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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13화 (13/202)

13화. 감염병 관리 본부

지운은 기꺼이 낙조에게 침대를 양보했다. ‘힘든 일 많아 보여서, 아저씨가 써.’ 코멘트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막상 몰려드는 피곤함을 거부할 순 없었다.

침대에 눕고 나선 생각보다 오래 눈을 감지 못했다. 포근한 이불, 따뜻한 옷, 조용한 새벽. 과연 자신이 24시간 동안 보고 느꼈던 게 확실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오른팔부터 손까지 매만져 보며 느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낙조 씨는……, 짧게 설명하자면 성공한, 그러니까, 네, 성공한 결과인 거죠.」

정말 그들이 바라던 게 자신의 모습일까? 낙조는 변종을 때리고 해치우던 순간까지 떠올리며 고민했다.

한참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고 있을 때, 자는 줄 알았던 지운이 문득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안 자지?”

“……넌 왜 안 자냐.”

“지금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일까 싶어서.”

“그래서 설레?”

“꿈이면……, 차라리 백악기 시대에 눈 떴으면 좋겠다. 괴물보단 공룡이 나을 것 같아.”

그러고 지운은 말이 없었다. 낙조는 창문 너머로 공룡의 눈이 지나가는 것을 상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눈이 뜨인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공간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일까, 긴장을 모두 놓아 버렸는지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도 모르고 잠들었었다.

낙조는 빼놓았던 안경을 다시 쓰며 몸을 일으켰다. 바닥엔 지운이 아직 깨지 않은 채 잠꼬대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운의 머리맡에 충전기에 꽂아둔 휴대폰이 보였다. 낙조는 침대에서 내려와 휴대폰 스크린을 두드렸다. 밝아지는 화면 위로 뜬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정오가 지나도 한참 뒤에 눈을 뜬 거였다. 바깥에서도 이렇다 할 소음은 없었다. 낙조는 거실로 나가 보았다. 누군가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단정했다.

해화의 방문은 닫혀 있었다. 낙조는 먼저 화장실에서 가볍게 샤워를 했다. 물소리에 깼는지 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오자 해화가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우리 완전 미쳤어. 지금까지 자고.”

해화가 허공을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그녀는 아직 멍한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거실에 있던 자그마한 TV를 켰다.

“…….”

조용히 시선이 맞물렸다. 화면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까만 화면에 ‘경고 : 집, 혹은 내부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감염자의 심장과 머리를 노리십시오.’라는 문구만 떠 있었다.

다른 채널로 돌려 봐도 마찬가지였다. 해화는 급히 방에서 휴대폰을 갖고 나오더니 낙조에게 말했다.

“폰도 안 터져.”

우리가 잠든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낙조는 급히 부엌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거리는 조용했다. 한정된 시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그랬다.

해화가 지운과 연우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인 채 거리를 들여다보았다.

“돌겠네.”

바닥에 엎어진 사람 하나가 보였다. 그의 손발은 나무껍질로 뒤덮여 있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에선 뿌리가 돋아 아스팔트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움직임에 낙조는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무슨, 무슨 일 있어?”

잠이 덜 깬 채로 방에서 나온 지운이 물었다. 연우는 해화의 표정으로 이미 상황 파악을 한 듯 조용했다.

“여기도 뚫렸어.”

낙조가 지운을 향해 말했다. 지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흘렸다.

“본부는 무사할까요?”

해화가 연우에게 물었다. 연우는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일단 가 보는 게 좋겠어요. 군대가 어디까지 벽을 쳐 놨을지 모르니까.”

연우의 말에 각각 흩어져 짐을 쌌다. 물과 소분할 수 있는 먹을거리, 겉옷. 지운은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냈다.

“야구 배트보다 나을 것 같잖아.”

야구 배트는 연우가 대신 건네받았다. 해화는 골프채를 쥔 채 부엌에서 식칼을 하나 꺼내왔다.

“그건 우리한테도 좀 위험한데.”

낙조가 칼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해화는 꿋꿋하게 가방에 칼의 손잡이가 위를 향하도록 넣었다.

오토바이가 있는 곳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길가에 있는 변종도 하나뿐이었다. 엎어져 있던 변종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몸이 굳어있었다.

“존나 조용하네.”

