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94화 (394/404)

외전 - 128. 사슴 사냥4

꽝-

단단히 잠겨 있던 문이 박살 나고, 검은 복면을 쓴 십수 명이 안으로 우르르 들어서자 도박 중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악!”

“습격이다.”

“도망가자!”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는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도박장 안쪽에서 검과 메이스를 뽑아 든 험상궂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꽝-

커다란 도끼를 내려친 사내, 반츠가 갑자기 나타난 복면 사내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이곳이 정보길드인 샤트인가?”

검은 복면인들 사이로 사슴 가면 사내와 함께 중년 사내가 도박장 안으로 들어섰다.

“네네! 그렇습죠. 겉으론 도박장으로 위장 중입니다만, 분명 이곳이 정보길드 샤트입니다. 웨스트 스트리트 쪽에선 저희 바탈과 세력을 양분하고 있는 곳입죠.”

“빌어먹을 오왠! 너 따위 허접한 정보길드 따위가 감히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분노한 반츠가 당장이라도 오왠에게 달려들듯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지만, 묵직한 기운을 뿜어내는 복면인들 때문에 함부로 달려들진 못하고 있었다.

“난 쓸데없는 감정싸움 따위는 관심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정확히 열흘 전 내성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던 귀족들의 명단이다.”

“그리미엄 가문의 두 영애를 쫓던 자들 말인가?”

“성 밖에도 한 무리가 있었지.”

사슴 가면의 말에 반츠가 피식 웃더니 의자를 끌고 와 팔짱을 낀 채 앉았다.

“이제 보니 정보가 필요한 손님이셨군! 아시겠지만 정보는 가치에 따라 가격이 아주 비싸죠. 더구나 제 부업까지 망치셨으니…. 아무래도 값이 좀 더 오를 것 같군요.”

“가격?”

사슴 가면이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한쪽에 놓인 의자를 끌었다.

그르륵-

그러더니 반츠의 앞에 의자를 놓고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큭, 재밌는 말을 하는군. 좋아! 어디 가격을 한번 불러보지.”

자신을 지긋이 노려보는 사슴 가면의 눈빛에 온몸이 움츠러드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반츠는 애써 무시하며 턱을 매만지며 도박장 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만 골드.”

“이런 미친!”

당장 오왠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미친? 흥! 도박장 하루 매출이 얼마일 것 같으냐! 무려 500골드다. 그것뿐이냐? 이미 도박장과 정보길드의 위치가 드러났다. 이 모든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한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는지 아는 것이냐! 이건 그 모든 것을 감안한 비용이다.”

반츠의 외침에 오왠이 얼굴을 찌푸렸다.

“반츠, 충고 하나만 한다면, 되도록 이분을 화나게 하지 마라.”

“하하! 겁을 잔뜩 먹었군! 하지만 나 반츠는 너 같은 겁쟁이가 아니다.”

반츠의 말에 오왠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사슴 가면의 뒤로 물러났다.

“어떤가? 만 골드다. 정보를 살 건가?”

반츠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사슴 가면을 노려봤다. 정보는 권력이요 힘이다. 반츠가 평생을 신념으로 삼아온 말이다. 아무리 강한 권력과 힘을 가졌어도 결국 정보에 무릎을 꿇은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 골드? 좋아. 주지.”

사슴 가면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서 황금동패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겠지?”

“……왕립은행의 황금동패!”

“정보길드라면 이 황금동패의 가치도 잘 알겠군.”

“물론. 만 골드 이상 맡긴 사람에게 주는 것이 황금동패다.”

“이 안엔 정확하게 2만 골드가 있다. 정확한 정보를 준다면 이걸 건네지.”

“정말… 인가?”

“단, 지금 당장 정보를 가져와야 할 거다.”

사슴 가면의 말에 반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지금… 말인가?”

“설마 정보도 없으면서 돈을 요구한 건가?”

정확히는 그동안 들어온 조각난 흔적과 첩보를 취합해서 완벽한 정보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 정확한 정보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설마 만 골드 이상을 직접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반츠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건…….”

“하하! 이거 참 재밌는 상황이군!”

“시… 간, 하루만 주시면…!”

“정보는 신뢰가 기본 아닌가? 마침 이곳에 아주 신뢰할 만한 정보 상인이 있군.”

“…지금 무슨 말을…!”

