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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5화 (5/202)

5화. 탈출 (3)

“방탄 유리예요?”

“몰라요!”

계속해서 커브를 도는 탓에 속도를 좀처럼 낼 수가 없었다. 여자는 쉬지 않고 유리에 머리를 박아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까지는 금이 가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여자를 달고 밖으로 나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하, 씨…….”

낙조는 고민하다가 창문을 내리고 창밖으로 몸을 빼냈다. 여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힘을 줘야 했나? 아니면……,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는 낙조의 시선에 문득 차에 덕지덕지 묻은 진액이 들어왔다.

어쩌면, 이란 생각은 가끔 거대한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낙조는 왼팔로 몸을 지지한 채 오른손을 진액 쪽으로 뻗었다. 그제야 머리로 유리를 두드리던 여자의 시선이 낙조에게로 돌아왔다.

그녀는 잠시 몸을 굳힌 채 낙조를 응시하다가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변종과 같은 반응이었다.

“까아악, 아아악.”

그녀는 기괴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낙조에게로 스멀스멀 기어왔다. 안쪽에서 연우가 괜찮으냐고 소리쳤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손가락에 진액을 살짝 묻혔다. 그리고 온 힘을 오른팔에 집중했다. 핏줄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불거지더니, 곧 손끝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맞았다.

오른손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변종이 품은 진액에 반응했다. 냄새를 맡는 건지, 아니면 화학반응처럼 작용하는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진액이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가요!”

낙조는 연우에게 외친 후 형태를 완전히 갖춘 오른손을 여자에게로 뻗었다. 여자는 이를 딱딱거리며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포자를 매단 변종도 똑같이 해치울 수 있나. 낙조는 아슬아슬하게 창틀에 몸을 걸친 채 손을 펼쳤다. 손끝에서 피어나 자리를 잡은 이파리는 주저하지 않고 여자의 머리를 삼켰다.

“키에에엑.”

이파리는 꾸역꾸역 낙조의 손바닥 안으로 여자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끈적거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머리를 치받았을 때, 여자의 머리는 완전히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이, 미친…….”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다른 잡종은 한 번에 손바닥 안에서 녹아내린 반면에, 여자의 머리는 좀처럼 녹질 않았다.

손안에 가득 찬 느낌은 분명 나는데 이물감이 계속되니 꽉 쥐고 있는 힘이 점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는 이제 지하 1층을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직이에요?!”

연우가 속력을 조금 더 내며 물었다. 낙조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꼭 포자가 한곳에 뭉쳐 단단한 응어리가 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변종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말랑했다면 이 여자의 머리는 정말 돌과 같았다.

셋, 둘, 하나.

터지지 않는다면 다른 해결책을 써야 한다. 낙조는 여자의 머리를 쥔 채 팔을 벽 쪽으로 휘둘렀다. 여자의 몸이 반 바퀴 돌아 주차장 벽에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퍽, 퍽, 쾅!

충격의 반동으로 두어 번 더 부딪치자, 뼈가 거의 부스러진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럼에도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해조류처럼 흐물거리는 탓에 낙조는 살짝 오른손의 힘을 풀고서 여자의 머리를 벽에 댄 채 밀었다.

사각, 서걱, 서거걱.

거친 벽면에 바싹 말라붙은 포자들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차의 빠른 속력만큼 포자가 갈려 나가는 속도도 만만찮았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지상이었다. 낙조는 포자가 갈려 나간 부분을 이파리로 매만져 보았다. 끝이 말캉거렸다.

지금이다.

말랑거리는 부분을 이파리로 꽉 감은 후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봐주지 않았다.

“씨발, 좀……!”

한계였다. 터지지 않는 풍선을 쥐어짜는 듯했다. 낙조는 손톱을 세우는 것처럼 손끝을 오므리고서 말랑한 부분을 찔렀다.

픽, 푸슉, 펑!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포자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낙조는 눈을 질끈 감고 황급히 몸을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뭐, 뭐예요?”

창문을 올리면서 다른 손으론 몸에 묻은 포자를 털어냈다. 입엔 안 들어간 것 같은데. 낙조는 숨을 헐떡이면서 시트에 몸을 기댔다.