오토바이에 시동을 켜며 지운이 중얼거렸다. 곧 해화의 오토바이가 먼저 길을 빠져나갔다. 본부는 수원시에 있었다. 대략 삼십 분 정도만 아무 일 없이 간다면, 세 시쯤 도착할 터였다.

도로는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여기저기 가로등을 박거나 중앙선을 침범한 차들과 넘어진 자전거, 오토바이 등 멀쩡한 것이 몇 개 없었다.

변종이 되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을 덩그러니 뜬 시체는 차에 깔려 있거나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해화는 그것들을 피해 도로를 달렸다. 신호등은 계속해서 노란 불만 깜박여댔다.

“제 3별관, 3별관…….”

정문은 한쪽 문만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누군가 힘으로 뚫고 들어간 것처럼 손잡이 부분이 많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틈을 비집고 들어간 넷은 연우의 말대로 ‘제 3별관’을 찾았다.

“저기.”

지운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차장엔 군사용 트럭인 두돈반이 서너 대 주차돼 있었다.

“군인이 왔어요.”

연우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린 후 겁도 없이 일층으로 달려갔다.

그 앞을 겨우 가로막은 낙조가 연우를 달랬다.

“천천히. 기동타격분대나 오분대기조가 왔을 거예요. 사태가 이러니까. 근데 일단 진정해요. 그 사람들이 지금 괜찮지 안 괜찮은지도 모르잖아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잖아요, 낙조 씨.”

“그러니까 더 조용히 해야 한다고요. 알면서 왜 그래요. 변종 걔네들 소리에 예민한 거 아는 사람이.”

낙조는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연우가 어떤 마음을 갖고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지는 않았지만 섣불리 행동하는 건 이 모두를 죽일 수도 있었다.

해화와 지운에게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었다. 이곳까지 빠르게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저 둘 덕분이었다. 그런 둘을 어처구니없게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연우는 숨을 잠시 고르는가 싶더니 진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낙조 또한 고개를 끄덕인 후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위층이에요.”

연우가 속삭였다. 낙조는 계단을 잘 살핀 후 천천히 한 걸음씩 올라섰다.

“……위에 하나 보여요.”

낙조가 벽에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후 속삭였다. 망치를 든 지운이 천천히 낙조의 곁으로 다가와 위쪽을 확인했다.

전형적인 변종이었다. 나무껍질로 뒤덮인 피부, 노란 진액을 흘리는 입가, 기이한 움직임.

지운은 이번엔 자신이 해 보겠다며 낙조를 앞질렀다. 옷을 잡아당길 새도 없었다. 그는 두세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서더니 복도 쪽을 바라보고 있던 변종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퍼억-!

정확히 머리를 맞힌 망치에서 자질구레한 진동감이 올라왔다. 지운은 맥없이 쓰러진 변종을 확인하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뒤집어 까진 흰 눈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키어어어억…….”

이내 변종은 피를 토하듯 노란 진액 덩어리를 두어 개 뱉어냈다. 지운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뒤로 주저앉았다. 끔찍한 냄새가 올라왔다.

“카아아악!”

“하아악, 키아아악.”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도 잠시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낙조가 지운을 끌어당기려 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 변종의 울음소리가 뒤섞인 채 울렸다.

“뭐……, 예요?”

연우가 중얼거렸다. 해화는 말없이 골프채를 꽉 쥐고서 복도를 휘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던 것처럼 보인 복도로 하나둘씩, 변종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았어. 이거 때문이야.”

해화가 골프채로 진액 덩어리를 쳐내며 말했다. 덩어리는 반으로 쪼개져 차가운 복도 위를 적셨다.

“신호를 주고받네. 이걸로 대화하는 거야.”

해화는 양쪽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오는 변종들을 보며 골프채를 쥐었다.

“칼을 가져올걸 그랬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낙조는 짧게 한숨을 내쉰 후 오른손 손등에 진액을 묻혔다. 곧 오른손이 기다렸다는 듯 잎사귀를 펼쳤다. 고속도로에서처럼 손바닥에 무언가 뭉쳐있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둘둘, 왼쪽 오른쪽으로 나눠서 맡아.”

해화가 말했다. 무리를 발견한 변종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해화는 몇 걸음 더 앞서서 골프채를 휘둘렀다.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진 않았지만 얼굴의 반 정도는 확실하게 뭉개졌다.

낙조는 연우와 오른쪽을 맡았다. 많이 쳐 봐야 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려오는 걸 보니 연우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많아 보였다.

