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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8화 (8/202)

8화. 대피소를 향해

아직 변하지는 않았지만 변종처럼 냄새를 맡았는지 오른손이 간질거렸다. 낙조는 손가락을 모두 편 상태에서 비틀거리는 변종의 머리를 잡아챘다.

거친 나무껍질과 끈적거리는 진액이 살갗에 달라붙었다. 손은 금세 반응했다.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진액을 흡수하며 이파리를 펴냈다.

“아저씨, 왼쪽!”

남자가 급히 소리를 질렀다. 일렬로 가지런히 서 있던 변종들이 눈을 뜨고 있었다. 낙조는 오토바이로 달려드는 변종의 명치를 주먹으로 쳐내곤 이를 악물었다.

“빠져나갈 생각이나 해!”

몇몇 변종은 오토바이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잎사귀로 머리통을 녹이는 속도는 수가 많을 땐 절대적으로 불리한 공격이었다.

‘딱히 녹일 필요는 없지 않나.’

낙조는 쥐고 있던 변종을 뒤로 던졌다. 반쯤 녹다 만 머리가 날아갔다.

“낙조 씨! 좀 보고 던져요!”

연우가 곧장 소리쳤다. 아, 뒤에 있었지. 낙조는 짧게 숨을 내쉬고서 주먹을 다졌다. 전보다 크고 팽팽하게 부푼 잎사귀는 돌처럼 묵직했다.

“딱 좋네.”

낙조는 말을 마치고 벽에 달라붙어 있다가 달려드는 변종을 하나씩 내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진액이 가득 찬 변종은 나무껍질로 살갗을 보호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타격을 심하게 받는다. 낙조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서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양쪽에서 손을 뻗고 달려드는 터라 소매가 붙잡힐 때마다 오토바이가 흔들렸다. 남자는 벌벌 떨며 속력을 더 높였다.

주먹 아래에서 짓뭉개지는 느낌은 전혀 통쾌하지 않다. 일면식도 없던, 몇 시간 전만 해도 그저 길을 걷고 있었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삶의 끝이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일단 살고 보기 위해 방어하는 건 결국 공격하는 게 되고 만다. 단 몇 시간 만에, 낙조는 세상이 일그러지는 단면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통으로 맞은 변종은 진액을 터뜨렸다. 남자는 몸을 움츠리며 급히 핸들을 틀었고, 오토바이가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지운의 어깨를 잡은 낙조는 조금 더 빠르게 주먹을 내질렀다.

썩은 나무껍질이 뜯어지며 이파리에 상처를 냈다. 피가 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저씨, 꽉 잡아!”

골목길 끄트머리에서 남자가 소리쳤다. 낙조는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르곤 지운의 어깨를 꽉 잡았다.

골목을 빠져나가자마자 남자가 코너를 돌았다. 부웅, 뒤에서 묵직한 배기음 소리가 둘을 따라왔다.

곧 여자의 오토바이가 남자와 나란히 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아는 건 여자인 듯했다. 그녀는 낙조의 변한 오른손을 힐끗 바라보곤 속도를 높였다.

*

오토바이가 멈춘 곳은 고등학교 근처였다. 길가엔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들과 총에 맞은 듯한 변종들이 진액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전투의 흔적이었다.

교문 앞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고등학교의 체육관을 대피소로 쓰는 모양이었다. 교문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으며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뭐야, 왜 안 들여 보내줘?”

남자가 헬멧을 벗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어디로 가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비명 틈에서 들린 말 하나. 낙조는 온전하게 돌아온 오른손을 확인한 후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저기요, 왜 못 들어가는 거예요?”

주변을 둘러보던 연우가 안절부절 못하던 주민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다른 데로 가래요. 여기서 한 시간이나 걸리는데…….”

“왜 집에는 안 계시구요?”

“아파트에 이미 요상하게 변한 것들이 가득해요. 집에 먹을 것도 많이 없구……, 그래도 군인이 지켜 주는 게 낫잖아요.”

