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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2화 (2/202)

2화. 변종들

눈 깜짝할 사이에 침대 앞까지 기어 온 남자는 침대 안으로 기괴하게 꺾인 손발을 집어넣으려 애를 썼다.

“혀, 형.”

“좀 조용히 해요.”

낮게 읊조린 낙조는 몸을 반 바퀴 돌려 오른발 뒤꿈치로 남자의 손등을 찍어 내렸다. 워낙 뼈대가 굵은 터라 이 정도는 끄떡없었다.

“끼에에엑.”

남자는 으스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와중에도 시선은 여전히 낙조에게 붙들려 있었다. 악몽 같은 눈빛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씨발, 도대체, 이게…….”

말을 마디씩 끊으며 계속해서 들어오려는 남자의 손발을 발로 찍었다. 께엑, 껙, 꺼억, 이제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던 남자의 손발은 거의 부러져 너덜너덜해졌다.

경황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는 건 일단 목숨이 보장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다. 낙조는 침대 밑에서 숨을 고르며 남자가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

“아아악!”

병우와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느라 병실 안, 다른 쪽은 미처 관찰하지 못했다. 여자의 비명에 눈을 돌리자 남자도 따라서 몸을 비틀었다. 남자를 ‘박 선임’이라 불렀던 다른 남자 위로 벌레 같은 것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까랑 똑같아.’

입을 찢어 벌리고, 그 안에 노란색의 끈적거리는 덩어리를 뱉어 넣는다. 꾸역꾸역. 목이 터져 나갈 때까지.

얼어붙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를 응시하던 낙조는 병우를 팔꿈치로 툭툭 치며 속삭였다.

“나갑시다.”

“어, 어떻게, 나가요.”

“그럼 여기서 저렇게 될래요?”

마찬가지로 몸이 굳은 병우는 겨우 고개를 저었다. 낙조는 모두의 신경이 한곳에 쏠린 틈을 타 침대 밑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발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슬리퍼까지 벗고서 역겹게 덩어리들을 쏟아 내고 있는 인간들을 지나쳤다.

“으, 읍!”

땀에 흠뻑 젖은 낙조와 병우를 보고서 비명을 지르려는 여자의 입을 막은 채 황급히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얼결에 그들을 따라 뛰는 여자의 신발에서 탁, 탁, 하고 복도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신발 좀 벗어요!”

낙조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여자는 거의 우는 얼굴로 숨만 헐떡이다가 발을 털어 신발을 벗어 던졌다.

겨우 따라붙은 병우 어깨너머를 보니 병실에서 복도로 쏟아져 나온 이들이 보였다. 속으로 끊임없이 욕을 중얼거리며 급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지하에 멈춰 있어 곧장 탈 수 있었다. 문제는 저들이 달려올 때까지 문이 닫혀야 한다는 것.

“연구실 어디에요.”

“네, 네?”

“연구실이요. 이 실험 총책임자 있는 곳! 우리 몸에 뭐 넣었는지 아는 사람이요! 아무 데나, 빨리!”

“칠, 칠 층이요!”

병우가 버튼을 눌렀고, 낙조는 ‘닫힘’ 버튼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때 보았던 그들의 모습은 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했다.

나무껍질 같은 것이 돋아난 피부 위론 동충하초 마냥 노란 식물들이 피어나 있었다. 사이에 파묻힌 눈알은 겨우 검은 자만 보일 정도였고, 코는 가려졌으며 입술까지 뒤덮여 소리를 지르는 텅 빈 입안만 보일 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리는 ‘그것’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숨을 길게 내뱉은 후 여자에게 물었다.

“그냥 혈액순환을 돕는 약이라고 했잖아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

“저도 그렇게밖에 못 들었어요. 막힌 혈관을 뚫는 식물을 찾아서, 그 씨앗을 세포처럼 작게 만들어 주입하는 게 끝이었어요. 다들, 다들 성공할 거라 그랬다고요.”

낙조는 땀 때문에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세우곤 숨을 골랐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했지만 당장 저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의문이었고, 의심받을 수도 있는 병우와 자신 또한 문제였다.

여자에게 시선을 둔 채 낙조는 입을 열었다.

“살려 줬으니까, 거래 하나 하죠.”

“…….”

“계속 실험대상으로 우리 쓸 생각은 못하게 해요.”

“제가 그 정도 힘이―”

“―해보세요, 일단.”

