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6화 (6/202)

6화. 거리 위에서

“좀비 게임 해 봤어요?”

“아뇨. 사람 죽이는 거 싫어해요.”

“영화에서?”

“당연히 현실에서도요!”

“아까 챙긴 몽키스패너 잊지나 마셔요.”

낙조는 심드렁하게 대답한 후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약간 헐렁하고 편하기만 했던 흰옷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이 꼴로 나가면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작게 중얼거리자 연우가 흘낏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서 옷이랑 물도 챙겨야겠어요.”

“서바이벌 게임 좀 해보신 것 같은데.”

“낙조 씨, 이건 게임이 아니라―”

“―재난이죠. 국가 재난. 전 세계가 함께 실험했다고 하니까 국제 재난인가. 아무튼 나도 알아요.”

반나절 만에 낙조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사건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큼 의식이 선명해지는 행동은 또 없다.

“사람들은 어때 보여요?”

운전 중이라 밖을 잘 쳐다보지 못하는 연우가 물었다.

“아직까진,”

낙조는 뒷좌석에 있는 물건들을 뒤졌다. 상체라도 몸을 가릴 만한 것이 필요했다.

“가디건이 있긴 한데…….”

“저는 피 별로 많이 안 튀어서 괜찮아요. 낙조 씨 쓰세요.”

연우가 곧장 대답했다. 낙조도 사양하지 않고 가디건을 걸쳤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핏자국을 전시하고 돌아다니는 것보단 나았다.

“마트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은데…….”

도로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연우는 이내 앞쪽에 동그랗게 모인 차량들을 발견하고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아까 그 구급차…….”

연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따라서 심각해진 낙조도 전방을 주시했다. 가운데에 있는 차는 조금 전 지나간 구급차 중 한 대였고,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쑥덕거리면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최대한 피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옷을 구긴 채 차에서 내렸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에 낙조와 연우가 서성거린다고 시선이 모일 일은 없었다.

“잠시만요, 잠시만…….”

연우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현장의 중심지에 섰다. 아스팔트 위엔 교복을 입은 학생이 쓰러져 있었고 구급대원이 응급처치를 하는 중이었다.

“낙조 씨!”

그 장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연우가 낙조를 크게 불렀다. 이리저리 치여 멀찍이서 두리번거리고 있던 낙조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억지로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갔다.

“저게 뭐래……. 자기는 저게 뭔지 알겠어?”

“피부염 아니야? 피부에 뭐가 저렇게 났대, 어우, 징그러워.”

“근데 왜 쓰러진 건지는 알어? 차에 부딪혔대?”

“그건 아니라던데. 여기 아저씨 말로는 자전거 타고 가다가 갑자기 픽 쓰러졌대.”

40대 여성 두 명이 쉬지 않고 속살거렸다. 연우와 낙조는 그 얘기를 들으며 쓰러진 학생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직 완전히 피부를 덮진 않았지만, 분명 나무껍질이었다. 꼭 습한 곳에서 자라난 것처럼 어딘가 눅눅해 보였다.

“잠시만요.”

낙조는 급히 앞으로 나아가 구급대원을 옆으로 밀어냈다.

“뭡니까? 지금 급합니다, 비키세요!”

“상처, 상처가…….”

물린 흔적을 찾아야 했다. 감염의 속도는 지금까지 봐왔던 결과 제각각 달랐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 눈을 뜨고 그 역겨운 노란 덩어리들을 내뱉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저기요!”

구급대원이 낙조를 저지하면서 외쳤으나 웬만한 힘으로는 낙조를 밀칠 수 없었다.

낙조는 학생의 바짓자락을 걷어 보다가 무릎에 남은 상처를 발견했다. 상처는 총 두 개였는데, 하나는 손톱에 꽉 짓눌린 것처럼 반달 모양들이 빼곡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잇자국이었다.

깊이 파인 상흔 안에는, 노란 포자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들 것 가져와요. 빨리!”

호통 같은 외침에 구급대원이 잠시 몸을 움찔거렸다.

“시간 없어요!”

연우가 덩달아 외치자 대원은 머뭇거리다가 구급차 안에서 들 것을 꺼내왔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뒤로한 채, 낙조는 대원과 함께 학생을 들 것에 옮겼다.

“묶으세요.”

“예?”

