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붕어섬
“자, 안경.”
밤이는 말끔해진 안경을 낙조에게 내밀었다.
“아니……, 감사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이리저리 안경을 살펴보던 낙조는 슬그머니 안경을 썼다. 선명해진 시야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야 해요.”
“캐리어 하나 정도는 되니? 아, 필요한 게 너무 많은데.”
밤이의 짐을 챙기고 떠나기로 한 일행은 함께 그녀의 방을 정리했다. 지운은 처음으로 보는 언어를 가리키며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묻기도 했다.
“근데 언제 보여 줄 거야?”
“뭘요?”
“너, 그거 오른손.”
“아……,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낙조는 머쓱하게 대답하곤 슬쩍 니트 소매를 아래로 당겨 손등을 덮었다. 밤이가 관심을 가질 줄은 알았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성격만큼 감당해야 할 부분도 늘었다.
“네 맘대로 되는 게 아냐? 그럼?”
“변종 진액의 냄새를 맡으면 나와요. 그리고 제 기분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피어나는 게 달라요.”
“여러 샘플로 실험을 했구나? 거기에 뇌랑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면……, 너 지금까지 해부 안 당한 게 용하네.”
밤이는 작은 수첩에 낙조의 말을 받아 적어가며 중얼거렸다. 해부……. 낙조는 그 단어를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밤이의 가방을 차 뒷칸에 넣었다.
“멀미 하세요?”
“전혀.”
“다행이네요.”
밤이의 말대로 밖에 나와서 조금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해도 얼씬대는 변종은 없었다. 바리케이드라도 친 것마냥, 주위는 고요할 뿐이었다.
“상병님, 저랑 자리 바꿔 주실 수 있나요?”
“아, 예. 괜찮습니다.”
“누나, 저 궁금한 거 짱 많아요!”
지운은 소풍에 가는 아이처럼 표정이 밝았다. 죽상인 것보단 낫지. 동휘와 자리를 바꿔 타는 둘을 보고서 낙조도 조수석에 올랐다. 무흠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일행이 되었으니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는 버려줬으면 좋겠는데. 슬슬 낙조도 이 침묵이 곤란해졌다.
“근데 중사님은 붕어섬 가 보신 것처럼 길도 안 헤매시네요.”
겨우 물꼬를 틀어보자고 생각한 후 꺼낸 말이 이거였다. 무흠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가 봤습니다.”
“위치랑 용도만 안다면서요.”
“그땐 그렇게 얘기해야 흥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무흠은 그렇게 말하며 노랫소리를 더욱 키웠다. 자신의 말이 뒤쪽까지 들리지 않게 하려는 듯이.
“위험한 곳은 아닙니다. 뜻대로만 돼 준다면.”
“나 해부하러 가는 거 아니죠?”
“벌써 저 사람을 더 믿습니까?”
무흠이 낙조를 힐끗 쳐다봤다. 차에 타기 전 잠깐 나누었던 대화를 들은 듯했다. 낙조는 안경 테를 만지작거리면서 ‘그건 아니고.’ 하고 중얼거렸다.
왜인지 무흠은 밤이에게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갖추고 있었다. 경험이 많고 용감한 동료가 함께한다는 건 좋은 게 아닌가. 낙조의 시선에서 봤을 땐 무흠의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진동휘 상병님도 그렇게 썩 맘에 들어 하진 않았던 것 같지.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건 상관없어요?」
아무래도 전우를 잃은 이들의 마음을 내가 너무 헤아리지 못한 탓일까. 낙조는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했다.
이렇게 된 세상에서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떻게 되지. 결국 죽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나뉘지 않나. 앞으로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단 몇 초 만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몇 번이고 찾아올 테고 나는 실패하거나 성공하겠지.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을 더 높이기 위해 나의 팀을 꾸리는 거고.
옥정호에 간 이후로도 무흠과 뜻이 잘 맞지 않는다면……, 서연우와 갈라졌던 것처럼 헤어지게 되나. 동휘는 당연히 무흠을 따르겠지. 해화와 지운은 그렇다고 내 곁에 기꺼이 있어 줄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고뇌를 쏟자니 속이 메슥거렸다. 낙조는 물통 뚜껑을 열고 물을 반 모금 마셨다. 금세 미지근해진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거의 다 왔습니다.”
무흠이 모두에게 알리듯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옥정호’라 쓰인 이정표가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예쁘네.”
밤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인공호수라고 했지만 옥정호는 뒤바뀐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고요했다. 비가 그친 후 내리쬐는 햇빛이 물결을 비스듬히 감쌌고, 그에 서로 맞부딪치는 물이 찰랑거릴 때마다 제자리를 맴돌며 반짝거렸다.
