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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30화 (30/202)

30화. 가을장마가 데리고 갔어

“카아아악, 카아악!”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벨트로 꽁꽁 묶은 변종에게선 피부 썩는 냄새가 났다. 백신 개발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게 된 혜지는 코를 막고서 저 멀리 떨어져 묶인 변종을 바라보았다.

“약 준비 됐어?”

“네, 팀장님.”

샘플 속 세포의 움직임을 확인하던 연우가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연우는 주사기를 받아들고서 변종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미 변이가 꽤 지속된 변종이었다. 새로 잡아들였다곤 했지만 피부 썩은 상태나 혈액 검사로 보니 그렇게 상태가 좋은 변종은 아니었다.

“샘플 13번 투입합니다.”

마스크를 쓴 연우가 말하고서 주삿바늘을 변종의 팔에 찔러 넣었다. 연한 붉은 액체가 쭈욱 빨려 들어갔다.

“10분 동안 관찰하고 경과 보고해.”

“네.”

혜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변종은 여전히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기서 일주일만 있어도 몸에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날 것 같아.’

혜지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보고서를 펼쳤다.

“근데 이제 그……, 재료로 쓰는 잎이 얼마 안 남았던데, 괜찮으려나?”

곁에 있던 동료 연구원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혜지는 펜의 윗부분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그 전에 잡히겠지, 뭐. 지원병력이 늘었대. 오늘부로.”

*

‘전주’라는 이름이 적힌 이정표를 막 지나는 참이었다. 지운은 한옥마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괜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빠르면 한 시간? 이면 도착하겠네.”

그에 비해 해화는 평온했다. 전주에 오기까지는 그리 큰일이 없었다. 가끔 무흠이 무전기를 가지고 먼 거리까지 이동해 누군가와 무전을 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리 큰 의심은 가지 않았다.

“만약 서연우 쪽이 먼저 그곳에 가 있으면 어떡하죠?”

낙조가 창밖을 응시한 채 물었다. 무흠은 천천히 속력을 줄여 과속방지턱을 넘으면서 대답했다.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무슨 확신으로요.”

“나중에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전주 시내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고, 깨진 창문이나 떨어진 간판들이 즐비했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끔 길을 막는 변종이 있으면 최대한 탄알을 아끼며 처리했다. 날이 갈수록 몸에서 뿌리가 튀어나오거나 나뭇가지가 뻗어나온 변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화의 말대로 그들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동휘를 제외한 병사 둘은 많이 지친 기색을 보였다. 의욕 자체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하루는 한 명이 변종과 대치하다 물릴 뻔한 적이 있었다. 그는 멍한 눈을 하고서 왜 자신을 구했느냐 물었다.

이 이상으로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낙조는 차 안에서 숨을 쉴 때마다 속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내가 청주에 가면 끝나는 일이 아닌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며 나에 대해 알아야 하나. 온갖 생각이 복잡하게 꼬였다.

“붕어섬에 가면 우리가 서연우를 이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얻는 거예요?”

지운이 앞 좌석을 꽉 끌어안고 무흠에게 물었다. 무흠은 가볍게 웃더니 음, 하고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동료를 얻는 겁니다. 치료약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거고.”

무흠의 대답에 낙조의 눈이 빠르게 깜박였다.

“동료요? 아는 사이 아니라면서요.”

“무조건 사람이어야 동료라 부를 수 있습니까.”

“난 또 중사님 친구들 모아놓은 줄 알았네.”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하늘은 금방 천둥번개가 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비 올 것 같은데, 숨어있을 곳 찾는 게 어때요.”

“그러는 게 낫겠습니다, 중사님. 애들 상태도 별로 안 좋아 보이고…….”

낙조의 말에 동휘가 맞장구를 쳤다. 뒤칸을 바라보니 이등병 둘은 거의 넋이 나가 있는 상태로 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

백미러로 부하들을 본 무흠은 말없이 차를 돌렸다. 주택가는 이미 지나친 상태라 차를 돌리는 게 나은 선택인 듯싶었다.

길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창문 위로 빗방울이 빗금처럼 새겨졌다. 그저 잔잔하게 지나갈 줄 알았던 비는, 십 분이 지났을 즈음 거의 폭우가 되었다.

“가을장마인가.”

해화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쏟아져 나오기 전에 아무 데나 들어가는 게 낫겠어요.”

무흠은 조용히 속력을 높였다. 커브를 돌 때마다 빗길에 바퀴가 미끄러졌다. 몸이 한쪽으로 쏠릴 때마다 지운은 숨을 들이켰다.

