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90화 (390/404)

외전 - 124. 지하공동

쏴아-

시끄럽게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

공동을 가득 메운 뿌연 물안개, 갈라진 바위틈으로 스며든 은은한 달빛과 벽면 가득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까지. 공동은 마치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온 듯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세상에… 대체 누가 이런 곳을?”

마크가 공동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카일의 시선은 동굴 한쪽 벽면에 고정되었다.

“카누스…!”

한 손엔 불, 다른 한 손엔 망치를 손에든 거대한 신상, 바로 드워프들의 신이자 대장장이의 신이라 불리는 카누스의 신상이었다.

“카누스?”

“드워프들의 신입니다.”

“드… 워프? 그럼 설마!”

“드워프들이 살던 지하 공동이자 광산인 것 같습니다.”

“드워프의 보물창고!”

마크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드워프의 보물창고? 그건 또 뭡니까?”

“드워프들이 실패하거나 버린 작품, 무구를 산처럼 쌓아 놓는 창고를 말하는데, 나도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라 정말 그런 곳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실패하거나 버린 물건이 쌓인 곳이면… 그냥 쓰레기 창고가 아닙니까?”

“그거야 드워프의 기준이잖아! 버려지고 부서졌어도 결국 인간의 손으론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드워프제 물건이다. 과연 가치가 없을까?”

“그렇진… 않겠죠.”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미완성이거나 습작일 때 오히려 더 큰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드워프의 버려진 작품이나 물건도 같은 이유로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사실 드워프의 지하 공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물창고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지하 공동이 말입니까?”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달리 대지의 일족이라 부르며, 광맥을 찾는 데에는 따를 자가 없다고 했지.”

“그거야 모두들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하! 맞아, 그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지! 그럼 드워프는 왜 애써 만든 지하공동을 버리고 이주를 할까?”

“그거야 광맥이 말라 이주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아! 보통은 그렇게 알려져 있고 오래된 서적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만 과연 그럴까?”

“그럼 아니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발견된 드워프의 지하 공동 중 가장 큰 규모는 제국에서 북부에서 발견된, 백여 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지하 공동이라고 들었다.”

“드워프가 소규모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건 모두 아는 사실 아닙니까?”

“바로 그거야! 최고의 광산 전문가인 드워프가 찾아낸 광맥이라면 적어도 수백 수천 만톤의 다양한 광맥이 묻혀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라고, 소규모 부족 단위로 움직이는 드워프들이야! 묻혀 있는 광맥 전부를 사용하려면 과연 얼마나 걸릴까?”

드워프들이 필요에 따라 상인이나 영주들과 각종 무구, 조각상, 보석이나 귀금속을 거래한 기록은 있지만 광물 자체를 거래한 기록은 없었다. 결국 백여 명의 드워프들이 광맥이 마를 때까지 광물을 채굴해 사용하려면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지나도 부족할 것이다.

“그럼 드워프들이 이주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말입니까?”

“아니, 기준이 다르다는 거야!”

“기준이라니요?”

“드워프들이 만든 물건들은 모두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나 무구들이야! 이런 무구를 만들려면 뛰어난 예술성이나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최고의 재료도 필요하겠죠.”

“맞아, 드워프들은 최상질의 광맥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광맥이 말랐다고 판단하고는 과감하게 이주를 결정하지!”

“드워프에겐 말라버린 광맥이 인간에겐…!”

“더없이 확실한 최고의 광산이 되는 거지.”

마크의 말에 카일에 고개를 끄덕인 카일이 한동안 마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냐?”

“그러고 보니 마크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나? 나야… 그냥 용병… 이지?”

당황한 마크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처음부터 용병은 아닐 거 아니에요. 저도 드워프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긴 했지만, 드워프의 지하 공동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걸요. 제가 보기엔 단순히 소문만으로 알았다고 하기엔 내용이 너무 자세한데요.”

“하하… 그건… 정말… 소문으로 들은건데…. 젠장!”