주민은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못 들어가게 하니까,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녀는 곧 울먹거렸다. 연우는 탄식하며 낙조를 돌아보았다. 부딪치는 시선은 어딘가 불편하게 꼬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 또 변종이 몰려올지 몰랐다. 이만큼 크게 언쟁이 오가고 있는 소란이라면 더더욱 안전할 수 없었다.

“누나, 할머니는? 할머니 들어가셨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자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야, 홍지운. 할머니 마지막으로 전화 온 게 언제였지?”

“한, 한 시간 전쯤?”

“기다려 봐.”

여자는 휴대폰을 지운에게 떠넘긴 채 무리로 들어갔다.

“누나! 홍해화! 어디 가!”

이리저리 밀쳐지고 밀면서 교문 앞까지 다가간 해화는 교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에게 외쳤다.

“여기, 한 시간 전에 온 사람들은 들어갔어요?!”

워낙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느라 소리를 질러야 했다. 군인은 대답을 해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예. 삼십 분 전쯤에 문 닫았습니다. 수용인원이 한계를 넘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제야 해화는 다시 썰물처럼 사람들에게서 떠내려 왔다.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해화를 붙잡고 지운이 물었다.

“뭐래?!”

“들어가셨을 거야. 삼십 분 전에 문 닫았대.”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낙조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다른 보호소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여기선 좀 멀어요.”

해화는 말이 짧은 편 같았다. 그녀는 보호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태연해 보였다.

“어떻게 할 거야, 이제.”

해화란 사람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풍경에 맞지 않는 조합이었다. 낙조는 반쯤 호기심을 품고 물었다.

“들어가려고 하는 거 아니었나?”

대답이 없어 한 번 더 묻자, 해화는 냉담한 표정을 하고서 낙조를 응시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아직도 그런 말 믿나 봐요?”

음정이 없는 목소리. 단조롭게 뱉어 낸 말들은 낙조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낙조는 실없이 웃었다.

“그것보다 당신 손. 당신 괴물이에요?”

“그래 보여?”

“아님 말고. 유세나 떨지 마요.”

“우린 왜 구해 줬어?”

낙조는 웃음기를 지우고 물었다. 해화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모인 사람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말했다.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비겁하니까.”

“보기보다 정의로운 편인가?”

“당신은 생각보다 예의가 없고.”

해화는 말을 툭 내던지곤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낙조와 연우를 만나기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지 해화의 반바지 아래 다리에는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럼 당신은요. 어떻게 할 거예요.”

해화가 손으로 마른 핏자국을 벅벅 문지르며 물었다. 낙조는 연우를 한 번 돌아봤다가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원래는 서울로 가려고 했어. 질병관리청.”

“그쪽 사람들이 이걸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더 답 없네.”

해화는 처음으로 웃었다. 비웃음이었지만. 낙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얘기했다.

“서울은 아직 안전할 거야. 지방에서 시작된 거라서. 전염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서울까지 마비되려면 하루는 잡아야 할걸.”

“그걸 당신이 어떻게 확신해요?”

“……전염병이 시작된 곳에서 나왔으니까 알지.”

낙조의 대답에 해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무어라 더 말하려는 듯했으나 낙조는 바로 뒤돌아섰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울고 있는 주민들을 달래고 있는 연우가 보였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생각에 잠길 무렵이었다.

“……!”

길목의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나무껍질로 뒤덮인 몸. 피부에서 터져 나오는 진액. 헐떡이는 숨소리.

결국 듣고야 만 것이다. 이 소란을.

“씨발.”

낙조는 가디건을 여며 핏자국을 최대한 숨기며 사람들 틈을 헤집고 나아갔다. 교문 앞에 겨우 다다랐을 때, 교문 너머로 밖을 구경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아니, 안 된다고 하면 좀 가야지. 해 떨어질 때까지 저러고 있을 거야?”

개중 민머리인 젊은 남자 한 명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낙조는 그를 잠시 노려보다가 교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 한 명을 붙잡고 말했다.