“가루 안 묻었죠?”

“네, 저는 괜찮은데…….”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나는 면역이니까.”

“면역이란 걸 어떻게 알아요?”

“가스에 중독도 안 됐지, 변종처럼 변하지도 않았잖아요.”

의심의 눈길로 흘낏 바라보던 연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가다가 이상하다 싶으면 버리고 갈 거예요.”

“데리고 있는 편이 더 나을 텐데.”

낙조는 뒷좌석에 나동그라져 있던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 내며 말했다.

“네비 찍어 줘요. 질병관리청.”

“기름은 얼마나 있어요?”

“반 조금 넘게요.”

연구소는 지방에 위치해 도심까지 가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교통 상황을 정리 중입니다.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연우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라디오를 켰다.

-…교통정보입니다. 호남고속도로 익산부근 자체가 심합니다. 조금 전 군산휴게소 부근에 화물차, 버스 간의 추돌사고로 하위 2개 차로가 통제됐다가, 방금 사고처리 끝났습니다. 환자 이송 중에 문제가 생겨…….

주파수가 조금 맞지 않는다 싶더니, 캐스터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낙조와 연우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직감이었다.

이미 곳곳으로 시작되어 버렸다는 걸.

*

“국도가 안전할까요, 고속도로가 안전할까요.”

“문제가 생기면 몸을 숨길 곳이 있는 데가 낫죠.”

기이할 정도로 도로는 고요했다. 돌아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힌다면 답이 없다. 저층 건물로 이루어진 상가 단지를 지나면서 몇몇 사람을 보았다. 피바다였던 연구소에서 나와 일상적인 사람을 보자니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여긴 안전한 걸까요?”

긴장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연우가 물었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낙조는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의 광경을 조용히 응시했다.

일찍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 출근을 위해 차에 오르는 직장인. 지금까지 자신들이 겪은 일을 제외한다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었다.

“낙조 씨, 낙조 씨!”

풍경에 빨려가듯 온몸이 녹아내릴 때, 연우가 그 틈을 깨고 황급히 낙조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오십 미터쯤 앞에 중앙선을 침범한 채 멈춘 차 한 대가 보였다.

한 번 소란을 겪고 나니 그저 지나갈 법한 것도 눈에 띄게 이상해 보였다. 연우는 속도를 천천히 줄이며 2차선으로 빠졌다.

“이 차…….”

“아는 사람 차예요?”

“소장님 차요. 소장님은 헬기 타셨을 텐데…….”

불안한 목소리로 연우가 중얼거렸다. 곧 차가 부드럽게 멈췄다. 연우는 창문을 반만 내리고서 왼편에 있는 차를 유심히 쳐다봤다.

“…….”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다.

“안 움직여요.”

연우가 창문을 다시 올리며 속삭였다.

“소장님도 아니에요. 다른 연구원 같은데…….”

“감염된 것 같아요?”

“잘 안 보여서 모르겠어요.”

연우는 핸들을 꽉 쥐고서 숨을 골랐다. 가만히 연우 너머로 차를 지켜보던 낙조가 문을 열었다. 다리 한쪽을 밖으로 내미니, 연우가 그를 불렀다.

“직접 보시게요?”

“감염됐으면 미리 처리하는 게 나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낙조 씨, 손, 그거 변하는 거 보면 낙조 씨를 신고할지도 모르는데. 옷도 피범벅이고.”

“당신이 증인이잖아요.”

낙조는 무덤덤하게 대답하곤 차에서 완전히 내렸다. 출근 시간이었는데도 지나가는 차는 몇 대 없었다. 종종 지나가는 차들이 사고가 났나 싶어 기웃거리는 것 빼고는 특별한 시선도 없는 듯했다.

차를 뒤로 돌아 삐딱하게 주차된 승용차로 다가갔다. 연구소장 차라고 하기엔 올드하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드러난 차 표면을 보며 생각했다.

운전석 창문 앞에서 허리를 굽혀 안쪽을 들여다봤다. 연우의 말대로 운전석에 앉은 이는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똑똑.