“오왠!”

“예! 부, 부르셨습니까?”

“이곳을 접수할 수 있다고 했던가?”

“물론… 입니다.”

오왠이 굵은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방법은?”

“예에?”

“단순히 반츠란 자를 굴복시키면 되는 건가?”

“가,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꽝-

“지금 내 앞에서 무슨 작당을 하는 거지!”

거대한 도끼를 내려친 반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스각-

카일의 허리에서 시작된 청백색의 빛줄기가 반츠의 거대한 도끼의 양날을 횡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쿵-

도끼날 반쪽이 아래로 뚝 떨어져 버렸지만, 그보다 그를 더 충격적이게 만든 장면은 사슴 가면의 검에서 물결처럼 일렁이는 거대한 오러의 기운이었다.

“오… 오러블레이드!”

도끼를 바닥에 떨어트린 반츠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상대는 무려 소드마스터! 고작 정보상인 반츠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강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떤가? 이만하면 샤트를 접수할 수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추, 충분합니다.”

“좋아! 그럼 하루의 시간을 주겠다. 어떤 놈들인지 찾아와!”

“걱정 마십시오!”

* * *

“으아악-”

두 팔을 쭉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켠 마부가 몸을 이리저리 풀었다.

“괜찮은 겁니까?”

“나 말이냐?”

“상당히 피곤해 보여서요.”

어린 시종의 말에 마부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말도 마라! 어제도 왕자궁에서 새벽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그럼 또 마구간에서 잤겠네요?”

“그래. 벌써 열흘이나 숙소에도 못 들어갔다. 하지만 어쩌겠냐? 주인님께서도 2왕자 저하의 출정 때문에 바쁘신 걸….”

“그건… 그렇죠.”

어린 시종이 한숨을 내쉬며 가져온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삶은 달걀과 밀빵이에요. 배고플 때 드세요.”

“이게 웬 거냐?”

마부가 깜짝 놀라며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하녀나 하인, 또는 시종은 주인이 남긴 하얀 밀빵이나 달걀을 가끔 먹을 수 있지만, 마부나 정원사처럼 외부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에겐 좀처럼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애쉬 부인께 부탁해서 받은 거예요. 밀빵은 주인님께서 조금 드시다 남긴 걸 가져왔어요.”

“아이쿠! 이런 고마울 때가!”

마부가 환하게 웃으며 주머니를 열었다. 아직 따뜻한 달걀과 조금 뜯기긴 했지만 큼직한 밀빵 하나가 들어있었다.

“에일 맥주도 부탁드리려 했는데… 곧 주인님을 모시고 왕궁으로 가야 한다며 애쉬 부인께서 거절하셨어요.”

“아휴! 왕궁에 가도 매일 딱딱한 호밀빵에 귀리죽 아니면 완두콩인데…. 이것만 해도 정말 감사하다.”

“그럼 다행이고요.”

마부의 기쁜 얼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린시종 역시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오늘도 서쪽 폴터 다리를 건너 왕궁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래야지. 그쪽이 왕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

“거긴 번번이 마르타르 남작가와 충돌이 생기는 곳이잖아요. 좀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어디 그게 쉽냐고, 마르타르 남작은 1왕자님의 측근이라 2왕자를 모시는 주인님도 쉽게 물러나긴 어렵잖아.”

“하지만 마르타르 남작가는 전통적인 기사 가문이잖아요. 저희가 상대하긴….”

“밀릴 때 밀리더라도 도망갔다는 소릴 들어서는 안 되지!”

어린 시종의 말을 끊고 건장한 사내가 다가왔다.

“페, 페릴 호위장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없다. 마르타르 가의 기사단에게 밀리는 건 사실이니 말이다.”

페릴 호위장은 제법 실력 있는 용병이긴 하지만, 정통 기사인 마르타르 기사단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 번번이 밀리고 있었다.

“호, 호위장님… 저흰 그냥… 걱정이 돼서….”

“뭐, 두 사람이 악한 마음으로 말한 건 아님은 알지만, 그래도 조심은 하게! 주인님께서 들어서 좋은 것 없으니.”

“알, 알겠습니다.”

어린 시종과 마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거기서들 뭐하나?”

