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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3화 (3/202)

3화. 탈출 (1)

다섯 개의 잎으로 자라난 것들은 한곳에 뭉쳐 주머니를 만들어냈다. 낙조는 손가락을 폈다가 접었다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주머니가 된 이파리들이 닫혔다가 열렸다.

“골 때리네, 씨발…….”

“단내……, 어억, 컥, 커억.”

병우는 이내 목을 좌우로 빠르게 까닥거리며 다가왔다. 낙조는 병우의 목젖까지 찬 숨소리를 들으며 왼손으로 병우의 가슴을 막았다. 그러나 밀고 들어오는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으윽.”

짧은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한 손으로 성인의 온몸을 막아 내는 건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낙조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파리가 단단해지며 주머니의 입구가 닫히는 게 보였다.

“미안해요.”

나지막이 중얼거리고서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뻐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병우의 몸이 왼쪽으로 날아갔다. 병우의 몸은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헉, 허억.”

그제야 숨이 터졌다. 낙조는 다시 손가락을 서서히 폈다. 움츠러들었던 이파리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병우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몸을 일으키곤 몸을 삐걱대며 코를 킁킁거렸다. 목이 꺾인 상태에서도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아악!”

잠시 낙조 앞에서 멈췄던 병우가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들었다. 낙조는 뒤로 몸을 물리며 얼떨결에 오른손 손바닥으로 병우의 얼굴을 잡았다.

정확히는 주머니로 변한 낙조의 이파리 안으로, 병우의 머리가 먹혀들어 갔다.

“아악!”

비명이 절로 나왔다. 까슬까슬한 병우의 머리가 소름 끼칠 만큼 생생하게 느껴졌다.

팔뚝 위로 돋은 핏줄이 더욱 크게 울렁거렸다. 꼭 무언가를 흡수하는 듯 핏줄은 울그락불그락거리며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손가락 사이사이가 끈적거리는 것으로 뒤덮인다 싶더니, 이내 손바닥 가운데가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생경하고 낯선 감촉에 낙조가 이를 갈며 무릎을 꿇었다.

“으윽…….”

병우의 머리를 삼킨 주머니는 목까지 부러뜨릴 것처럼 강하게 병우의 살을 옭아매고 있었다. 병우의 머리를 놓으려 애를 써보았지만 그럴수록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갈 뿐이었다.

“허윽, 흑…….”

결국 멋대로 자신의 몸을 뒤흔드는 힘에 지친 낙조가 지쳐 아예 드러누웠을 때, 손바닥 안에 있던 이물감이 사라졌다.

꽉 다물고 있던 입을 서서히 열기 시작한 이파리 위로 끈적거리는 액이 흘러나왔다.

낙조는 힘없이 눈동자만 굴려 자신의 오른손을 응시했다. 분명히 집어삼켰던 병우의 머리는,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피가 섞인 액만이 흘러나왔다.

“미친, 이 미친 새끼들…….”

낙조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읊조렸다. 목 반쪽과 머리가 날아간 병우의 몸은 완전히 바닥에 달라붙었다. 완전히 나무껍질로 뒤덮인 병우의 몸에선 뿌리가 자라났다.

나무뿌리가 방을 가득 채우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장, 벽까지 모두 뿌리로 뒤덮인 뒤에야 문이 열렸다.

멍하니 나무껍질로 뒤덮인 병우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사람의 형태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피부는 엉망이었다.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툭, 떨어졌다. 모든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몰려왔다. 눈꺼풀을 닫으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에도 도무지 이겨낼 수 없었다. 낙조는 몇 초가 지난 후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

우습게도 악몽은 꾸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다. 밖이 유난히 시끄러웠다.

비명도 이젠 지긋지긋했다. 그럼에도 귓속을 파고드는 찢어질 듯한 음성에 눈이 뜨였다. 처음엔 흐릿하기만 했던 시야는 눈을 깜박일수록 선명해졌다.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 연구원들일 것이다. 하나 같이 비명을 지른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넘어진다. 넘어진 사람 위로 사람이 쓰러진다.

“……어?”

쓰러지는 게 아니었다. 덮친 것이다.

지하 병동에 있었던 그 ‘변종’이었다. 변종은 호출에 응해 병실로 왔던 연구원에게 한 것처럼 넘어진 사람의 입을 거침없이 찢었다. 그리고 노랗고 끈적이는 덩어리를 뱉어 냈다. 끝없이.

도망치는 중이었던 연구원 한 명이 그것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알림음이 울렸다. 전원을 껐다고 했는데. 다들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무언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수많은 변종들이 뛰쳐 나와 멍하니 서 있던 연구원을 덮쳤다.

