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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16화 (16/202)

16화. 무엇을 위해 묵념하는가

“카르르르륵, 카악!”

이불을 뒤집어썼음에도 변종의 울음소리는 상당했다. 이리저리 발버둥치며 날뛰는 것을, 낙조를 포함한 이들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

긴장감에 골프채를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고 있은 채 변종을 지켜보던 해화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시선은 변종이 신고 있는 신발에 놓여 있었다. 해화는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발 쪽을 살펴 보았다.

“누나, 뭐해!?”

해화가 변종의 신발로 손을 뻗자 지운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목을 잡았다. 해화는 그 손을 뿌리치고서 변종의 신발을 벗겨 냈다. 헐거운 운동화가 손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거.”

변종이 신은 양말을 뚫고 나온 나뭇가지 같은 것이 안으로 몸을 말았다. 지운은 억, 하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모두가 괴이한 광경에 입을 떼지 못했다.

“손, 손…….”

해화는 황급히 묶인 변종의 손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손끝에도 뻣뻣한 나뭇가지가 자라 있었다. 낙조의 손에서 피어나는 이파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거, 이게 왜, 여기에……!”

변종의 손가락 끄트머리에 난 나뭇가지를 자세히 살펴보던 해화는 진저리를 치며 손을 내팽개쳤다. 외부의 자극에 변종은 더욱 크게 날뛰기 시작했다.

“누나 왜, 왜 그러는데.”

“아는 거라도 있습니까?”

지운과 무흠이 차례로 물었다. 해화는 말없이 숨을 고르다가 병사들 뒤에 서 있던 연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 이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연우는 조금 당황한 듯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해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연우는 해화의 그림자에 다 가려질 만큼 키가 작았다.

“저게 왜 여기 있냐고요!”

“저게 뭔데!”

참다 못한 지운이 대신 외쳤다. 병사들도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해화는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다시 변종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날숨을 불규칙적으로 턱턱 내뱉으면서 변종의 다리에 난 나뭇가지를 잡고 꺾었다.

“키아아아악!”

변종의 움직임이 거세졌지만 해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쥐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정한 시선이 연우에게로 향했다.

“크레오소트. 크레오소트관목이에요, 이거. 이 나무에서 추출된 목타르는 진통, 진통제로도 쓰이고요. 이 나무 근처엔 다른 식물이 안 자라요. 뿌리에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해화의 말에 하나 둘씩 표정이 굳어져 갔다. 그녀는 손에 쥔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한 번씩 오래된 가지가 죽으면, 주변에 새 가지가 뻗어나가는 식으로 군집을 이루며 영역을 넓혀가는 나무예요.”

해화가 설명하는 동안, 연우의 표정은 점점 어둡게 변해 갔다. 낙조는 그런 연우를 살피면서 발광하는 변종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만약 이 사태가 지속돼서, 가지를 치면 인간의 몸이 아니더라도 지들끼리 군단을 이룰 수 있다고요!”

해화는 소리를 높여 외쳤다. 손에 쥔 나뭇가지가 파르르 떨렸다.

“자그마치 만 천 칠백 년을 산 식물이에요. 가만히 서서 우리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고!”

잠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병사들 중 몇 명은 연우를 향해 욕을 뇌까렸다. 비난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생생했다.

“지금 들으신 그대로, 다 사실입니까?”

무흠이 연우에게 물었다. 연우는 아무 말 없이 한참 해화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모든 샘플을 제가 확인한 건 아니에요. 저 관목으로 교배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생명력이 끈질기니까, 자체적으로 공기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수명도 같이 늘려 보자. 이런 식이었죠.”

연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녀는 가만히 서 있다가 변종에게로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주사기를 팔꿈치 안쪽에 꽂아 넣었다. 노란 진액과 뒤섞인 검붉은 피가 빨려 올라왔다.

“전 세포화 시키는 일만 했어요. 그 외의 일은 몰라요.”

연우는 변종의 피가 뽑힌 주사기를 들고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해화는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으로 던졌다.

「지금 가능성이 있는 건 낙조 씨 피로 우리 모두 낙조 씨처럼 되는 거예요. 그럼 스스로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어요.」

보초를 함께 설 때 연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하니 몸이 섬찟 떨렸다. 군인들은 낙조의 상태가 어떤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니 함부로 연우의 말을 전할 수도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박박 씻으며 생각했다.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한 말일까?