“묶으시라고요. 못 움직이게. 꽉.”

“당신 도대체 누군데―”

“―이러고 있다가 다 죽는다고!”

낙조는 학생의 다리에 벨트를 꽉 조이며 악에 받쳐 외쳤다. 대원은 그제야 가디건 사이로 보이는 낙조 옷의 핏자국을 발견했다.

“그거―으아아악!”

“어머, 어머!”

“꺄아아악!”

대원이 낙조의 옷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학생의 상체가 벌컥 일어나 대원의 목을 잡았다. 학생의 눈동자는 흰 자로 뒤집혀있었고 얼굴 위엔 눈에 띌 정도로 과각화가 심해져 있었다.

“악, 아악! 악!”

학생은 입을 크게 벌려 대원의 목덜미를 씹었다. 살가죽이 뜯겨나가며 피가 터졌다. 대원은 꺽꺽거리며 몸을 떨었다. 학생은 몸을 뒤집으려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그대로 몸을 대원의 위로 던졌다.

“이 새끼가.”

학생의 손이 대원의 입가에 다가갈 때쯤 낙조가 학생을 뒤에서 낚아챘다. 다시 들 것에 눕혀 어깨를 누른 채 숨을 몰아쉬니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 앞에서 그 꼴을 보이면? 과연 저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줄까? 서연우가 있다고 해도?’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여러 개의 생각이 지나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단 입을 막아요!”

잠시 주저하고 있을 때 연우가 옆에서 뛰어들었다. 아직 학생의 몸에서 진액이 흘러나올 만큼 감염이 진행된 상태는 아니었다. 뭍에 나온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학생을 낙조가 저지하고 있을 때, 연우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학생의 입에 처박았다.

“뭐예요? 당신 의삽니까?”

지켜보던 무리에서 중년 남성 한 명이 나와 낙조에게 물었다. 낙조는 가운으로 학생의 얼굴을 덮은 후 말했다.

“전염병입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길 가시다가 이 학생처럼 피부에 나무껍질 같은 게 나 있다거나, 끈적거리고 노란색의 이물질을 뱉는다거나……, 노란 포자를 몸에 달고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세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비켜요, 난 의사입니다. 내가 직접 보겠어요.”

“보고도 모릅니까?! 구급대원을 물어뜯었어요!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낙조와 연우를 힐끔거렸다.

“당신 옷에 피는 뭔데. 지금 의심스러운 건 학생보다 당신이야. 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이 미친놈이!”

“국립연예특작과학원 연구원 서연우입니다. 오늘 새벽 연구소에서 식물 섭취 부작용으로 인해 전염병이 퍼지는 것 확인했습니다. 아직 뉴스에 안 나온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말 좀 들으세요.”

연우가 목에 걸린 연구원증을 내밀며 또박또박 말했다. 남자는 인상을 쓰고 연우를 돌아보았다.

“둘이 쌍으로 헛소리를 하는구만. 전염병은 썅놈의 얼어 죽을! 비켜! 학생 상태는 내가 직접 확인할 테니까.”

수적으로 밀려도 너무 밀렸다. 게다가 피를 뒤집어쓴 채 현실에서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으니 들을 리 만무했다. 연우가 더 말을 이으려 했으나, 남자는 연우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 학생의 얼굴에 덮인 가운을 벗겨냈다.

“애가 눈이 다 돌았네! 여기, 여기 좀 도와줘!”

그제야 사람들이 한두 명씩 다가와 쓰러진 대원과 학생의 곁에 붙기 시작했다. 몇 명은 우두커니 서 있는 낙조와 연우를 손가락질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여기 가만히 계쇼. 보고 있는 양반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정말……, 경찰 불렀어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통화량이 많다네요. 계속 안 걸려요.”

부산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막의 먼지 마냥 온몸을 긁고 지나갔다. 따갑기도 했고 간지럽기도 했다. 연우는 숨을 몰아쉬면서 이마를 짚었다.

“낙조 씨 손에 그거, 그냥 보여 주면 안 돼요?”

“보여 주면 나 진짜로 잡혀갑니다. 그리고, 꺼내려면 변종이 내뱉는 진액이 필요해요. 그거에 반응하더라고, 보니까.”

“……그럼 이렇게 보고만 있자는 말이에요?”

