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지옥문
트럭을 피해 주행을 하려고 해도 도로의 폭이 좁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트럭이 먼저 출발하기 전까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었다.
“뭘 하려는 거야……?”
해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흠은 결국 양쪽 눈이 모두 도려난 남자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곧 쓰러진 남자를 눕힌 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깡마른 몸에 칼을 들고 있던 그는 곧 쓰러진 남자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시동, 시동 꺼요.”
해화가 급히 무흠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트럭 바깥의 상황을 눈치챈 남자는 낙조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차를 빤히 바라보다가 트럭에서 내려 조수석 쪽으로 걸어갔다.
“다들 무장해.”
“저런 칼 같은 거 없어요?”
해화와 지운이 뒷칸에 탄 군인들에게 허겁지겁 물었다.
“공구함이라도 드릴까요.”
“일단 주세요!”
지운은 이번에도 망치를 골랐다. 해화는 영 마땅치 않은지 공구함을 뒤지다가 맨 밑바닥에 깔린 드릴을 선택했다.
트럭 조수석 문이 열렸다. 무흠은 권총을 꺼내곤 모든 차의 문을 잠갔다. 똑같이 방독면을 쓴 남자가 손에 총을 든 채 트럭에서 내렸다. 역시나 소총이었다. 군인들을 탈취했다면, 무전기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흠은 짧게 호흡을 뱉어 냈다.
똑똑.
마른 남자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방독면을 쓰고 있던지라 그의 표정이 어떤지, 얼굴은 또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간 다짜고짜 총을 쏠지도 모른다. 무흠은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했다.
창문을 조금 내리자, 마른 남자가 허리를 숙인 채 차 내부를 훑어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흠이 권총이 보이지 않게 손을 내리고 물었다. 남자는 말없이 창문을 더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흠은 아주 조금, 창문을 내렸다.
“장난하냐? 창문 내리라고.”
방독면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흠은 한숨을 내쉬고 창문을 완전히 내렸다.
“어? 여자다.”
아예 고개를 들이밀어 뒷좌석까지 훑어보던 남자가 문득 중얼거렸다. 해화는 바닥 아래에 숨긴 드릴을 잡기 위해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야. 여자 내려 봐.”
남자가 뒷좌석 문을 쿵쿵 두드리면서 말했다. 해화가 눈짓으로 어떡하냐는 듯 무흠을 바라보았다.
“내리지 마십시오.”
“저쪽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잖아요.”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흠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이었다. 무흠이 쥔 총의 총구가 남자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남자는 바짝 얼었다.
“씨발, 뭐야!”
멀리서 소총을 들고 있던 남자가 허겁지겁 사격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뒷칸에 있던 동휘를 비롯한 병사들이 차에서 내려 그를 겨누었다.
의심을 늦춰선 안 된다. 트럭에다 군용 소총을 갖고 있다. 군인들을 공격하고 무기를 갈취한 놈들이다.
“야, 다 내려!”
무흠을 향해 총을 조준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 말에 트럭에서 남자 대여섯 명이 쏟아져 나왔다. 둘은 소총을 갖고 있었고, 나머지는 칼을 쥐고 있었다.
“비슷하네.”
“우리가 이기지 않을까?”
지운이 말했다. 해화는 인상을 찌푸린 채 좌석 아래에 숨겨 뒀던 드릴을 쥐었다.
“총 쏘는 애들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쏘느냐가 중요하지.”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있던 낙조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그는 가만히 대치 상황을 지켜보다가 차에서 내렸다.
“야! 너 쓸 데 없는 짓 하지 마!”
아직 손이 다 나은 것도 아닌데. 해화가 급히 낙조를 불렀지만 낙조는 개의치 않고 밖으로 나섰다.
“쏜다! 오지 마!”
조수석에서 내린 남자가 외쳤다. 낙조는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총알 몇 발 맞는 건 상관없었다. 이런 식으로 타인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찌질한 놈들에게는 특별한 힘을 쓸 필요도 없었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자는 장전하고서 낙조를 향해 겨누었다. 변이되지도 않은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으니 쏠 수는 있을 것이다. 있겠지만,
탕!
“으아악!”