낙조는 가만히 엎드린 채 그 광경을 목격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발소리, 난무하는 비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깨지는 소리……. 끔찍한 광경이었다. 직접 보고 듣는 죽음의 모양은 다양했다.

어떤 변종은 뱃가죽을 들어내 내장을 꺼내고 그 안에 노란 덩어리를 넣었다. 이미 숨이 끊긴 이들은 눈만 뜬 채 당할 뿐이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금세 연구원 한 명의 가죽을 다 뜯어낸 무리는 왼쪽 복도로 몰려갔다. 수많은 발소리와 변종들이 내지르는 괴성이 섞여 층 전체를 울렸다.

한 번 소동이 일어난 후 낙조가 갇힌 방 앞 복도는 잠잠해졌다. 검붉은 피와 뜯긴 살가죽이 즐비했다. 낙조는 천천히 팔꿈치로 몸을 세워 일으켰다.

탁, 타닥. 탁.

반대편에서 급히 뛰는 소리가 들렸다. 변종일까 싶어 황급히 문 뒤로 몸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복도 중앙에 나타난 건 자신이 지하 병동에서 데리고 온 여자였다. 그녀의 목엔 ‘서연우’라는 이름이 적힌 연구원증이 걸려 있었다.

“……이봐요! 서연우 씨!”

낙조가 연우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 좀 열어 줘요!”

“아, 아…….”

연우는 몸을 심하게 떨면서 주저했다. 안 그래도 변종이라고 낙인찍힌 채 이 방에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낙조는 유리창을 두드리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난 저 새끼들이랑 달라! 봤잖아요! 윗대가리가 우리 죽이려고 가스 쏜 거! 난 괜찮다고요! 지금 당신이랑 이렇게 말할 만큼!”

연우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문 앞까지 다가왔다. 그녀가 연구원증을 보드에 갖다 대자 삑, 하는 통과음이 들렸다.

순간 반대편 복도 쪽에서 미끄러지듯 변종 한 마리가 굴러 나타났다. 목이 꺾여 있었지만 시선이 연우를 향해 있다는 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낙조는 문고리를 잡고 앞으로 확 잡아당겼다. 밖에서 문을 열려고 했던 연우의 몸도 따라서 안으로 딸려 들어왔다.

“어떻게, 어떻게 했더라.”

오른손에 피어 있었던 이파리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병우의 머리를 잡아먹었던 것을 보면 변종도 분명 처치가 가능한데.

낙조는 일단 문을 닫은 후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핏줄이 조금 붉어진다 싶더니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아악!”

쾅. 쾅.

변종이 머리로 통유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연우는 몸을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변종의 시선은 오직 연우에게만 향해 있었다.

어차피 상대는 하나뿐이다. 낙조는 오른팔에 힘을 가득 준 채 문을 열자마자 변종의 머리를 가격했다. 분명 사람의 머리를 치면 딱딱한 느낌이 나야 했는데, 손에 닿은 감촉은 그렇지 않았다.

꼭 물컹한 것을 친 것처럼 손이 쑥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 나왔다. 그제야 변종의 고개가 낙조 쪽으로 돌아왔다. 변종은 잇몸을 드러내고 괴기하게 입을 비틀었다.

“뭘 봐.”

손끝에 묻은 진액을 털어내며 다시 한번 주먹을 쥐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몸을 감도는 힘이 강해진 것 같았다.

변종이 낙조를 향해 달려들기도 전에 발로 변종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싱겁게 나가떨어진 변종의 몸이 일어나기도 전에 움직여야 했다. 손이 안 되면 발이라도 써야지.

신발에 단단한 구두 굽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비록 실내화였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힘이라면 박살 낼 정도는 될 터였다.

“하아, 하…….”

언제, 어디서 또 변종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낙조는 있는 힘껏 변종의 머리통을 밟아 으깼다. 주먹으로 쳤던 것과 비슷한 감촉이었지만, 확실히 무언가 터진다는 느낌은 들었다. 반죽처럼 뭉개진 머리를 한 번 더 꾹 밟자, 살가죽이 펑 터지며 노란 진액을 질질 흘렸다.

변종의 벌레 같던 움직임도 멈췄다. 낙조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방 안쪽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연우가 낙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

“여기밖에 없어요?”

“다른 탈출구는 다 막혔어요.”

“당신은. 버리고?”

“……일개 파견직이니까요.”

연우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상황에 공감해 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낙조는 별말 없이 연우가 가리킨 환풍구 뚜껑을 쉽게 뜯어냈다. 확실히 힘이 몇 배로 강해진 건 맞았다.