억울함을 토로하듯 연우가 말했다. 낙조는 뒤돌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학생의 상체를 잡고 진정시키려는 남자, 계속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여자, 엄마 손을 잡고 주변을 둘러보는 아이, 학생에게 진정제를 놓는 구급대원…….

모든 장면이 허상 같았다. 누가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처럼 어딘가 하나씩 이상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것조차 허무하게 지나가는 순간.

“아아아아!”

학생의 몸을 잡고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낙조의 상념이 부서졌다. 학생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남자의 입을 양쪽으로 찢어 벌리고 있었다.

“뭐해요, 떼어 내요!”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학생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덩달아 너도나도 학생의 몸을 눕히려 했지만 남자의 입을 찢는 손만큼은 떼어 낼 수 없었다.

“아……, 아아아…….”

볼 안쪽이 너덜거릴 정도로 찢어진 입을 한 남자는 기절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른 사람들이 남자를 바닥에 눕히고, 구급대원은 구급상자를 뒤적거렸다.

“힘이, 왜 이렇게 세……!”

학생의 팔에 매달린 남자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학생의 시선은 여전히 입이 찢긴 남자에게 붙들려 있었다.

“아악!”

“윽!”

투둑, 하고 학생의 다리를 묶어 놓은 벨트가 끊어지는 동시에 사람들은 나가떨어졌다. 학생은 바닥을 기어 쓰러진 남자의 위에 올라탔다.

“구웨에에엑…….”

몸이 몇 번 꿀렁인다 싶더니, 곧 학생의 입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노란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다. 남자의 찢어진 입안으로 덩어리가 가득 찼다. 나가떨어진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낙조 씨!”

연우가 울먹이며 낙조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숨이 가빠졌다. 과연 저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변화를 남들에게 보이는 건 무리가 있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자. 그게 결론이었다.

“비켜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그 중앙으로 들어갔다. 몇몇은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갔다. 계속해서 덩어리를 게워내는 학생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허공에 붕 뜬 학생은 사지를 팔딱거렸다. 낙조는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벌써 지긋지긋하다.”

진액 냄새를 맡았는지 오른팔이 뭉근하게 당겨왔다. 낙조는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을 보고 남은 왼손으로 뒤로 가라 휘저었다.

어깨부터 아래로 뻗어가는 힘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안 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학생의 머리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으아아악!”

가까운 곳에서 낙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변종 네다섯 명이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이곳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걷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관절은 이미 다 부스러진 것처럼 팔다리를 해양생물체 마냥 흐느적거리며 기어오는 것이,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들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곳에 뭉쳐 수군거렸다. 그때 학생을 막던 젊은 회사원이 무리 밖으로 튀어 나갔다.

“위험해요!”

누군가 그를 향해 외쳤지만 남자는 도로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 올라타 그대로 도망갔다. 우우웅, 차의 엔진 소리에 변종들이 다가오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낙조 씨, 뒤에!”

연우가 급히 외쳤다. 몸을 오른쪽으로 꺾어 고개를 돌리니 상체만 일으킨 남자가 찢어진 입을 덜렁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고 있었다.

‘저 자식은 왜 이렇게 빨리……!’

감염 속도가 제각각이라지만, 이번 케이스는 특이하다고 생각할 만큼 빨랐다. 아스팔트에 꽂아 넣은 학생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 내자, 피와 섞인 진액이 걸쭉하게 늘어났다.

“야이, 괴물 새끼가!”

연우는 언제 들고 왔는지 모를 몽키스패너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좌우로 까닥거리던 남자의 머리에 몽키스패너가 그대로 박혔다. 남자의 뒷목을 타고 피와 노란 진액이 질질 흘렀다.

“어, 잘했어요.”

낙조는 잠시 그 광경을 응시하다 대충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오른팔을 붙잡고 속으로 속삭였다.

‘여기선 안 돼. 다른 방법을 쓰자.’

오감의 판단에 이끌리는 것이 꼭 충동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다지만, 감각이 충고하는 부분을 무시할 수도 없기에.

감각을 믿고 시도한다. 이 선택을 나무랄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엔 없다.

낙조는 학생의 머리통을 쥐었던 오른손을 그대로 남자의 얼굴에 꽂았다. 퍼억, 단단하게 뭉쳐진 주먹이 남자의 안면을 깔끔하게 짓뭉갰다. 느껴졌다.

이것과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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