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변종 식별 처리
관리자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낙조에게 겨누었다. 낙조는 천천히 두 손을 올리고서 입을 열었다. 혹시 칸 안에 사람이 있을지 몰라 듣지 못할 정도로 말해야 했다.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그에게 속삭였다.
“난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랑 이렇게 얘기할 만큼 멀쩡해요.”
“그럼 청주에서 이런 연락이 왜, 왜 오겠습니까.”
“그쪽에 얽힌 사연이……, 말하자면 너무 길어요. 그리고 지금 급한 건 이곳에 포자 변종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겁니다. 내가 안전하다는 건 백 중사님을 통해 어느 정도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 이렇게 대치하는 것조차 아깝다. 낙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고서 병사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일단 감염 증상 있는 사람들부터 수색합시다. 그 일이 끝나면 순순히 따라갈게요.”
관리자는 갈등하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시간 없어요.”
낙조가 한숨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말했다. 마침 병사들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관리자는 병사들의 발소리에 권총을 품에 넣고서 속삭였다.
“약속, 꼭 지키십시오. 옆에서 지켜볼 테니까.”
낙조는 두 손을 내리고 막힌 숨을 토해 냈다. 병사들은 공구로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노크했다.
“선생님, 안에 계십니까?”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한 걸음 물러났다. 곧 잠금장치가 덜컹, 하고 풀렸다. 문이 열렸다.
안에는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과 제 걷기 시작한 듯 보이는 아기가 서 있었다. 그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낙조,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왜, 무슨 일입니까.”
괜찮은 듯 보였지만 떨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낙조는 천천히 허리를 펴고서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동공은 아직 또렷하지만 눈을 자주 깜박인다. 피부 위에 나무껍질이라거나 포자가 같은 것이 피어 있지도 않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감염 증상 확인 중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치며 낙조가 남자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는 손이 닿기도 전에 한 걸음 물러섰다.
“접촉 흔적이 없나 확인만 하는 겁니다.”
병사 하나가 낙조 대신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화장실 안에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낙조는 문 옆에 서서 남자를 응시했다.
손끝이 냄새를 맡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이미 진액이 묻은 엄지는 살갗을 뚫고 나오려 애를 쓰는 중이었다. 낙조는 심호흡하며 남자를 불렀다.
“별 것 없습니다. 금방 끝나니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남자는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다가 오른손을 먼저 내밀었다. 낙조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 마디와 사이사이를 확인했다.
오른손은 멀쩡했다. 낙조는 남자에게서 경계심을 풀기 위해 아무 말 없이 왼손을 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아, 진짜…….”
남자는 귀찮다는 듯 왼손을 바지에 벅벅 문질러 닦더니 슬그머니 내놓았다.
조금 더 유심히 손가락 사이사이를 살폈다. 손가락 마디를 지나, 엄지와 검지 사이의 갈퀴를 확인할 때였다.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오른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깊게 파여 피가 아직 멈추지 않은 모양이었다. 낙조는 물끄러미 상처를 바라보다 남자를 돌아보았다.
“언제 다치셨습니까?”
“아까, 애랑 놀아주다가요.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온 겁니다. 다친 줄도 몰랐어요.”
이 정도 깊은 상처인데도 다친 줄 몰랐다…….
남자는 생각보다 쉽게 대답했다. 손목도 걷어 보고, 발목, 목 뒤, 마지막으로 입안도 확인했지만 그 외에 이렇다 할 상흔은 없었다.
낙조는 그를 순순히 놓아주었다. 여전히 오른손은 뜻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꿈틀거렸다.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만요.”
낙조가 남자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는 제가 안고 있었습니다.”
“예외는 둘 수 없습니다.”
병사가 남자의 가슴 앞으로 팔을 뻗으며 말했다.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아기를 안아 들었다.
“아, 해볼까?”
낙조는 최대한 자신이 낼 수 있는 다정한 말투로 아기에게 말을 건넸다. 아기는 멀뚱멀뚱 낙조를 바라보다가 살짝 입을 벌렸다.
“…….”