*

세 번째 포획이었다. 정오였다. 비가 그친 이후 뜬 해는 너무나도 맑았다. 피를 뽑은 변종은 심장을 찔러 영원히 잠들게 만들었다. 낙조는 그 일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잡아!”

세 번째 변종이 문틈을 파고 들어왔을 때였다. 이불을 뒤집어씌우려 달려들었던 병사에게로 변종이 입을 크게 벌렸다.

“으아아!”

몸을 뒤로 빼느라 이불을 놓친 병사는 그대로 변종의 몸 아래에 깔렸다. 가까스로 변종의 한 손과 턱을 막긴 했으나 위에서 쏟아지는 힘을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쏴, 씨발, 쏘라고!”

노란 진액이 병사의 볼을 타고 뚝뚝 흘렀다. 깔린 병사가 욕을 지껄이며 소리쳤다. 줄을 잡고 있던 병사가 변종의 뒤에서 줄을 휘감았다. 묶기 위해 힘껏 당기니 변종이 조금씩 병사의 몸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됐다!”

상체를 포박한 병사가 안심한 순간이었다. 힘이 살짝 풀림과 동시에 변종이 득달같이 입을 벌리고 바닥에 누운 병사에게로 달려들었다.

탕! 탕!

총성이 연속 두 번 울렸다. 피와 노란 진액이 사방으로 터졌다.

“…….”

변종을 포박했던 병사는 몸을 덜덜 떨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총알 하나는 변종의 관자놀이를 제대로 뚫고 갔다. 변종은 더 이상 저항하지도, 병사에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남은 총알 하나는,

바닥에 누워 있던 병사의 목을 관통했다. 달려드는 변종의 턱을 막으려 상체를 살짝 일으킨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꺽, 헉, 어억…….”

목이 뚫린 병사는 아주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죽음의 문턱을 눈앞에 둔 채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옆으로 흘렀다. 피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야, 야! 가, 가만히 있어.”

변종을 포박했던 병사가 두 손을 내팽개치고 전우의 몸을 받쳐 들었다. 군복이 검붉게 젖어갔다. 전우의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리며 병사를 응시했다.

시선이 마주친 시간은 5초도 되지 못했다.

“…….”

더 이상 눈이 깜박이지 않았다. 몸이 덜컥거리지도, 가쁜 숨소리가 새어나오지도 않았다. 전우를 끌어안은 병사는 피가 흘러나오는 목을 붙잡고 멍하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소총을 갖고 사격 준비를 한 병사는 두 명이었다. 두 명 모두 총을 쐈고, 누구의 총알이 그를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방아쇠에 걸쳤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총을 쏜 병사 두 명은 벌벌 떨면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가 숨을 들이켰다. 어쩐지 목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중사님…….”

겨우 목을 쥐어짜 내뱉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꼭 고장 난 기계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도, 아니, 감각 자체가 없었다.

“너희가 죽인 게 아니다.”

어두운 낯빛으로 무흠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는 양손으로 한 명씩 병사들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서 벽으로 밀쳤다. 이미 둘의 시선은 흐리멍덩해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진액에 노출됐어. 손 쓸 도리가 없던 상황이었다.”

무흠은 자신의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그들을 다그치진 않았다.

낙조는 무흠과 함께 축 늘어진 둘을 밖으로 내보냈다. 움직임을 본 변종 몇몇이 따라왔지만 문까진 접근하지 못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오랜 침묵 끝에 낙조가 말했다. 무흠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낙조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오늘 저녁은……, 기도라도 하고 먹어야겠습니다. 하는 법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연우는 망가지지 않은 기계를 통해 변종의 혈액을 살폈다. 세 번째 포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한 마리를 더 잡자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게 됐다. 변종이 아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은 연구소 이후로 처음 보았다.

무엇이 맞는 일일까. 낮에 해화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가만히 서서 우리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인체에 기생하는 데에 익숙해졌다면, 새로운 생태계를 돌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언제나 정상적인 루트를 이탈하는 일이 생긴다. 만약 그 관목류의 변종이 한국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무리를 짓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다.

인간의 몸을 빌린다고 해서 모든 식물에게 인간의 피와 세포가 좋은 영양분이 된다는 법은 없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연우가 잠시 눈을 떼어 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

“저, 중사님.”

다음날 아침, 식사를 거른 무흠에게 낙조가 찾아갔다.

