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재난을 선택한 사람
여자의 집은 집의 형태만 갖고 있는 실험실 같았다. 학교 다니던 시절 과학실에서 보았던 도구들과 두꺼운 책들이 책상에 가득 쌓여 있었다.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책이 없는 곳이 없었다. 여자는 발로 책을 툭툭 구석으로 치워 일행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라면 괜찮지?”
“김치도 있어요?”
지운이 라면 소리에 퍼뜩 놀라며 물었다. 여자는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파김치가 있다고 대답했다.
“저 파김치 진짜 좋아하는데!”
지운이 겁도 없이 외치자 보다 못한 해화가 팔꿈치로 지운의 옆구리를 찔렀다. 낙조는 조용히 여자의 시선을 피해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생소한 수학 공식이 가득 적혀 있었고 중장비 운전 자격증이 종종 액자에 끼어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지? 낙조는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모두 세척시킨 실험도구들과 영문으로 표기된 책 제목, 그 외의 언어로 쓰인 책도 있었다.
―칙, 치직……, 청주 신종바이러스연구센터에서 전국에 알립니다. 이 방송은 긴급구조 연락망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고낙조’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나이 스물아홉, 남성, 키는 180대. 오른손에 식물이 자라는 증상을 겪는 변종입니다.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변종이 확실합니다. 이 자를 생포하여 센터로 오시면 재난이 끝날 때까지 안전한 거주지, 식량, 그리고 백신 접종을 약속드립니다. 이 방송은 고낙조가 잡힐 때까지 계속해서 방송됩니다…….
그녀의 책상 구석에 있던 라디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우의 목소리였다. 낙조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고낙조? 와, 신기하네. 사람이랑 대화를 하는 변종이라.”
여자가 라면에 파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를 제외하고 모두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면 냄새가 온 집안을 감쌌다. 낙조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 귀퉁이에 꽂힌 작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대학생 시절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 졸업식에 찍은 듯 학사모를 쓴 사진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있을 겁니까?”
손을 닦고 나오자마자 무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왠지 무흠은 이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옥정호가 코앞입니다. 여기서 오래 머무르기엔 시간이 아깝습니다.”
“혹시 몰라요. 여기서 더 엄청난 비밀을 알아낼지.”
낙조는 조곤조곤 대답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서로를 밀어내듯 멀어졌다.
지운은 여자를 도와 작은 그릇에 라면을 나눠 담았다. 무흠은 배가 고프지 않다며 식사를 거절했다.
원래 저렇게 대놓고 내색하는 사람이 아닌 걸로 아는데. 낙조는 젓가락을 들며 생각했다. 의사표현은 확실히 하지만 그래도 예의는 차리는 편 아니었던가. 그동안 봐 왔던 무흠을 떠올리면 지금의 모습과 잘 맞지 않았다.
그저 경계하는 것뿐일까? 아니면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아 촉박한 것일까.
“근데 혼자 사시는 거예요?”
조용히 라면을 먹던 해화가 물었다. 여자는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직업이 어떤…….”
한 그릇도 비우지 않은 채 낙조가 물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입맛이 돌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여자는 라면 국물을 삼키고서 잠시 뜸을 들였다.
“백수야. 그냥 이것저것 만드는 거 좋아하고,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공부가 어떻게 좋아요?”
지운이 대화를 가로막았다. 낙조는 여자의 대답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질문을 더 하지 않도록 방어벽을 쳐둔 것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럼 무슨 목표가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남으셨어요.”
낙조의 질문에 젓가락을 쥔 모두가 여자의 눈치를 보았다. 여자 또한 먹는 것을 멈추고 낙조를 응시했다.
“난 이렇게 변한 세상이 좋아. 신기해. 알아갈 게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해 가겠지. 그걸 끝까지 알아내는 게 목표야.”
여자의 대답은 상상으로도 접근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모두 침묵을 지키며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여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싱크대에 놓았다.
“모든 게 새로워졌잖아. 죽은 사람들이 펼친 이론 같은 것들보다 당장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더 중요해진 세상에서, 새로 발견해낼 것들은 무궁무진하지. 최초로 누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일들은 모두 내가 다 할 거야.”
“남은 일들이요?”
여자는 싱크대에 기대어 서서 웃으며 대답했다.