“됐습니까?”
“예. 자리가 어디시죠?”
“23번 천막이요.”
낙조는 병사 한 명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자리가 어디인지 확실하게 파악하신 후 돌아오세요. 아기 혓바닥에 포자가 있습니다.”
*
대피소를 지키는 병사를 비롯해 다른 인력까지 모두 확인한 뒤 낙조는 작은 종이에 쓴 이름들을 체크했다.
“여기, 쓰인 사람들만 한 방에 모아둘 겁니다. 의심자들 부를 땐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부르세요. 겁먹지 않게.”
“감염자가 확실한 겁니까?”
“증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도죠.”
“그럼 아닌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닌 사람들은 제가 즉시 내보낼 겁니다. 확인한 후에.”
“예?”
“감염자들 모아 놓은 방에, 저도 들어갑니다.”
낙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천여 명의 사람들을 확인하며 오른팔은 더욱 거세게 진동했고, 더 이상 감추는 것도 무리였다.
어정쩡한 상황에서 들키는 것보다 자신의 존재가 이 재난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게 빨랐다.
낙조는 병사에게 종이를 건네주고서 복도로 빠져나갔다. 큰일을 앞뒀음에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졸고 있던 지운이 보였다.
“야.”
“아. 어……, 아저씨.”
“홍해화는.”
“아까 왔는데, 누나……, 아, 저기.”
지운이 가리킨 곳은 반대편이었다. 해화 또한 낙조를 찾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낙조를 향해 다가왔다.
“뭐야, 이게?”
“대피소 근처에서 감염성 포자가 발견돼서…….”
“뭐?”
해화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를 높였다. 낙조는 침착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진정시킨 후 말했다.
“시간 지나도 괜찮은 사람들은 내가 책임지고 내보낼 테니까, 홍해화, 천막에서 자리 지키고. 홍지운 너는 나 따라와.”
낙조의 지시에 해화와 지운 모두 눈을 뜨고 낙조를 바라보았다. 낙조는 애써 모르는 척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아저씨, 혼자 다 상대하겠다고?”
“다 감염자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모르는 거지. 지금까지 아무 소동 없는 거 보면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거고.”
곧 병사들이 복도 양쪽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낙조는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
낙조는 인원수를 파악한 후 문을 잠갔다. 병사들을 따라온 사람들은 낙조를 빤히 바라보며 한두 마디씩 건네기 시작했다.
“누구신데 왜 우리를…….”
“설마 우리를 그 괴물, 괴물 놈들이랑 엮는 건 아니죠? 나 이거 손바닥 까진 거, 넘어져서 그런 거라니까!”
“접촉 안 했어!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인마! 새파랗게 어린놈이, 사람을 왔다갔다 하라고 하는 게 쉬워?”
애초에 이런 불만들이 터져 나올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낙조는 감흥 없는 눈으로 사람들을 슥 둘러보곤 말했다.
“영화 부산행 보신 분?”
사람들의 표정이 기묘하게 구겨졌다. 그래, 뭔 개 같은 소리인가 하겠지. 낙조는 개의치 않고서 다시 한번 말했다.
“부산행 안 보셨어요? 거기 보면 기차에 좀비 하나가 들어와서 다 죽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두고 보자는 겁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까부터 사람 몸 훑는 것부터 기분 나빴는데, 이런 소리나 하려고 부른 거야?”
“다들 ‘나는 아니다.’라고 하겠죠. 진짜 아닐 수도 있고요. 저도 일부러 여러분 붙잡아 두는 거 아닙니다. 제 시간, 체력 써가면서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요.”
“그니까 당신이 무슨 증거로 우리를 의심하냐고!”
배가 불뚝 나온 남성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낙조는 피곤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연구소에서 잠깐 일했습니다. 그래서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요.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제가 가도 된다고 할 때까진 절대, 일어서시면 안 됩니다. 밖에 다 군인들 있으니까 허튼 생각 마시고요.”
연구소에서 실험을 위해 몸을 바친 건 맞으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낙조는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서 말을 마쳤다. 끝까지 버티던 사람들도 낙조의 냉랭한 얼굴을 보고 욕을 읊조리며 자리에 앉았다.