“서연우 씨, 일단 뒤쪽 맡아요.”

낙조는 달려오는 변종의 머리를 한 방 갈기며 말했다.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낙조가 피한 변종은 연우가 배트로 두들겨 팼다. 다만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기 때문에 낙조가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을 노리라고 한 건 왜지?’

문득 뉴스에서 들었던 말이 걸렸다. 여태껏 봐왔던 좀비영화나 게임에선 항상 머리를 가격해야 했다. 그런데 이 변종의 약점은 심장이란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죽은 게 아니라서?’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낙조는 일부러 심장만 피해가며 변종의 머리를 터뜨렸다. 물렁한 머리가 터지는 감각은 여전히 불쾌하기만 했다.

‘죽은 게 아니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처리한 변종들이 죽은 게 아니라면. 낙조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달려오는 변종의 가슴을 발로 찼다. 나동그라진 변종이 다시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설 준비를 했다.

“제가 할게요.”

뒤에 서 있던 연우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낙조는 잠시 팔로 그녀의 앞을 막았다.

“잠깐만요.”

혼란에 갇힐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낙조 씨?”

탕!

탕, 타당!

이명이 들리는 듯해 잠시 몸을 주춤거리고 있을 때, 양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낙조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본 것도 그 순간이었다.

총알은 낙조의 무리가 아닌 변종의 머리,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픽 쓰러지는 변종을 바라보던 낙조가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쪽에 무장한 군인 여러 명이 총을 겨눈 채 서 있었다.

낙조는 황급히 오른손을 등 뒤에 감춘 채 한 걸음 물러났다.

군인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한 후 널브러진 변종들을 밟으며 천천히 낙조에게로 다가왔다. 반대편에서도 군인들이 해화와 지운을 한쪽으로 몰고 있었다.

“백 중사님, 민간인입니다.”

가까이 다가온 군인이 무리를 살펴보고 조용히 얘기했다.

군인들 사이에서 서른이 조금 넘어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중사는 낙조와 그 무리를 잠깐 훑어보더니 총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왜 여기로 왔습니까.”

그는 190을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받으며 갖춰진 듯한 각진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본부라면……, 대책이 있을 줄 알고요.”

연우가 말했다. 그녀는 아수라장이 된 복도를 잠시 둘러보다가 말을 덧붙였다.

“저는 연구원이에요. 질병관리본부라면, 수도권에 있는 곳이니까, 아직 안전할 줄 알았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정말 괜찮았으니까…….”

연우의 말을 듣던 중사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새벽에 방어벽이 뚫렸습니다. 감염자였는데, 증상을 보이지 않아 통과됐다가 이후에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수도권에 들어온 놈들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은 됩니다.”

“그럼, 여기도 다…….”

“보시는 대로. 저도 제 병사들을 잃었습니다. 남은 친구들이 이들뿐이죠.”

중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날카로운 눈매에 비해 말투는 부드러웠다. 중사의 말에 연우가 허탈하게 한숨을 터뜨렸다.

“여기 사람들도, 죽었나요? 아님, 변종이 됐다거나…….”

“감염된 자도 있고, 탈출한 자도 있습니다. 모두 확인된 건 아닙니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말은 안 하는군. 낙조는 오른손이 완전히 돌아온 느낌이 들자 팔을 내렸다.

“이곳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여기서 대기해야 하지만, 순찰 결과 변종이 꽤 많아 몸을 숨기는 데엔 어려우실 겁니다.”

중사는 요점만 짚어 얘기했다. 문이 열린 이상 변종은 계속해서 들어올 것이고, 이들은 이곳에서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 버텨 내야 한다. 낙조는 중사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먼저 시선을 떼어 냈다.

심해에 잠긴 배처럼 적막하고 어딘가 음험한 느낌이 도는 눈동자. 눈빛만으로 압도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비 와.”

가만히 중사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해화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창문에 빗방울이 하나둘씩 빗금으로 그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해화는 창문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찬 기운을 고스란히 느꼈다. 곧 쏴- 하고 세찬 비바람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식물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지.”

해화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과 햇빛.”

“…….”

“비가 그치고 해가 뜬다면. 잎이나 꽃이 피어나지.”

창문에서 손을 떼어 낸 해화가 모두를 둘러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자라날 거야. 그 괴물들, 자라기 시작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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