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화 (1/202)

1화. D-DAY

“임상시험 지원하신 고낙조씨 맞죠?”

“예에.”

대답하는 목소리엔 맥이 없었다. 내가 살다살다 이런 것도 해보네.

극악으로 치달은 취업난에 시달리다 자포자기 식으로 선택한 건 임상시험이었다. 내일모레가 서른이었지만 생활비로 인한 빚만 늘어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질수록 친구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혈압 한 번만 재고, 피 뽑고 들어가실게요.”

인생이 왜 이렇게 됐지? 라는 의문은 품지 않은 지 몇 년 지났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고, 나조차도 오늘 임상실험을 하다 죽을지 말지도 모르니까. 당장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어른들이 어깨를 토닥이며 ‘필요할 때 연락해라. 도와줄 테니까.’ 라고 말한 건 그저 인사치레였다. 가난보다 외로움에 허덕이며 겨우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을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무시였다. 끝없는 신호음, 기계의 자동메시지, 끝내 응답하지 않는 목소리들.

6인실 병동에 들어가 가장 구석에 있는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커튼을 사방으로 치고서 휴대폰을 켜니 그나마 주변이 조금 편안해졌다.

“노트북 가져오셨네요.”

“아, 네. 게임 좀 하려구요. 해도 된대서.”

친 커튼 너머로 사람들이 멋쩍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어떻게 이 아르바이트를 찾게 됐는지, 왜 하게 됐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저기, 아까 물 안 받아 가셨죠?”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 몇 개를 보고 있던 와중 커튼이 빼꼼 열렸다.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남자가 물통을 슥 내밀었다.

“물은 마셔도 된다네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물통을 받아들자, 그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사흘은 같이 있을 건데, 친하게 지내요.”

“아, 예.”

귀찮다. 낙조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남자는 낙조의 침대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는 김병우라고 해요. 스물한 살입니다.”

“고낙조, 스물아홉이요.”

그래도 낙조는 앞에 내밀어진 손을 무시할 만큼 사회화가 덜 된 인간은 아니었다. 얼결에 악수까지 나누자 병우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말을 텄다.

“형님이라고 부를까요?”

“형이라고 해요, 편하게.”

“네, 형. 형은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돈 벌러 왔죠.”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하니 병우는 ‘아무래도 그렇죠?’하고 웃었다. 여기서도 웃음이 잘 나오나 보다. 낙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저는 군대 가기 전에 뭐 할까 하다가,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어서 왔어요.”

“군대 가기 전엔 여행이라거나……, 좀 즐거운 일을 하지 않나요.”

“안 그래도 애들이 뭐라고 하긴 했어요. 근데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좋은 결과가 나오면 아픈 사람들이 더 빨리 치료를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

누군가는 그를 보고 참 건강한 생각을 가진 청년이라 생각할 수 있을 테다. 낙조는 물끄러미 병우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고 싶은 거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지. 스물한 살. 낙조에겐 군대에서 의외로 맘이 맞는 선임들을 만나 인생에서 손꼽힐 정도로 편안한 시간을 보낸 나이였다.

“김병우 씨.”

더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휴대폰만 만지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흰 가운을 입고 연구원 카드 목걸이를 건 여자가 병우를 불렀다.

“예.”

“먼저 시술 들어갈게요. 따라오세요.”

“형, 다녀오겠습니다.”

병우는 예의를 차리고 낙조에게 인사한 후 방을 나섰다. 다시 침대에 드러누운 낙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 앞으로 사흘.

*

시술은 간단했다. 조금 두꺼운 바늘을 가진 주사기로 씨앗을 혈관 안에 밀어 넣는 게 끝이었다. ‘혈액순환이 빨리 이루어지니 속 안 좋아도 구토는 안 돼요.’ 주사를 놓아준 연구원은 차분하게 말했다.

시술이 끝난 후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병우는 유독 낙조에게 살갑게 굴었다. 식사를 끝낸 후 조잘조잘 병아리처럼 잠들 시간이 될 때까지 떠들었다.

“맹장 수술받고 난 후랑 비슷해요, 느낌이.”

병우는 배를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뱃속이 조금 꿀렁거리는 것 같긴 했다.

“형은 속 많이 안 좋으세요?”

“전 괜찮아요. 울렁거리지도 않고.”

