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탈출 (2)
“근데, 이름이 뭐예요? 제 이름은 어떻게―”
“당신 목에 그거. 나는 고낙조요.”
낙조는 연우가 걸고 있는 연구원증을 가리킨 후 덤덤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예요.”
말없이 연구원증을 매만지던 연우는 이내 기어가는 것을 멈추고 아래를 가리켰다.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곳이었다.
뚜껑을 뜯어내고 내려간 곳은 상황실이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여기도 한바탕 했나 보네요.”
낙조가 상황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낭자한 핏자국과 여기저기 부서진 버튼들이 잠깐 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묵묵히 알렸다.
“상황실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어요. 급할 때 대비해서 사용하는 거긴 한데.”
연우는 그렇게 말하며 벽을 더듬거렸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군. 낙조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윽고 연우가 가벽을 찾아 밀어냈을 때,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했다.
엘리베이터는 한곳에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상황실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내려가겠다는 버튼도 누르지 않았는데. 분명 변종이든 사람이든 둘 중 하나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러서요.”
낙조가 조용히 말했다. 연우는 순순히 뒷걸음질 쳐 낙조의 곁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소음이 들려왔다. 쾅, 쾅. 무언가 안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쾅!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상황실에 도착헀을 때, 무거운 것이 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몸을 움츠리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살, 살려 줘! 아아악!”
카악,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섞여 상황실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곧 엘리베이터 문틈 아래로 검붉은 피가 흘러들어왔다. 연우는 사색이 되어 낙조를 올려다보았다.
“어, 어쩌죠? 이 층엔 비상구가 따로 없을 텐데.”
낙조는 안경을 고쳐 쓰고서 마른침을 삼켰다. 연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당장 문이 열리면 변종과 마주할 테다. 수가 많으면 당할 게 빤했다.
작은 간이의자를 손에 쥔 낙조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숫자만 세 보는 거야. 속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달랬다. 딱딱한 것을 부스러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낙조 씨.”
“하나면 승산 있어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흡.”
문을 열리자마자 상체만 남은 시체가 툭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반신은 갈기갈기 찢겨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연우는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떠냈다.
눈까지 다 파먹힌 시체 주위엔 핏자국이 흥건했다. 그 위로, 피를 뒤집어쓴 변종이 노란 덩어리들을 내뱉고 있었다.
“이거 진짜 역겨워서 못 해먹겠네.”
낙조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연구원이었던 듯, 변종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하나라서 다행일 수 있었지만 이 소음을 듣고 밖에 있는 변종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간이의자를 휘둘러 먼저 변종의 머리를 쳐냈다. 끼이익.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른 변종은 엘리베이터 구석에 나동그라졌다.
“끽, 끼이익.”
변종은 한참 구석에서 몸을 비틀다가 이내 코를 킁킁거렸다. 괴사한 피부에서 콧구멍만 뻥 뚫린 모습이었는데, 그렇게나 괴이할 수 없었다.
낙조는 순간 오른팔에서 뻐근한 감각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몸에 있던 모든 힘이 오른팔 쪽으로 뭉치는 기분이었다.
이거다.
놓치지 않고 힘을 끌어 모아 오른팔에 집중했다.
툭, 투둑.
곧 손가락 끝에서 이파리가 불거져 튀어나왔다. 방에 갇혔을 때 보였던 증상과 같았다. 낙조는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 더 힘을 주어 이파리가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숨을 골랐다.
시간을 조금 더 벌어야 했다.
“낙조 씨!”
뒤에서 연우가 소리쳤다. 이파리가 다 피기를 기다리는 동안 변종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탓이었다. 콧구멍을 벌름대며 코앞까지 다가온 변종은 입을 크게 벌렸다.
“어딜.”
낙조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가볍게 공격을 피한 후 아직 다 피지 못한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내리꽂았다.
“끼엑, 켁.”
우드득.
변종의 머리를 뒤덮은 나무껍질 새로는 진액이 흐르고 있었는데, 낙조의 손잎이 진액에 닿자 이파리들은 크게 반응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것이 필수 덕목이다. 낙조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주는 느낌으로 변종의 머리통을 꽉 쥐었다.
곧 주머니의 모양새를 갖춘 이파리는 한 번에 변종의 머리통을 삼켜냈다. 까끌까끌한 나무껍질의 감각이 손바닥 전체에 감겼다. 이 감각이 과연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낙조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머리통을 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침내 변종의 목덜미까지 이파리가 삼켰을 때, 손바닥에서 열감이 피어올랐다.