“당장 문 열어요! 저기 변종 새끼들 오고 있다고! 이 정도 더 들인다고 무슨 문제라도 납니까?!”

“저, 저희도 위에서 지시받은 거라 들여 보내드리고 싶어도 안 됩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온 사람들인데, 상황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아악!”

교문을 사이에 두고 몇 마디를 채 나누지도 못했을 때였다. 뒤쪽에서 다 쉰 목소리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 패턴이었다. 낙조는 다급하게 교문을 잡고 흔들었다. 이미 굳게 잠긴 문은 철컹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전방에 괴물이다! 전 중대 조정간 단발!”

“조정간 단발!”

간부로 보이는 군인이 권총을 꺼내 들고 외쳤다. 교문을 지키고 있던 스무 명 정도의 군인들이 동시에 쥐고 있는 소총을 교문 밖으로 겨누었다.

“앞에 사람들 있잖아! 미쳤어?! 문 열라고!”

낙조가 오른손으로 눈앞의 총구를 잡고 하늘로 올렸다. 총을 쥐고 있는 군인과 눈을 마주친 낙조는 더 소리치려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텅 빈 동공. 더할 나위 없는 공포에 질려 버린 눈빛.

“온다!”

“아악, 엄마!”

“피해! 피해요, 다들!”

교문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빌딩 안으로, 골목으로.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담을 넘어 운동장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쏴!”

사람들이 조금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나무껍질로 뒤덮인 변종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낙조는 쥐고 있던 총구를 놓고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서연우 씨!”

“아저씨!”

지운의 목소리였다. 덜덜 떠는 손으로 헬멧을 들고 있는 지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등을 돌리고 지운을 향해 뛰어가는 순간 총탄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엎드려!”

지운에게 소리치며 낙조는 바닥에 낮게 엎드렸다. 팔꿈치로 아스팔트를 기어 조금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억!”

“아, 악!”

단발마의 비명이 귓가에 꽂혔다. 낙조는 숨을 참은 채 고개를 돌렸다.

변종과 사람들이 섞인 곳 사이사이로 총알이 날아갔다. 총알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나 군인들이 변종만 맞힐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꺾이듯 속절없이 사람들이 쓰러져 갔다. 변종도 마찬가지였지만, 낙조의 눈엔 도망치다가 변종에게 붙잡히거나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스팔트 위로 피가 스며들었다. 진액도 함께 섞여 들어갔지만 그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려 달라, 문을 열어 달라 외치던 사람들이었다. 목숨을 걸고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변종과 뒤섞여 쓰러지고 있었다.

생존의 법칙. 상대와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다면, 어느 한쪽은 희생하거나 패한다.

그럼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답을 낳지도 않고 발자국만 찍고서.

변종을 잡을 방법이 자신에겐 있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잖은가. 몇 시간 동안, 그렇게 하며 서연우를 살렸고 홍지운과 홍해화를 살려서 이곳까지 왔다.

여기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수 있어.

그런데 내 오른손을 군인들이 본다면?

「그것보다 당신 손. 당신 괴물이에요?」

내가 총에 맞으면?

“낙조 씨!”

핑, 핑, 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아가는 총알 사이로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퍼뜩 드는 정신에 오래된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곤 고개를 돌렸다.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는 연우가 시야에 잡혔다. 그녀는 이미 총을 맞고 움직이지 않는 변종을 방패 삼아 조금씩 걸어오고 있었다.

“엎드려요!”

소리를 질렀으나 총이 계속해서 발사됐기 때문에 목소리는 금세 묻혔다.

“언니!”

연우와 멀지 않은 곳, 오토바이 뒤에 숨어있던 해화가 연우를 불렀다. 연우는 거리의 한복판에 서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탕!

눈을 깜박이기도 전이었다. 변종을 들고 있던 연우가 잠깐 힘이 풀려 손을 놓았을 때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총알 중 하나가 연우의 복부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

시간이 멈춘 듯 그 장면의 잔상이 낙조의 시야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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