“변종의 생태계, 종류, 번식, 천적……. 뭐 그런 것들을 알아내는 거지. 그래서 일부러 변종 많은 지방으로 내려온 거고.”
“백신에 대해선 관심 없어요?”
낙조는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여자가 말한 것 중 백신은 없었다.
“백신? 그쪽도 흥미롭긴 하지만……, 그냥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사는 게 더 좋아서 백신은 딱히.”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건 상관없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동휘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격양돼 있었다.
“그래. 왜 그런 질문 안 나오나 했다.”
“…….”
“백신은 만들어질 거야. 언젠가. 반드시. 아마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도 연구 중이겠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세상이 이렇게 됐다고 모두 똑같이 살아야 하니? 나는 이렇게 살 거야. 가끔 가다 변종에게 잡힐 뻔한 사람들도 구해 주고 그래. 그것뿐이지. 나는 투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고, 종교인도 아니야.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집중하기만 하면 돼.”
여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낙조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어쩐지 그녀가 지금까지 낙조가 품고만 있고 풀지 못했던 의문에 대해 힌트를 던져 준 기분이었다.
고립된 세계, 갇힌 나라, 고정된 생사의 관념. 거기서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여겨지는지 늘 궁금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실망해갔다.
‘유일하게 성공한 샘플’.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서. 더 나아가지도 않은 채 그런 타이틀을 얻고 시간이 멈춘 사람 같았다.
‘내 존재에 대해 누구보다 더 궁금해할지도 몰라.’
낙조는 희미한 시야에서 그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입을 뗐다.
“처음 보는 변종을 알려드릴게요. 맘 놓고 공부하실 수도 있어요. 저희랑 같이 가실래요?”
“잠깐만요.”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던 무흠이 조금 진중한 목소리로 낙조를 불렀다. 낙조는 짐짓 예상했다는 듯 무흠을 응시했다. 치밀하게 닿은 시선은 누구 하나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 자. 흥미로운 제안이긴 하네. 근데 반응을 보니 약간 극비인 것 같은데?”
“극비 아니에요. 이제 전 국민이 다 알거든요.”
낙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흠이 급히 곁으로 다가왔지만 붙잡지 못했다. 엎어진 물이었다. 누가 밀친 것도 아닌, 스스로 엎질러진 물.
“제가 고낙조예요.”
고요했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낙조는 똑바로 여자를 응시한 채 대답을 기다렸다.
“……아까 방송에 나왔던?”
“네.”
“손에서 식물이 자란다고 한?”
“맞아요.”
“오……, 쉽지 않은데.”
여자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믿는 건지, 믿지 않는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녀가 자신을 인질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안전한 거주지도 아니고, 식량도 아니고, 백신도 아니니까.
“곁에서 맘껏 관찰하시게 해드릴게요.”
“왜?”
“적어도 저를 팔아 넘기진 않을 것 같으셔서.”
반은 진담이었고 반은 거짓말이었다. 자신이 청주에 가면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되리라 생각하며 고뇌하던 차에 이 여자가 나타났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명확한 정답을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차올랐다.
“제가 무슨 식물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어떤 식으로 이 힘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낙조는 준비해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여자는 흥미로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낙조를 응시했다.
“정말 그거면 되는 거야? 나한테 바라는 게 그거야?”
그녀가 재차 물었다. 낙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범이 되어 달라는 말이네. 너를 숨긴 채 데리고 다녀야 하니까.”
“위험한 일은 최대한 없게…….”
말을 하던 낙조가 멈칫거렸다. 어제만 해도 동료 둘을 잃었다. 천둥 번개가 치는 밤, 그림자들에게 쌓여 무흠을 부르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살아.”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서 잠시 고민하다가 낙조 뒤에 서 있던 무흠을 향해 물었다.
“그쪽이 나를 제일 탐탁치 않아 하는 것 같은데, 괜찮나요?”
“…….”
무흠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별 상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난 송밤이야. 이름 간단하고 좋지? 밤이. 다들 편하게 불러.”
“누나 별명 밤송이였죠?”
“너는 좀만 더 친해지고 나랑 얘기 좀 하자.”
밤이의 말에 지운이 키득거리면서 몸을 내뺐다.
갑작스러울 수 있는 일행이었지만 낙조의 확고한 태도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차례대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끝내고, 무흠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백무흠입니다.”