붕어섬은 옥정호 한가운데에 있었다.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했으나 모든 인원이 한 보트에 탈 수 없어 팀을 나눠야 했다. 동시에 출발할 수 있었지만 한 팀이 무난하게 도착하기까지 망을 봐줄 이들이 필요했다.
“전망대도 있어?”
“산 올라가면 섬이 보이나 봐요.”
“아쉽네.”
밤이와 해화가 전망대로 가는 길을 응시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차는 보트가 묶인 곳 근처에서 천천히 멈추었다.
“후방은 제가 맡겠습니다.”
동휘가 후발대를 자진했다. 먼저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낙조는 선발대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의 위험을 방지하여 해화는 후발대로 나뉘었다.
“나는 당연히 선발대지? 이쪽 마크해야 하니까.”
“……그러십시오.”
밤이가 낙조의 곁에 붙어 말했다. 무흠은 총을 장전하면서 한 박자 뒤늦게 대답했다. 이렇게 셋이서 한 배를 탄다…….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문장을 속으로 읊으며 보트에 올랐다.
“저기에 변종이 없을 거란 확신이 있나?”
보트가 출발하자마자 밤이가 무흠에게 물었다. 무흠은 서늘한 시선으로 밤이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변종이 헤엄쳐서 저기까지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수중식물 변종을 만날 수도 있겠네.”
밤이의 사고방식은 남달랐다. 그녀는 꼭 타국에 온 관광객처럼 유달리 흥미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꽃도 있네.”
밤이가 손을 뻗어 연꽃을 매만졌다. 낙조는 가만히 띄엄띄엄 피어난 연꽃과 연잎을 바라보았다.
보통 연꽃은 모여서 피어나지 않나? 잠깐 생각이 스쳤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낙조는 연꽃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곧 보트가 섬에 멈췄다. 인기척은 물론이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흠이 앞장을 서고 낙조가 그 뒤를 따랐다. 밤이는 풀 냄새를 맘껏 들이마셨다.
“사람이 사는 곳이에요?”
“산다기보단, 일을 하는 곳입니다.”
붕어섬에 있는 주택은 다른 주택과 특별하게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마당이나 텃밭을 꾸미지는 않는지 집 앞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뿐이었다.
잡초를 보니 주택가에서 마주쳤던 변종이 떠올랐다. 유난히 재빨랐던 놈들. 지능을 겸비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것도 이곳에서 알아낼지도 모른다.
무흠은 현관 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택 뒤쪽으로 돌았다. 지하에 있다고 했으니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게 분명했다.
밤이마저 숨을 완전히 죽였다.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이었지만 스산한 분위기가 온몸을 감쌌다.
“여기부턴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무흠이 낡은 고철 문고리를 쥐며 말했다. 자물쇠라도 걸려있을 줄 알았던 문은 아무런 보안장치도 달려 있지 않았다.
한때 실험소였다면서 보안이 이렇게 취약해도 되나? 낙조는 그를 따라가면서 묻고 싶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칸은 꽤 높았다. 한 번 발을 잘못 디뎠다간 바닥까지 그대로 고꾸라질 수 있을 정도였다.
“행운을 빌어보죠.”
지하로 완전히 내려오자 두꺼운 문이 보였다. 낙조는 그제야 무흠에게 속삭였다.
문엔 ‘WARNING’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팻말엔 꽤 여러 스크래치 같은 흔적이 남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무흠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열쇠뭉치를 꺼냈다. 총 세 개가 묶인 열쇠를 찬찬히 살펴보던 무흠은 맨 밑의 열쇠 구멍부터 잠금을 풀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열쇠를 돌릴 때마다 잠금쇠가 묵직하게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열쇠는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비밀입니다.”
어쩐지 일부러 안 알려 주는 것 같은데. 낙조는 무흠의 뒤통수를 잠시 노려보다가 다시 문을 여는 데에 집중했다.
마지막 잠금쇠가 풀리고, 무흠이 문을 안쪽으로 밀며 열었다. 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것처럼 문은 으스스한 소리를 냈다.
처음 들어간 방은 아무것도 없었다. 빨간 불만 규칙적으로 깜박일 뿐이었다.
“여기서 기다립시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소독하는 곳입니다.”
소독……. 그러고 보니 영화나 게임 같은 걸 보면 꼭 온몸에 가스 같은 것을 살포해서 소독하는 장면이 들어있긴 했지.
외부인이 출입했다고 해서 경보음이 울리는 것 같은 상황을 상상했지만 민망할 만큼 지하는 조용했다. 얼마 가지 않아 후발대가 열린 문을 통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휘도 이곳으로 오는 경로는 진작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기랑 애초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나……?’