주택가에 진입하자마자 보이는 건 거리로 나온 변종 무리였다. 분명 아까 지나칠 땐 하나도 못 봤는데. 낙조는 꼿꼿하게 서서 비를 맞는 변종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로 들어갑시다.”

차가 멈춘 곳은 변종 무리에서 그나마 거리가 있는 집이었다. 꽤 오래된 주택 같아 보였지만, 아무렴 쉴 수만 있다면야 그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라이트를 끄고 나와 현관문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있나?’

낙조는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문을 두드렸다. 빗소리가 어느 정도 소음을 숨겨 주긴 했지만 언제까지 그 소리에 몸을 숨길 순 없는 일이었다.

안은 묵묵부답이었다. 낙조는 지운에게서 망치를 빌려 거실로 이어진 창문을 깨뜨렸다. 서너 번 악력을 다해 치니 창문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커튼이 흉흉하게 펄럭거렸다. 모두 안으로 들어간 후 무흠은 주위를 살폈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거실은 이방인들이 다녀간 듯 이곳저곳이 모두 난장판이었다.

“먹을 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부엌을 살피던 동휘가 나오며 말했다.

“긴장 늦추지 마. 변종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위층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 엇박자로 갈리는 발소리에 모두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진동휘, 따라와.”

“예.”

무흠과 동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낙조는 1층에 있는 방들을 둘러보았다. 1층은 그 어떤 기척도 없었다. 가구까지 없는 작은 방을 발견한 낙조는 이등병 둘을 그곳으로 불렀다.

“여기서 좀 쉬고 있어요.”

“중사님, 춥습니다…….”

“죽으면 어떡합니까?”

그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낙조는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둘을 볼수록 죄책감은 어쩔 수 없이 구르고 굴러 배로 불어났다.

“키아아악!”

위층에서 변종 특유의 울음소리가 퍼졌다. 낙조는 잔뜩 긴장한 채로 천장을 올려다 봤다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헉, 헉…….”

낙조는 마지막 계단을 남겨 둔 채 멈춰 섰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서 있는 그림자만 십수 개였다. 누가 무흠이고 동휘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다.

“……중사님.”

낙조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입을 열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낙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계단 손잡이를 꽉 잡은 채로.

빗소리는 무흠이 깨뜨린 1층 창문을 넘어 선명히 들려오고 있었다. 천천히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낙조는 그대로 기척을 내지 않으려 애쓰며 한 계단씩 내려갔다.

“고낙, 흡.”

낙조가 내려오는 걸 본 해화도 입을 황급히 막았다.

우르르릉, 꽝! 콰강!

가까운 곳에서 벼락이 꽂힌 듯 순간 집안이 환해졌다. 낙조는 바로 눈앞에 있는 변종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술을 깨물었다. 두툼한 나무껍질 사이로 껌벅이는 하얀 눈알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흐, 흡.”

숨을 가까스로 참으며 마침내 1층 바닥에 발을 디뎠다. 낙조는 그들이 현관으로 나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켜 세웠다.

“하아악, 카악…….”

그들이 내뱉는 울음소리는 살갗을 손톱으로 뜯어내는 것처럼 듣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무흠과 동휘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도 없었다. 분명 변종이 반응을 보였다는 건 그들이 움직인 건 확실한데. 낙조는 숨을 삼킨 채 끝없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변종들을 지켜봤다.

“변종, 변종이다!”

“중사님, 변종입니다!”

그때 작은 방에서 죽은 듯 앉아만 있던 이등병 두 명이 소란스럽게 외쳤다. 변종들이 앞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뛰어갈 수도 없었다.

쾅, 콰강!

또 한번 천둥이 쳤다. 번개 아래로 드러난 거실은 지옥문과도 같았다.

이등병 둘은 소총을 들고 그림자처럼 보이는 변종들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비를 따라 움직이는 변종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적어도 먼저 공격받지 않는 이상.

“변종이다!”

탕, 타탕, 탕, 탕!

이등병들의 건너편에 있었던 낙조는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총알이 벽과 가구에 박히고, 변종의 몸에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카아아악, 칵!”

“까아아아악…….”

일순간 깨진 거실 창문을 통해 나가던 변종들의 고개가 이등병들에게로 돌아갔다.

안 돼. 낙조는 그렇게 소리치려 했다.

“으아아아아!”

“어어억, 억……!”

탕, 탕……. 탕.

