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27화 (27/202)

27화. 세 번째 능력

지운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포자가 터진 곳으로 낙조를 삼켜 총을 쏘아 대면 포자 가루가 날릴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해화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총 어떻게 쏴요.”

그녀는 동휘의 총을 빼앗아 들고 물었다.

“예?”

“저는 변이 안 되니까 제가 쏠게요. 어떻게 쏘냐구요!”

해화의 외침에 동휘가 허겁지겁 장전을 연사로 마쳤다. 해화는 동휘가 소총에서 손을 떼자마자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빨리 올라가요!”

투다다다다다, 타다다닥!

해화가 총알을 난사하자마자 무흠과 동휘는 다시 위쪽으로 올라갔다. 살덩어리를 뒤덮은 포자가 총알에 맞아 터지면서 가루로 흩날렸다.

무흠은 움직이질 못하는 지운을 끌고 차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총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 씨발, 개새끼야!”

곧 총알이 다 떨어졌다. 해화는 소총을 집어 던지고 주위에 있는 날카로운 돌을 들어 포자가 터진 곳을 푹 찔렀다.

“카아악, 카아아악…….”

저 깊은 수중에 잠긴 듯한 비명이 울리더니, 살덩이가 꿀렁거리며 움직였다. 해화는 돌부리에 찢겨 살가죽 사이로 흐르는 진액이 튀어도 계속 살을 찍어 내렸다.

“콜록, 윽, 켁, 콜록!”

가루가 몸에 들어갔는지 기침이 터져 나왔다. 생리적으로 눈물과 콧물이 흘렀다. 해화는 손등으로 얼굴을 닦으면서도 계속해서 살을 찢고 그 안을 또 파고들었다.

“하아아아악!”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진액이 끊기고, 검붉은 피가 튀기 시작했다. 이미 엉망이 된 모습으로 해화는 손을 옮겨 다른 살가죽을 파냈다.

“키엑, 케에엑!”

조금 전 들었던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바닥에 처박고 있던 얼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드러난 낙조의 몸은 노란 진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고낙조!”

해화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낙조의 손발은 물론이고 목까지 잇자국이 가득했다. 옷도 여기저기 찢겨나간 부분이 있었다. 해화는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더 크고 날카로운 돌을 들었다.

“네가 뭔데!”

살덩이에 달린 얼굴은 족히 열 개는 넘어 보였다. 해화는 눈을 부릅뜨고서 가장 아래에 있는 얼굴의 왼쪽 눈에 돌을 꽂아 넣었다. 돌을 다시 뽑자 진액이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까아아악!”

“아아악!”

“으아아악!”

여자와 남자의 비명이 뒤섞여 여러 얼굴이 함께 소리쳤다. 해화는 노란 진액이 묻은 돌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서, 땅에 떨어진 소총을 들었다.

변종의 변종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처음엔 다 똑같은 변종이었을 거야. 노란 진액으로 가득 차서, 피부가 약하고 머리도 말랑말랑하겠지.

해화는 자신에게 달려들려는 거대한 포자 살덩이를 눈앞에 두고서 생각했다. 낙조의 상태가 어떤지는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씨발, 죽어! 죽어 버려!”

개머리판으로 얼굴들을 힘껏 내려 쳤다. 생각대로 머리는 노란 진액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힘을 조금만 주어 짓눌러도 금방 터질 만큼. 폭삭 주저앉는 머리에 해화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총을 휘둘렀다.

퍽, 푹, 푸욱, 퍽.

서너 개쯤 머리를 쑤셔 댔을까. 부서진 얼굴 옆에서 아이의 손 같은 것이 쑥 나와 해화의 발목을 잡아챘다.

“윽!”

힘을 있는 대로 다 쓴 상태라 버틸 여유가 없었다. 그대로 뒤로 넘어진 해화는 손에서 총을 놓치고 말았다.

한 손이 발목을 잡자 다른 손도 튀어나와 해화의 종아리를 붙잡았다. 차갑고 끈적거리는 감촉에 해화는 비명을 질렀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자갈뿐이었다. 해화는 그나마 가장 큰 돌을 쥐고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덩어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손등을 무지막지하게 찍어 내렸다.

“으아아앙!”

발목을 잡아챈 손등을 찍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해화는 생각할 것도 없이 종아리를 쥔 손등도 세게 찍었다. 살덩이에 맺힌 얼굴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뭣도 안 되는 새끼들이…….”