낙조는 다시 보는 얼굴들을 맞이하면서 생각했다. 동휘에게선 특별히 의심스러운 모습을 찾지 못했다.
곧 무흠이 일행의 수를 세고 꽉 다물린 문의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양쪽 벽에서 뿌연 안개 같은 것이 살포됐다. 낙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들이마셨다가, 뭔가 기도를 콱 막는 느낌에 목을 붙잡았다.
“콜록! 읍, 콜록! 허억, 헉.”
“고낙조 씨? 고낙조 씨.”
무흠이 낙조의 어깨를 붙잡고 살살 흔들었다. 낙조는 점점 목을 조여오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소독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숨 쉬는 게 힘겹지? 생각하는 것조차 힘에 부쳐 겨우 숨을 삼킬 때쯤 앞문이 열렸다. 무흠은 서둘러 낙조를 질질 끌어냈다.
뿌옇기만 했던 시야가 천천히 트이고 호흡이 돌아왔다. 낙조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해화를 돌아봤다. 그녀는 멀쩡했다. 모두 낙조의 상태를 보며 당황스러운 얼굴을 할 뿐이었다.
“……소독제랑 안 맞는 물질이 있나 본데.”
침묵을 깬 건 밤이였다. 그녀는 꽤 곤란하다는 표정을 하고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중얼거렸다.
“왜 인간 행세를 하는 변종이라고 부르는지 조금이나마 알겠네.”
“저기, 언니, 말 좀―”
“―우리랑은 다르잖아. 너무나 명확한 증거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해화의 반박에 밤이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낙조는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죠.”
하도 기침을 했더니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낙조가 묻자 무흠은 조금 긴장한 눈치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같이 가요.”
“생각보다 내부가 꽤 넓습니다. 흩어졌다가 뭔가를 찾으면 이곳에 와서 긴급 버튼을 누르십시오.”
이번에도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뉘었다. 낙조는 왼쪽 길을 택했다. 방은 기차처럼 칸칸이 연결돼 있었으나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
이번에도 빈방이었다. 무흠은 책상 위에 놓인 파일을 뒤적거렸다. 가만히 방을 둘러보던 낙조는 환청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었어요?”
“뭘 말입니까.”
무흠과 밤이 모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낙조는 말없이 온몸에 뻗은 감각에 집중했다. 이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이끄는……, 힘이.
“여기예요.”
낙조는 방에서 나가 복도를 겁 없이 성큼성큼 걸었다. 뒤에서 밤이와 무흠이 낙조를 불렀으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포자로 뒤덮인 살덩이 변종을 보기 직전, 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와 동시에 누군가 자신에게 멋대로 의미불명의 의지를 심은 기분이었다.
낙조의 걸음이 멈춘 곳은 작은 사무실로 보이는 방 앞이었다. 낙조는 손잡이를 쥐었다가 꿈에서 깨어나듯 퍼뜩 고개를 휘저었다.
“안에, 안에 변종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캬아아아아악…….”
밤이가 의심을 품고 묻자마자 안쪽에서 여러 목소리가 뒤섞인 울음이 퍼졌다.
“이미 당한 거예요. 어떻게 들어왔든!”
낙조의 말에 무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사격 자세를 취하고 문에 가까이 붙었다.
“안에 어떤 게 있을지 몰라요.”
낙조가 문앞을 몸으로 막으며 말했다. 무흠은 조준경에서 눈을 떼고서 낙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이대로 두고 가자는 겁니까?”
“먼저 밖으로 나온 게 아니니까…….”
낙조가 말끝을 흐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밤이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니. 후발대가 당하면 어떡하려고. 처리하고 가자.”
밤이의 말에 낙조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문을 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누군가가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뭐 해? 문 열어.”
밤이가 가방에서 불투명한 액체가 든 병을 꺼내며 말했다. 무흠도 같은 마음인 듯 다시 사격 자세를 잡았다. 낙조는 숨을 다스리며 문고리를 꽉 쥐었다.
“나 혼자 들어갈게요.”
낙조의 선택은 단독 행위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낙조는 문을 열고 몸을 안으로 던졌다.
“고낙조 씨!”
“야!”
그리곤 문을 잠갔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문 뒤에서 무흠이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눈앞에 드리워진 모습을 본 낙조는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네가 나를 불렀지.”
원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 안에선 습지에서나 맡을 법한 냄새가 났다. 낙조는 데스크 위에 앉아있는 변종을 바라보았다. 얌전히 다리를 끌어안고 낙조를 빤히 바라보는 변종의 몸은 개구리밥 이파리로 잔뜩 덮여 있었다.
“카아아악…….”
변종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입가에서 진액이 뚝뚝 떨어졌다.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