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작게 금이 난 곳에서 믿음이 샌다
변종의 몸을 가득 채운 진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저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끈적거리는 저 진액.
변종의 부름에 두 번이나 이끌렸다는 건 자신의 몸에도 진액이 섞였다는 걸까. 낙조는 오른팔을 내려다 봤다가 문고리를 꽉 쥘 뿐이었다. 문이 열리지 않도록.
“까가각, 깍…….”
여성의 몸을 한 변종은 턱이 빠져 있었는데, 빠진 턱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뼈가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듯 단호하고 거친 음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낙조는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진액 냄새에 팔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네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줄 생각도 없어.”
손끝이 길게 늘어나는 느낌을 받으며, 낙조는 의자를 끌어 문을 열지 못하도록 문고리를 받쳤다.
“까가까가각, 깍깍.”
온통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얼굴 틈새로 새하얗게 뒤집힌 눈알이 보였다. 얇은 막이 눈알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변종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분홍색 막이 함께 움직였다.
‘섣불리 먼저 공격하면 안 되겠는데.’
낙조는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변종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변종은 제자리에 앉아 턱만 쉴 새 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끈질긴 신경전이었다. 문밖에선 무흠과 밤이가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고, 그 소리에 변종은 낙조를 바라보며 턱을 씹어댔다.
“네 말 못 알아 처먹겠다고.”
낙조는 완전히 형태를 갖춘 오른손을 꽉 쥐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제야 변종은 턱을 씹는 걸 멈췄다. 여전히 밖은 낙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변종은 두 다리를 끌어안은 손을 풀고 가만히 낙조를 바라보다가 별안간 데스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변종이 앉아 있던 자리엔 물이 고여있었다.
“읍…….”
아주 오랫동안 여기에 앉아 있었는지, 썩은 물이 고인 냄새가 고약하게 올라왔다. 낙조는 왼팔로 코 밑을 막고서 인상을 찡그렸다. 변종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낙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공격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변종은 개구리처럼 두 손을 다리 사이에 놓고 있었는데, 낙조를 당장 공격할 태세를 취하진 않았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돼.’
퍼뜩 든 생각이었다. 한 공간에 변종과 오래 있어 봤자 자신에게 좋을 건 없었다. 애당초 이곳으로 온 것도 이 변종이 자신을 끌고 온 것인데. 지금이야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 해도 침투당할 확률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아, 하.”
방 안은 온통 진액 냄새와 썩은 물 냄새로 가득했다. 찰나였지만 알 수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힘이라면, 말을 걸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게 말뿐이라면 다행이다. 만약 명령을 내린다면, 내가 거부할 수 없게 된다면.
당장 문밖의 이들이 문제였다.
낙조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변종은 폴짝 뛰어 뒤로 물러났다. 이미 낙조가 그렇게 공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에 마음이 급해졌다.
쾅.
“고낙조 씨!”
“야! 문 안 열어!?”
변종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또 한 번 주먹을 내리쳤지만 변종은 아주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바닥을 울릴 정도의 힘이었다. 그 반동에 바깥에 있는 이들이 낙조를 불렀다.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구석으로 몸을 숨긴 변종에게 낙조가 중얼거렸다. 변종은 하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낙조가 다가오는 걸 지켜보았다.
“뭘 말하든 나는 궁금하지 않다고. 관심도 없다고!”
순식간이었다. 낙조가 그 말을 내뱉자마자 변종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높이 뛰더니, 낙조의 어깨에 매달렸다.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으나 눈앞을 가득 메울 정도의 개구리풀과 썩은 물 냄새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윽, 으…….”
중심을 잡으려 몸을 비틀거리다가 겨우 벽에 손을 짚었다. 변종은 낙조의 머리를 두 손으로 꽉 쥔 채 고개를 숙였다. 썩은 물 냄새가 더욱 고약하게 풍겼다.
“후으, 윽, 헉……!”
얼굴에 닿지 않기 위해 변종의 팔을 붙잡은 낙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차갑고 축축한 나뭇가지를 만지는 듯한 기이한 감촉에 온몸 위로 소름이 돋았다.
“궁금하잖아.”
