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전세계 재난 선언
빛이 있으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나 빛이 없으면 땅굴과 다를 것이 없다. 헤쳐 나가야 하는 방향조차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 파묻히지 않으려면.
터널의 불빛은 제각각이었다. 역주행을 하는 탓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간간이 스치는 차들이 클락션을 울렸다.
터널의 공기는 생각보다 텁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터널만 진입하면 차창을 올리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먼지가 많아.’ 핸들을 잡은 이가 그랬었지.
고덕 IC에 진입했다. 갓길로 빠져 속력을 내는 도중 휴게소에서 빠져나오는 차들이 보였다.
천천히 속력을 줄인 지운이 완전히 오토바이를 멈춘 채 말했다.
“폰 배터리가 없어. 혹시 모르니까 충전 좀 하고 가면 안 돼?”
연우도 덩달아 해화의 휴대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병원에서 봤던 뉴스 이후로 새로 뜬 기사는 없었다. 무리는 휴게소 출구로 들어섰다.
면천휴게소는 ‘휴게소’라고 불리기엔 열악한 면이 있었다. 졸음 쉼터와 비슷할 정도였다. 때문인지 주차된 차가 얼마 없었다. 지운은 해화의 휴대폰까지 챙겨 화장실에 콘센트가 있나 보겠다며 위쪽으로 올라갔다.
낙조는 고장 난 자판기 앞에 서서 먼지가 가득 낀 진열 상품들을 바라보았다.
해화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동전을 손바닥 위로 몇 개 털어 냈다.
“커피는 되는 것 같은데. 블랙, 아니면 밀크?”
“나한테 물어보는 거냐?”
“블랙, 밀크?”
“밀크.”
“당 떨어질 때긴 하지.”
해화가 버튼을 누르자 종이컵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우도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뜬 상태였다.
충전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다. 낙조는 해화가 건넨 종이컵을 받아들고 텅 빈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누나!”
이젠 정적이 익숙하지 않았다. 단 커피를 마시면서 저녁으로 접어드는 햇빛을 맞는데, 화장실에서 지운이 튀어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연우도 화장실에서 급히 손을 씻고 나왔다. 지운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밀면서 숨을 골랐다.
“지금, 지금 뉴스 나온 건데.”
지운이 내민 화면 안엔 ‘긴급속보’가 적힌 뉴스 타이틀이 나오고 있었다.
화면 안엔, 추락한 헬기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곧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기도 평택서 헬기 추락……
―탑승자는 세 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모두 추락 후 숨졌으며, 소방당국은……
“세 명밖에 안 탔을 리가 없어요.”
연우가 사색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화면은 이내 어떤 거리에서 시민이 찍은 듯한 영상으로 바뀌었다.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 속에선 변종이 사람을 향해 돌진하고, 입으로 옆구리를 물어뜯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연구소에서 보았던 장면과 흡사했다. 피해자의 얼굴과 물린 부분은 모자이크돼 있었다.
―감염 증상을 보인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잇따라 신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곧 질병통제예방센터인 CDC에서 공식적으로 이 사태에 대해 입장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배터리 부족 : 20%’
잠시 화면이 멈추더니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지운은 굳어있던 손을 움직여 알림창을 닫았다.
모두가 멈춘 화면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침묵을 깬 건 연우였다.
“대책이……, 있을 리가 없어요.”
“왜요, 누나?”
지운이 조금 울상을 지은 채 물었다.
“……해화 씨랑 지운 학생은 처음 듣는 얘기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들어요. 이 전염병은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실험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거예요. 실패의 시나리오에 전염병은 없었어요.”
낙조는 묵묵히 연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디건 사이로 보이는 핏자국이 지난 새벽을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그럼 이 사람은요?”
해화가 낙조를 가리키고 물었다. 쟤는 호칭을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야. 낙조는 안경알 밑으로 손을 넣어 눈가를 문지르며 인상을 구겼다.
“낙조 씨는……, 짧게 설명하자면 성공한, 그러니까, 네, 성공한 결과인 거죠.”
성공한 결과.
낙조는 잠시 눈을 깜박였다. 나를 특정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인가.
“그럼 원래 다 아저씨처럼 손이 막, 이렇게 변하는 거였어요?”