마크가 낮게 중얼거리더니 한숨을 길게 쉬며 동굴 벽면에 등을 기댔다.

“휴… 내 진짜 이름은 마르텔 크로버다.”

“크로버? 귀족이었습니까?”

“귀족은 무슨, 그냥 자유민이다. 내 고향은 서부 광산도시인 포토시다. 아버지께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행정관으로 계셨다. 드워프의 지하 공동에 관한 것도 아버지와 친분 있던 광산업자에게 들은 이야기지.”

포토시, 정확히는 서부 광산 자유도시다. 크로노스 왕국과 맨티스 왕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포토시는 크로노스 왕국에 속해 있지만, 크로노스 왕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특한 형태의 자유도시였다.

“포토시의 행정관이면 제법 높은 직책이 아닙니까? 굳이….”

“왜 용병이 됐냐는 거냐?”

“말하기 곤란하면….”

“왜? 말하지 않아도 좋다는 거냐?”

“그럴 리가요. 차분히 자세하게 말해 달라는 거죠.”

카일이 웃으며 말하자 마크도 결국 피식 웃었지만, 곧 어두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크로버 가문은 비록 귀족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높은 직책의 행정관이었고 광산도 여럿 가지고 있어 도시에선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대단하군요. 행정관이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다니.”

“자유도시잖아! 더구나 아버지의 업무가 광산개발 허가에 관한 거라 권력이 대단했거든… 하지만 행정관의 직책도 당대에 한한 거라 아버진 작위를 가진 계승 귀족이 되길 바랐지.”

“계승 귀족이 되려면 왕실의 허가를 받아야 할 텐데요?”

“말했잖아! 포토시는 크로노스 왕국에 속하긴 해도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쉽진 않지만, 포토시를 통치하는 4대 귀족의 동의를 받으면 작위를 받고 귀족이 될 수 있지.”

“그런 방법이 있다니…놀랍군요.”

카일의 반응에 마크가 고개를 저었다.

“4대 가문은 모두 경쟁 관계다. 과연 4대 가문 모두의 동의를 받고 귀족이 되는 게 쉬울까?”

“그것도 그렇군요.”

“하지만 아버진 포기하지 않았다. 귀족이 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려 했다. 심지어… 자신의 딸들까지도….”

마크의 눈에 슬픔이 어렸다.

“내겐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 포토시에선 아름답고 착하기로 유명했었지, 아버진 이런 누이들을 이용해 4대 가문과 비밀리에 혼담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작위를 추인받으려 했었다. 하지만….”

“문제가 터졌군요.”

“큰 누이 아이델에겐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었거든, 포토시 외곽 수비장인데, 기사 가문 출신으로 작위는 못 받았지만, 꽤 괜찮은 사내였다. 내게 검술 기초를 잡아준 스승 같은 분이지.”

“그럼… 두 분은?”

“비밀리에 4대 가문돠 혼담이 오간 사실을 알게 된 누이가 아버지께 크게 항의했지만, 아버지께선 오히려 누이를 집안에 가두고 권력을 동원해 누이의 연인을 국경으로 쫓아버렸지. 그리고 얼마 후 부고가 날아왔어, 국경에서 벌어진 맨피스 왕국와의 충돌로 전사했다고 하더라고. 아니! 몇 년째 평화롭던 국경지대에서 갑자기 충돌? 이걸 누가 믿겠어!”

마크가 분통을 터트리며 소리를 높였다.

“누이 아이델은 그길로 식음을 전폐했어! 누이도 직감했겠지, 이것이 아버지의 소행임을 말이야…. 누이는 그렇게 죽었어,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하지만 아버진 변하지 않았어. 큰 누이가 죽고 얼마 후 다시 4대 가문과 비밀 혼담을 추하기 시작하더군!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아버지와 결별을 선언하고 그길로 포토시를 떠났지. 뭐… 그게 내가 용병이 된 이유지. 어때 파란만장하지?”

