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84화 (384/404)

외전 - 118. 대장장이 벨

“스승님!”

“아이쿠! 하늘 같은 카일 경께서 비루한 대장장이에게 스승님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요.”

대장장이 타론이 황송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지만, 얼굴엔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스승님, 갑자기 왜…?”

카일이 난처한 표정으로 타론의 얼굴을 살폈다.

“뭐! 갑자기? 이런 녀석을 제자라고… 이놈아, 지난번에 분명 말하지 않았으냐! 이번에 개봉한 첫 위스키는 스승에게 먼저 주겠다고 말이다.”

“아!”

“아? 왜 이제야 생각났느냐!”

타론이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자 카일이 재빨리 타론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얼마 전 네드 자작과 함께 개봉한 첫 위스키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당시엔 네드 자작과 협상 중이라…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지금 당장 위스키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런다고 내 화가 풀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타론이 여전히 화가 난 듯 투덜거렸지만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허허! 이 사람, 오랜만에 온 제자에게 왜 이러나! 그만하게!”

그때 망치를 손에든 늙은 대장장이가 카일에게 다가왔다.

“아니… 카트 님 아니십니까?”

카일이 깜짝 놀란 얼굴로 카트의 손을 붙잡았다. 카트는 부러진 비터의 검을 수리하기 위해 찾아간 세트 마을의 대장장이였다.

“벨과 어제 도착했다네. 폴론 형제들 덕분에 안전하게 도착했지.”

자경단을 이끌고 장원에 도착한 폴론 형제는 며칠 후 다핸 남작이 최소한의 영지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경단과 병사를 이끌어 티엘 백작가로 향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폴론 형제는 따라 자경단을 이끌고 곧장 다핸 남작령으로 향했다. 샤론 마을에 남은 자경단의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이때 자경단 가족들과 함께 가장 먼저 마을을 탈출한 사람이 바로 대장장이 타론이었다. 카일에 이어 보일까지 마을을 떠나고 자경단까지 여기저기로 흩어지면서 더 이상 숲에서 철광석을 채취해줄 사람이 없자 폴론 형제를 따라 장원까지 함께 온 것이다.

“어제 도착했단 말입니까?”

카일이 얼굴을 찌푸렸다. 폴론 형제와 자경단이 전적으로 보일의 통제를 받으며 에바크 산맥 안쪽 요새 주변에 마을을 짓고 순차적으로 자경단 가족들을 이주시키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 따로 카일에게 보고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대장장이 카트와 벨은 샤론 마을이 아니라 세트 마을 출신으로 자경대의 가족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계획했던 이주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던 두 사람까지 이곳에 있는 건 지금까지 카일이 알고 있던 계획과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계획 자체가 다르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지!”

“놀라운… 경험이라니요?”

카일이 의아한 얼굴로 카트를 바라보았다.

“그거야 당연히….”

“카일 님!”

카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 대장간 안쪽에서 벨이 달려왔다.

“벨!”

카일도 벨을 반갑게 맞았다.

“벨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을 몰랐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용병이라던 카일 님께서 도자기란 기물까지 만드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벨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와이번 나이트가 되셨다는 말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걸 어떻게!”

카일이 깜짝 놀란 얼굴로 벨을 바라보았다. 장원에서 카일이 와이번 나이트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수뇌부 일부와 기사들, 그리고 이번에 와이번과 계약을 맺은 필론와 매튜를 비롯한 몇 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수십 개월 만에 처음 만난 벨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카일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가자 벨은 물론 옆에 서 있던 카트와 타론도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전 그냥….”

벨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자 카일이 깊은 한숨을 쉬며 벨을 달랬다.

“제게 와이번이 있다는 건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 좀 당황했을 뿐입니다. 벨에게 화가 난 건 아니니 이해해 주십시오.”

“아… 네!”

벨이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카일의 표정은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떻게 제게 와이번이 있는지 아신 겁니까?”

“그건….”

“그런 거라면 내가 말해주겠네!”

벨을 대신해 카트가 다가왔다.

“카트 님께서요?”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을 때 함께 있었으니 잘 알고 있다네.”

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풀어 놓은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물론이네! 이미 상당수 그런 방식으로 이주를 완료한 것으로 알고 있네!”

“이… 이 양반이 정말!”

카일 입에서 저도 모르게 전생의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그만큼 화가 난 것이다. 카일이 분통을 터트리며 대장간 안을 서성거리며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네드 자작과의 협상과 도자기 생산 때문에 한동안 보일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결국 대형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카일은 당장 보일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그 일에 대한 적임자도 눈앞에 있었다.

“휴… 혹시 이 사실을 다른 분께 말한 적 있습니까?”

“그럴 리가요. 보일 님께서 비밀을 꼭 지켜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습니다. 산을 내려 온 사람도 스승님과 저뿐이니 비밀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 일에 대해선 잠시 접어 두고… 벨, 잠시 절 따라오겠습니까? 소개해줄 사람도 있고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저만… 말입니까?”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카일이 타론과 카트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터벅터벅 대장간을 걸어 나갔다.

“스승님… 다, 다녀오겠습니다.”

“허허, 그래… 부디 몸 성히 돌아오거라!”

“흠… 너무 걱정 말게. 녀석이 덩치는 크지만 누굴 때리는 모습은 못 봤으니 말이야! 물론 손목을 잘라버리긴 했지만….”

“헉! 손목을 말입니까!”

“아… 하하! 설마 단순히 화가 난다고 손목을 자르기야 하겠나? 걱정 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군요.”

벨이 고개를 푹 숙인 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카일의 뒤를 뒤쫓았다. 카일은 벨과 함께 곧장 저택 안쪽 작업실로 향했다.

“여긴….”

