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방안과 밖의 죽음들
무흠이 확인 후 남겨 놓은 사람은 일곱이었다. 아기와 그 엄마까지 포함해서.
“웩, 우엑, 우에엑…….”
묶여 있는 것도 아닌데, 남자는 의자에 손도 대지 못하고 몸만 들썩거리다 이내 속을 게워냈다. 위액과 피, 그리고 노란 진액이 뒤섞인 것이 바닥으로 후드득 쏟아졌다.
완전히 변종으로 변이되지 않은 ‘사람’은 상대해 보지 않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은 사람들의 불안감만 커지게 이렇게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쉽게 조용해지지 않는 박종상의 소음 때문에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기를 끌어안고 기도하듯 달랬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문이 열렸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지운이 착잡한 얼굴을 하고서 아기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잠깐 밖에서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신호였다. 어차피 변종이 될 이들은 이 방에서 살아 나가지 못한다. 지운은 문을 닫기 직전 낙조를 바라보았다.
“병사 분들 밖에서―”
“―으아악!”
낙조가 첫 마디를 떼는 순간, 등 뒤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주 잠깐이었다. 박종상에게서 눈을 뗀 건. 그 잠깐이었는데.
박종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입가에선 계속해서 노란 진액이 흘러내렸다.
“아으아아악!”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기도 전이었다. 중년 여성의 입을 반쯤 찢은 박종상은 구엑, 하고 몸을 크게 꿀렁거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노란 진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낙조는 지운과 아기 엄마를 황급히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은 후 박종상의 팔을 낚아챘다.
계획된 순서는 모두 어그러졌다. 뒤죽박죽 얽힌 상황에서 낙조의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은 박종상을 저지하는 것뿐이었다.
진액에 반응한 오른손에 힘이 가득 실렸다. 낙조는 주저하지 않고 박종상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미 많이 말랑해진 얼굴에 주먹이 푹 들어갔다.
“으아, 아아!”
자리에 남아 있던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뛰어간 이들은 문을 두드리며 제발 열어 달라 악을 써댔다.
“살려 줘요! 살려 줘, 문 열어!”
박종상의 얼굴을 한 번씩 내려칠 때마다 노란 진액이 튀었다. 낙조는 손끝에서 잎사귀가 비집고 나오는 걸 느끼면서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통제하는 건 힘들었다.
잎사귀가 탐스럽게 펼쳐지며 서로 뭉쳐 주머니 형태를 만들었을 때였다. 문을 두드리면서 살려 달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일제히 낙조를 향해 돌아보았다.
순식간에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그들은 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단내……, 단내가 나.”
거의 짓뭉개진 박종상의 얼굴을 완전히 박살 낸 낙조가 고개를 들었을 땐, 사람들이 모두 낙조의 곁을 둘러싸고 난 후였다. 그들은 병우가 했던 말을 똑같이 중얼거리며 낙조에게 달려들었다.
“좆같네, 진짜…….”
낙조는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몸을 건너편 벽 쪽으로 던졌다. 동시에 눈을 뒤집어 깐 변종들이 숨을 헐떡이며 손을 뻗었다. 낙조는 가장 가까이 붙은 변종의 머리를 잡고 쥐어짜며 왼손으론 다른 변종의 목을 졸랐다.
“끼에엑, 끼엑.”
목이 졸리면서도 낙조를 향해 손을 파닥거리던 변종은 이를 딱딱거리며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손바닥 안에서 녹아가고 있는 변종의 머리를 느끼면서, 낙조는 거미처럼 기어오는 다른 변종의 머리를 짓밟았다.
오랜만에 던져진 식사라 그런지 잎사귀는 전보다 빠르게 변종의 머리를 녹여냈다. 피와 진액이 뚝뚝 흐르는 손은 또다시 다른 변종의 머리를 삼켰다.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휘감는 감촉도 이젠 놀랍지 않았다.
목을 조른 변종을 그대로 벽에 갖다 박고서 몸을 아예 허공으로 들었다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케엑, 변종이 몸을 꿈틀거리며 다시 뒤집으려는 순간 발로 짓뭉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낙조의 신발이 진액으로 뒤덮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순식간에 셋을 처리한 낙조는 남은 셋을 훑어보곤 어깨를 느슨하게 풀었다.
이쯤 되면 병사 한두 명은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구만. 속으로 한탄을 하며 오른손에 힘을 준 다음 변종의 몸을 왼손으로 잡고 꺾었다. 연필심 부러지듯 뻑, 하고 목과 몸이 분리됐다.
잎사귀에서 따로 나오는 소화액이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변종을 삼킬수록 효과가 좋아진다는 건 확실시됐다.
낙조는 몸을 바닥에 내던진 채 머리를 삼키느라 똘똘 말린 주먹을 남은 변종 하나에게 날렸다.
“카아아악, 칵!”