낙조의 생각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변종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변종이 뱉어 낸 이물질을 직접 삼키지 않으면 감염 속도는 빠르지 않다. 다만 소량의 진액이라거나 포자가 몸에 흡수됐을 때가 문제다. 언제, 어떻게 감염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
“저기, 화장실 갔다 와도 될까요?”
아기를 안고 있던 여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처음 화장실에서 마주친 아기였다. 잠시 정적이 돌았다. 여자가 머뭇거리며 팔을 다시 내리려고 할 때, 낙조는 문을 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간 후 낙조는 지운의 귀에 속삭였다.
“나올 때 아기 상태 한번 확인해 줘.”
“아기?”
지운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낙조는 옅은 숨을 뱉어 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는……, 괜찮지 않을까? 힘도 없고, 작은데.”
“나도 생각 중이야. 어떻게 할지.”
지운의 손이 잘게 떨렸다. 낙조는 앞문을 다시 닫고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아직 이렇다 할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최고의 결론은 이대로, 아무 소동 없이, 하룻밤이 지나는 것.
그러나 눈에 거슬리는 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자마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남자 한 명과 자신의 눈치를 보며 등을 긁는 중년 여성, 얼굴과 팔에 덕지덕지 데일밴드를 붙인 여학생 세 명이 그 중심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몸부림치는 오른손까지. 변종이 없다고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곧 여자가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아기의 호흡은 조금 가빠져 있었다. 여자는 손으로 아기의 목을 받치고 있는 상태였다.
“아기 때문에 오신 거죠?”
낙조를 지나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여자를 붙잡고 물었다.
“아, 네…….”
여자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여자의 품에 안긴 아기가 물끄러미 낙조를 바라보았다. 말간 시선. 아직 봐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나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눈을 마주치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낙조는 뒤돌아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
“여기요.”
뒤쪽에 앉은 남자 한 명이 작게 낙조를 불렀다. 이십여 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쥔 채 낙조는 말없이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앞에 남자, 자꾸 뭐라고 중얼거려요.”
그는 낙조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앞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낙조는 허리를 펴 앞 좌석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상체를 푹 숙인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시야에 보이지 않던 게 몸을 숙여서였구나. 낙조는 조용히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 아니야, 아, 아어, 어…….”
가까이서 다가가 보니 그가 고개를 저으며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낙조는 조금 더 세게 남자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아니라고!”
남자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남자와 낙조에게로 쏠렸다.
“아니라고 했잖아! 씨발, 아니, 아니라고! 아니야!”
남자의 두 볼 위론 작은 갈색 각질들이 돋아 있었다. 낙조는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동조하지 않고 가만히 남자의 다른 부위를 관찰했다.
드러난 손등과 손가락에도 나무껍질 비슷한 각질이 보였다. 낙조는 종이에 적힌 남자의 이름과 증상을 확인했다.
박종상, 입가에 포자.
입가라……. 낙조는 아직도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하는 박종상의 입을 쳐다보았다. 처음 볼 때는 알아차리지 못한 포자가 길게 퍼져 있었다. 꼭 개울가 바위틈에 널린 개구리알처럼.
오른손이 꿈틀거렸다. 첫 번째 변종이다. 낙조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문을 열고나갔다. 무흠이 기다렸다는 듯 낙조에게 다가왔다.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부수는 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겠죠?”
무흠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낙조를 바라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지금 제가 한 번 더 사람들 확인하겠습니다. 아닌 게 확실할 것 같은 사람들은 내보냅시다.”
무흠은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곤 안으로 들어왔다. 뒤쪽부터 한 명씩 상처 부위를 자세히 살폈고, 노란 포자라거나 진액이 새어 나오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 와중에도 박종상은 내내 악을 써 댔다.
낙조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도 아기의 칭얼거림에 숨을 계속 참아야 했다. 자신이 제발 잘못 본 것이길 바라야만 했다.
‘제발.’
이렇게까지 나를 잔인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