“다행이네요. 저는 식은땀도 좀 나가지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두운 형광등 아래로 병우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눈에 들어왔다. 말없이 휴지를 뽑아 건네자 병우는 실실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렇게까지 막, 안 그래도 되는데.”

“어떤 거요?”

“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다구요.”

“아, 불편하셨으면―”

“―됐다, 됐어. 죄송하단 말도 하지 마요.”

병우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헤헤 웃었다. 그는 이내 잠들 시간이 되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없었다. 여태껏 매일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기억해야 할 일들이 있었나. 낙조는 병우의 침대 쪽을 한번 바라봤다가 눈을 감았다.

‘더 가까워지면 귀찮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낙조가 경계하는 환경이었다. 부모님의 잦은 출장과 지방 발령으로 두 해에 한 번은 꼭 이사와 전학을 했다. 마음을 오래 둘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마 졸업앨범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보고 괴담에 등장하는 유령이 아니냐며 떠들 인간도 있을 테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해졌다기보다 길들여졌다. 어렸을 적 해바라기 인형을 꼭 안고 잠들었었는데, 초등학교에 가는 해부터 엄마가 빼앗아 버렸던 기억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 같은 건 없었다. 철저하게 혼자 방치되면서, 그저 구성만 갖춘 가족이란 틀을 벗어 던지고픈 마음도 꽤 컸다.

그래서였나. 정말 완벽히 혼자가 되었을 때도 그렇게 뛸 듯이 기쁘지 않았다.

*

이틀째.

점심을 먹고 난 후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낙조의 앞에 선 병우는 낯빛이 좋지 않았다. 전날보다 확실히 어두워진 얼굴에다가, 식은땀도 훨씬 많이 흘리고 있었다.

“몸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이럴 수도 있대요. 오늘 하루 더 지켜보고 심해지면 처방해 주신댔어요.”

심한 부작용이면 어떡한대요. 낙조가 나지막이 덧붙이자 병우는 ‘알아서 잘 해 주시겠죠.’하고 또 실없이 웃었다. 병우의 곁엔 식은땀을 닦은 휴지가 벌써 한 움큼 쌓여 있었다.

낙조는 하루가 지난 후에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도 안색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배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이도 있었고, 아예 드러누워 저녁 식사까지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형만 괜찮으신 것 같아요.”

“운동도 별로 안 했는데……,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까요.”

그나마 상태가 나아 보이는 건 병우와 낙조뿐인 듯했다. 병우는 곧 침대로 돌아가 일찍 잠들었다.

‘생각한 것보다 위험한 거 아니야?’

자신만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쩐지 꺼림칙했다.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이렇게나 높을 수가 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은 밤새 낙조를 괴롭혔다.

*

새벽 세 시 삼십 분이 넘어갈 즘이었다.

“형, 형…….”

누군가 침대 옆에 쪼그려 앉은 채 낙조의 몸을 살살 흔들었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낙조는 무거운 눈을 깜박이며 침대 옆을 바라보았다. 병우였다.

“쉿. 쉿.”

그는 낙조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검지를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몸을 일으키니, 병우가 귓가에 속삭였다.

“사람들이 이상해요.”

병우가 말하며 손으로 가리킨 곳은 문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였다. 겨우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엔 다섯 명이 올라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팔을 위로 뻗은 채 천장을 향해 휘젓고 있었는데, 잘 살펴보니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을 찾는 듯했다.

“왜 저래.”

낙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병우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몸을 딱 붙이고 모여서 팔을 휘저었다. 꼭 담쟁이 넝쿨이 비비 꼬인 채 잎사귀를 흔드는 듯했다.

“나가서 누구 불러오고 싶은데, 들키면 안 될 것 같아서 못 나가고 있어요.”

병우가 낮게 속삭였다. 낙조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이불을 걷었다.

에어컨 리모콘은 항상 벽에 붙어 있었다. 낙조는 리모콘으로 에어컨의 바람 세기를 ‘강풍’으로 올렸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에어컨 바람이 강해지자 그들은 더욱 크게 팔을 휘둘렀다. 몸의 움직임이 격해지자 발 디딜 틈도 없던 침대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

그는 떨어지며 옆에 있던 침대 헤드에 머리를 크게 박았는데, 바닥에 쓰러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곧장 일어났다. 흐느적거리는 몸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호출 버튼 누릅시다.”

