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가고 싶은 곳, 가야만 하는 곳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죠.」
낙조는 이를 악물고 가장 가까이에 쓰러져 있는 변종에게로 손을 뻗었다. 피와 섞인 진액이 질질 흐르고 있는 입가에 오른손을 가져다 대자, 곧 손끝이 꿈틀거렸다.
“누나! 홍해화, 미쳤어!?”
지운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이파리가 점차 형태를 갖춰 가고 있을 때였다.
쓰러진 변종을 등에 업은 해화가 연우 쪽으로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꽉 다문 입술, 섬뜩하게 빛나는 눈빛. 해화는 지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연우에게로 다가갔다.
이파리가 단단하게 뭉치자, 낙조는 이파리로 몸을 막으며 거리로 뛰어들었다.
“아저씨!”
지운이 거의 찢어지는 목소리로 낙조를 불렀다. 멈출 생각은 없었다.
연우는 하늘을 올려다본 채 누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먼저 연우에게 도착한 해화가 연우의 목 뒤를 받쳐 들었다.
“언니, 언니! 눈 감지 마요. 눈 감으면 안 돼! 나 봐요!”
등에 업은 변종에게서 진액이 뚝뚝 떨어졌다. 낙조는 오른손으로 최대한 몸을 가린 후 해화에게 연우를 끌어내라고 말했다.
해화가 연우의 겨드랑이 밑을 잡아끌고, 낙조는 그 앞을 이파리로 막아 길가로 벗어났다. 총알 몇 개가 이파리에 박혀 들어갔지만 조금 따가운 정도였다. 낙조는 숨을 고르고 왼손으로 박히다 만 총알을 하나씩 빼냈다.
“읍…….”
살갗을 뚫는 고통이 느껴졌으나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 인간의 피부였다면 이보다 더 고통스러웠겠지. 낙조는 총알을 내팽개치고 연우를 살폈다.
“옆구리예요. 급소는 피했어요.”
해화가 상처를 살피곤 말했다. 낙조는 건너편에서 애가 타게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지운을 응시했다.
“병원, 병원이 과연 무사할까?”
낙조가 한숨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해화는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을 벗어 연우의 상처를 지혈하며 대답했다.
“의사 한 명쯤은 있겠죠. 없어도 총알 빼낼 도구 같은 거나, 꿰맬 것도 있을 거고.”
“할 줄 알아?”
“홍지운 쟤 수의학과예요. 인간도 동물인데, 꿰매는 거 못하면 대학 헛 간 거지.”
아직 처리하지 못한 변종이 남아 있었다. 길거리가 완전히 고요해진 건 마지막 변종이 쓰러진 후였다.
교문 앞은 처참하게 쓰러진 사람과 변종들로 가득했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와 자차로 돌아가 거리를 빠져나갔다. 차가 없는 이들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뛰어갔다.
“차에 태워.”
낙조는 차 키가 꽂혀 있는 차의 뒷좌석 문을 열고 말했다. 해화는 얼굴에 묻은 진액을 손바닥으로 대충 닦아내고서 연우를 부축하여 뒷좌석에 눕혔다.
“입에 들어 갔어?”
“뭐가요.”
“진액.”
“안 먹었어요.”
짧게 답한 해화는 더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듯 자신의 오토바이에 올랐다.
“야! 그거 내 차야! 절도라고, 이 새끼야!”
교문 안쪽에서 바깥사람들 흉을 보던 민머리 남자가 낙조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낙조는 운전석 문을 열고 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뻗어 보인 뒤 차에 올라탔다.
안내는 해화가 맡았다. 차의 뒤쪽엔 지운이 붙었다. 낙조는 운전하는 내내 백미러로 연우의 상태를 살폈다.
병원 앞은 예상한 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질서 없이 멈춰있는 구급차와 승용차들이 즐비했다. 낙조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연우를 안아 들었다.
“서연우 씨, 병원 다 왔어.”
“……으…….”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가도 이내 다물었다. 낙조는 응급실 간판이 달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해화와 지운이 쫓아왔다.