순간 귓가에서 여자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말하는 속도는 아주 빨랐지만 정확했다. 낙조는 그대로 얼어붙어 눈만 깜박였다.
“궁금해서 온 거잖아.”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귓가에 맴돌았다.
변종이 말하고 있는 건가? 그걸 내가 지금 알아듣고 있는 거고? 낙조의 머릿속은 화이트아웃이라도 당한 듯 새하얗기만 했다. 어떤 생각이라도 꺼내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너지금궁금해서여기온거잖아. 너가왜그렇게됐는지궁금해서. 그래서여기온거잖아. 너도여기갇힐거야. 여기서죽을거야.”
변종이 말을 총알처럼 내뱉었다. 낙조는 숨을 겨우 몰아쉬다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으로 변종을 밀쳤다.
“아악! 닥쳐!”
손끝이 파들거릴 정도로 말을 듣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쥐어짜 몸에서 떨어진 변종의 몸 위를 타고 올랐다. 부들거리는 주먹을 끊임없이 변종의 얼굴을 내리쳤다.
주먹은 정확히 안면을 파고들었다. 조금 이상했던 건, 잡초 변종이나 일반 변종처럼 부서진다거나 터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저 맨바닥을 계속 내리치는 느낌에 낙조는 얼굴이 아닌 변종의 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무언가 부서지는 느낌이 나는 것 같았으나, 계속해서 내려칠수록 타격감은 줄어들었다.
“죽으라고!”
낙조는 절규하듯 소리치면서 변종의 몸 이곳저곳을 때렸다. 그동안 변종은 가만히 누워서 낙조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거만한 흰 눈, 그 두 눈을 쳐보았으나 눈동자는 터지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변종의 몸을 내려치자 숨이 벅찼다. 호흡이 딸려 변종을 치는 몸짓이 점점 느려졌다.
“헉, 허억, 헉…….”
쾅!
“고낙조 씨!”
땀에 흠뻑 젖은 상태에서도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몸으로 문을 부신 무흠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무흠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 밤이는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낙조의 손목 조금 위에서부터 시작된 변이는 손가락에서 정점을 발휘했다. 손가락 개수와 똑같이 핀 이파리 안엔 혈관처럼 파랗고 얇은 줄기들이 뻗어 있었다. 낙조가 주먹을 쥐면 이파리는 한곳으로 뭉쳐 주머니처럼 형태를 갖췄다. 상황을 살피니 낙조는 그 상태에서 변종에게 공격을 하는 듯했다.
“……왜 저래?”
밤이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낙조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낙조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애꿎은 방바닥만 두드리고 있었다.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낙조의 주위엔 산산조각 난 흰 가루와 다 시든 개구리밥 이파리가 가득했다.
“고낙조! 정신 차리라고!”
무흠이 낙조의 멱살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 벽에 밀쳐진 낙조는 무흠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면서 눈을 깜박였다.
“변종, 변종이 안 죽어요.”
“변종 없습니다.”
“있어요. 저기 누워 있잖아요, 말을 한다고요. 나한테 말을 건다고!”
낙조는 자신이 앉아 있던 곳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무흠은 입을 꾹 닫고 낙조를 내려다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한 걸음 물러났다.
짝.
낙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몸이 비틀거릴 정도의 힘이었다. 안경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낙조는 숨을 내뱉으면서 무흠에게 맞은 볼을 어루만졌다. 열이 느긋하게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낙조 씨밖에 없었습니다.”
무흠이 경고하듯 말했다. 낙조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자신이 있었던 곳을 확인했다. 무흠의 말대로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리저리 흩어진 흰 가루와 시든 개구리밥 이파리들이 전부였다.
“…….”
눈을 아무리 깜박여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낙조는 바닥에서 안경을 주워 쓰고선 멍하니 자신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뼛가루야.”
바닥에 흩어진 흰 가루를 이리저리 관찰한 밤이가 말했다.
“죽은 지 꽤 된 것 같은데. 개구리밥이 어떻게 시체에서 피어났지?”
그녀는 부서지지 않은 뼛조각에 엉킨 채 시든 개구리밥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낙조의 말에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물 좀 드십시오.”
무흠이 낙조에게 물통을 건넸다. 낙조는 벽에 기댄 채 물을 두 모금 마셨다.