낙조가 침대 옆에 있는 버튼 쪽으로 손을 옮기며 말했다. 병우는 그 손목을 붙잡고 속삭였다.

“저 사람들 지금 제정신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누구든 불러야죠. 여기서 아침 될 때까지 죽치고 있게요?”

커튼이라도 맘 놓고 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침대 위에 선 이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헉, 꺼억, 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둥거렸다.

“머리까지 어떻게 된 것 같은데, 빨리 도와주는 게 저 사람들한테도 좋아요.”

낙조는 병우의 손을 떼어 내고 호출 버튼을 꾹 눌렀다. 문밖 데스크에서 삐-하는 호출 소리가 들렸다. 당직인 직원이 곧 이곳으로 걸어오는 소리까지.

“…….”

문제는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모두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천장을 향해 있던 손들이 밑으로 훅 꺼졌다. 그들은 일제히 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똑똑.

“들어갑니다.”

피곤에 절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들이 우르르 침대에서 내려왔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문틈 새로 들어오는 빛에 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낙조는 소리를 지르려는 병우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신의 입술을 꼭 깨물었다.

“으아악!”

사람들의 얼굴은 피부 과각화가 진행된 것처럼 거칠었다. 그걸 뛰어넘어 뭉툭하고 딱딱해 보이는 껍질 같은 것이 살갗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두 눈은 뒤집어져 흰 자로 덮여 있었다. 환자복 때문에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식물의 뿌리 같은 것이 튀어나온 후였다.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도 믿겨지지 않았다. 낙조는 문을 연 직원에게로 쏟아지듯 달려드는 그들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병우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고 있었다.

“아악! 황 선임! 황 선임!”

사람들에게 깔린 남자는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내 남자의 가슴 위에 앉은 이가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까딱거리다가 남자의 입을 좌우로 찢어 벌렸다. 으아아아아! 남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복도를 울렸다.

“씨발, 저게 뭐야…….”

낙조는 똑똑히 보았다. 남자의 벌어진 입안으로 노랗고 끈적이는 덩어리가 툭, 떨어지는 걸.

한 개가 아니었다. 남자의 입을 찢은 이는 몸을 계속 꿀렁거리며 덩어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덩어리는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였는데, 그는 남자가 그걸 억지로 삼킬 때까지 입안에 덩어리를 밀어 넣고 또 욱여넣었다.

기절한 건지 마침내 남자의 몸부림이 멈췄을 때, 멀리서 여러 개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들렸다.

“안 돼!”

벌벌 떨고 있던 병우가 낙조의 손을 팽개치고 소리쳤다. 방구석에서 터진 소음에 남자를 붙잡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홱 돌렸다. 허연 눈깔엔 초점이 없었지만 분명히 낙조와 병우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돌았어요?”

“죄, 죄송해요. 근데 저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낙조는 황급히 사방에 커튼을 치고서 가방을 뒤적거렸다. 몸을 보호할 만한 게 필요했다. 고작 사흘이라 특별하게 챙긴 건 없을 텐데. 가방 안주머니까지 뒤져봤지만 나온 거라곤 심 없는 샤프가 다였다.

“꺼억, 헉, 허으어억…….”

듣기 싫은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낙조는 병우의 손목을 잡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커튼 밑으로 그 징그러운 것들의 발이 뒤엉킨 채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무슨 일, 헉, 박 선임!”

“아악!”

남녀의 비명이 방을 꿰뚫었다. 낙조와 병우의 앞에서 맴돌던 발끝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낙조는 숨을 죽이고서 빛이 새어 나오는 복도 쪽으로 눈을 굴렸다.

입이 찢어졌던 남자.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죽은 듯 눈을 한번 깜박이지 않았는데, 꼭 낙조를 보는 것처럼 시선이 아주 선명했다. 낙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츠렸다.

순식간이었다.

대자로 뻗어 있던 남자의 팔다리가 기역자로 꺾이더니 몸이 덜컥 위로 들렸다. 덜렁, 목은 축 늘어졌지만 시선은 여전히 낙조에게 박혀 있었다.

‘좆됐다.’

게거품처럼 노란 덩어리들을 입에 가득 문 채, 남자가 거꾸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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