“서로 싸울 일만 없게 하죠.”
밤이가 웃으면서 얘기했다. 무흠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낙조는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무흠이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갔다. 낙조는 최대한 조용히 문소리가 나지 않도록 그를 따라나섰다.
무흠은 계단 위쪽에서 불을 붙이고 있었다. 낙조가 곁에 서자 그가 힐끗 자신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문제 될 게 있어요?”
낙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흠은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만 내뱉다가 마지못해 얘기한다는 듯 대답했다.
“뭘 믿고 낙조 씨를 맡깁니까.”
“서연우랑은 다른 쪽으로 엄청난 사람 같아서요.”
“옥정호에 간다는 걸 우리 몰래 신고라도 넣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안 그럴 거예요. 들었잖아요, 중위님도. 저 사람이 왜 여기서 사는지.”
“서연우를 믿고도 또 사람을 믿고 싶습니까, 낙조 씨는?”
무흠이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쥐고서 목소리를 죽인 채 물었다. 낙조는 타들어가는 담배의 불씨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입안이 메말랐다.
“중사님도 믿어요. 홍해화도. 홍지운도. 진동휘 상병님도. 다 믿습니다.”
낙조의 대답에 무흠은 무언가 차오르는 말을 삼키는 듯했다. 그는 바닥에 담배를 지져 끄고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붕어섬에도 낙조 씨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거는 중위님 생각이잖아요. 확실하지도 않고요. 중위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한 제 편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자리를 떠야 할까. 그렇게 생각할 즈음 무흠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낙조는 그제야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를 물었다.
*
소장이 데리고 온 해커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나이였다. 컴퓨터 관련 전공도 아닌, 문과생이라고 했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눈길로 연우가 바라보자 그는 별말 없이 컴퓨터 두 대를 왔다갔다 하며 만지작거리더니 곧 전국에 연결된 긴급 통신망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보안 등급이 꽤 높은 프로그램을 십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뚫는 것을 보고 연우는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라디오까지 연결을 해달라 말했다. 해커가 목에 단 명찰엔 ‘금수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연우가 마이크를 쥐고 낙조에 대한 전국 수배령을 발표하는 동안, 수호는 다른 컴퓨터로 낙조에 대한 파일을 모두 찾아내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연우는 방송을 끝내고서 모니터를 가렸다.
“궁금해요?”
“진짜 변종입니까?”
“그럼, 몸에서 식물이 자라는데 그냥 인간이겠어요?”
연우는 웃으며 말했지만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는 걸 수호가 모를 리 없었다.
“이 실험 최초로 한 연구소에서 일하셨던데, 굉장히 악의를 가지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수호의 대답에 연우의 웃음기가 싹 가셨다. 자신의 이력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눈빛에, 수호는 무심하게 눈길을 돌렸다.
“내 기록도 봤어요?”
“안 된다는 말이 없길래.”
수호는 갈색 머리를 털면서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연우는 목소리를 한 층 낮추고 속삭였다.
“함부로 대하지 말아요. 당신 여기로 올 수 있었던 것도 내 덕분이니까.”
“결국 내가 필요했던 거잖아요? 앞으로도 필요할 거고.”
머리 좀 쓴다는 애들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연우는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호를 보며 생각했다.
“시키는 것만 잘 해 주세요. 여기선 궁금하다고 해서 다 알려 주는 곳도 아니고, 당신한테 당연히 그런 권력을 준 것도 아니니까.”
“시키신 일을 할 때 특수 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정보를 열람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내 말뜻을 모르겠어요? 여기에 모인 자료들을 갖고 당신이 누구한테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고요. 신분상승이라도 한 줄 아는 모양인데……, 자의식과잉이 심하신 편이네.”
연우는 수호가 쥐고 있던 마우스를 빼앗아 낙조의 자료가 떠 있는 창을 껐다. 수호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때 문이 열렸다. 다른 연구원이 종이뭉치를 들고서 연우를 찾는 듯 눈짓으로 그녀를 불렀다.
연우는 다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앞으로 오는 모든 신고는 다 정리해서 내 연구실로 보내 줘요. 쓸모 있는 것만. 그 정도는 파악할 수 있죠?”
연우가 자리를 떠나고, 수호는 문이 닫힌 후 신발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자료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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