“아뇨, 아뇨. 그건 아니고, 가습 식물 세포를 넣어서……, 아, 그래. 아가미! 인간한테 아가미 같은 걸 만들려고 했어요.”
“근데 왜 아저씨는 손이 저렇게 된 거예요?”
“성공하긴 했는데, 뭐랄까, 어……, 다른 부분에서도 변화가 생긴 것뿐이에요. 정확하게 알려면 검사를 해봐야 해요.”
지운의 질문 폭탄에 연우는 조금 난처해하며 대답했다. 그동안 해화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 화면 떴다.”
생중계였는지 잠시 광고만 나오던 화면이 뒤바뀌었다. 단상 하나가 중앙에 서 있었고, 뒤쪽엔 미국 국기가 걸려 있었다.
화면 밑부분엔 자막이 깔렸다. 수어로 통역하는 이도 보였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화면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 퍼지고 있는 전염병은 아주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나무껍질 같은 피부를 갖고 있으며, 식물의 즙 같은 진액을 토해냅니다. 감염 경로는 피나 침 등의 분비물로 전염되는 게 일반적이나,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플랜트 팬데믹’이라 부르며, 지금부터 세계가 국제적 재난을 맞게 됐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립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을 읽어 나가던 연우가 먼저 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기둥에 등을 지고 쪼그려 앉더니 조용히 말했다.
“CDC가 포기하게 되면, 진짜 재난인 거예요. 재앙이지, 재앙.”
“……공식 입장이 이게 다인 거야?”
지운이 황망하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가족과 친구, 연인의 안위가 궁금하더라도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외출을 삼가시길 바랍니다. 만약 감염자와 대치하게 됐을 시, 무조건 내부로 피하거나 그들의 머리, 혹은 심장을 노리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머리, 또는 심장입니다.
생중계 동영상은 조금씩 끊겼으나 자막으로 나오는 문구로 인해 상황은 파악할 수 있었다. 멍하니 앉아 허공을 바라보던 연우가 말했다.
“이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해요. 모든 게 멈출 일만 남았으니까.”
질병관리청에 가겠다고 말하던 연우의 눈빛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낙조는 가만히 연우를 내려다보다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일단 출발하죠. 서울 문 닫기 전에.”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해화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조금 지쳐 보였지만 별로 내색하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해화의 말에 지운도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오토바이를 세워 둔 쪽으로 걸어갔다. 연우는 꿰맨 부분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그 뒤를 따라갔다.
“야.”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해화를 부른 낙조가 물었다.
“너 몇 살이냐?”
“군대야 여기가? 너 몇 기냐, 이렇게 물어보게.”
“몇 살이냐고.”
“서른.”
해화는 별 감흥 없이 대답하곤 자리를 떴다.
어……, 누나였구나. 내가 잘못했네.
낙조는 자리에 남아 머쓱하게 쓰레기통을 바라보다가 지운의 부름에 발걸음을 돌렸다.
*
아직 휴대폰과 방송이 끊기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수도권은 안전할 수 있을까? 본부는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까? 연우는 오토바이가 덜컹거릴 때마다 욱신거리는 상처에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톨 게이트에서 다시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차는 여전히 막혀 있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볼 정도로. 몇몇 차는 비어있었다. 종종 짐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변종은 없었다. 아니면 너무 빠른 속도로 달렸기 때문에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수도권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비봉 IC까지 통과하여 수원 쪽으로 빠지려는데, 큰 대로변에 여러 차가 길을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앞서가던 차들도 서서히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뭐야.”
지운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저 멀리 바라보았다. 불이 계속해서 반짝이는 것이, 경찰차 같기도 했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니 보이는 것은 구급차와 경찰차였다. ‘저게 왜?’라는 생각도 잠시, 앞차를 멈춰 세운 경찰 곁으로 한 남자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남자는 소형 플래시로 운전자의 동공을 확인하고 몇 개의 질문을 하더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경찰은 반짝이는 지휘봉으로 차를 보냈다.
지운과 낙조 차례였다. 해화와 연우는 옆 차선에서 먼저 걸린 상태였다.
“검문 있겠습니다.”