지옥의 단편을 본 것처럼 그 어떤 것도 이젠 두렵지 않을 느낌이 들었다.

띵, 칠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알림음이 울렸다.

*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양쪽으로 열림과 동시에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아우성이 쏟아졌다. 혹여 자신과 병우를 의심할까 싶어 경계했던 낙조조차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B문부터 J문까지 다 닫아!”

“5번 CCTV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주임님!”

“세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지하 병동의 상황을 파악한 건지 전략실은 나름 분주했다. 각자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거나 서로를 애타게 부르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어어, 어어, 저기, 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흐트러진 서류 더미를 뒤적거리던 연구원 한 명이 낙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낙조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목소리가 꽤 컸던 탓에, 주변 이들도 시선을 돌려 엘리베이터 앞을 응시했다.

“…….”

“변종, 변종이야?”

맨 처음 낙조와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낙조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입을 열었다.

“우리 둘은 아닙니다. 이 여자분도 접촉 안 했고요.”

“…….”

“변했던 사람들은 피부에 나무껍질 같은 게 올라와 있었어요. 저희는 멀쩡하잖아요. 보세요.”

모두가 숨을 죽였다. 믿지 못하는 시선들이 따갑게 꽂혔다.

“다들 뭐하고 서 있어? 빨리 탈출 경로 확보해. 지하 병동으로 통하는 문 다 닫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온 여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녀는 머리를 헐겁게 묶고 있었고 피부는 핏기없이 새하얗기만 했다. 모든 면이 잘 정돈된 듯 보였지만 그 면마저 날카롭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지시대로 연구원 세 명이 빈 책상과 의자를 옮겨 엘리베이터 앞에 쌓았다.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탈출이라뇨.”

낙조가 그녀를 빤히 응시하다 물었다. 그녀가 걸고 있는 카드 목걸이엔 ‘백라인’이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니네, 변종 하나 있다. 저기 오른쪽. 잡아.”

라인은 유심히 낙조와 병우를 번갈아 보다가 병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까이 있던 연구원들이 병우를 옭아맸다.

“저 아니에요! 저 진짜 괜찮아요!”

안색이 여전히 나쁘긴 했지만 피부 위에 무언가가 돋아나지도, 눈이 돌지도 않았다. 낙조는 급히 병우의 앞을 막으려 했지만 저지당했다.

“형! 저 아니라고 해 줘요, 저 진짜 아니라니까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들은 병우를 질질 끌더니 안이 훤히 보이는 작은 방에 가두었다. 병우는 벽을 두드리며 소리치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몸을 떨었다.

“쟤 진짜 멀쩡하다니까! 니들이 말하는 변종 그런 거 아니라고!”

덜컥 혼자 남게 된 낙조는 악을 써댔지만 듣는 이는 없었다. 라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낙조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여기서 전문가는 당신이 아니라 나야.”

“멀쩡한 사람들 상대로 뭔 지랄을 하는 거야! 알고서도 한 거냐고! 저 사람들 밖에 나가면―”

“―이 실험은 세계적으로 동시에 시작됐어!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진영아, 구조신호 보냈어?”

“네, 네.”

라인은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고서 자리를 떴다. 낙조를 저지하던 연구원들은 그를 의자에 앉히고 피를 뽑았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악을 써대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무슨 실험인데. 무슨 실험이냐고! 씨발, 말을 해 줘야 알 거 아냐!”

내내 소리쳤지만 듣는 이는 없었다. 낙조는 불안한 시선으로 통유리 너머 병우를 바라보았다. 병우는 눈에 보일 정도로 떨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두 명 탑승했습니다!”

긴박한 목소리로 누군가 외쳤다. 그가 보고 있던 스크린은 엘리베이터에 달린 CCTV였다.

“올라옵니다!”

시선들이 제각각 분산됐다. 몇 개는 엘리베이터, 몇 개는 스크린, 몇 개는 병우, 나머지는 낙조…….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숨이 찼다.

“엘리베이터 전원 내려! 진영아, 신호 보냈어? 답은, 왔니?”

“아, 네, 네. 헬기 보냈답니다. 삼십 분 후 헬기장으로 오라십니다.”

“삼십 분을 어떻게 버티라고! 이 개새끼들이!”

라인은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음에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듯했다. 자신의 분을 못 이겨 씩씩대던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다가 낙조를 바라보았다.