몸을 바닥에 잔뜩 낮춘 채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변종 하나가 펄쩍 뛰며 낙조의 오른손에 달라붙었다. 아직 다 녹이지 못한 머리가 남아있을 때였다. 낙조는 주먹을 맞은 변종이 비틀거리고 있는 걸 확인하고서 왼손으로 오른손에 달라붙은 변종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케엑, 켁.”
변종은 머리가 투둑, 하고 뜯어지는 와중에도 잎사귀를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이내 녹아내린 잇몸에 겨우 박힌 이가 낙조의 잎사귀를 와드득 씹었다.
“읍!”
손가락 세 개를 한 번에 씹힌 것처럼 통증이 몰려왔다. 낙조는 다시 머리채를 잡고서 변종을 완전히 뜯어냈다. 변종은 끝까지 낙조의 잎사귀를 물고 늘어져, 결국 잇자국대로 상처가 남고 말았다.
“존나 아프네.”
낙조는 인상을 찡그리고서 내던진 변종의 머리를 발로 네다섯 번은 걷어찼다. 세 번쯤 밟았을 때 이미 머리는 터졌지만.
탕!
겨우 하나가 남았다고 생각됐을 때, 청명한 총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무흠이 권총을 든 채 서 있었다.
이거 어디서 본 데자뷰인데.
“한 번 더 쏴요.”
“한 번 더요?”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머리가 터지며 진액이 묻으면 곤란해진다. 낙조는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의자를 넘어 무흠을 뒤로 물러 세운 채 반쯤 구겨진 머리를 시원하게 터뜨렸다.
펑.
누구보다도 요란하게 머리가 터졌다. 낙조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살짝 떠보니 옷에 피가 잔뜩 흩뿌려져 있는 게 보였다.
“낙조 씨.”
무흠이 뒤에서 낙조를 불렀다. 낙조는 큰소리를 할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무흠과 눈을 마주치고서 다시 한숨을 뱉었다.
“위험하게 왜 이럴 때 들어옵니까?”
“…….”
“중사님?”
무흠은 말이 없었다. 낙조는 그제야 무흠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복도를 볼 수 있었다.
아기를 빼앗긴 채 통곡하고 있는 여자와, 발버둥치는 아기를 향해 총을 조준하는 병사를.
아직 흐트러져 있는 숨을 정리하며 문을 열었다. 여자는 낙조를 보자마자 더 크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안 돼요! 제발요, 화장실에만 있을게요. 아무데도 안 갈게요…….”
복도에 울려 퍼지는 울음이 비바람처럼 낙조를 몰아세웠다. 낙조는 문을 등진 채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완전히 변이되지는 않았지만 눈이 계속해서 뒤집어지고, 고개를 까닥거리는 등 변종이 보이는 증상과 유사한 행동이 눈에 밟혔다.
아기를 잡은 병사 또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래 봤자 이제 한 살배기 아이였지만, 아기가 쏟아 내는 힘은 가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억세기도 하다.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입 막고, 제가 안고 있을 테니까 놔주세요. 쏘지 마세요! 쏘지 마! 도민아! 아악!”
맞은편에 선 병사가 장전을 마치자 아기 엄마는 더욱 크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낙조가 복도에 들어서니, 아기는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더욱 크게 변이 증상을 보였다.
「냄새……, 냄새난다.」
「단내……, 단내가 나.」
병우의 마지막 말.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던 변종들이 하나 같이 중얼거린 말. 모두 낙조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아직 다 수그러들지 않은 이파리가 움찔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기의 몸짓도 더욱 거세졌다.
‘변종을 이끄는 냄새가 있다.’
낙조는 생각을 마치고서 오른손을 등 뒤에 감춘 후 숨을 골랐다. 아기는 낙조 쪽으로 자그마한 손을 뻗으면서 입을 벌렸다.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유치 사이로 포자가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눈을 꼭 감았다가 떠냈다. 자신의 손으로 해치우거나, 변종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 둘 중 그 어떤 것을 따르더라도 죄책감은 뒤따라온다.
나는 영웅이 아니잖아. 누구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버틴 것도 아니고. 낙조의 머릿속이 뒤흔들렸다. 이번엔 다른 사람의 결정을 따를까. 그게 나중에 생각해도 맘 편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아저씨.”
“…….”
“쏘지 말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지운이 말했다.
“그러면.”
“어차피 화장실에만 있는다 해도, 완전히 변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근데, 그래도 아기잖아. 누가 아기를, 죽이고 싶겠어.”
지운은 처절하게 울부짖는 아기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한 손을 붙잡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완전히 변하면, 어머니마저 물게 되면,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어요.”
“흑, 으흐흑, 어윽, 도민아…….”
“지금, 지금은 어머니 얼굴 기억할 테니까, 인사하세요. 인사해 주세요.”