하이바를 올린 지운이 물었다.
“무슨 검문이요?”
“뉴스 안 보셨습니까. 전염병 때문이죠.”
경찰은 수없이 답했다는 듯한 얼굴로 무심하게 말했다. 곧 소형 플래시를 쥔 남자가 다가왔다.
“눈 좀 보겠습니다.”
그는 지운과 낙조를 번갈아 보며 단조롭게 말했다. 곧 지운의 눈에 플래시를 비춘 후, 낙조에게로 플래시를 옮겨갈 때였다.
“선생님, 옷에 그거 뭡니까?”
곁에 있던 경찰이 낙조를 향해 물었다. 그가 지휘봉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낙조가 입고 있는 가디건 사이, 환자복이었다. 핏자국이 말라비틀어진.
“아…….”
변종과 대치하다 벌어진 상황이다? 피가 튀었지만 내 몸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수많은 대답이 떠올랐지만 그 어떤 것도 적합하지 않았다.
“경위님!”
대답을 주저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 경찰을 불렀다. 해화와 연우를 검문하고 있던 다른 경찰이었다.
그는 낙조 쪽으로 다가와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오토바이 뒤에 탄 여자, 그 연구소 사람이라는데요.”
“뭐?”
“국립……, 뭐였더라. 아무튼 뭐, 연구원이랍니다. 거기서 탈출했다는데, 증상은 없어요. 근데 좀…….”
“어, 어, 내리라 그래.”
보고를 받은 경위가 곧장 말을 꺼내자마자 낙조가 고개를 돌렸다. 겁에 질린 연우의 두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야, 홍지운! 밟아, 씨발!”
해화가 바락 소리를 지르며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지운은 대답도 없이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어, 어!? 거기 안 서!? 야, 야! 따라가!”
뒤쪽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다. 낙조는 지운의 어깨를 꽉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헐레벌떡 차에 오르는 이가 보였다.
“안 잡힐 수 있어?!”
헬멧을 쓴 지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지운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까지 달렸던 건 장난이었다는 듯, 도로를 가로지르는 속도는 엄청났다.
해화의 오토바이는 차가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골목을 찾아 쏙 빠졌다. 해화의 오토바이보다 작은 지운의 오토바이 또한 잘 들어설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각 지역에 배치된 경찰들한테 무전 돌리면 좆되는 거 아니야? 낙조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거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속도를 겨우 이겨 내고 있었다.
CCTV의 위치까지 다 아는 것처럼, 골목과 골목을 돌고 돌아 달렸다. 낙조는 쥐고 있는 비닐봉지가 찢어질 것 같은 스피드에 겁이 나면서도 속이 시원함을 느꼈다.
해화의 오토바이가 멈춘 곳은 가로등도 몇 개 없는 길목이었다. 그녀는 녹슨 자전거 사이로 비어있는 곳에 오토바이를 주차했다.
“홍지운, 넌 번호판 떼고 올라와.”
“하여간 힘든 건 다 나만 시켜.”
“시키면 잘하잖아. 잘하니까 계속 시키지.”
티격대면서도 둘은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해화는 낙조와 연우를 어느 5층짜리 빌라로 안내했다. 신축은 아니었지만 나름 깨끗한 곳이었다.
“내 생각엔 잘 따돌린 것 같은데, 잡혀도 할 말은 있잖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으며 해화가 말했다. 꺼진 거실의 불을 켜자 금세 안이 환해졌다.
“화장실 안방에 하나 더 있으니까 먼저 씻어요. 나는 짐 정리 좀 할게.”
“여기가 해화 씨 집이에요?”
“아, 홍지운이랑 같이 살아요. 언니 그동안 잠 제대로 못 주무셨죠? 오늘은 편히 주무세요. 오늘만큼은.”
모든 게 가지런히 정리된 집안이 어색했다. 낙조는 어정쩡하게 신발장 앞에 서 있다가 가디건을 벗었다.
“당신은 홍지운 옷 입어. 그건 내일 버리거나 태우고.”
“어…….”
핏자국이 선명한 환자복을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살갗 위에도 배겨 있는 것 같아, 낙조는 욕실로 들어가 곧장 옷을 벗었다. 그제야 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