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가족이었던 사람들
주차장 구석에 포니테일로 묶은 곱슬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담배를 피던 중이었던 듯싶었다. 낙조는 천천히 해화에게 걸어가며 생각했다.
“너희 남매는 도대체 머리에 얼마를 쓰는 거냐.”
해화는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물고 있다가 낙조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 할 때마다 이십오만 원?”
생각보다 안색이 나쁘지 않았다. 해화는 묶은 부분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지운은 오렌지 색, 해화는 애쉬 브라운. 오묘한 갈색이 그녀의 손가락에 감겼다. 낙조는 해화의 대답에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머리에 십만 원이 넘어. 너 호구 된 거다.”
“아, 촌스러워. 저리 가.”
해화는 고개를 돌리며 손을 휘저었다. 낙조는 조금 간격을 두고 쪼그려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나칠 정도로 고요한 것이 이젠 익숙했다.
“어디로 갈 거야.”
적막을 깬 건 낙조였다. 해화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울 가게.”
“따라오게?”
“우리 원래 서울 살거든? 잠깐 할머니 보러 내려온 거야.”
해화는 연기를 내뱉으며 꽁초를 휙 집어 던졌다. 다 죽어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면서 낙조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플로리스트라며.”
“홍지운이 그래?”
“니가 보기엔 저 변종들, 어떤 식물에 가까운 것 같냐.”
“가까이서 들여다본 적이 있어야 알지. 비슷하게 생겨도 어디에 잎이 나느냐에 따라 다 다른데.”
해화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낙조 자신도 지금까지 변종을 관찰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으니. 아니, 그럴 틈을 주면 안 됐었으니까.
“아저씨. 어, 누나도 여기 있네. 저 누나 일어났어.”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지운이 다가와 말했다. 낙조는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은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낙조 씨.”
아직 반쯤은 풀린 눈으로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박이며 연우가 중얼거렸다.
“고생했어요.”
낙조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곤 최대한 다정해 보일 수 있는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짐만 되고.”
“학생한테 고맙다고 얘기해요. 고생 많이 했으니까.”
낙조는 지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연우는 느리게 시선을 옮겨 지운을 바라보았다. 지운은 두 손을 휘저으며 고개까지 저어대고 있었다.
“어우, 아니에요, 누나.”
“고마워요.”
비록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말마저 거절할 순 없었다. 지운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
병원 옆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서 며칠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남은 생수통은 두 개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목을 축일 만한 것은 모두 챙겨야 했다. 카운터 밑에 있던 봉투에 담은 후 가게를 나서기 직전이었다. 낙조는 텅 빈 카운터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두 장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름은 짧은 사건과 사건 사이에 들은 것으로 대충 알고 있었으나 어쩌다 한 팀이 된 이상 통성명은 필요했다. 넷은 조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간단히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휴대폰이 없으면 어떻게 연락해?”
해화가 문득 중얼거렸다. 연우와 낙조는 급히 연구소를 빠져나오느라 휴대폰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전산망이 뚫려 있을 때까진 휴대폰이 필요하잖아.”
말없이 차가운 소시지를 까던 낙조가 연우 대신 대답했다.
“나는 연락할 사람 딱히 없어. 연우 씨 한 번씩 빌려주고 해.”
“당신이 내 거 써. 나는 홍지운이랑 같이 쓰면 되니까. 홍지운, 할머니랑 연락했어?”
해화는 낙조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말없이 소시지를 씹으며 바라만 보고 있자, 해화는 연우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곤 낙조를 흘겨보았다. 지운은 해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도 잘 나온대.’ ‘다행이네.’ 해화는 조금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 기사 떴어.”
쉬지 않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지운이 화면을 모두에게 내밀어 보였다.
―속보입니다. 전라북도 익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증상으로는 심한 피부 과각화, 어지럼증, 구토 등이 보고되었으며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공격성을 보입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피소로 피하시거나 가급적 건물 내부에 있는 것을 당부드리며…….
앵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직 수도권에서 발생한 피해는 없었다. 낙조는 지도 어플을 켜 현재 위치를 파악했다. 아직 전라북도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호남고속도로는 이미 막혔을 거고, 국도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
“지역을 폐쇄할지도 몰라요.”
가만히 헤드에 기대어 앉아있던 연우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연우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충청도까지 전염병이 확산됐고, 수도권은 아직이라면……, 지방과 연결된 모든 교통수단을 막을 거고, 지역도 못 넘도록 막을 거예요. 수도를 지키는 게 우선이니까.”
“결정을 내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네요. 이 사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지도 알지를 못하니까.”