지운은 자신이 아기를 받아들곤 병사에게 아버지를 불러 와 달라 부탁했다. 얼마 되지 않아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남자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남자는 변이된 아기를 보고 무너지듯 울었다.
“어떻게, 어떻게 할 겁니까.”
울음 사이사이로 겨우 말을 뱉어 낸 남자에게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민아, 아빠, 엄마한테 인사하자.”
온 힘을 다해 품에서 벗어나려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지운이 말했다. 눈높이를 맞추어 아기를 드니 엄마와 아빠는 차마 손대지 못한 채 울음만 쏟아낼 뿐이었다.
“한 분만 저 도와주세요.”
지운이 숨을 고르며 동휘에게 말을 건넸다. 동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지운을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는 금세 멎었다. 화장실이 고요해지자,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서 목 놓아 울었다. 울음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숨만 겨우 쉬어 가며 눈물을 흘렸다.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때 지운이 아기를 품에 안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자신이 입고 있던 진 셔츠에 아기를 감싼 채. 아기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품에 안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운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품에 안은 아기를 부모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아기를 받아들고서 이를 악물고 울음소리를 참아 냈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와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잡아간다.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낙조는 허리를 꾸벅 숙인 채 움직이지 않는 지운의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문틈 너머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피투성이 바닥이 보였다.
*
지운은 수면유도제를 찾아 먹고서 곧장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해화는 모든 얘기를 전해 듣곤 한숨을 내쉬었다. 지운의 선택이 과연 용기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멍하니 천막 바닥에 앉아 관리자가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무흠이 낙조를 찾아왔다. 그는 낙조를 흡연구역으로 데려갔다.
“왜 관리자가 낙조 씨를 안 잡는지 압니까?”
한동안 말이 없던 무흠이 물었다. 낙조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중사님이 쉴드 쳤겠죠.”
“낙조 씨는 말을 고상하게 할 필요가 좀 있습니다.”
“고상 떨다가 뒤질 일 있나요.”
낙조는 완전히 돌아온 자신의 오른손을 꼼꼼히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깨물린 자국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무흠은 종이컵에 담뱃재를 털어 내고서 잠시 뜸을 들였다.
“처음에 낙조 씨 손 변했을 때, 여기 있었던 병사들이랑 관리자가 낙조 씨 쏘려고 했습니다. 그냥 반사적으로 총을 들더라고요.”
“그럴 만도 하죠. 제가 설명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 근데 해봤자 안 믿었을걸요.”
“근데 낙조 씨가 딱, 그 남자 한 명 잡자마자 아무 말도 못하는 겁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요. 들어가서 도와주지도 않고, 그냥 낙조 씨 혼자 판 벌이는 걸 지켜봤습니다.”
무흠은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렸다. 낙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운이 무심코 생각났다. 아기에 대해 물어볼까 싶다가도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들 무의식적으로 아는 겁니다. 낙조 씨 옆에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걸.”
“이제 와서 뭘…….”
“칭찬 같습니까?”
“중사님은 정말, 정말로……, 싸가지가 없어요. 아시죠?”
“그럼요.”
아 열 받아. 낙조는 담배를 세게 빨아 들였다가 연기를 내뱉었다. 안 그래도 뒤숭숭한 기분을 무흠이 어지럽게 흩뜨리는 듯했다.
“근데 이틀 동안 잠잠하다가 왜 갑자기 낙조 씨 앞에서 동시에 변한 건지,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그게 본론이네. 그거 물어보러 나 찾으러 왔죠.”
“낙조 씨.”
“냄새. 변종들은 진액 냄새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근데 내가 가진 식물에게서, 가끔 그들을 부르는 냄새가 나나 봐요.”
“가끔 말입니까.”
“네. 이렇게 몰려든 상황이, 맨 처음이랑……, 이번뿐이거든요. 무슨 냄새가 난다면서 변했으니까.”
병우를 떠올리자니 좋은 기억이 아니라 무흠과의 대화마저 집어치우고 싶어졌다.
거의 몽당연필만큼 짧아진 꽁초를 종이컵에 넣은 낙조는 연기를 뱉어 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면, 냄새가 곧 언어고, 냄새마다 의미가 있다는 건데…….”
무흠이 중얼거렸다. 낙조는 잇자국이 선명한 오른손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뭐 연구라도 하시게요? 그럼 청주 가시면 되겠네.”
“애처럼 투정을 부리고 그럽니까, 징그럽게.”
“아이 진짜.”
불을 붙이다 말고 담배를 씹은 채 중얼거리니 무흠이 소리를 죽여 웃었다.
“갈 곳이 생겼습니다.”
“또 어딜 가요.”
“낙조 씨 여기 계속 있다간 청주 끌려갈 텐데.”
“…….”
“진짜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갑시다.”
그리고 무흠은 낙조의 입술에서 담배를 빼앗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