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갈래길
고속도로가 아닌 다른 길을 가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가 아직도 이렇게 많다고? 연우는 서류를 읽던 눈을 떼어 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도권을 거의 벗어난 건 맞는지 높은 건물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던 연우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계속 글자를 보고 있으려니 멀미가 도는 듯했다.
“물 있나요?”
옆에 앉은 무흠에게 물었다. 무흠은 조용히 생수병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연우는 가방에서 진통제를 꺼내 삼켰다.
“얼마나 더 가야 되죠?”
“돌아가는 길이라 조금 더 걸립니다.”
운전병이 전방을 주시한 채 대답했다. 연우는 종이를 넘기며 마저 자료를 정리하려다 몰려오는 졸음에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연우는 가방의 자크를 완전히 잠근 후 자신의 다리 옆쪽에 가방을 놓았다. 그리곤 눈을 감고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흠은 연우가 완전히 잠들기까지 기다렸다. 몸을 일부러 크게 움직이지 않았고, 운전병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산길에 접어들었다. 무흠은 무전기를 들어 채널을 맞춘 후 입을 열었다.
“후, 후, 트럭 확인 위해 잠시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무흠은 무전을 끈 후 연우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주 조용히 숨만 색색 내쉬고 있었다.
*
곧 산 중턱에 트럭과 차들이 일렬로 맞추어 멈췄다. 무흠은 연우를 깨우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병사들은 낙조와 해화가 타고 있는 트럭 앞에 모여 있었다. 지운도 함께.
“운전하는 동안 별 일은 없었나?”
“예. 조용했습니다.”
트럭을 운전한 병사가 대답했다. 병사 대부분은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흠은 잠긴 문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열지.”
“중사님.”
볼을 다친 병사가 무흠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그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만약 그 사람이 처리하지 못했다면, 어떡하실 겁니까?”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곁에 서 있던 지운이 울부짖듯 외쳤다.
“그럴 리 없다.”
무흠은 확고하게 대답했다. 다른 병사들은 못 믿는 눈치로 트럭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우관은 유독 무흠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철컹, 무흠이 빡빡하게 잠긴 트럭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햇빛이 짐칸의 문턱을 넘어 안을 겨우 밝혔다. 깊숙한 곳까지는 빛이 닿지 않았다. 병사들은 소총을 쥐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금방이라도 변종이 내는 특유의 울음소리가 안쪽에서 달려올 것만 같았다. 우관은 무흠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해화의 머리통을 박살 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어?”
곧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얼 빠진 소리를 냈다.
모습을 드러낸 건 피곤한 얼굴을 한 낙조였다. 그는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병사들을 쭉 둘러본 후 주변 풍경을 돌아보았다.
“여기가 청주입니까?”
“평택입니다.”
무흠의 대답에 낙조가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차를 산속에 댄 것도 이상한데, 지역 이름조차 생각하지 못한 곳이었다.
무흠은 낙조 너머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트럭의 구석을 향한 시선에 낙조가 그 시선을 몸으로 막아섰다.
“여자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왜 평택에 왔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것부터 들어야겠습니다.”
“…….”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를 짓눌렀다. 무흠은 병사들에게 각자 자리로 돌아가 주변을 살피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은 못미더운 척 우물거리다가 각자 위치로 흩어졌다.
그제야 낙조가 트럭에서 내려왔다. 무흠은 낙조를 악의 없이 내려다보았다. 이미 낙조의 눈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줘야 할까. 어디까지 설명해야 낙조가 이해할까. 서연우 그 여자가 깨기 전에 모든 상황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 근처에 대피소가 있습니다.”
“…….”
“이 산을 넘어가면 바로 보일 겁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오산에서 왔다고 하십시오. 절대로 저와 서연우 연구원과 함께 있었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될 수 있다면 이름도 다른 이름으로 말씀하십시오.”