주르륵, 손가락 사이사이로 진액과 피가 섞여 흘러내렸다. 변종의 발버둥도 멈췄다. 낙조는 숨을 다스리며 손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상흔 하나 없이 깨끗했다.
“…….”
“뭐, 뭐예요?”
잔뜩 긴장한 연우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낙조는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머리를 털어 내며 대답했다.
“나도 변하긴 했는데, 보는 것처럼 그쪽한테 피해 갈 그런 건 아니니까 눈에서 힘 풀어요.”
“…아까 환풍기 올라오기 전에는 왜 안 변했어요?”
“나도 아직 잘 몰라요.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낙조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엘리베이터 안을 휘 둘러보았다. 상체만 남은 시체는 연구원 가운을 두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열쇠 하나가 딸려 나왔다.
“운 좋네요.”
낙조가 중얼거렸다. 차 키였다. 연우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차장에 갔다가 다시 올라온 것 같은데……, 가는 게 맞을까요?”
“여기로 지원이 올 것 같아요? 이미 뜰 사람들은 다 뜬 것 같은데.”
연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낙조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체와 변종을 밖으로 끌어내곤 연우를 향해 손짓했다.
“운전할 줄 알아요?”
“할 줄 아는 정도가 아니죠. 깜짝 놀라실걸요.”
연우의 대답에 낙조가 픽 웃었다. 연우는 지하 사 층을 눌렀다. 지하 병동은 지하 이 층이었으니, 그 구간만 잘 피하면 안전히 도착할 수 있을 테다.
아주 잠깐, 평화로운 적막이 찾아들었다.
*
주차장은 예상외로 고요했다. 여기저기 혈투의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놓인 짧은 복도를 비추는 등은 계속해서 깜박거렸다.
“분위기 한번 장난 아니네.”
낙조는 작게 중얼거리고서 왼쪽 문부터 살펴보았다. 주차된 차는 몇 개 없었다.
“이거 어때요?”
오른쪽에서 불쑥 연우가 물었다. 아이 깜짝이야. 다행히 겉으로 놀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우가 보여 준 건 적당한 크기의 몽키스패너였다. 이런 곳에 저게 왜 있어. 낙조는 잠깐 당황했지만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였다.
“적어도 낙조 씨 뒤는 안전하겠죠.”
“고맙네요, 그거.”
정다운 대화인지 모를 것을 주고받고서 주차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주차장 안은 어두웠고 큼큼한 냄새까지 났다.
“이 차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사방으로 키를 누르다가 어그로라도 끌면 원치 않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런 곳에도 사물함이 있어요?”
“잘 안 쓰긴 하는데, 창고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한쪽 벽에 나란히 놓인 네 개의 길쭉한 사물함을 보며 낙조가 물었다. 연우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어쩐지 그 앞을 지나치기가 껄끄러웠다.
“잠깐 있어 봐요.”
낙조가 앞서가려는 연우를 붙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상하게 너무나도 조용했다. 분명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남자는 변종과 함께 있었다. 주차장으로 도망간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 텐데.
“으악!”
외마디 비명이 난데없이 터져 나왔다. 그 찝찝했던 사물함에서. 물이 쏟아지듯 넘어진 여자는 몸을 벅벅 긁으며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이게, 이게 뭐야, 아악!”
전등이 깜박일 때마다 보이는 여자의 피부는 이미 엉망이었다. 노란 포자 같은 것이 피부에서 올라오고 있었는데, 손톱으로 긁어내면 긁어낼수록 피와 함께 부풀어 올랐다.
“살려 줘요! 이것 좀 어떻게 해 줘요!”
“지, 지혜선배?”
“…연우야! 연우야, 나 이거 어떡해, 어떻게 이것 좀 해 봐. 어? 어떡해…….”
그녀는 연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 손을 들이밀며 매달리려 했다. 낙조는 왼팔로 연우를 뒤로 밀고서 적정거리를 유지했다. 감염 경로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스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었다.
“왜, 왜 피해요. 저 정상이에요. 물리지도 않았고, 잡히지도 않았다구요. 근데 갑자기 이게 올라온 거란 말이에요!”
낙조에게 발악하듯 소리치던 그녀는 더 못 참겠다는 듯 온몸을 긁어 댔다. 곧 그녀는 옷을 집어 던지더니 맨살을 사정없이 긁고 때렸다. 크게 부푼 포자들은 터지면서 노란 고름을 줄줄 흘려보냈다.
“아악……, 으윽, 억.”