“칵, 캬악, 칵!”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다. 화장실 쪽에서 별로 반갑지 않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길 아는 거 맞죠, 진짜?”

낙조는 황급히 연우가 올라갈 수 있도록 한쪽 무릎을 굽혔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신발을 벗고서 낙조의 허벅지를 밟고 환풍구 안으로 올라섰다.

“카아악, 하악!”

텅, 텅.

공처럼 화장실 문을 박차고 튀어나온 변종은 몸이 거의 나무껍질로 뒤덮여 있었다. 그마저도 죽은 껍질이라, 살가죽이 짓눌려 진물이 질질 새는 중이었다.

저건 진짜 만지기 싫은데……. 낙조는 인상을 구겼다가 곁에 나동그라져 있는 의자를 들어 변종에게로 던졌다.

쾅!

정확히 얼굴에 박힌 의자 덕분에 몇 초 정도는 시간을 끌 수 있었다.

키가 평균 남성보다 컸던 터라 환풍구 쪽에 손을 걸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우는 엎드린 채 낙조의 손과 팔을 잡고 위로 끌어당겼다.

“빨리요, 빨리!”

틈새로 변종의 움직임이 보이는지 연우가 낙조를 독촉했다. 낙조는 다른 팔에 힘을 잔뜩 주고서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니 몸을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변종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던 식물. 손에서 나왔던 그건 언제, 어떻게 나오는 거지.

간발의 차로 환풍구에 올라선 낙조는 숨을 몰아쉬며 아래에서 이만 벅벅 갈고 있는 변종을 내려다보았다.

“이쪽이요.”

연우는 얼른 자리를 뜨고 싶은지 낙조를 불러 몸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가면 그나마 넓은 곳이 있어요.”

숨통을 조일 만큼 좁은 곳에서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낙조는 연우의 뒤를 따라 환풍구를 기어갔다.

“하아, 하…….”

마침내 조금이나마 트인 공간에 도달했을 때, 연우가 숨을 토해냈다. 그녀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면서 낙조를 응시했다.

“……고맙습니다.”

“말해 봐요. 나한테 넣은 게 뭔지. 혈액순환 씨발 그딴 거 또 지껄이지 말고요.”

“……국가에서 허락한 실험이에요. 세계보건기구에서 나온 안건이고요. 가습식물의 세포를 이용해 몸이 스스로 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실험이었어요. 성공할 거라고, 다들 그랬어요.”

연우는 그제야 고해성사를 하듯 대답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모른다’라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울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기까지밖에 몰라요. 씨앗을 세포화 시키는 방법 때문에 파견직으로 온 거라서, 다들 성공할 거라고만 말했거든요.”

연우의 두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환풍구 안이었지만, 더 이상 담아낼 것도 없다는 듯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당신.”

낙조 또한 머릿속이 복잡해 숨만 고르고 있던 찰나였다. 문득 연우가 그를 불렀다.

“방에 갇혔을 때, 어떻게 산 거예요? 분명히―”

“―그래요, 가스. 망할 놈의 가스를 뿌렸죠, 댁들이.”

“…….”

“죽기 직전까지 간 건 맞아요. 숨이 안 쉬어졌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되더라고요.”

“설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 쉬었죠? 자, 그럼 당신이 아는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요.”

연우는 잠시 혼란스러운 눈으로 낙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아마……, 윗대가리들은 다 헬기를 탔을 거예요.”

“당신도 이제 윗대가리라고 하네요.”

“똑같은 처지잖아요.”

연우는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연구소……, 다른 연구소로 갔을 거예요. 섬에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섬?”

낙조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연우는 고개를 순순히 끄덕이며 섬이요, 하고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질병관리청……, 일단 본부로 가는 게 좋겠어요.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보고를 했을 테니까.”

연우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검은 단발머리를 헝클였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주차장이 어디에요.”

가만히 옆에서 생각하고 있던 낙조가 물었다. 연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차 키를 먼저 찾아야 하잖아요, 그럼.”

“한두 명쯤은 주차장으로 도망갔겠죠. 운이 좋으면 차 키 하나 꽂혀있을 수도 있고.”

태연한 척 말했지만 낙조 자신도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온 연구원의 방을 뒤질 만큼 시간이 많은 상황도 아닐뿐더러 아직 자신의 힘을 어떻게 쓰는지 익숙하지 않아 위험도는 높았다.

그럼에도 가야 했다. 지하 병동을 지나쳐서, 주차장으로.

환풍구도 언제까지 안전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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