숨이 벅찰 정도로 찼다. 해화는 일그러진 손목들이 주춤거리는 걸 지켜보면서 다시 일어났다. 평택 대피소에서 골프채를 찾아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칼이라도 훔쳐올걸.

*

온몸이 따끔거렸다. 벌에 쏘이면 이런 느낌이 날까. 어렸을 적 개미에 물렸을 때 이런 느낌이었나. 온갖 망상이 생각이란 걸 뒤덮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낙조는 새끼손가락에 있는 힘을 끌어모으며 겨우 눈을 떴다.

뿌연 안개에 가로막힌 듯 시야가 흐릿했다. 몇 번 더 눈을 깜박거리니 그제야 초점이 맞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포자가 떨어져 나간 큰 살덩이와, 비틀거리는……, 홍해화.

“……해화.”

입을 열어 보았으나 입안이 끈적한 것으로 가득 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낙조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목으로 넘어가는 어떤 액체에 기침을 토해 냈다.

“콜록! 욱, 큭, 허억, 콜록!”

황급히 몸을 뒤집고 입안에 있는 것을 뱉어 냈다. 침처럼 입가를 타고 흐르는 건 노란 진액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바닥을 짚은 두 손등이 보였다. 여기저기 잇자국이 나 있었다.

“으으…….”

머리는 어지럽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낙조는 거의 기듯이 팔꿈치로 몸을 세워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화는 벽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이라곤 돌 하나였다. 땅에 떨어진 소총이 보였지만 그걸로 될 일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낙조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속삭였다. 축 늘어졌던 오른손이 움찔거렸다. 손등 위로 핏줄이 돋고, 손끝에서부터 이파리가 자라났다.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낙조는 다리를 절면서 천천히 살덩어리에게로 가까이 접근했다.

‘접촉도 안 되고, 뚫는 것도 안 되면 우리가 먹어 보자.’

낙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도드라진 혈관을 따라 이파리가 사방으로 날개를 펴듯 벌어졌다. 그리고 손바닥 가운데에서 파이프 같은 녹색 줄기가 뻗어 나왔다.

식충식물은 기다란 통에 벌레를 꼬이게 하여 소화액으로 벌레를 녹인다.

잡아먹을 정도의 크기가 되지 않는다면,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을 다 빨아들이면 되는 것 아닌가.

지네의 입처럼 뾰족한 줄기의 입구가 살덩이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변종의 피부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다. 파고드는 건 쉬웠다. 이제 저 안에 든 진액을 모두 빨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낙조는 주먹을 쥐듯 온 힘을 다해 손을 안쪽으로 끌어 모았다. 눅눅하고 미지근한 액체가 줄기를 타고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낙조!”

해화는 그제야 낙조를 보았는지 자갈밭을 뛰어 달려왔다. 두 손과 발목엔 생채기가 가득했다.

조금밖에 빨아들이지 않은 것 같은데 구역질이 났다. 낙조는 왼손으로 입을 막고 허리를 숙였다.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변종을 움직이게 하고, 자신들끼리 소통하게 하고, 힘을 유지하는 노란 진액을 아예 빼앗아 버리는 것.

저 육중한 살덩어리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빼내야 했다.

“흐어어어어억…….”

“억, 어억, 꺼억, 꺽!”

살덩이에 붙어 있던 얼굴들이 숨이 넘어갈 듯 꺽꺽거렸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바르르 떨기도 했다. 낙조는 진액이 몸을 가득 채우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쉴 새 없이 진액이 낙조에게로 넘어왔다. 줄기는 계속해서 꿀렁거렸고, 이내 몸을 비틀기도 했다.

“우윽, 콜록, 욱.”

속이 뒤집힌 것처럼 메슥거림이 가시지 않았다. 낙조는 결국 손을 떼어 내고 명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것을 토해 냈다.

위액과 섞인 노란 진액이 떨어졌다.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 됐어, 다 됐어…….”

곁에서 해화가 중얼거렸다. 낙조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살덩이는 탈피한 뱀의 껍질처럼 바닥에 늘러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툭, 하고 줄기가 빠져 나왔다. 진액이 줄기의 입에서 뚝뚝 떨어졌다.

“웁!”

줄기가 스멀스멀 손바닥 안으로 돌아가고, 이파리도 형체를 갖추어 손가락의 모양새를 갖출 때 다시 구토가 시작됐다.

그러나 아무리 뱉어내려 해도 나오는 것은 위액뿐이었다.

