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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7화 (7/202)

7화. 합류

무게를 완전히 실어 때리지 않았음에도 막강한 힘이었다. 남자의 안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사방으로 노란 진액과 피가 튀었다.

그제야 못 박힌 것처럼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발버둥을 치듯이 도망치거나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낙조는 남자의 몸이 경련하다가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들었다.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드러난 변종 무리는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남자의 뒤통수에 박혀 있던 몽키스패너를 빼낸 후 숨을 골랐다. 연우는 낙조의 곁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서연우 씨는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도요.”

“예?”

“근데 어쩌면 해 버릴지도 모르죠.”

말을 마치며 몽키스패너를 연우에게 건넸다.

“위험하니까 차에 있어요.”

“몽키스패너 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연우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낙조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마스크를 꺼내 끼고서 한숨을 툭 털어 냈다.

“그런 것도 갖고 다녀요?”

“실험실을 오가는 사람인데, 필수죠.”

연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몽키스패너를 꽉 쥐었다. 어느새 변종 무리는 열 걸음 정도를 사이로 둘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적어도 뒤통수는 안 다치실 거예요.”

“아까 휘두르는 거 봤는데요.”

“깜짝 놀라실걸요.”

“이미 놀랐어요.”

주먹으로 치고 박는 싸움 같은 건 이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이를 지긋지긋하게 먹어도 상황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비대해진 힘의 한계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오른쪽 손에 힘을 주고, 가장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변종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잎사귀가 아닌 살갗으로 변종을 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미 변이가 많이 진행된 듯 주먹이 닿은 살가죽이 출렁거렸다.

확실히 끝내기 위해선 터뜨려야 한다. 낙조는 지난 몇 번 간의 경험을 토대로 그런 결론을 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변종의 머리를 실내화로 지져 밟았다. 담배꽁초를 지지듯이 지그재그로 두개골을 짓뭉갰다.

고약한 냄새. 진액이 터지자마자 낙조는 인상을 쓰며 발을 털어 냈다. 주저할 틈도 없이 이번엔 왼쪽 주먹을 휘둘렀다. 진액에 반응하는 손이 아님에도 힘은 비등했다. 백 점 만 점에 구십팔 점 정도는 되는 펀치였다.

“싸움 좀 하셨나 봐요.”

마찬가지로 몽키스패너를 휘두르던 연우가 소리쳤다.

“진액 입에 안 들어가게 조심해요. 아, 포자도!”

낙조가 달려오는 변종의 가슴을 발로 치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알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우가 휘두른 몽키스패너에 변종의 목이 턱, 걸렸다. 그녀는 끈적거리는 진액이 튀는 걸 보고서 잠깐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너무 짧아. 더 긴 게 있으면 좋은데…….’

그녀는 변종의 목에 몽키스패너를 꽂아 넣고서 주차해둔 차를 향해 달려갔다. 급히 트렁크를 열고 뒤적거리니, 골프 우산 하나가 딸려 나왔다.

“없을 리가 없지.”

무겁긴 해도 진액을 막는 용도라거나 찌르는 용으로는 딱이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땀을 닦아 내고서 다시 낙조에게로 달려갔다.

낙조가 내뻗는 한 방 한 방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존재감이 컸다. 턱을 딱딱거리며 달려오는 것들을 가볍게 피하는 몸짓이라거나 그 틈을 노려 정확히 머리를 부수는 노련함까지, 곁에서 지켜보기엔 최고의 선수였다.

“이쯤 하면 됐고.”

변종 네 명을 제쳤을 때 낙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두 손을 가볍게 털고서 남은 변종의 수를 셌다. 셋, 셋뿐이다.

참느라 꽤 애썼다. 낙조는 네 번째 변종의 머리를 터뜨리며 온몸의 힘을 오른쪽에 집중시켰다.

참은 시간만큼 잎사귀가 자라나는 속도는 빨랐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는 동안 거의 형체를 갖추었으니.

완전히 주먹에 힘을 넣기 전 팔꿈치로 변종의 복부를 가격했다. 키에엑, 하고 목 긁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는 변종의 입에선 진액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휴.”

이젠 호흡을 고르는 타이밍까지 잴 수 있었다. 주머니처럼 둥지를 튼 잎사귀가 진액의 냄새를 맡고 크게 입을 벌렸다.