순간 눈빛이 달라진 건 그때였다.

“쟤. 쟤도 집어넣어!”

무어라 말을 외치기도 전에 다시 붙들렸다. 병우가 갇힌 방과 비슷한 공간에 틀어박힐 줄 알았던 낙조는, 연구원들이 끌고 가는 방향을 깨닫고서 몸부림쳤다.

자신이 들어갈 곳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병우의 방이었다.

“미친 새끼들아!”

방에 넣어지자마자 닫힌 문을 발로 차고 두드려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연구원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꽉 막힌 공간에 있는 건 병우와 자신, 둘뿐이었다.

“형, 형이에요?”

병우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초점이 선명하게 잡히진 않았지만 대충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나예요.”

“형, 저……, 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그런 거래요? 저도 그 사람들처럼 된대요? 저 진짜, 아무렇지도, 흑, 않은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낙조는 벽에 등을 붙이고서 숨을 골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나무껍질 조각들이 병우의 볼살 위로 돋아나고 있었다.

눈물은 그 껍질을 타고 떨어졌다. 눈물이 흐른 길 위엔 노란 포자가 맺혔다.

“형, 앞이, 안 보여요.”

병우가 입을 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괜찮아요. 너무 놀라서, 지금 너무 놀라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낙조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병우를 진정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병우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자니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형은 아시잖아요. 저는 진짜 괜찮은 거. 근데 왜 이렇게 앞이, 하얗지…….”

병우는 중얼거리며 눈을 비볐다. 그럴 때마다 손에서 돋은 껍질이 눈가를 할퀴어 상처를 냈다. 그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검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눈 긁지 말고, 괜찮을 거니까―”

“―냄새……, 냄새난다.”

피눈물을 흘리며 흰 자를 껌벅껌벅 뜨던 병우가 일순간 중얼거렸다. 낙조는 한층 낮아진 목소리에 몸을 굳히고서 주먹을 꽉 쥐었다.

“……뭐야.”

주먹을 쥐는데 오른쪽 손 손가락이 감기는 감촉이 낯설어 고개를 내려다본 낙조는 기함했다. 분명 멀쩡했던 자신의 팔 위로도 무언가가 솟아나고 있었다.

핏줄은 평소보다 두세 배 정도 부풀어 눈에 크게 띌 정도였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핏줄은 어떤 덩어리를 삼킨 듯 울컥거리며 움직였다.

숨이 가빠졌다. 병우는 무언가에 완전히 홀린 듯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전에 봤던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행동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

잠깐의 틈새라도 보이면 곧장 당할 것 같은 기분에 숨소리마저 새어나가지 않게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가쁜 호흡에 안경알에 수증기가 찼다.

라인이 보았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낙조는 점점 불거지는 핏줄을 감추려 애를 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소리를 질렀다가 행여 병우를 자극할까 싶어 입은 꾹 다문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단내……. 단내가 나.”

병우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라인의 목소리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병우가 한 발자국씩 낙조에게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걸까? 그자들처럼 노란 덩어리를 먹게 되고, 나무껍질이 돋아나나?

낙조는 손가락 마디가 점점 넓어지는 느낌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손이 평소보다 조금 커졌다 싶었는데, 손가락마다 끝에서 무언가 자라나고 있었다.

-가스 투입해.

손끝에서 자라나고 있는 건 녹색 잎이었다. 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에서 수증기 같은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콜록, 엑, 컥!”

연기는 금세 목구멍을 타고 들어와 숨통을 조였다. 목을 감싸 쥔 채 괴로워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든 숨을 쉬려 연 입에서 침이 뚝뚝 흘렀다.

“흐윽, 헉, 어억…….”

숨이 점차 끊기기 시작했다.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오른팔이 심하게 뜨거워진다 싶더니 이내 온몸의 피가 빠르게 도는 게 느껴졌다.

“허억, 헉.”

심해에 갇힌 것처럼 그저 가스에 짓눌리고 있었는데. 몸 안에서 숨이 돌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능해졌다. 가스를 들이마셔도 더 이상 속이 답답하지 않았다.

“하아, 하, 하…….”

호흡은 이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고인 눈물을 닦아 내고 앞을 볼 수 있었다.

병우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이 낙조를 비추는 조명을 덮었다.

손이 욱신거렸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손끝에서 퍼진 이파리들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채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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