“지금 그게 무슨 말씀―”
“―길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말해주십시오. 여자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무흠이 완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낙조는 그에게 압도당한 듯 눈만 겨우 깜박거리다가 고개를 서서히 트럭 안쪽으로 돌렸다. 무흠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벅, 저벅.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무흠은 권총을 넣어 둔 곳을 향해 손을 올렸다. 낙조는 조용히 그 손목을 잡아 저지했다.
“전 괜찮아요.”
얼굴을 드러낸 해화가 조용히 말했다. 안색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변종처럼 피부 위에 나무껍질 같은 것이 돋지도 않았다.
“누나.”
지운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해화를 불렀다. 해화는 기운 없이 지운을 향해 웃었다.
「낙조 씨는 변종이 될 확률도 극히 낮아요. 항체가 어느 정도 있다는 얘기죠. 너무나 완벽한 성공 아닌가요?」
연우의 말이 무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낙조는 조심스럽게 무흠의 손목을 놓았다. 무흠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항체 보균자예요.”
낙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전에 물린 적이 있었는데도 변하지 않았고, 몸이 진액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여요. 모두 다 토해 냈습니다.”
무흠의 눈이 떨렸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겠지. 그래,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낙조는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더라.”
여기선 들리면 안 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무흠은 두 눈을 감았다가 한숨을 토해 냈다.
등을 돌리니 연우가 애매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짐칸에 올라탄 해화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새벽에만 샤워를 하는지, 다친 적이 없는데 발목에 붕대를 두르는지, 꼬박꼬박 소염제를 먹는지 궁금했었어요.”
“…….”
해화는 떨고 있었다. 지운은 허겁지겁 짐칸으로 올라가 해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연우의 한 마디에 해화는 주먹을 쥐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손발이 쇠고랑에 질질 끌리는 기분이었다.
“해화 씨랑 낙조 씨만 있으면, 지구를 구할 수 있어요. 영웅이 되는 거예요. 내가 찾고 있던 희망들이 다 여기 있었네.”
“지랄하지 마! 당신 총 맞았을 때 그 아수라장에서 구해 낸 사람이 누군데, 씨발! 건들기만 해 봐. 가까이 오지도 마!”
지운이 버럭 소리쳤다. 연우는 억지로 웃고 있던 입가를 굳혔다.
“내가 뭘 한다고 했나? 모두를 구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안전한 곳에서 지켜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피 뽑는 게 그렇게 어렵나?”
“정말 피만 뽑을 겁니까? 청주로 가서, 변종과 함께 가둔다거나, 일부러 바이러스를 몸에 투입하거나 하는 계획이 있지 않았습니까?”
무흠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연우가 이면지에 쓴 내용 그대로를 읊은 것뿐이었다. 무흠의 말에 지운은 해화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긴 후 가쁜 숨을 내뱉었다.
“중사님, 어차피 저 사람들은 안 변해요. 변종이 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바이러스 조금 넣는다고 별 일이 나겠어요?”
연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정말 우스워서가 아니라, 무흠을 비꼬기 위함인 걸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그게 생체실험입니다, 서연우 씨. 당신은 저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겁니다.”
무흠이 딱 잘라 말했다. 그제야 연우는 웃음을 그쳤다. 트럭 앞에서 벌어진 소란에 병사들도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관은 연우의 곁에 서서 무흠을 향해 말했다.
“옳은 말인데 왜 사이코패스로 만드십니까. 그럼 중사님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 생각을 바꾸실 겁니까?”
“김우관.”
“항체 있는 자들이 또 나타날 때까지 기다립니까? 그게 언제인지 알고요. 시팔, 지금 국가 수호고 뭐고 나라가 개판이 났는데. 지금 중사님은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르시는 겁니다. 죽기 직전까지 가서 후회하겠죠. 그때 저 새끼들 갖다 바칠걸―”
퍽!
우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볼을 다친 병사가 그를 주먹으로 쳤다. 그대로 넘어진 우관이 욕을 내뱉으며 덤볐지만 병사를 힘으로 이길 순 없었다. 우관은 짬밥과 입으로만 군 생활을 해 왔던 병사였기 때문에.