응급실 안은 고요했다. 반쯤 뜯어진 커튼, 넘어진 침대, 어지럽게 찍힌 핏자국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장면이었다.
해화는 바닥에 쓰러진 링거대를 하나 주워들고서 주위를 살폈다. 워낙 큰 규모의 병원이었기에 숨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진 않겠지만, 괜한 소란을 벌였다가 변종을 끌어들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저씨, 여기 빈 침대.”
지운이 구석진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낙조는 연우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히곤 상처를 살폈다.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 계속 지혈하고 있어. 내가 필요한 것 좀 챙겨올게.”
지운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낙조는 지운의 손목을 붙잡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숨 제대로 쉬어. 머릿속으로 뭐부터 할지 순서를 정하고. 할 수 있어.”
“……응.”
지운은 심호흡을 하고서 자리를 떴다. 해화는 복도를 살펴보겠다며 나갔다.
피 냄새가 유독 비릿하게 느껴졌다.
*
핏기 없는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던 연우는 단발적으로 숨을 내뱉었다. 호흡이 일정하지 않았다. 낙조는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에 마른침을 삼켰다. 지운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낙조, 씨.”
“말하지 말고 있어요.”
“낙, 조 씨는, 왜, 서울로, 가요?”
“…….”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연구소를 빠져나올 땐 그저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때 연우가 내린 결정이 ‘질병관리청’이었으니까.
세상 참 쉽게 살려고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버릇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우의 질문에 입이 무거워졌다.
연구원이 가는 곳이라면, 정답이 있겠지. 이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고, 내 상태를 확인해 줄 사람이 있겠지. 어렴풋이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연우 씨는요.”
낙조는 피를 지혈하며 겨우 입을 뗐다.
“왜 하필 질병관리청이에요?”
“…….”
“우리가 서울 도착할 때쯤이면 서울도 이 꼴일 텐데. 담당자들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가서 득이 될 게 있긴 하겠어요?”
어쩐지 말이 예민하게 튀어 나갔다. 낙조는 잠시 연우의 눈치를 살피다 시선을 돌렸다. 연우는 숨을 힘들게 내뱉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어떻게, 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럼 낙조, 씨의 손에……, 대해서도, 알 수, 허윽, 있겠죠. 어쩔 수 없이, 연구원, 인생인가 봐요. 허, 헉…….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
연우는 힘겹게 말을 마치고 작게 미소 지었다. 낙조는 연우 몰래 주먹을 쥐었다.
“다 찾아왔어. 누나는?”
“아직.”
그때 지운이 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들고 침대로 돌아왔다. 지운은 아까보단 침착해진 얼굴로 주사기를 쥐었다.
“누나, 마취할게요. 안 아프게.”
“네, 고마워요…….”
지운이 조심스럽게 연우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연우는 그제야 눈을 감았다. 낙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우의 다른 손목으로 맥을 짚어 보았다. 뛰고 있었다.
“홍해화 어디 있는지 보고 올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낙조가 말했다. 지운은 고개를 대충 끄덕거렸다. 위생 장갑까지 챙겨온 지운은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장난기 하나 없이 예민하게 선 눈빛이 보였다.
“…….”
분명 이 복도로 갔는데. 낙조는 불빛이 깜박거리는 긴 복도를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학병원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큰 규모의 병원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춘 낙조는 유난히 어두운 복도 끄트머리를 응시했다.
“홍해화.”
낮게 깔린 목소리가 해화를 불렀다.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나 그 어떤 기척도 없으니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보았으나 불은 켜지지 않았다.
“어딜 간 거야.”
작게 중얼거리며 벽에 손을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는 않았을 텐데. 게다가 링거대를 들고 있으니 다닐 때마다 어느 정도의 소음은 날 게 분명했다.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이 그나마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낙조는 화장실 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홍해화?”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불러보았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화장실에 간 것도 아니고, 그럼……. 계단을 타야겠다는 생각에 등을 돌렸을 때였다.
“카아아악…….”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는 소리. 낙조는 눈을 번득 뜨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여자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불은 꺼져 있었다. 낙조는 세면대가 보이는 사각지대에 서서 오른손을 먼저 허공에 뻗어 보았다.