“여기요! 좀 도와줘요!”

해화가 위쪽을 향해 소리쳤다. 진액과 포자 가루를 피해있던 이들이 곧 아래로 내려왔다. 그들은 사람의 얼굴과 손발의 형태를 한 껍질을 보고서 기함했다.

“아저씨!”

지운이 해화의 반대쪽으로 달려와 낙조를 부축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뱉어 내려 하다 보니 눈물이 고였다. 낙조는 짧은 숨을 뱉어 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욱, 안 되겠어.”

쉰 목소리로 낙조가 겨우 중얼거렸다. 낙조의 말에 지운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낙조만 계속해서 불렀다.

“…….”

마찬가지로 진액과 포자 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해화가 발목에 두른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이파리 몇 개를 한 손으로 모두 뜯었다.

“으…….”

피가 송골송골 새어 나왔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해화는 이파리를 낙조의 입안에 억지로 욱여넣었다.

“삼켜!”

낙조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지운이 낙조의 몸을 받쳤다.

“아저씨!”

“삼키라고!”

해화는 절규하듯 외쳤다. 느릿하게 깜박이는 두 눈동자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조는 해화의 말대로 입안에 들어온 잎을 침과 함께 삼켜 냈다. 크기가 작고 얇아 삼키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여기, 물 좀.”

무흠이 물통을 건넸다. 해화는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낙조의 입에 물을 흘려보냈다. 목울대가 느슨하게 움직였다.

“하, 하아…….”

낙조의 가쁜 숨이 점차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건 몇 분이 흐른 뒤였다. 흐릿하기만 했던 동공도 점점 선명해졌다.

“일단 차로 옮깁시다. 주변에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흠이 말했다. 지운은 낙조를 무흠의 등에 업히고서 길을 찾아 위쪽으로 올라갔다.

“너무 많이 물렸어요.”

낙조의 상태를 확인한 동휘가 탄식하며 말했다.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물린 자국도 있었다.

“감염되지 않을 겁니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무흠이 말을 꺼냈다. 그는 낙조의 목에 남은 큰 잇자국을 응시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서연우 연구원이 그랬습니다. 항체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변종이 될 확률이 극히 낮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말도 못하는데…….”

지운의 말에 해화가 나섰다.

“내 몸에서 난 잎을 먹었어. 그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거야. 일단……, 하루 정도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해화가 무흠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구급상자에서 새 붕대와 연고, 데일밴드를 해화에게 건네주었다.

“죄송합니다. 같이 못 싸워드려서. 군인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살 사람은 살아야죠.”

해화는 그렇게 대답했다가 잠시 멈추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면 이런 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구나. 발목에 붕대를 두르면서 생각했다.

*

해가 저물었다. 인적이 드문 길로 달리다가 대문이 열린 주택 하나를 찾았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논뿐이었다. 귀농을 목표로 한 사람들이 지은 것인지 주택은 신축으로 보였다.

“계세요?”

지운이 차에서 내려 현관문을 두드렸다. 돌아오는 답이 없어 문고리를 한 번 잡아당겨 보니 문이 힘없이 열렸다. 불은 꺼져 있었다.

무흠과 동휘가 총을 든 채 앞장을 섰다. 1층부터 2층까지 둘러본 결과 변종도, 사람도 없었다. 급히 짐을 싸서 대피소로 간 모양이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해화의 두 손은 데일밴드로 가득했다. 낙조는 속이 계속 좋지 않다며 식사를 거절했다.

“뭐였을까요.”

지운이 물을 마시곤 중얼거렸다. 주어를 정하지 않아도 그가 무얼 가리키고 있는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가만히 식탁만 바라보고 있던 낙조가 입을 열었다.

“날 부르는 느낌이었어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낙조는 공허한 시선을 식탁에서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차에서 뛰어내린 것도, 백 퍼센트 내 의지가 아니었단 말이죠.”

말이 끝나자 모두가 입을 잠근 듯 고요해졌다. 무흠은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다가 말했다.

“며칠 만에 변종의 형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까?”

“그건 임실에 가 봐야 알겠죠.”

낙조의 말에 해화가 조심스럽게 무흠에게 물었다.

“임실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거예요?”

무흠의 시선이 예리하게 빛났다.

“옥정호 붕어섬. 한때 실험소로 쓰던 연구소가 있습니다.”

「연구소……, 다른 연구소로 갔을 거예요. 섬에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처음 서연우를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낙조는 마른침을 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