“일단 출발하는 게 낫겠어요. 가는 길에 기름도 좀 넣고.”
동영상 SNS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물어뜯는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반응은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팔리던 좀비 마약이 아니냐’라는 댓글에선 이미 테러가 일어나고 있었다.
“교통 상황 보면서 최대한 빨리 올라가자고.”
낙조는 연우를 뒷좌석에 태운 후 창문을 통해 해화에게 말했다. 해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헬멧을 썼다.
*
주유소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로 보이는 곳은 텅 비어 있었다. 주변을 살피며 주유구를 열고선 차에서 내렸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초입 부분이었다. 간혹 몇몇 차들이 쏜살같이 주유소 옆을 지나갔다.
기름이 완전히 찰 때까지 기다리며 도로를 바라보는데, 웬 승합차 하나가 빌빌거리며 주유소 안으로 들어섰다.
낙조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지운을 불러 오토바이를 지키라 속삭였다.
승합차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낙조를 노려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체격이 꽤 크고 몸집 자체가 두꺼워 보이는 남자였다.
낙조는 뒷좌석에 탄 연우가 보이지 않도록 몸의 각도를 튼 후 시선을 계속해서 붙잡아두고 있었다.
“아저씨.”
미리 주유를 끝낸 지운이 오토바이를 끌고 다가와 낙조를 불렀다.
“저 차, 자꾸 들썩거리는데.”
지운이 말한 대로 승합차를 유심히 보았다. 승합차는 간간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진동이 심한 곳은 트렁크 쪽이었다.
“뭘 보쇼.”
너무 시선을 두고 있던 탓이었는지, 남자가 성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닙니다. 서울로 가시나 봐요.”
“…….”
“여보, 여보!”
남자는 말없이 낙조와 지운을 번갈아 보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폭발할 것 같이 보이는 남자의 시선에 낙조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조수석에서 쓰러지듯 여자가 뛰쳐 나왔다. 여자의 몸엔 피가 이리저리 묻어 있었는데, 그녀는 남자에게 매달려 승합차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애들, 애들이……!”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승합차로 달려갔다. 트렁크를 열자 온몸이 청테이프로 감긴 남자애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물점 승합차였는지 공구 몇 개가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애는 발까지 묶인 채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낙조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지운의 몸을 오토바이 쪽으로 밀었다.
“아이고, 세용아! 물 마셔, 물!”
여자는 바닥을 기어 아들의 목을 받쳐 안았다. 아들은 계속 몸을 떨며 노란 진액을 토해 냈다. 입가로 질질 흐르는 진액이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여보, 물이 없어. 물이.”
여자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남자는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다가 낙조에게로 뛰어왔다.
“물, 물 있습니까?”
“…….”
모르는 척 마실 것을 주어야 할까? 이들은 자식이 전염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알기 때문에 이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거고?
아는 것이다.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몸을 감아 뒀겠지.
쉴 새 없이 생각이 몰아쳤다. 낙조가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자, 남자는 낙조의 멱살을 쥐고 소리쳤다.
“물 있냐고!”
“저대로 서울까지 데리고 갑니까?”
“닥쳐! 물! 물 내놔!”
낙조의 멱살을 튼 두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악!”
연우가 나오지 못하도록 뒷문을 몸으로 누르고 있던 차에 승합차 쪽에서 비명이 울렸다. 남자와 낙조의 시선 또한 그곳으로 향했다.
아들을 안고 있던 여자의 몸 위로 딸로 보이는 여자애가 뛰어들었다. 청테이프가 모자랐는지, 여자애를 묶고 있던 테이프는 일반 투명 테이프였다. 변종의 힘을 너무 우습게 본 탓이었다. 여자애는 테이프에서 벗어난 한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잡았다.
“여보! 여보!”
남자가 황급히 승합차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내의 얼굴은 노란 진액으로 뒤덮인 후였다. 딸아이는 몇 번 더 진액을 토해 내곤 바닥에 뒹굴었다. 남자는 거리를 조금 두고 서서 아내와 자녀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저씨, 가요.”
지운이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여보……, 여보!”
남자는 한참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운전석으로 뛰어 올라탔다. 아내가 진액을 뒤집어쓴 채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내리지 않았다. 곧 시동이 걸렸고, 승합차는 뒤뚱거리며 주유소를 떠났다.
“아……, 아아아…….”
승합차가 떠난 곳을 바라보며 여자가 울음도, 괴성도 아닌 소리를 내질렀다.
한쪽 팔을 빼낸 변종이 팔꿈치로 바닥을 기어 낙조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다만 온몸이 테이프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속도는 느렸다.
“아저씨!”