이등병들은 순식간에 그림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림자는 그림자 위에 올라탔고, 또 그 위에 올라타 진액을 게워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잔인하리만치 그 광경을 아주 선명하게 담아 냈다. 비명소리가 그림자의 무덤 속에 묻혀 서서히 사라갈 즈음, 낙조는 두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빗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이전에 봤었던 살덩이처럼 한곳에 뭉쳐 진액을 토해 내던 변종들은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

벽에 달라붙어 쪼그려 앉아있던 해화와 지운과 눈이 마주쳤다. 낙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쿨럭, 욱, 우윽…….”

갈아입었던 옷은 살점과 함께 뜯겨 있었고, 얼굴은 진액으로 뒤덮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중이었다. 낙조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꾸만 흐트러지는 숨을 붙잡았다.

“중, 사님, 우윽, 변종이…….”

“죄송합니다.”

낙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마저도 빗소리에 파묻혀 그들에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이내 둘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다시 눈을 뜰 것이다. 초점 없는 눈을. 낙조는 바닥에 버려진 소총을 쥐었다. 이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주동자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걸.

조준하는 손이 떨렸다. 낙조는 숨을 여러 번 가다듬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을 때, 동휘가 낙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워낙 거친 빗소리에 내려온 줄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탕, 탕.

동휘는 말없이 전우들을 보내주었다. 그제야 낙조는 소총을 바닥에 도로 내려놓았다.

“수가 너무 많아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동휘의 뒤에 선 무흠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드문드문 들려왔다.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을 하는 무흠도 지친 듯했다. 그는 펄럭이는 커튼을 막무가내로 뜯어내 이등병들의 몸 위를 덮어주었다.

“두 분 이름이 어떻게 됐나요.”

낙조가 멍하니 덮인 커튼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동휘는 커튼 위로 손을 올려 시신을 더듬거리다 군번줄을 하나씩 빼냈다.

“이병 오윤빈, 이병 이용수. 두 명 다 착실했습니다. 동갑에다 같은 훈련소에서 배치받아 꽤……, 잘 지냈죠. 좋은 녀석들이었습니다.”

동휘는 진액이 묻은 군번줄을 커튼으로 깨끗하게 닦아 냈다. 낙조는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갖고 있을게요.”

동휘는 가만히 낙조를 바라보다 군번줄을 낙조의 손바닥 위에 놓아주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눈 좀 붙이세요. 고낙조 씨도 정신 없으실 텐데.”

동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지운은 해화를 부축하여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무흠은 가만히 커튼에 덮인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군번줄을 받아들었을 때부터 몸이 무거웠다. 낙조는 겨우 숨을 토해 냈다. 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도 부끄러운 짓이라 생각했다.

“고낙조 씨, 올라가서 주무세요.”

무흠이 잠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낙조는 군번줄을 꽉 쥔 채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중사님은요.”

“진 상병과 얘기 좀 하렵니다. 가는 길이 조용하면 섭섭해할 테니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동휘는 낙조와 무흠을 등진 채 가만히 밖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누가 가장 슬플지 겨누는 건 망자를 앞에 두고 할 짓이 못 된다. 낙조는 동휘의 등을 응시하다가 위층 대신 이등병들이 있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가구조차 없는 방. 그들이 앉았던 자리. 낙조는 그곳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저 꿈 같은 시간이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새벽이 찾아올 즈음 비는 멈췄다. 빗소리가 사라졌을 때 낙조는 눈을 떴다. 거실 쪽을 바라보니 동휘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자고 있었고, 무흠은 보이지 않았다.

몸 이곳저곳이 뻐근했지만 이것도 이젠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낙조는 방에서 나와 거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퍽, 퍽.

마당 구석 쪽에서 흙 파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가 자욱히 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흠의 인영인 건 알 수 있었다.

“중사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갉힌 목소리가 무흠을 불렀다.

“삽이 있어서……, 깨우지 않으려 했는데, 미안합니다.”

그는 가슴이 잠길 만큼 꽤 깊이 구덩이를 파 놓았다. 낙조는 구덩이 옆에 놓인 두 구의 시신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옮겨드려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못 지켜드렸는데.”

낙조는 주저하지 않고 시신을 한 구씩 들어 올렸다.

오윤빈 병사님, 이용수 병사님. 감사했습니다. 낙조는 조심스럽게 흙 위로 그들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무흠과 함께 다시 흙을 채웠다. 비에 젖어 축축한 흙에서 풀 냄새가 올라왔다.

「저희, 끝까지 같이 있겠습니다. 약속 드릴게요.」

이곳에서 꽃 한 송이라도 피길. 낙조는 단단하게 흙을 다듬으며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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