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79화 (379/404)

외전 - 113. 혼란(1)

카일이 네드 자작의 남부 와이번 편대를 공격해 와이번을 탈취하고 있을 즈음 무어 자작의 동부 와이번 편대는 아틸런 자작가의 북쪽에 위치한 페터 남작령을 경유해 아틸런 자작가의 본성을 직접 공격했다.

크로먼 백작가와 아틸런 자작가는 물론이고 포트리안 자작가에서 예상한 공격 경로와는 완전히 벗어난 루트였다.

목표가 단순히 아틸런 자작가일 거란 안일한 생각에 에크바 산맥 일대의 마을이나 요새 경계는 강화했지만 정작 인근 귀족가에 경고를 보내지 않은 것이다. 동부에 일어날 극심한 혼란을 걱정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탓이 컸다.

꽝-

꽝-

연달아 날아든 강화 스피어와 마법 폭탄이 내성을 파괴하고 외성을 불태웠다. 이미 와이번들은 동쪽 요새로 보낸 상황이라 자작가에서 와이번을 상대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십 명의 기사와 수백 명의 병사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보다 몇 배의 영지민들이 쓰러져 갔다.

“아틸런 자작을 찾아라!”

무어 자작이 와이번에서 훌쩍 뛰어내려 자작성으로 향하자 십여 명의 와이번 나이트들이 무어 자작의 뒤를 따라 와이번에서 뛰어내렸다.

자작성 안은 하인들과 하녀들이 여기저기 무너진 성벽과 불길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어 이미 아수라장을 연상시켰다. 그 사이로 기사들과 병사들이 달려 나와 무어 자작의 앞길을 막았지만, 자작의 검을 피할 수 있는 기사나 병사는 없었다.

“자작님!”

무어 자작에게로 기사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성안에 자작과 그 가족들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미 피한 것 같습니다.”

“젠장! 분명 급습 했는데, 피해 몸을 피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간단히 전리품과 식량을 챙겨서 떠난다.”

무어 자작의 말에 기사는 고개를 숙이더니 황급히 명을 전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무어 자작은 직접 아틸런 자작가의 내성 이곳저곳을 확인했지만 이미 비어 있었고 하녀들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귀중품이나 귀금속들이 바닥에 널려 있는 모습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 줄 뿐이었다.

얼굴을 찌푸린 무어 자작이 고개를 돌려 한쪽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며 돌아섰다.

“적당히 챙겨서 떠난다.”

“네!”

자작이 한쪽에 자리 잡자 기사들이 들어와 귀중품과 귀금속을 자루에 담았다.

“크윽! 독하지만 깔끔하군.”

자작이 손에든 술병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더니 빈 병을 벽에 던져버렸다.

와장창-

술병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돌아간다.”

무어 자작이 단호하게 말하며 돌아서자 자루에 보석과 귀금속을 담던 기사들이 급히 무어 자작의 뒤를 쫓았고 뒤이어 곳곳에서 일어난 불길이 삽시간에 내성 전체로 번졌다.

무어 자작의 목적은 땅에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동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기에 그 손속엔 어떠한 자비도 없었다.

무어 자작이 떠나고 약 한 시간이 지난 뒤 뒤늦게 수십 마리의 와이번이 나타났지만 이미 무어 자작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아틸런 자작가의 본성은 물론 내성과 외성을 가리지 않고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식량이나 각종 무구를 쌓아 놓은 창고들이 엄청난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일단 아래로 내려갑시다.”

와이번을 이끌고 온 아이작 남작이 굳은 얼굴로 자작성에 내려앉았다.

“그래도 다행이군! 자작님의 가족들이 미리 왕도로 출발해서 말이야!”

“그렇습니다. 자작님께서도 크로먼 백작가에서 있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했던 게 천운입니다.”

“그렇긴 한데… 도대체 어딜 통해 자작가를 급습한 거지? 내 알기론 이미 산맥과 인접한 마을엔 봉화가 설치된 걸로 알고 있는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다른 영지를 우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관의 말에 아이작 남작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구겨졌다. 이렇게 되면 산맥과 인접한 영지 전체에 경계를 내리고 봉화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범위가 너무 넓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당장 주변 영지에 적 와이번들에 대한 경계를 통보해라! 우린 크로먼 백작가로 돌아가겠다!”

아이작 자작은 서둘러 와이번에 올라타고는 백작가로 향했다.

아이작 남작이 와이번을 타고 백작가로 떠나고 잠시 후 아틸런 자작가를 내려볼 수 있는 높은 산 위에서 골드 와이번 한 마리가 하늘 위로 날아올라 북쪽으로 향했다.

와이번이 날아간 곳은 아틸런 자작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넓지 않은 작은 숲속이었다.