지운이 낙조를 불렀다. 낙조는 차에서 기대있던 몸을 떼어 냈다.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 뒷문이 열렸다.
“저대로 두고 갈 거예요?”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는지 연우가 곧장 낙조를 다그쳤다. 낙조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이미 진액을 뒤집어쓴 여자와 변종이 되어 버린 자녀들. 도와준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다. 낙조는 냉담하게 말하곤 운전석에 올랐다.
사이드미러에 여자와 변종들의 모습이 비쳤다. 여자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망치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녀는 멍하니 망치를 들고 서서 테이프에 감긴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낙조는 천천히 시동을 걸면서도 사이드미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퍽, 퍽. 퍽!
곧 여자가 아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진액과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기어를 쥔 채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곧 여자가 낙조의 차를 따라 기어오고 있는 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수많은 결말 중 빤한 결말 하나를 본 건지도 모른다. 낙조는 고속도로에 진입하며 생각했다. 자신의 머리를 칠 용기는 남아있을까?
*
차는 잘 가나 싶었던 생각이 무색할 만큼 금세 느려졌다. 오토바이를 타는 해화와 지운은 차의 틈새로 빠져나가 낙조와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그냥 오토바이 탈걸 그랬나 봐요.”
연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낙조는 한숨을 푹 쉬고서 핸들을 꽉 쥐었다. 며칠 분의 식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를 선택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고속도로에 갇히고 말 것만 같았다.
“어, 낙조 씨. 지운 학생 전화 왔어요.”
조금씩 움직이는 차 안에서 입술을 씹어 대고 있을 때, 해화가 건네준 휴대폰이 울렸다. 홍지운, 이라고 단조롭게 적힌 이름을 보고 연우가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나 여기 앞쪽인데, 여기 사고가 났어.
“뒤로 와! 니 누나랑 같이!”
―아씨, 근데 피해자분이 숨을 지금 안 쉬셔서…….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지운의 목소리엔 망설임이 가득했다. 낙조는 핸들에 이마를 박았다가 차에서 내렸다.
“연우 씨, 걸을 수 있겠어요?”
“네. 괜찮아요.”
낙조와 연우는 갓길로 빠져 앞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지운의 커스텀 된 오토바이가 보였다. 옆엔 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지운이 있었다.
“홍지운!”
이름을 불렀지만 지운은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피해자의 흉부를 내리눌렀다.
“차는?”
해화가 낙조와 연우를 향해 물었다. 낙조는 겨우 챙긴 두 봉지의 식량을 내보였다.
“오토바이가 나을 것 같다. 부탁 좀 하자.”
해화도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지운이었다.
“홍지운, 가야 된다고!”
“삼 분만, 아니, 오 분만 더 해보고.”
“야, 잠깐만. 왜 한 명밖에 없어.”
사고 현장을 둘러보던 낙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제야 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사고가 난 차량은 총 세 대였다. 3중 추돌 사건. 그러나 지운이 맡은 피해자는 한 명뿐이었다.
적어도 두 명은 더 있어야 하는데.
“살려 줘! 문 좀 열어 줘요!”
소름이 발에서부터 올라왔다. 그 적막함을 깬 건 앞쪽에서 들려오는 외침이었다. 와이셔츠에 피가 튄 젊은 남자가 멈춘 차마다 창문을 두드리며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
그 남자 너머로 낙조는 볼 수 있었다. 차의 범퍼와 지붕을 밟고 뛰어오는 무리를.
“야, 오토바이 타.”
낙조가 지운에게 말을 건넸다. 살려 달라고 외치는 사람은 그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앞쪽에서 서로 넘어지고 구르며 뒤엉킨 채 뛰어오는 사람들이 시야에 잡혔다.
“타라고!”
멍하니 변종이 가까워지는 걸 보기만 하는 지운을 붙잡아 일으켜 세운 낙조가 소리쳤다. 지운은 그제야 몸을 움직여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갔다.
“……씨, 씨발, 뭐!”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지운의 오토바이 위에 한 남자가 올라타 있었다.
낙조와 지운은 아는 얼굴이었다.
주유소에서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그 남자.
남자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스로틀을 잡아당기려 했으나 낙조가 조금 더 빨랐다.
변종의 진액이 닿지 않았음에도 오른손에서 무시무시한 괴력이 느껴졌다. 낙조는 오른손으로 남자의 목 뒤를 움켜쥐고 오토바이에서 끌어 내렸다.
“넌 그냥 살아서 가면 안 되지.”
낙조는 낮게 중얼거리고 달려오는 변종에게로 남자를 던졌다. 아아악, 남자의 비명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