마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죄송해요. 괜히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

“괜찮아! 뭐 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마크가 짐직 유쾌하게 웃으며 공동을 돌아봤다.

“자! 이제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왕 온 김에 드워프의 보물창고를 찾아볼까? 여기가 드워프의 지하 공동이면 분명 어딘가에 보물창고가 있을 거다.”

“아쉽지만 드워프의 보물창고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찾기 어렵다니 무슨 소리야? 설마 드워프의 보물창고 이야기를 못 믿겠다는 거냐?”

“아니, 그럴 리가요. 전 보물창고의 존재는 믿습니다. 다만 찾기는 어려울 거란 말입니다.”

카일이 호수 아래로 길게 뻗은 계단을 가리켰다.

“아마도 드워프가 파놓은 광산과 함께 호수 밑에 잠겨 있을 테니까요.”

“호수! 설마….”

“아마도 소문으로만 전해진 네오트가의 저주가 바로 이 호수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아! 네오트 가의 저주!”

피라네시아 평원은 과거 동부 최대의 곡창지대였지만 네오트 남작가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평원의 수원까지 말라버려 세간에선 피라네사아 평원에 네오트 가의 저주가 내렸단 소문이 있었다.

“드워프가 대지의 일족이라고 했었죠. 그럼 누구보다 수맥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겁니다. 평원에 퍼져있는 수맥을 터트려 지하 광장과 광산 쪽으로 물길을 돌렸다면 자연스럽게 평원은 말라갔을 겁니다.”

“아무리 지하 광장과 광산이 깊고 넓어도 물을 가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광산과 지하 광장을 가득 채우면 물은 다시 기존의 수맥을 따라 흐를 수밖에는 없다.”

“그거야 취수구가 따로 있어 들어온 물만큼 다시 빠져나간다면 가능한 일이죠. 바로 저곳처럼요.”

카일이 어둠 속에 가려진 곳을 손으로 가리켰지만, 마크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곤 어둠 속을 살피는 마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카일이 호수를 가리켰다.

“물흐름을 보세요. 지하 호수라고 하기엔 물이 한쪽으로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죠. 방향을 보니 남쪽 암석지대를 따라 터널을 뚫어 물이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든 것 같아요.”

“만약 정말 드워프들이 의도적으로 이 같은 일을 벌였다면….”

“복수죠. 네오트 남작을 죽이고 그 부인을 취하려 했던 크로먼 백작가를 향한 복수이자 저주죠.”

“그게 복수였든 저주였든, 네오트 남작가의 복수는 완벽히 성공했군. 동부 최고의 대영주였던 크로먼 백작 가문이 두 자작 가문보다 위세가 떨어졌으니 말이야.”

“물론 저희에겐 감사한 일이지만요.”

카일이 피식 웃으며 지하 호수를 바라보았다. 지하 호수의 위치도 알았고 물길이 뻗어 나간 위치도 알았으니 다시 지상으로 물길을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 드워프의 보물창고는 영영 찾지 못하는 거냐?”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하 호수의 물을 모두 빼내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렇겠지?“

마크가 아쉬운 표정으로 지하 호수를 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역시 안되는 걸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그만 나가죠. 날이 밝은 뒤 조금 더 정밀하게 탐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오시죠.”

“어쩔 수 없지! 알았다. 대신 다음에도 꼭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알았지!”

“걱정 마십시오.”

카일이 웃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 빠져나왔다.

쿠웅-

카일이 절벽에서 인장 반지를 빼내자 지하로 내려가던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반지에서 정령이 빠져나와 발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잘했다.”

카일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흙의 정령 놈이 기분이 좋은지 수염을 쓰다듬으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런 카일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마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일! 저기….”

마크가 다급히 하늘을 가리켰다.

“와이번!”

한 떼의 와이번 무리가 장원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가봐야겠습니다.”