총이 발사됨과 동시에 낙조는 주먹으로 놈의 턱을 날렸다. 제대로 뼈가 나갔는지 말도 못하고 골골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다른 놈들이 총을 들었다. 고작 둘이다.
안전장치를 풀기도 전이었다. 낙조는 왼쪽 녀석의 정강이를 먼저 까고, 오른쪽 녀석의 목을 쥐어 허공에 띄웠다가 그대로 아스팔트 도로에 박았다.
“어억, 억…….”
피가 흥건히 새어 나왔다. 정강이를 까인 녀석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총을 매만졌다. 낙조는 별 말 없이 총을 발로 차고서 손을 짓밟았다. 다섯 손가락의 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이 새끼가!”
칼을 쥐고 있던 놈들이 떼거지로 덤벼들었다. 낙조는 몸을 내어주고 단번에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한 녀석이 등 위에 올라타 어깨를 찔렀다. 총알을 수십 발도 맞았는데, 이 정도는 이제 감수할 수 있다. 낙조는 인상을 찡그리고 몸을 트럭 문에 날렸다.
“악!”
스스로 나가떨어진 놈은 동료들 쪽으로 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순식간에 낙조가 발로 놈의 경추를 정확히 짓눌러 밟았다.
“아아악!”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남은 두 놈은 쉽사리 덤비지 못하고 있었다. 간단한 상황이었다. 낙조는 그렇게 세지 않게 두 놈의 명치를 치고서 칼을 빼앗았다. 무기는 많을수록 좋으니.
“너 진짜 죽으려고 그래!?”
“안 죽는 거 여러 번 봤으면서 왜 그래.”
해화가 달려와 낙조를 살폈다. 어깨에 꽂힌 칼을 빼자 피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고통이 으슬으슬하게 올라왔다.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깡마른 녀석의 머리에 총구를 댄 채 질질 끌고 온 무흠이 물었다. 낙조는 트럭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변이가 시작된 사람들이 스무 명은 타고 있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드문드문 낙조가 놈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았는지 한 여자가 소리쳤다. 무흠은 녀석의 뒷덜미를 놓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해서 잡히신 겁니까.”
“대피소에, 대피소에 데려다준다고 했어요. 돈 대신 쓸 만한 것들을 주면…….”
“쓸 만한 것들이요?”
“총이라거나 칼 같은 거, 다, 빼앗은 거예요. 대피소에 데려다준다고 하니까 군인들도 그냥 줘 버렸어요.”
어쩐지 균형이 너무 잡히지 않은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낙조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왜……, 사람들을 저렇게 죽이고 도로에 버렸죠?”
“저렇게 해야 변종들이 안 따라온다고……, 그랬어요.”
무흠이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근데 저희 진짜 아니에요. 물만 마셨어요. 그 사람들이 주는 물만 마시고 아무것도 안 만졌어요.”
낙조는 대답 없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볼 위로 나무껍질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쿠엑, 우웩!”
그때 눈이 뽑혔던 남자가 노란 진액을 토해 냈다. 낙조는 해화와 무흠을 뒤로 보낸 다음 무흠이 데리고 있던 녀석을 잡고 트럭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 안 돼!”
녀석이 억지로 빠져나오려 했지만 머리를 곧장 주먹으로 날리니 바로 쓰러졌다.
남자는 계속해서 노란 진액을 토해 냈다. 트럭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변이가 시작된 사람들이다. 낙조가 옴으로써 그 시간이 단축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들을 구해 줄 방법은 없다. 물만 마셨는데 변이가 시작됐다는 건, 물에 진액이 들어 있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해 줄 수 있는 건 단 한가지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복수하게 만들어 주는 수밖에.
낙조는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하나씩 주워다 트럭 안으로 넣었다. 녀석들은 헤롱거리는 상태에서도 흐물거리며 벗어나려 애썼다.
“너희는 꼭 지옥 가라.”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을 집어넣으며 낙조가 중얼거렸다. 트럭 문을 닫기 직전, 눈이 뽑힌 남자가 놈들에게 덤비는 것을 보았다. 곧 트럭 안은 녀석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트럭을 보다가 낙조가 먼저 등을 돌렸다.
“중사님, 차 좀 빼주세요.”