“어떻게 되었지!”

“자작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떠나고 얼마 뒤 3~40여 마리의 와이번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래도 저들이 우리가 공격할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 그렇다면 네드 자작의 작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겠군!”

무어 자작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바런트 왕국의 동부는 척박한 대지와 몬스터의 침입을 항상 겪어 왔기 때문에 전투가 삶의 일부와 같은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곳의 기사들과는 달리 약탈도 능하고 기습 전에도 뛰어날 정도로 전투 경험이 많은 덕분에 금세 이상함을 파악하고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작전은 이미 적에게 노출되었다고 보아야겠군!”

“그렇습니다. 적들이 대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와이번의 숫자도 비슷합니다. 이 상태에서 전투를 벌여 설사 이긴다고 해도, 저들은 계속 와이번을 증원받을 수 있지만, 저희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큭큭, 이거 멀리까지 와서 손해만 보게 생겼군! 그래도 돌아갈 경비는 마련해서 가야겠지. 아직 약속한 작전도 남아있고.”

무어 자작의 여유로운 웃음소리에 기사들의 얼굴에도 살며시 미소가 어렸다.

“여기서 인원을 나누겠다. 십여 명씩 나눠 주변 영지를 급습한다. 다들 적당히 챙긴 뒤 약속 장소로 이동한다.”

무어 자작의 말에 기사들이 환호하듯 크게 대답하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참! 크로먼 백작가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쪽에 와이번들이 몰려 있을 테니!”

무어 자작의 말에 기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트리안 자작가를 안 들릴 수는 없지! 그곳이 아마 포도주로 유명했던가?”

가볍게 블랙 와이번 위로 뛰어오른 무어 자작이 천천히 서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크로먼 백작가를 제외하고 동부의 수십 개 귀족 가문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최소 5마리에서 많게는 10여 마리 이상의 와이번이 동부 일대의 영지를 공격하고 약탈을 자행했으며 영지와 마을을 불태웠다. 소규모 남작가의 경우 영주까지 참살당하는 등 동부 일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포트리안 자작가는 다행히 빠르게 영주성 지하, 포도주 저장 창고로 가족들을 피신시켜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자작성의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쾅!-

“또 놓쳤단 말입니까? 벌써 몇 번째인지 알기나 아십니까?”

아틸런 자작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이작 남작을 노려봤다.

“어허! 그만하시지요! 포트리안 자작성 역시 이번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이작 남작 역시도 놈들에게 가진 원한이 적지 않습니다.”

공작령에서 온 유론 자작이 아틸런 자작을 만류했다.

아틸런 자작 역시 이번에 포트리안 성이 큰 피해를 입었단 사실을 알기에 더는 아이작 남작을 탓할 수는 없었다. 아틸런 자작도 사실 분노해 소리를 쳤지만 아이작 남작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아틸런 자작 소속의 와이번들 역시 적들의 뒤 꽁무니만을 쫓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왕도에서 병력이 내려올 겁니다. 그땐 놈들뿐만 아니라 바런트 왕국도 똑같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왕도에서 선발대를 이끌고 내려온 로사르 백작의 말에 회의장에 앉아 있는 기사들과 귀족들의 얼굴이 그나마 밝아졌다.

오늘 이 자리의 참석자는 티엘 백작가를 지원할 병력을 구성하기 위해 동부 전역에서 모인 귀족들로 대부분이 와이번에 의해 가족이 죽은 귀족들이나 기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들 모두 이번 회의에 자발적으로 참가해 병력을 내놓기로 합의하면서, 무려 1만 명 규모의 병력이 모여들 정도로 동부 귀족들의 분노는 크고 대단했다.

크로먼 백작가에서 3천, 아틸런 자작가와 포트리안 자작가에서 각각 2천5백의 병력, 그리고 각 귀족 가문에서 작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수백까지, 대략 2천 명의 병력을 구성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정작 기사들 파견에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난색을 표현했다. 각 귀족 가문에서 입은 피해는 실로 막대할 뿐만 아니라 아직 잡히지 않은 적 와이번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기사들을 파견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병력의 규모는 대단했지만, 기사단이 포함되지 않은 알맹이가 빠진 병력일 뿐이었다.

다만 크로먼 백작가의 경우 동부 귀족가 중 유일하게 공격받지 않은 가문이라 할 수 있었고 또한 가장 강력한 기사단을 보유하기도 했기 때문에 기사단의 파견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크로먼 백작가로 인해 가장 먼저 바런트 왕국의 공격을 대비할 수 있었고 덕분에 여러 가문의 가주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기에 백작가에서 기사단을 파견을 거부한다고 해도 딱히 크로먼 백작가를 비난하거나 압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동부의 삼대 가문으로서 이번 전쟁에 어느 정도의 역할이 필요하기에 크로먼 백작가는 자진해서 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번에 파견이 결정된 기사단은 백합기사단 중 제3 기사단 백여 명으로 이제 막 기사 서임을 받은 초임 기사들이 모인 일종에 예비기사단에 가까운 기사단이라 할 수 있었다.