곧장 머리통 전체를 잡은 잎사귀는 기다렸다는 듯 변종의 목덜미까지 조였다.

그렇다고 왼손만 놀게 하면 안 되니까.

연우에게로 다가가고 있던 변종의 등을 발로 걷어찬 후 손안에서 녹아내리고 있는 변종을 휘둘러 명중시켰다. 아스팔트 위로 썩은 피부가 갈렸다.

삐용, 삐, 삐용, 삐-

피가 빠르게 돌았다. 다시 차오르는 힘을 느끼면서 완전히 머리통을 삼키려던 때, 맞은편 도로에서 경찰차 두 대가 사이렌을 켠 채 달려왔다.

뚝, 뚝.

잎사귀 사이로 진액과 피가 차례로 흘러내렸다. 낙조의 슬리퍼 위로도 몇 방울이 떨어졌다.

곧 어지럽게 정차된 차들 사이로 경찰차가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경찰 세 명이 낙조와 연우에게로 다가왔다.

“폭행 신고로 왔습니다. 손에 그건 뭡니까?”

이제 하나만 남았는데. 하나만 처리하면 여기는 그래도 안전할 수 있는데.

낙조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경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힘을 그대로 받은 잎사귀는 온전히 머리를 녹였다. 잎사귀는 먹은 머리 개수만큼 조금 더 굵직하고 크게 자라났다.

툭.

머리가 완전히 잘려 나간 변종의 몸이 싱겁게 떨어졌다.

“설명은 조금 이따 해도 되나요? 이런 신고 몇 개 받으셨죠? 지금 저 사람이 가해자가 아니라요―”

“―아까부터 신고가 계속 들어오긴 했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어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설명은 서에 가서 하시고……, 어?”

연우가 급히 경찰의 앞을 막아 세웠다. 그새 등을 쳐 쓰러진 변종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뒷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경찰들은 연우를 제치고 변종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인지, 어, 으악!”

변종이 목을 비틀며 경찰을 돌아보았다. 얼굴은 썩은 나무껍질로 뒤덮여 있었고 틈새마다 노란 진액이 줄줄 샜다.

“씨바, 뭐야?!”

“이거, 이게…….”

빵, 빵! 빠앙!

클락션 소리가 모든 이의 말을 틀어막았다. 소리가 나는 곳은 낙조의 뒤편이었다.

구급차구나, 라고 인식하는 순간 볼 수 있었다. 뒤쪽에서 유리를 넘어와 운전자의 입을 찢어 벌리고 있는 변종이 보였다.

“낙조 씨!”

구급차가 정확히 자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연우가 자신을 부르기 전까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땅에 달라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두 발과 마른침이 고일 무렵, 무언가가 낙조의 몸을 강하게 밀쳐냈다.

“윽.”

귓가 바로 옆에서 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스팔트 위를 구른 낙조는 뻐근한 몸에 신음하다가 눈을 떴다.

“와, 아저씨 나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다.”

곁에 두 발을 쭉 펴고 앉은 남자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몇 번을 탈색한 건지 밝은 오렌지색 머리에 눈썹 피어싱, 데님 재킷을 입고 있던 남자는 해봐야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아저씨, 괜찮아?”

낙조는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몸이 세게 부딪친 것 말고는 딱히 아픈 곳은 없었다.

부아아아앙, 끼이익.

뭐라 하기도 전에 오토바이 배기음 소리가 낙조의 입을 막았다. 반원을 그리며 낙조의 옆에 멈춰 선 오토바이는 검은색으로, 유려한 곡선에 비해 꽤 큼직했다.

오토바이를 멈춰 세운 여자는 헬멧을 벗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종의 수를 세는 듯,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뒤쪽은 끝났어요.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누나, 동생 넘어져 있는데 안부 좀 물어보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데 내가 왜?”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와 얼굴, 보고 들리는 모든 그녀의 것은 시든 꽃처럼 창백했으나 눈빛 하나만큼은 날짐승 같았다.

“당신, 손 뭐야?”

“누나, 저 아저씨 데려가야 해. 괴물 새끼들 다 죽였다니까, 저 아저씨가.”