손을 들어 창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조용했다. 한 번 더 노크를 하려는 순간, 운전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이 깜짝이야…….”

작게 중얼거리고선 흠칫거린 손을 뒤로 숨겼다. 운전자의 눈동자는 적어도 정상적으로 보였다. 흰 자로만 차 있지도 않았고, 동공도 또렷했다. 낙조는 창문을 내려 보라고 손을 휘저었다.

“괜찮으십니까?”

“……너, 너가 어떻게.”

눈이 보일 정도만 창문을 내린 남자가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틈새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엔 공포와 당황이 물씬 묻어 있었다.

“나 압니까?”

낙조는 옷으로 안경알을 닦으며 물었다. 남자는 말없이 떨기만 하다가 창문을 올리려 했다. 잽싸게 손으로 창문을 잡은 낙조는 힘을 주며 시선을 맞췄다.

“으, 으익……!”

남자는 계속해서 창문을 올리려 했지만, 몇 배로 불거진 낙조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버튼에서 손을 떼어 냈다.

“오지 마! 이, 이……, 변종 새끼가!”

그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가 조수석에 있던 망치를 들었다. 연우가 바닥에서 주웠던 몽키스패너의 주인이 누구인지 얼핏 알 듯했다.

“어디로 가던 중이었습니까? 차 이렇게 세워 두시면 딱지 끊어요.”

단순한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음산했다. 남자는 벌벌 떨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낙조 씨, 무슨……, 이 주임님?”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싶었는지 연우가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서, 서, 서서, 연우 씨! 떨어져! 이 새끼 변종이야!”

“주임님이 왜 소장님 차를 타고 계세요?”

“다, 다, 씨발, 죽었을 거야. 변종, 변종이 헬기에 탔어.”

잠시 적막이 흘렀다. 남자는 숨을 허겁지겁 삼켜대면서 말을 아무렇게나 흘렸다.

“개새끼들, 지들만, 사, 살겠다고……, 다, 다 죽어 버리라지. 죽어야지!”

“저기요, 아저씨. 혹시 감염자랑 접촉했습니까?”

보다 못한 낙조가 다시 한번 물꼬를 틀었다. 남자는 힉, 하고 몸을 움츠리더니 이내 고개를 세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냐! 나 그런 적, 없어!”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팔 걷어 봐요.”

우습게도 창문은 그렇게 닫으려 했으면서 문은 잠가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는 거겠지. 인간은 이따금 아주 사소한 실수로 모든 걸 망치기도 하니까.

낙조는 운전석 문을 열고 허탈하게 웃었다. 너무나도 쉽게 열린 문 너머를 보니 남자가 조수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봐요.”

뒷덜미를 잡아끄니 남자는 팔다리를 휘둘러가며 벗어나려 애썼다. 와이셔츠 뒷부분을 옭아매듯 꽉 조이니 숨이 막혔는지 남자가 켁켁거렸다.

“소매 걷어 보라고.”

“켁, 콜록!”

남자는 덜덜 떨면서 소매 단추를 풀고 셔츠를 걷었다. 피가 말라붙은 자국은 있었지만 물렸다거나 살점이 뜯긴 부분은 없었다. 낙조는 그를 놓아주고서 연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연우는 복잡한 생각에 휘둘리는 것처럼 말이 없었다. 그새 남자는 조수석으로 건너가 문을 열고 도로로 뛰어들었다.

끼이익, 퍽!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형편없이 추락했다. 남자를 친 차량의 바퀴는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다.

“아, 아, 아저씨!”

차에서 내린 젊은 남자가 비틀거리며 쓰러진 남자를 불렀다.

삐용, 삐용, 삐-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구급차 한 대와 경찰차 두 대가 낙조의 곁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니었다.

몇 초 되지 않아 또다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 구급차, 경찰차, 소방차……. 너나 할 것 없이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넘어갔다.

“낙조 씨.”

연우가 나지막이 낙조를 불렀다.

“이제 시작인가 봐요.”

그녀는 구급차가 사라진 곳을 향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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