각하고 챙기기로 했다.
다시 연구소의 건물로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니 작은 방울이 보글, 보글, 하고 끓는 곳이 보였다.
‘저기구나.’
아마 자신과 무흠이 처음 확인했던 곳일 수도 있었다. 낙조는 연잎을 쥔 채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낙조는 손끝으로 천장을 매만졌다. 아주 미세한 틈이 살갗에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곳에서 작은 방울이 새어 올라왔다.
‘이걸 어떻게 막지.’
생각을 해보니 구멍을 막을 도구 같은 걸 들고 오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서 챙겨오려니 또 그 지옥 같은 호흡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생각에 좀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까아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변종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몸을 움츠리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이 좋지 않은 탓에 뿌연 물속에서 무엇이 다가오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커먼 덩어리 같은 것이 천천히 자신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만 보일 뿐.
‘도대체 몇 마리야.’
낙조는 순식간에 자신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도는 변종의 수를 셌다. 여섯, 아니면 일곱이다. 그들은 모두 머리에 연잎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연꽃이 피어난 변종도 보였다.
보트를 타고 붕어섬으로 들어올 때, 밤이가 매만졌던 연꽃이 떠올랐다. 듬성듬성 피어 있던 연잎도.
이들이었다. 그들이 물속에서 꼿꼿하게 서서 가만히 머리를 내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죽인 변종의 외침을 듣고 몰려온 듯, 그들은 다 녹은 잇몸을 드러내며 살기를 내뿜었다.
역시나 성별은 확인할 수 없었다. 모두 가슴이 평평했고 성기가 없었다. 거기에 작고 마른 몸. 낙조는 더한 상상을 하지 않으려 고개를 휘저었다.
그때 한 녀석이 낙조에게 덤볐다. 녀석은 제일 작은 놈이었는데, 손발로 낙조의 팔에 매달린 채 손등을 와구와구 씹었다. 그러나 잇몸조차 녹아 버린 탓에 이가 잘 박혀 들어갈 리 없었다. 살을 뚫지는 못하고 자국만 남을 정도의 힘이었다.
낙조가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차례대로 낙조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곤 드러난 살을 와작와작 깨물었다. 따끔거리긴 했지만 보통 변종만큼 힘이 세진 않았다.
“하지 마.”
낙조가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을 향해 말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녀석은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밤이가 예쁘다고 했던 연꽃을 피어낸 변종이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 내려온 거야. 해치고 싶지 않아.”
낙조는 애절하게 중얼거렸다. 녀석은 덤빌 듯 말 듯 움직이다가 입을 열었다.
“까아악.”
녀석이 낙조에게서 시선을 떼고 울었다. 그러자 온몸에 달라붙어 있던 놈들이 입을 떼어 냈다. 그들은 항의하듯 왁왁 울어 대다가 결국 낙조의 몸에서 떨어졌다.
명령을 내린 녀석은 낙조가 들고 있는 연잎과 뿌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미세한 틈이 나 있던 곳 근처였다. 무리들도 녀석을 따라 아래로 헤엄쳤다. 낙조는 조심스럽게 변종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녀석들은 낙조가 곁에 오자 보란 듯 그 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 틈을 더 찢고 벌리기 위해 연구소 천장을 두드렸다. 몇몇은 그 틈에 입을 대고 깨물었다.
그제야 왜 녀석들의 잇몸이 그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지, 이가 몇 개 없는지 이해가 갔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당했나.’
낙조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짐승처럼 천장을 물고 씹다가 낙조가 다가오자 다시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카아아아악.”
변종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란 듯 울었다. 덜렁거리는 이가 곧 떨어질 것처럼 굴었다. 낙조는 그새 조금 더 벌어진 틈을 보았지만 차마 막지 못했다.
곧 어떤 녀석이 무리를 이탈하더니, 빙빙 도는 물결에 떠다니고 있던 변종의 껍질을 들고 돌아왔다. 낙조가 뿌리를 뽑은 녀석이었다. 변종은 사람 형체의 껍질을 낙조에게 내밀었다.
껍질의 입 부분에는 이가 몇 개 붙어 있었다. 작고, 여기저기가 갈려 나간 흔적이 보이는 이였다. 낙조는 그 변종이 물었던 다리를 내려다 봤다가 껍질을 받아들었다.
녀석들은 그리고서 호수 반대쪽으로 헤엄쳐 떠났다. 뿌리가 흔들거리며 시야에서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호수 근처엔 해화와 무흠, 지운이 있었다.
“야! 너 진짜 자꾸 사고 칠래!”
큰 타올 같은 것을 들고 있던 해화가 낙조의 몸 위로 타올을 덮어 주었다.
“아 깜짝아. 이게 뭐야!”
낙조가 들고 있던 것을 보고 해화가 소리를 질렀다. 낙조는 물끄러미 껍질과 뿌리, 이를 내려다보다가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곤 몸을 닦은 후 옷을 차례로 입었다.
“변종 맞아? 크기가 완전……, 꼬맹이 같은데.”
쪼그려 앉아서 껍질을 관찰하던 지운이 중얼거렸다. 낙조는 안경까지 쓴 후 다시 껍질을 들어올렸다.
“밤이 씨한테 확인받아야 해.”
무흠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시선이 고요히 부딪쳤다. 무흠은 떨고 있었다. 적어도 낙조가 보기엔 그랬다.
“그러니까, 머리를 뽑았더니 뿌리가 딸려 나왔다고?”
“네.”
낙조의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밤이는 낙조가 내민 것을 테이블 위에 두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는 껍질의 길이를 재고, 연잎을 매만질 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연 건 이를 확인할 때였다.
“고낙조.”
“네.”
“다 이랬어?”
“뭐가요.”
“네가 봤다던 변종들, 다 이런 식이었냐고.”
“네.”
길게 말할 힘이 없었다. 낙조는 순순히 수긍했다. 밤이는 손바닥 위에 이를 올려놓은 채 멍하니 서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왜요, 누나, 뭔데요?”
지운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밤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마지못해 입을 떼어냈다.
“이거 영구치가 아니야.”
“엥?”
“유치라고. 많아 봤자 7살 애 이빨이야.”
순간 적막이 모두를 휩쓸고 지나갔다. 낙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어떻게? 낙조는 어떻게 해서든 진액과 포자, 그리고 호수의 변종들을 연결시켜 보려 했으나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멍한 눈을 들었다. 쭉 이곳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무흠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연못에서 나왔을 때부터, 동휘와 무흠은 아무 말이 없었다. 밤이가 껍질과 뿌리를 확인할 때도. 변종의 나이를 파악했을 때도. 경악한 건 해화와 지운뿐이었다.
낙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흠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멱살을 쥐고 벽으로 밀쳤다. 무흠은 반격하지도 않고 순순히 낙조가 미는 대로 힘없이 흔들렸다.
“당신은 알고 있지!”
아직 마르지 않은 낙조의 얼굴이 가까이 붙었다. 무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낙조를 응시했다.
“여기서 뭘 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낙조! 야, 너 갑자기 왜 이래!”
해화가 급히 낙조를 붙잡았으나 그녀의 힘으로 떼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말해!”
낙조는 한 번 더 크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원래 여기가 무슨 곳이었는지 말하라고!”
철컥.
“손 내려놓으십시오. 고낙조 씨.”
동휘가 장전한 총의 총구를 낙조의 머리에 겨누었다.
“뭐, 뭐야. 뭐해요, 상병님…….”
지운이 당황한 듯 겨우 입을 뗐으나 동휘는 낙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흠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아직도 물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물었던 곳이 이제야 쓰라리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