“진동휘 상병님! 참으십시오!”
다른 이등병이 우관을 막무가내로 패는 동휘를 뜯어말렸다. 우관의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 무흠은 싸늘한 눈으로 우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생각이 이렇게들 다른지 몰랐네.”
그는 병사들을 죽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그럼 여기서 결론을 내지. 청주로 가고 싶은 이들은 저 연구원과 함께 가라. 나는 저 사람들을 생지옥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다.”
“끝까지, 끝까지 지 혼자 잘났지, 개새끼야! 폼 그만 잡으라고! 사람들을 살려야 국가고 뭐고 있는 거 아냐! 저 새끼들 살려서 얻는 게 뭔데, 말해 봐, 이 개새끼야!”
겨우 상체만 일으킨 우관이 목을 쥐어짜 소리쳤다. 다시 동휘가 달려들려고 했으나, 다른 병사들이 막았다.
무흠은 천천히 우관에게 다가갔다. 190을 넘는 신장과 우람한 체격에서 늘어난 그림자가 우관을 완전히 덮었다.
“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너 같은 인간들을 살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인간들로만 꾸려진 국가, 나는 지키고 싶지 않아.”
그는 끝까지 명명백백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우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희들에게도 강요하지 않겠다. 가고 싶은 대로 가라. 각자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는 게 내 마지막 지시다.”
무흠은 뒤돌아 병사들에게 말했다. 동휘와 이등병 두 명은 무흠을 따르겠다고 했고, 남은 이들은 눈치를 보며 우관을 일으켰다.
연우는 그때까지도 해화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쳐 봐요. 이 좁은 땅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씩 트럭으로 다가갔다. 지운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자, 우관은 곁에 있던 병사의 소총을 뺏어 지운을 겨누었다.
“닥쳐, 좆같은 새끼야!”
“대신 피만 한 번 뽑게 해 줘요. 그럼 그냥 보내 줄게요.”
해화는 겨우 호흡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청주에 간다고 하더라도 생체실험 같은 게 아닐 수도 있잖아. 정말 피만 뽑고, 안전하게 지낼 수도 있는 건데. 내가 괜히 이상한 상상을 해서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거라면…….
“누나!”
“홍해화!”
지운과 낙조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해화는 트럭에서 뛰어내린 후 파도에 떠밀려가듯 연우 앞으로 다가갔다.
“홍해화!”
해화는 조용히 소매를 걷었다.
“거기 말고.”
그러나 연우는 단호히 말했다. 그리곤 해화가 여차할 새도 없이 쪼그려 앉아 붕대를 두른 발목에 손을 댔다.
“뭐, 뭐하는 거예요!”
억지로 묶은 매듭을 뜯어낸 연우는 해화의 발목 위에서 피어나고 있는 잎사귀를 보았다. 붕대 때문에 조금 짓눌렸지만, 파란 나뭇가지에서 피어난 잎사귀를 보고야 말았다.
“…….”
그녀는 감탄도,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이파리들을 통째로 뽑아냈다.
“아악!”
해화는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홍해화!”
지운이 달려가 해화를 부축했다. 이파리가 뽑힌 곳에선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연우는 아무 표정 없이 작고 투명한 유리관에 피 몇 방울을 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손엔 잎사귀들을 쥔 채.
“그럼, 언제 한 번 또 봐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앞쪽에 주차돼 있는 군용 트럭 쪽으로 걸어갔다. 청주로 가기로 한 우관을 비롯한 병사들도 그녀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누나, 괜찮아?”
“괜찮으십니까?”
지운과 동휘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물었다. 해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머니에 있던 붕대를 꺼내 다시 발목을 감았다. 어차피 다시 피어날 거야. 어차피…….
“지독한 사람이군요.”
연우의 뒷모습을 보며 무흠이 인상을 쓴 채 중얼거렸다. 낙조는 그를 흘낏 바라보았다가 답했다.
“이런 세상에서, 절대 죽지 않을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