검지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꿈틀, 하고 움직이자 힘이 절로 오른팔에 실렸다.
변종이 하나라면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빛이 없어 자신도 여차하면 공격당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했다.
왜 창문이 없는 거야. 낙조는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깊게 코로 냄새를 들이마시니 진액 특유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카악!”
일단 진액에 반응하는 손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던지려고 하기 직전이었다. 갑작스럽게 변종의 소리가 커지더니 덜컹, 하고 칸막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홍해화!?”
“이, 씨……발!”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긴 링거대의 끝부분으로 변종의 머리를 밀고 있는 한 인영이 어렴풋이 보였다.
해화는 있는 힘껏 링거대로 변종의 머리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다만 변종이 40대 남성으로 보이는 체구에 힘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맘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낙조는 변종의 위치를 파악한 후 곧장 오른팔로 변종의 목을 휘감아 자신 쪽으로 당겼다. 우당탕, 하고 링거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액이 피부에 닿자마자 손가락이 쫙 펴졌다. 변하는 횟수가 더해질수록 변화의 속도와 크기가 남달라지는 듯했다. 아직 총알을 받은 생채기가 남아 있었지만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낙조는 손을 펼쳐 변종의 얼굴을 틀어막았다.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손바닥으로 안면을 지져 댔다. 곧 딱딱한 나무껍질과 함께 짓눌린 피부가 녹아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당황한 해화의 목소리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낙조는 발버둥 치는 변종을 꽉 끌어안은 채 더욱더 힘을 주어 얼굴을 짓뭉갰다.
이내 완전히 녹아 버린 머리에 목만 덜렁 남은 변종의 몸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낙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털어냈다. 피와 진액이 바닥으로 튀었다.
“안 물렸어?”
“…….”
해화는 대답 없이 낙조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낙조는 손을 마저 털고서는 화장실 밖으로 나섰다. 복도 벽에 기대어 잠시 기다리니, 곧 세면대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해화는 조용히 화장실에서 나왔다. 떨어뜨린 링거대를 쥐고. 얼굴과 두 손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당신, 손…….”
그녀는 멀쩡하게 돌아와 있는 낙조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낙조는 보란 듯 손을 펼쳤다 주먹을 쥐는 걸 반복했다. 해화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홍지운도 알아? 그런 방법으로…….”
“네 동생? 봤으니까 너한테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날 데려가자고.”
“비위도 좋네.”
해화는 멍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복도를 나섰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발걸음이 점차 멀어져 갔다.
*
침대로 돌아와 보니 연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곁에 앉아있던 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 꿰맸어. 소독도 하고.”
“고생했다.”
“누나는?”
“여기 안 왔어?”
“안 왔는데.”
그렇게 충격이었나. 낙조는 잠시 고민하다가 작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일단 주변에 변종은 더 이상 없는 듯했다. 크게 소란만 피우지 않는다면.
“야.”
연우의 감은 두 눈을 보며 낙조가 지운을 불렀다. 지운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
“너는 나 처음에 보고 뭔 생각 했냐.”
지운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존나……, 멋있다고.”
“…….”
그럴싸한 대답을 기대한 게 문제였나. 낙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그럴 법했다. 만난 이후로 이렇게 조용한 적은 없었으니까.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바라보았다. 정오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일이 일어난 지 열두 시간도 안 됐다니. 낙조는 한숨도 자지 못했음에도 또렷한 시야에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너는, 수의학과고. 니 누나는 뭐하는 사람이냐.”
“우리 누나? 꽃집 해. 플로리스트. 원데이클래스 같은 것도 하고, 꽤 유명해.”
“식물 이름 같은 것도 잘 알겠네, 그럼.”
“글쎄. 약초랑 꽃은 다르니까. 근데 나무 이름도 잘 아는 것 같긴 하더라.”
지운은 자켓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 넣고서 말했다. 낙조는 안정적으로 오르내리는 연우의 호흡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주변 순찰.”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알고, 다루던 사람이라. 어쩌면 변종에게서 보이는 약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병원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급해졌다. 가을 햇빛이 유난히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