어깨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무흠은 고개를 끄덕이고 트럭의 운전석에 올랐다. 차로 돌아오자 뒷칸에서 동휘가 붕대와 소독약 같은 것을 건넸다.
“피만 지혈하면 돼.”
“너무 깝치지 말라고. 그러다 진짜 죽어.”
“머리에 총만 안 맞으면 돼.”
“이게 진짜!”
해화는 주먹을 들었다가 마땅히 때릴 곳이 없어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곧 무흠이 트럭을 왼쪽 도로에 정차시키고 돌아왔다. 트럭 문틈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뒤로 돌아보십시오.”
무흠이 낙조의 어깨 상태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낙조는 괜찮다며 거절했다가 조용히 노려보는 시선들에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려 앉았다.
“옷이 검은색이라 다행이지.”
해화가 중얼거렸다. 낙조는 얇은 니트를 벗고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무흠은 능숙하게 낙조의 어깨를 붕대로 둘렀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 나을 텐데. 수고스러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다고 해도, 이렇게 함부로 쓰면 나중에 일 납니다.”
낙조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무흠이 매듭을 지어 주며 말했다. 그는 웃지 않았다.
“몸이 무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몸은 보호해야 하는 겁니다.”
낙조는 말없이 니트를 다시 입었다. 그리곤 대답을 하듯 중얼거렸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곧 차가 다시 출발했다. 다시 이 길을 오게 된다면, 트럭은 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낙조는 트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미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
“보시는 대로 변종 바이러스를 투입한 지 1분 만에, 파괴했습니다.”
연우는 스크린에 띄워진 백신 샘플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내로라하는 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하나 만드는 데 양은 얼마나 필요한가?”
주임이 물었다. 연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0.05g이면 충분합니다.”
“지금 갖고 있는 양으로는 얼마나 만들 수 있나?”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접종을 마칠 수 있습니다. 다만, 백 퍼센트에 가까운 백신을 만들기 위해선 피가 더 필요합니다.”
“피?”
“지금 수배령이 떨어진 고낙조. 그 사람의 피가 더 필요해요.”
회의실 안이 술렁였다. 연우는 잠시 간부들끼리 서로 속닥이는 걸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배령에 포상 조건을 거는 게 어떨까요.”
연우의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소장은 흥미가 담긴 눈길로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잠잠해진 회의실을 둘러보면서 덧붙여 말했다.
“재난이 끝날 때까지 안전한 거주지와 식량을 제공하고, 백신 개발이 완료되면 1순위로 접종해 준다고요.”
“재난이 끝날 때까지?”
“고낙조와 홍해화가 잡히면 이 재난은 금방 끝납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항체가 있는 이들이 발견되거나 찾는 중일 텐데, 가장 먼저 백신을 만든 나라가 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아시잖아요.”
연우는 거침없이 술술 말했다.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리하지 않은 수염에 빳빳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왁스를 발라 번쩍거리는 머리를 넘기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소장님, 그럴싸하지만 완전한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예, 재난이 끝날 때까지, 라는 조건은 너무 무리입니다. 청주도 간신히 지켜 냈는데요.”
간부들이 여기저기서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소장은 꿋꿋하게 연우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아. 그리고 해커가 한 명 필요합니다. 국내 통신망을 모두 뚫고 소식을 시시각각 전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해커요.”
연우의 말에 소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천안 쪽에 머리 좋은 애 하나가 있다고 들었다. 연결해 주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렇게 수배령을 내리면 됩니다. ‘고낙조와 홍해화는 인간처럼 행세를 하는 변종이다. 그들을 생포한 이에게 재난이 끝날 때까지 안전한 거주지와 식량을 제공하고, 백신 접종을 약속한다.’ 라고요.”
“인간처럼 행세를 하는 변종이다?”
“그들을 완전한 인간이라곤 보긴 어려우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우는 거침없이 말하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종이에 펜으로 사인을 마쳤다.
“좋아, 백신 개발 프로젝트 팀장은 서연우 연구원이 맡는다. 지원은 아낌없이 해줄 테니, 좋은 결과로 보답하도록.”
“감사합니다, 소장님!”
몇 명은 박수를 쳤고 몇 명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연우는 자신의 목에 걸린 연구원증을 매만졌다.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차올랐다. 이제 자신의 올가미에 그들의 목덜미만 걸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