곧 그녀가 몸을 울렁이더니 옆으로 픽 쓰러졌다. 쓰러진 이후로도 몸은 몇 번 더 꿈틀거렸다. 이내 벌어진 입술 새로 노란 진액이 흘러나왔다.
“접촉이 안 됐는데 어떻게, 감염이 되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낙조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연우는 숨을 참는 것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소리 때문에 몰려올 수 있어요.”
“좀 숨어있을까요?”
연우는 쓰러진 여자를 지나치며 작게 ‘죄송해요, 선배.’하고 중얼거렸다. 자기 잘못도 아니면서. 낙조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여자의 피부에 오른 것은 나무껍질이 아니라 포자였다. 지금껏 봐왔던 변종들의 피부엔 나무껍질이 돋아 있었는데. 혼란스러웠다.
둘은 SUV 뒤에 숨어 동태를 살폈다. 여자가 쓰러지며 지른 비명 때문에 한 마리라도 다가올까 싶었는데, 이십여 분이 지나도록 인기척 하나 없었다.
“괜찮은 것 같네요.”
“나갔을 수도 있구요.”
연우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녀 말대로 움직이는 차를 따라 연구소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었다. 아주 조금의 확률이라 할지라도 무시할 상황이 아니었다.
“……낙조 씨.”
옆 차로 움직이려 몸을 뒤틀었을 때 별안간 연우가 낙조의 소매를 쥐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목소리였다.
연우는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조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서 연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저렇게…….”
감탄이 아닌 좌절에서 나오는 탄성이었다. 연우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지, 확실한 건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시선의 끝엔 분명 ‘쓰러졌던’ 여자가 있었다. 갓 태어난 고라니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일어난 여자는 고개를 좌우로 느리게 까딱거리며 목을 긁는 소리를 냈다.
“어억……, 어으어억…….”
그녀의 입에선 계속해서 노란 진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벌거벗은 몸 위로는 포자가 전보다 더 증식하여 끓고 있었다. 마치 수두에 걸린 것처럼 붉고 노란 덩어리들이 서로 얽혀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자아냈다.
“저런 건 처음 보죠?”
낙조가 나지막이 물었다. 연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빡빡한 긴장감이 둘을 에워쌌다.
같은 변종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다른 형태로 변이된 것뿐일까. 연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이전에 봤던 변종들과 같이 공격성도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아야 했다.
“차를 찾는 게 더 빠르겠어요.”
연우가 속삭였다. 낙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움직였다. 다행히 여자의 움직임은 그리 재빠르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뱅뱅 돌거나 몸을 기괴하게 꺾는 것만 빼면.
몸을 숨기면서 차 키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이었다. 낙조는 땀에 젖은 이마를 소매로 대충 닦아 낸 후 숨을 골랐다. 계속해서 귓가를 맴도는 여자의 울음에 온몸의 감각이 바짝 올랐다.
삐삑.
주차장의 반 정도를 돌았을 때, 마침내 잠겼던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의 중형차였다. 낙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차 키를 연우에게 건넸다.
최대한 빨리 몸을 움직여 각자 운전석과 조수석에 몸을 구겨 넣었을 때, 낙조는 문이 닫히기 직전 주차장을 울리는 소릴 듣고야 말았다.
텅, 텅, 텅, 텅.
주차장 천장을 감싸고 있는 파이프를 누군가가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낙조는 황급히 문을 닫고 잠갔다.
시동을 걸자 부드럽게 차 안이 밝아졌다. 연우는 사이드미러의 위치를 조절하곤 천천히 차를 앞으로 빼냈다.
“왼쪽!”
둘이 지나쳐왔던 코너를 돌 때쯤이었다. 낙조는 연우의 건너편을 응시하다가 냅다 소리쳤다.
파이프관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여자가 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텅, 텅, 울리는 소리는 여자가 파이프를 쥐어뜯을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꽉 잡아요!”
연우가 소리쳤다. 악셀을 꾹 밟음과 동시에 차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동시에 여자가 파이프관에서 자동차 위로 뛰어내렸다.
쿵.
“끼이이이악.”
문을 닫았음에도 그 괴기한 비명은 선명하게 들렸다. ‘출구’가 적힌 글씨를 따라 차는 빠르게 나아갔다.
쾅, 쾅.
사이드미러엔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연우는 위로 올라가는 터널에 진입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쾅!
여자의 머리가 앞 유리를 강타했다. 거꾸로 매달린 여자는 유리에 얼굴을 짓뭉개듯 달라붙어서 빠르게 연우와 낙조를 번갈아 보았다. 벌겋게 뜬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을수록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아아악.”
이내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쾅.
다시 한번 여자가 머리로 유리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