남자가 몸을 털고 일어나며 다급하게 말했다. 여자는 낙조를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낙조를 부축하던 연우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가 제 뒤에 타세요. 당신은 얘랑 타고.”

“누구신데―”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하고. 여기서 괴물들이랑 더 노닥거릴 거 아니면 빨리 타세요.”

여자는 단출하게 소개를 끝내고 헬멧을 연우에게 건넸다. 여자의 목소리는 얇지만 어딘가에 쓸린 듯 허스키했다.

낙조는 경찰에게 달려들고 있는 변종을 한 번 바라봤다가, 연우의 등을 여자에게로 슬쩍 밀었다.

“일단 타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잖아요!”

“적어도 위험한 곳으로 끌고 가진 않겠죠. 뒤쪽은 끝났다잖아요!”

낙조는 안경을 고쳐 쓰곤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남자는 넘어진 오토바이를 세운 후 낙조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헬멧 필요해?”

“운전자가 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남자의 오토바이는 여자의 것보다 조금 작았다. 보다 더 캐쥬얼한 느낌이 나는 남자의 오토바이엔 폭탄이라거나 해골 문양의 일러스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여자의 오토바이가 먼저 출발했다. 머플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남자도 스로틀을 당겼다. 낙조는 변종과 뒤엉켜 비명을 지르는 경찰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오토바이는 빠르게 도로를 가로질렀다. 신호에는 의미가 없었다. 낙조와 연우를 앞서갔던 구급차와 소방차들이 여기저기에 머리를 박고 있는 걸 보았다.

이상한 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변종도, 일반 사람도. 모든 길이 텅 비어있었다.

“왜 아무도 없지?”

낙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코너를 돌며 소리쳤다.

“괴물 새끼들, 걔네 뭉쳐 다녀! 지들끼리 알아본다니까?!”

낙조는 연구소에서 봤던 변종들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까지 마주쳤던 이들은 하나거나 둘이었는데. 떼로 무리 지어 공격을 한 건…….

지하 병동. 처음 변종을 발견했을 때뿐이었다. 분명 침대 위에 콩나물처럼 서서 흐느적거렸지. 그러다 연구원을 덮쳤고.

“그리고 조용히 서 있어! 벽처럼!”

남자가 한 번 더 소리쳤다. 벽처럼, 이란 말에 생각을 집중시켰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서가 아니면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뿌리를 내린 이상 제자리를 지키지. 그렇게만 생각했을 때 변종의 움직임은 광범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감을 찾기 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뿌리가 흙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직접 번식을 하기 위해. 식물이 사냥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사냥감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벽처럼……, 서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는 거다.

한참 도로를 달리던 오토바이가 속도를 늦추게 된 곳은 골목길 입구였다. 여자를 따라 오토바이를 멈춘 남자는 고개를 돌려 낙조에게 입으로만 ‘아저씨!’하고 속삭였다.

골목길엔 벽에 등이나 머리를 박고 가만히 서 있는 변종들이 있었다. 꼭 담쟁이 넝쿨처럼, 그들은 벽에 달라붙은 채 꼿꼿하게 서서 손을 기괴하게 비틀어 댔다.

“뚫린 길이 여기뿐인데.”

여자가 중얼거렸다. 오토바이 모터 소리에 앞쪽에 서 있던 변종 몇몇이 몸을 꿈틀거렸다.

“어디로 가는데요?”

연우가 여자의 후드 집업을 꽉 쥔 채 물었다. 여자는 변종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대피소요. 지역방송으로 대피소 장소를 알려 줬거든요.”

“야, 너가 앞장서.”

여자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낙조가 남자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왜!?”

“소리 죽여. 내가 길을 먼저 트는 게 낫잖아. 대신 전속력으로 밟아라.”

“나 죽으면 아저씨 탓이다. 난 아저씨 살려 줬는데.”

“그 빚 이제 갚을 거니까 쫑알대지 말고 빨리 가.”

머플러에 올리고 있던 발로 남자의 종아리를 건들자, 남자는 울상이 된 채 핸들을 틀었다.

이미 모터와 대화 소리에 반응한 변종이 어기적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낙조는 어렴풋이 그들의 시야를 침범할 만큼 행동을 크게 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했다.

“가.”

낙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웅, 남자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스로틀을 꽉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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