“이곳은 제 작업실입니다.”

카일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작업실 한쪽에서 작업 중이던 고투가 고개를 돌려 카일을 바라보았다.

“응? 어쩐 일이냐? 오늘은 공방에서 도자기 제작에 전념할 거라 하지 않았느냐?”

“급한 일도 있고, 마침 소개시킬 사람도 있어서 왔습니다.”

“소개?”

고투가 고개를 돌려 카일의 뒤에 멀뚱히 서 있는 벨을 바라보았다.

“흠… 머리가 좀 이상한 녀석이냐?”

“네?”

카일이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멍한 얼굴로 고투를 바라보는 벨의 멍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휴… 벨!”

카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벨의 어깨를 툭 쳤다.

“고투 님이다. 인사드려!”

“아!”

카일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벨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벨… 입니다.”

“세공사 고투라네, 자네 생각대로 호빗이지.”

“아… 그게.”

고투의 말에 벨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카일을 돌아봤지만 정작 도움의 목소리는 작업실 안쪽에서 들려왔다.

“스승님도 참! 손님을 놀리시면 어쩝니까?”

트레이에 담아온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소년이 고투를 질책하듯 말하며 벨에게 다가왔다.

“스승님께선 좋은 분이신데, 요즘 일이 많아서 좀 괴팍해지셨으니 이해하십시오.”

“괴팍?”

가죽 의자에 앉아 막 찻잔을 들어 올리던 고투의 얼굴에 굵은 주름이 잡혔지만 멜은 고투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며 벨의 팔을 잡았다.

“벨이라고 하셨죠. 저와 이름이 비슷하네요. 전 멜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흥! 저런 멍청한 녀석이랑 친해지면 너도 멍청해지는 거란다. 알겠느냐?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하는 거다.”

고투가 마음에 안 드는지 벨을 사납게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신경 쓰지 마세요.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러니까요.”

“어째, 나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구나?”

카일의 말에 멜이 화난 얼굴로 카일을 노려봤다.

“잘 아시네요.”

찔끔한 카일이 고개를 돌려 멜의 시선을 피했다. 라이플 생산을 전적으로 고투에게 맡기면서 일이 늘어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카일이 얼마나 바쁜지 너도 알지 않느냐? 그리도 라이플 제작을 맡겠다고 한 건 나다.”

“그건… 그럴지만.”

고투의 질책에 멜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이가 들고 일이 늘어나면서 부쩍 피곤해하는 스승을 걱정해 카일에게 항의한 것뿐 카일에게 정말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아닙니다. 멜의 말도 틀린 게 아닙니다. 고투 님에게 요즘 신경을 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이거 참, 그런 말 말라니까? 아일론 상회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이 아주 좋아!”

고투가 고개를 숙인 카일에게 손을 흔들며 멜을 나무라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자! 그만 앉게, 손님을 작업실까지 데려온 걸 보니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그 이야기나 나눠보세!”

고투가 재빨리 화제를 돌리자 카일도 숙였던 고개를 들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사실 벨을 데려온 건 중요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중요한 일?”

고투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멜을 돌아봤다.

“멜! 그걸 가져오겠니?”

“그거라면… 설마!”

멜이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카일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성공한 겁니까?”

“그래, 조금 전 멜번 님 실험실에서 직접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젠 실물을 만들 때가 되었다. 벨을 불러온 건 그것 때문이다.”

“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황급히 작업실 안쪽에서 돌돌 말린 커다란 양피지와 모형 하나를 가져왔다.

“이게… 뭡니까?”

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탁자 위에 활짝 펼쳐진 양피지와 모형을 바라보았다.

“일단 양피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게!”

카일을 대신해 고투가 눈을 반짝이며 벨을 바라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벨이 의아한 얼굴로 양피지를 살피더니 곧 양피지에 깊숙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허허! 집중력이 대단하군.”

정신없이 양피지에 빠져든 벨을 보며 고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인상은 그저 덩치 큰 멍청이로 보였지만 지금 보니 집중력 하나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집중력도 좋지만, 기계에 대한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맡겨 놓으면 잘해 낼 겁니다.”

“이 아이에게 전부 맡길 생각인가?”

“아시겠지만 요즘 부쩍 도자기 수요가 늘어서 말입니다.”

“정령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건가?”

“휴… 정령도 무한한 힘을 가진 건 아니더군요. 요즘 너무 혹사시켰습니다. 오늘 하루는 휴식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런가?”

고투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세상에… 이게 가능합니까?”

양피지를 모두 탐독한 벨이 놀란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난 벨이 이걸 만들어 줬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말입니까?”

“큰 어려움은 없어요. 보시다시피 뼈대만 금속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나무와 가죽으로 마감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여기엔 동력부가 필요한데요.”

“오늘 마나 엔진 가동에 성공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 엔진이 그려진 도면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게 바로 이번에 성공한 4기통 직렬형 마나 엔진의 도면이죠. 여기에 실린더 두 개를 더 추가해 6기통 엔진 두 개를 제작할 생각입니다. 제가 만든 거품 집이 스승님께 있으니 그걸 활용하면 몸체 제작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 알겠습니다.”

“필요한 자제는….”

“저요! 그건 제게 말해주시면 돼요.”

멜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되겠군요. 필요한 게 있으면 멜에게 말하면 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벨은 도면에 대해 고투 님과 좀 더 대화를 해봐요. 전 급히 가볼 데가 있어서 말입니다.”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투에게 고개를 숙였다.

“벨에게 잘 설명해 주십시오.”

“허허, 걱정 말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줄 테니 말이야!”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일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후 천천히 작업실을 벗어났다.

“그럼 어디 얼마나 사고를 쳤는지 한번 가볼까?”

카일이 굳은 얼굴로 저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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