그때 화려한 현관이 열리며 지팡이를 든 키 작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가 바로 2왕자의 최측근이자 왕국 제일 상단인 포슈 상단의 주인, 다운트 자작가의 가주 카슨 더 다운트 였다.

“마부와 함께 잠시 왕궁까지의 경로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가던 길인데, 점검은 무슨….”

“주인어른의 안전이 걸린 일인데, 신중을 기해야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페릴 호위장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 전까지 싸늘하기만 하던 카슨 자작의 눈빛이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왕도인데… 별일이야….”

카슨 자작이 페릴 호위장을 일별하고 돌아섰다. 어린 시종이 황급히 마차 문을 열고 바닥에 넙죽 엎드리자, 카슨 자작은 당연하다는 듯 어린 시종의 등을 밟고 마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주인님, 다녀오십시오.”

어린 시종이 고개를 숙이자, 카슨 자작의 입술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다녀올 때까지 서재를 정리해 놓거라!”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순종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어린 시종이 마차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가자!”

카슨 자작의 명에 마차를 둘러싼 호위 용병들이 천천히 저택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어린 시종이 고개를 들었을 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순종적이었던 어린 시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드디어….!”

입술을 질끈 깨문 어린 시종이 곧장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어린 시종의 방은 저택의 가장 꼭대기 다락방이었다.

자산의 방에 도착한 어린 시종은 가장 먼저 문을 잠근 뒤 작은 창문을 활짝 열고 약속했던 붉은 천을 창문 밖에 내 걸었다.

“휴… 이제… 끝이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어린 시종이 품 안에서 다 낡아빠진 작은 리본을 꺼내 손에 쥐었다.

‘에슐리 파브릭!’

낡은 리본에 새겨진 이름

어린 시절 누이의 생일에 선물했던 리본이다. 모두 잊었다고,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누이의 리본이 3일 전 한 통의 편지와 함께 다락방에 놓여 있었다.

‘누이는 살아있다.’

누군지도 모를 이들을 돕기 시작한 하나의 문장이다.

만약 파브릭 가문의 복수를 들먹이며 현혹했다면 그는 당장 편지를 카슨 자작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카슨 자작에게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굴복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이는 달랐다.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혈육인 누이가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란 생각에 분노가 들끓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들이 원하는 건 자작의 일상, 습관, 일정 등 정말 도움이 될까 싶을 정도로 집안 사람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정보여서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어제 좀 특별한 주문이 들어왔다.

‘이동 경로 확인 요망!’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요청이었지만 추가로 붙은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폴터 다리!

특정한 지명을 거론하며 이동 경로에 대한 정확한 확인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이번엔 다른 때와 달리 창문에 붉은 천을 걸어 자작의 이동 경로를 직접 확인받으려 했다.

‘오늘이다!’

어린 시종, 에버튼 파블릭은 오늘 이후 다시 카슨 자작을 보기 힘들 거라 직감하며 편하게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

* * *

“붉은 천이 올랐습니다.”

“꼬맹이가 아주 잘해주고 있군. 저 녀석 누이는?”

사슴 가면의 물음에 오왠이 품 안에 안고 있던 서류를 재빨리 넘기며 보고했다.

“에슐리 파브릭, 나이 15세. 현재 트라발트 공작령의 레드 라이트 지구에 있습니다.”

“거긴….”

“유흥가입니다. 아무래도 카슨 자작이 고급 창녀인 코르티잔을 육성하는 베릴리아 부인에게 맡긴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벌써….”

“아! 아닙니다. 본격적인 코르티잔으로 활동하려면 여인으로 갖춰야할 예절이나 의복, 화장, 미술이나 음악뿐 아니라 정치, 사회문제까지 두루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일을 하기에는 어린 나이입니다.”

“코르티잔에게 그런 교육까지 시킨다고?”

“코르티잔은 단순히 평범한 고급 창녀가 아닙니다. 고위 귀족을 상대하는 여인들, 그러니까 고위 귀족의 정부를 키우는 곳이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운이 좋으면 왕의 정부까지 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세심한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에슐리는 베릴리아 부인에게 맡긴 거지 판 게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매달 카슨 자작이 베릴리아 부인에게 골드를 지급하고 있었습니다. 에슐리에게 리본을 전달받은 부하 녀석의 말도 그렇고, 아마도 카슨 자작이 에슐리를 코르티잔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냐? 그러니까… 파브릭 상단을 집어삼키고 상단주 부부를 죽여 놓고, 그 자녀들은 잡아다가 어린 아들은 시종 삼아 괴롭히고, 딸은 코르티잔으로 육성시키고 있단 말이냐? 지금!”