제3 기사단은 이곳에 모일 1만 명의 병력과 각 가문에서 보내온 소규모 기사를 모아 티엘 백작가에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렇게 동부가 점점 전화에 휩싸이고 있지만 피라네시아 장원의 일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백작성에서는 이번 전쟁에서 카일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 없었고 카일 역시 전쟁에 참전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이곳저곳을 기습 공격하고 있는 와이번들이 장원을 노릴 경우 대처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엔 어디라고 합니까?”

“이곳에서 말을 타고 하루거리에 있는 필테일 영지입니다. 동부라기보다는 중부에 가까운 영지인데, 영주는 물론 어린 소 영주까지 모든 귀족을 죽이고 영지까지 불태웠다고 합니다.”

“가문 전체를 몰살시켰단 말입니까?”

“네, 워낙 작은 영지라 왕실에서 곧 대리인은 파견할 거라고 합니다. 어쩌면 영지가 없는 귀족이나 기사 가문에 작위와 함께 매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매각이라고 했습니까?”

윌리스의 말에 카일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번 습격으로 동부는 물론 남부와 중부 영지까지 피해를 입었으니, 왕실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보복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왕실 재정은 그다지 좋지 못해요.”

“그럼 결국 가문이 몰락한 영지를 팔아 전비로 쓰겠다는 말이군요.”

“어차피 영지는 귀족에게 돌아갈 거예요. 왕실로서는 어차피 돌아갈 영지를 팔아 손해를 만회하려는 거죠. 거기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하위귀족이나 기사 가문에 매각하면 국왕파를 늘릴 수도 있지요.”

“확실히 왕실로서는 나쁜 선택은 아니군요.”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베아트리 영애를 돌아봤다.

“저도 한번 나서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카일이 직접 말인가요?”

“네.”

“카일은 이미 크로먼 백작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있나요?”

카일과 보일은 둘 다 레드 와이번의 오너에 상급 엑스퍼트다. 지금 당장 왕실로 찾아가 충성을 맹세하면 영지는 물론 최소 자작 위, 아니 귀족파와의 균형을 일거에 무너트릴 수 있는 두 사람의 무력을 생각하면 당장 백작위를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 싸움에 나설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지켜야 할 사람이 늘어나고 보니 귀족작위 정도는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베아트리 영애께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최소 2~3천 골드 정도는 필요할 거예요.”

베아트리 영애의 말에 카일이 품 안에서 은패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5천 골드입니다. 이번에 하멜 상단과의 거래에서 받은 대금입니다.”

“세상에 이게 5천 골드란 말입니까?”

게이츠가 깜짝 놀라 물었다. 5천 골드면 그리미엄 자작가의 1년 세수와 맞먹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이 정도면 어쩌면 작은 자작령의 작위도 가능할 거예요.”

“굳이 자작가는 필요 없습니다. 남작 위면 충분해요.”

“알겠어요. 그럼 필테일 영지를 매입할게요. 영지의 위치도 장원과 가까우니 관리하기 쉬 울 거예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네드 자작과 약속이 되어있어서요.”

네드 자작에겐 저택의 3층 동쪽 끝방 거처를 마련해주고 귀족으로서의 최대한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은 수배를 부풀려 몸값과 함께 모두 받아낼 생각이라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잘됐습니다.”

카일이 밖으로 나가자 가장 먼저 게이츠가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윌리스도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카일 경께서 작위를 이어받으시면 기사들도 안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아가씨와의 혼인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기사들이 카일과 보일을 따르고는 있지만 두 사람의 정확한 신분은 기사라기보단 용병이다. 때문에 은연 중 기사들의 마음속에 꺼리는 마음이 있어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카일이 작위를 받고 명실상부한 영주가 된다면 그동안 미뤄두고 있었던 카일과 베아트리의 혼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더불어 카일에게 정식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그를 주군으로 모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이츠 님.”

“네, 영애.”

“늦지 않게 왕도로 도착하려면 바로 출발해야 할 거예요.”

“걱정마십시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게이츠가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윌리스와 기사들을 돌아보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이 녀석들 뭐 하는 거냐! 어서 일어나지 않고!”

게이츠가 윌리스를 끌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베아트리가 카일이 놓아둔 은패를 매만지더니 품 안 깊숙이 소중하게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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