카일이 서둘러 레토아를 소환했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레토아가 대지를 스치듯 비행하며 카일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쳤다. 마크도 서둘러 자신의 골드 와이번을 소환해 다급히 카일의 뒤를 쫓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단 통신구를 열어놓을 테니,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해주십시오. 적이라면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선 안 됩니다.”

“알겠다. 일단 직접 부딪히지는 말고 적당히 시간만 끌어!”

“걱정 마십시오.”

마크가 카일을 남겨두고 서둘러 기수를 에바크 산맥 쪽으로 틀었다. 멀어져가는 마크를 뒤로하고 고도를 높인 카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와이번 무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카일 경!”

“…윌리스 경?”

통신구에서 들려온 윌리스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카일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는 와이번들을 맞이했다. 윌리스를 선두로 다가오는 무리는 분명 영애를 호위하며 왕도로 향했던 윌리스와 기사들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와이번을 타고….!”

윌리스와 함께 천천히 다가오는 무리들 속에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도테트 경과 메아린 님이군요.”

“허허! 이거 반갑긴 한데, 반가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군!”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어요. 서둘러야 해요.”

메아린의 고함 소리와 함께 후위에 가려져 있던 와이번 한 마리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베아트리… 영애!”

창백하게 굳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은 베아트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드디어… 도착했군요.”

“언니… 정신 차려요!”

헬레나가 필사적으로 베아트리 영애를 흔들어 깨우며 소리쳤다. 깜짝 놀란 카일이 곧장 하늘로 뛰어오르더니 부드럽게 영애의 와이번에 착지해 베아트리와 헬레나를 가볍게 안고 레토아로 돌아왔다.

“볼트!”

영애의 등 뒤쪽에 볼트 한 발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볼트 앞쪽에 비늘이 달려있어 빼낼 수가 없었어요.”

헬레나가 급히 외쳤지만 카일의 귀엔 다른 목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를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

“먼저 가겠습니다.”

카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원으로 곧장 내려갔다. 카일의 머릿속엔 와이번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더 이상 없었다.

끼아악-

거대한 레드 와이번을 뒤로하고 십수 마리의 와이번들이 일제히 장원 안으로 내려서자 장원을 수비하던 병력과 사람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일찍 잠에 들었던 비터와 마법사 멜번은 물론 네드 자작과 하녀, 하인, 공방 사람들까지 밖으로 뛰쳐나왔다.

“세… 상에! 와이번이라니!”

사람들의 시선이 카일에게 쏠렸다. 카일은 의식을 잃은 베아트리를 안고 와이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멜번 님!”

“이게… 무슨 일인가!”

멜번도 깜짝 놀라 황급히 다가오더니 급히 베아트리의 상태를 살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어서, 어서 안으로 옮겨야 해!”

멜번의 말에 서둘러 처소로 달려간 카일이 조심스럽게 베아트리를 침상에 눕혔다.

멜번은 일단 마법으로 출혈을 막은 뒤 떼를 지어 들어온 사람들을 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 뭘 구경할 게 있다고 달려온 거냐! 썩 나가지 못해!”

멜번의 고함 소리에 찔끔한 기사들과 사람들이 하나둘 방에서 빠져나갔다.

“카일 경도 그만 나가주시오.”

“아… 네!”

카일이 주춤 물러나자 지금까지 카일의 뒤쪽에 서 있던 하녀 에슈가 황급히 멜번에게 다가갔다.

“저, 전 아가씨의 전속 하녀에요. 함께 있게 해주세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좋다. 넌 우선 가위로 볼트가 박힌 주변의 옷을 잘라내고 방 밖에 있는 하인들에게 뜨거운 물을 끓여 오라고 해라!”

“하인들에겐 내가 말하죠.”

잠시 침상에 누워있는 영애를 바라보던 카일이 서둘러 밖으로 달려가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곤 복도에 줄지어 서 있는 윌리스를 비롯한 기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윌리스 경… 저와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서운 기운을 뿌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카일의 눈빛을 피하며 윌리스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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