사슴 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오왠이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아마도 에버튼이란 아이는 인질일 겁니다.”

“고위 귀족의 정부가 될 에슐리가 딴마음 먹지 않고 제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 인질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이거 완전 쓰레기군!”

“그, 그렇습니다. 허허!”

오왠이 굵은 땀을 닦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사슴 가면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분명 불식 간에 뿜어져 나온 강대한 기운에 잔뜩 겁을 먹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오왠의 모습이 자못 마음에 들었다.

“그래, 요즘 반츠는 어떤가? 제법 통제하기 어려운 녀석 같았는데.”

“반골 기질이 좀 있지만 유능한 녀석입니다.”

“반항기가 보이면 이야기하라고, 좀 다져줄 테니 말이야. 지난번엔 겁만 주고 끝난 것 같아 좀 찝찝했단 말이야.”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감히 누구의 명이신데 따르지 않겠습니까? 제게 맡겨 주십시오.”

“흠….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왜 반츠를 감싸고 도는 거지? 정보상인 샤츠는 자네의 가장 큰 경쟁자가 아닌가?”

“그게… 사실 저 또한 샤츠의 일원이었습니다.”

“응?”

그러고 보니 카일이 오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작은 정보상을 찾아, 반쯤 협박해 서쪽 거리에서 가장 큰 정보상인 샤츠를 찾아 통합시킨 것뿐이었다.

“반츠의 부친은 제겐 스승과도 같은 고마운 분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반츠가 샤츠를 물려받으면서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죠.”

“변질되었다?”

“단순한 정보상이 아닌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마도 제가 중간에 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권력자의 손에 샤츠가 이용당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하 재밌는 말이군, 그럼 지금은 어떤가?”

“네?”

“자네도 내게 이용당하고 있질 않나?”

사슴 가면의 물음에 오왠이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건 좀 다릅니다.”

“왜 다르지? 나 역시 힘으로 자넬 굴복시켜 이렇게 이용해 먹고 있지 않나?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아닙니다. 이건 굴복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거래?”

사슴 가면이 지그시 자신을 노려보자 오왠이 잔뜩 움츠려들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네…. 거래입니다. 샤츠를 제압해준 대신, 전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거래죠.”

“만약 이번 일이 끝나고 나서도 정보 제공을 강요한다면 어쩔 텐가?”

“정당한 대가 없이 정보를 강요하신다면…. 차라리 샤츠 전체를 해산하겠습니다.”

“저네가 없어도 반츠가 있지 않나?”

“반츠를 믿을 수 있습니까?”

오왠이 사슴 가면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글쎄? 자네 말대로 이용은 해먹을 수있을 듯한데?”

“반츠는 하부 조직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더구나 중간 연결책은 이번에 제 사람으로 전부 교체했습니다. 그들과 연결고리만 끊어버리면, 반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하하! 제법 준비를 많이 했군. 능력도 있고, 겁이 많은 듯하면서도 용기가 있는 것 같고, 자네… 참 마음에 드는군.”

“예?”

“어떤가? 내 밑으로 오는 게? 자넬 가신으로 삼고 싶은데.”

“저, 절 말입니까?”

“그래. 대우는 섭섭지 않을 거야!”

사슴 가면의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카일을 바라보던 오왠이 조심스럽게 카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왜? 싫은가?”

“그, 그럴 리가요. 소드 마스터의 가신이라면… 영, 영광된 자리겠죠. 하지만… 저에겐 귀족가의 가신보다 정보 상인이 더 어울립니다.”

“흠…. 아쉽군! 하지만 본인이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안 됐지만, 난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 오러블레이드를 직접 봤는데….”

사슴 가면의 말에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분명 검신 위로 청백색으로 강렬하게 타오르는 오러의 기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었다. 그런데도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니…. 사슴 가면의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슴 가면은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복면인들과 함께 강가에 메어놓은 배 위에 올랐다.

“가자!”

사슴 가면의 명이 떨어지자, 4대의 나룻배를 나눠 탄 검은 복면인들이 천천히 노를 저으며 뿌연 새벽안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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