환각이었나? 아니면 내 망상인가?
“중사님도 들으셨잖아요. 변종 소리.”
낙조는 방에 들어가기 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말했다. 무흠은 미간을 좁히고 되물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낙조 씨가 혼자서 안에 못 들어가게 하더니, 무슨 말을 중얼거리며 들어갔잖습니까.”
“…….”
낙조의 눈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희미한 빛이 사라졌다. 가만히 곁에서 현장을 살피던 밤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너 혼자 뭐라고 계속하다가 갑자기 들어가서 문 잠갔잖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내 기억인 거지? 낙조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자신의 기억조차 믿을 수 없는 순간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손은 금방 돌아오네.”
정적을 깨고 밤이가 말했다. 그녀는 완전히 인간의 손으로 돌아온 낙조의 손목을 잡고 허공에 들어 여기저기 확인했다.
“봐. 뼛가루잖아.”
밤이는 낙조의 손가락 마디마다 묻은 흰 가루를 털어 내 보여 주었다. 낙조는 급격하게 몰려오는 어지러움을 꼭 참았다. 두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버텨 냈다.
“요 며칠 제대로 못 쉬어서, 헛것을 봤나 봐요.”
낙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변종이 누워 있던 곳은 절대 쳐다보지 못했다. 아직도 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았습니까.”
한참 낙조를 지켜보던 무흠이 물었다. 낙조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버틸 수 없었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안 믿잖아요.”
“뭐가 됐든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고낙조 씨뿐입니다. 변종이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에 갇힐 거라고.”
낙조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작은 지퍼백에 뼛가루와 시든 개구리밥을 넣은 밤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번에도’라니? 저번에도 이런 환각 보고 이랬었나?”
“환각은 아니고, 누가 부르는 것 같았다고 한 곳을 따라가 보니 변종이 있었습니다.”
무흠은 낙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밤이의 말에 대답했다. 밤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털어 냈다.
“변종이랑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가 없네, 어쨌든.”
밤이의 말에 낙조는 오른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노란 진액……, 그게 정말 내 오른손을 자르면 튀어나올까? 멍해지는 정신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삐, 삐, 삐-
“긴급 호출입니다.”
그때 지하에 있는 모든 방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누군가 무흠이 말했던 ‘긴급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밤이는 침착하게 샘플을 가방에 넣었다. 무흠은 멍한 상태인 낙조를 끌고 방에서 나왔다.
*
“중사님!”
버튼을 누른 건 동휘였다. 그는 낙조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무흠을 불렀다.
“자료 보관실에서……,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해화와 지운도 함께 목격한 듯, 표정이 어두웠다. 낙조는 ‘시신’이란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부패 상태가 꽤 심했습니다. 죽은 지 사흘은 넘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 그 사람이 맞나?”
“신분증을 확인했습니다. 맞습니다.”
동휘는 조금 긴장한 눈치로 대답했다.
낙조는 이명처럼 들리는 둘의 대화를 곱씹었다. 둘은 꼭 이미 알고 있는 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대화했다.
열쇠뭉치를 갖고 있던 무흠,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알고 있는 둘, 긴급 버튼의 용도까지 알고 있었다.
군사 훈련으로 와 본 적이 있나? 낙조는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 했다. 조금 전 자신이 겪은 환각 때문에 이성을 제대로 차릴 만한 힘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게 보여야 했다.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이로 전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분은 이곳을 잘 알고 계십니까?”
낙조가 입을 열었다. 동휘와 무흠이 동시에 낙조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처럼 얘기하고 계시잖아요.”
낙조의 말에 동휘가 고개를 급하게 저었다.
“아닙니다. 구조도 잘 모르고, 그저 일하는 사람이 두 명뿐이라…….”
“들어가기 전엔 소독을 하고, 열쇠를 가지고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수를 알고, 긴급 버튼 같은 게 있는 것도 아시잖아요. 처음은 아니신 거죠.”
낙조의 말에 동휘마저 침묵을 지켰다. 무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 저는 이곳을 잘 압니다. 임실 옥정호 붕어섬에 있는 연구소로 가는 것. 이것도 제가 결정한 작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