“변종 자료 챙겨서 청주로 가는 거……, 일부만 가는 거 말고 다 같이 가는 건 어떻습니까.”

낙조의 말에 무전기만 들여다보고 있던 무흠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다른 때와는 달리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했다. 낙조는 차분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곳은 아시다시피 안전하지 않아요. 청주, 거기는 제대로 지키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더 안전한 곳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

“모두를 받아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중사님과 병사 분들, 서연우 씨는 받아 줄 겁니다.”

“당신이랑, 저 남매는요.”

“근처 대피소로 가면 됩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안전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듭니다.”

낙조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말했다. 무흠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는 깍지를 낀 채 고민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낙조에게 대답했다.

“무전을 넣어 보겠습니다.”

낙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복도 끝의 사무실이었다. 대부분 휴식을 취하는 곳. 문을 조심스럽게 여니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모여 있었다. 각자 담요를 덮고 앉거나 누운 채 눈만 깜박였다. 세 번째 포획 사건 이후로 대화가 뜸해진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청주로 가는 거, 우리 다 같이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낙조가 안부를 물어보듯 무심하게 물었다. 곧장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여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거, 다들 알잖아요. 거기는 군대가 지키고 있고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까……, 뭐로 보든 여기보단 나을 겁니다.”

“우리는 안 받아 줄걸.”

해화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낙조는 슬쩍 고개를 들어 해화를 바라보았다. 며칠 새 잘 먹지 못해 살이 빠진 모습이 눈에 보였다.

“거기선 안 받아 주더라도 자료를 구해 왔으니까 갈 수 있는 대피소라도 알아봐줄 거야.”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그럼 여기에 계속 있게? 계획이 있어?”

낙조의 말에 해화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운은 벽에 기대어 있던 등을 떼고서 말했다.

“나는 갈래. 여기보단 낫겠지.”

“홍지운, 우린 안 받아 줄 거라니까?”

“아저씨 말대로 여기보단 낫겠지. 그리고 맨몸으로 가는 것도 아니잖아. 변종 피도 뽑아서 가는 건데.”

“그게 아니라……!”

해화는 입을 벌렸다가 다른 병사들의 눈치를 보고 말을 삼켰다.

연우는 군인들과 함께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다. 변종의 샘플도 확보했고 전염병이 퍼진 연구소에서 일한 연구원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과연 연우가 낙조를 순순히 놓아줄까? 그를 민간인처럼 여기면서 다른 대피소로 가게 보고만 있을까?

아직 낙조의 사정을 잘 모르는 군인들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 순 없었다. 해화는 답답하다는 듯 몸을 뒤로 젖혀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아, 씨발, 존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

“닥쳐.”

지운에게 한 소리 쏘아붙인 해화는 팔로 두 눈을 가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진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가릴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할까.

곧 무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틀 후에 청주로 출발하자는 얘기와 함께.

*

청주로 갈 동안의 식량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약품을 구해 오기로 했다. 연우는 다함께 청주로 간다는 소식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신도 그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녀가 과연 변종의 혈액으로 무얼 관찰하는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이면지에 무언가 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실험실은 연우 말고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 저녁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는 겁니다.”

비상구 앞에서 무흠이 말했다. 낙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1조는 낙조와 해화, 병사 두 명. 2조는 무흠과 지운, 병사 두 명. 이들을 제외한 남은 병사들은 연우와 함께 건물을 지키기로 했다.

돌아올 때까지 안 들키고 잘 숨길 수 있을까. 낙조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서렸다.

“왼쪽에 두 마리, 오른쪽에 하나 있습니다.”

바깥을 먼저 살핀 병사가 조용히 속삭였다. 무흠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이 왼쪽을 맡을 테니 오른쪽으로 먼저 나가라 말했다.

문을 살짝 열고 무흠이 앞서 나갔다. 그는 눈 깜짝할 새에 뒤돌아 있는 변종의 목을 휘감은 그대로 꺾었다. 기척도 없이. 남은 하나는 지운이 망치로 머리를 깨뜨렸다.

뒤이어 나선 낙조는 붕대로 칭칭 감은 주먹을 변종의 턱에 꽂았다. 그대로 넘어진 변종이 진액을 질질 흘리기도 전에 발로 얼굴을 밟아 터뜨렸다.

“실력자시네요.”

병사 한 명이 뒤에서 작게 감탄했다. 낙조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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