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77화 (377/404)

외전 - 111. 탈취(4)

“자넨 바런트 왕국 남부가 왕국에서 가장 부유하게 살고 있는 이유를 아는가?”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린 네드 자작이 와이번을 몰아 카일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야 폰타 아일랜드와의 무역 때문이 아닙니까?”

“잘 아는군, 맞네! 남부 상인들은 페라네트 항을 통해 밀과 면직물, 말을 수출하고 대신 금이나 은, 마나석을 수입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네. 하지만 이젠 한계에 다다랐지!”

“수출품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군요.”

“잘 보았네, 폰타 아일랜드에서 몇 년 전부터 목화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주요수출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면직물 수입이 급감했고, 면직물을 생산하던 남부 귀족들이 큰 타격을 받았네.”

“아마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이 네드 자작 당신이겠군요.”

“하하! 자네 아주 똑똑하군. 맞네! 수출이 급감하면서 면직물의 가격이 급감했고, 영지의 공방 수십 곳이 문을 닫았다네. 나로선 가문과 영지를 위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수출품이 필요했지.”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도자기와 옹기입니까?”

카일의 물음에 네드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전 에렌 공국 상인에게서 매입한 도자기 열점을 폰티 아일랜드로 보낸 적이 있다네. 헌데 어떻게 돌아온 지 아나? 정확히 은 열 상자로 돌아왔다네. 놀랍지 않나? 고작 십수 골드에 불과하던 도자기가 무려 열 배가 넘는 은으로 돌아왔네. 면직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익으로.”

“그렇다면 계속 에렌 공국의 상인과 거래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남부 귀족들과 상인들은 이미 도자기의 가치를 알고 상단을 이끌어 에렌 공국으로 향하고 있네. 자네도 느끼고 있겠지, 최근 에렌 공국 상인과의 거래가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네드 자작의 말대로 에렌 공국 하멜 상단과의 거래가 전 달에 비해 세 배 이상 급증하면서 마법 가마를 증설하고, 새롭게 어린 도공들을 뽑아 육성하고 있었다.

“그게… 당신이 전쟁에 참전한 이유와 상관이 있는 겁니까? 당신 역시 에렌 공국 상인과 거래를 통해 도자기 무역을 지속하면 될 것 아닙니까?”

“페네시스가가 수 대에 걸쳐 막강한 부를 바탕으로 남부 최고의 가문으로 성세를 유지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

“그건 페네시스가가 다른 영주들과 달리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춰 면직물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지금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군.”

보일의 말에 네드 자작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른 영주와는 달리 면직물에 올인한 우리 가문으로선 다른 영주와 동등한 입장으로 도자기 중개무역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랬다간 십수 년 안에 가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고 변방의 자작가로 전락하고 말 거네!”

“그래서 제가 필요했던 겁니까? 도자기를 독점하기 위해?”

네드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자네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도자기를 독점 생산하는 것은 물론 물량까지 직접 조절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결국 남부의 거상인 네드 자작이 직접 참전한 이유는 카일을 납치해 도자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란 말이었다. 카일이 평범한 도공이거나 용병이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방법이었다.

“안됐군요. 계획했던 일이 헛된 망상으로 끝났으니 말입니다.”

“헛된 망상? 하하!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난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아주 만족하고 있다네.”

네드 자작이 크게 웃었다.

“무슨 뜻입니까?”

“자넬 만났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전투를 지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당신 부하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여기서 전투를 끝내겠다는 말입니까?”

“자네의 대답에 따라 달라지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절 회유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회유가 아닌 협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군.”

카일이 황당한 얼굴로 네드 자작을 바라보았다. 부하들을 죽인 상대와 전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네드 자작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인은 목숨을 걸고 적국으로 들어가 협상을 하고 물건을 팔아야 할 때도 있거든.”

“황당하긴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절 회유하겠다는 겁니까?”

“나와 함께 페네시스 가로 함께 가는 것은 어떤가?”

“제가 가진 모든 기반이 이곳에 있습니다만?”

“하하! 고작해야 작은 장원 수준의 기반이 얼마나 대단하겠나? 나와 함께 간다면 지금 자네가 세운 공방의 열 배가 넘는 거대한 공방을 지어주겠네!”

“말도 안 되는 소리군요.”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제가 가진 공방의 규모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 열 배라면…?”

“남작령 정도면 되겠나?”

카일이 놀란 얼굴로 네드 자작을 바라보았다.

“지금… 영지를 주겠다는 겁니까?”

“나에겐 자작 위와는 별개로 페드릴이란 남작 위가 있다네, 마침 내게 딸이 하나 있으니, 그 아이와 혼인을 하면 남작 위와 함께 항구 남쪽 평원을 영지로 주지. 공방 역시 원하는 크기로 세워 주겠네.”

“지금 절 영지를 가진 계승 귀족으로 만들어 주겠단 말입니까? 얼마 전까진 절 잡아갈 생각이 셨던 분의 말로는 믿기지 않는군요.”

카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네드 자작을 바라보았다. 영지를 가진 영주가 되는 것은 귀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었다. 그런데 네드 자작은 지금 계승 작위는 물론 영지까지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상황이 바뀌지 않았나? 레드 와이번의 오너를 노예로 부릴 수는 없지. 자네 정도의 재능과 능력이라면 가문의 사람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거라 생각하네. 어떤가? 이만한 대우는 왕실에서도 쉽게 줄 수 없을 것이네.”

“도자기 기술 하나 때문에 정말 그 모든 것을 주겠단 말인가요?”

“가문의 최고 기술자는 물론 마법사까지 불러 도자기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내린 결론이 뭔지 아나? 정확한 재료와 기술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백 년이 지나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네.”

전생에서도 자기 기술이 유럽에 알려진 건 수백 년이 지난 후였으니, 네드 자작의 결론은 어쩌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실망하셨겠군요.”

“실망? 아니야! 난 오히려 그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네, 기술만 확보할 수만 있다면 도자기가 가문의 성세를 백 년은 지속시켜줄 거란 뜻이 아니겠나?”

“황당한 해석이군요.”

“틀린 해석도 아니지. 어떤가,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네드 자작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자작은 절대 카일이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진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하! 아쉽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지.”

카일이 뭐라 대답하기 전 보일이 단박에 네드 자작의 제안을 거절해 버렸다.

“지금… 거절이라고 했나?”

“그래! 거절한다. 이 녀석에겐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거든.”

“아버지!”

“왜? 넌 저 귀족 녀석의 조건을 받아들여 얼굴도 모르는 귀족 영애와 혼인을 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다. 겪어보니 둘 다 마음에 들지만,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니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보일이 웃으며 카일의 옆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둘 다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너도 알지만 가문 사람이라곤 고작해야 너와 나 둘뿐이지 않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후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필! 그게 왜 저예요?”

카일이 버럭 소릴 지르자 보일이 카일을 향해 정색하며 물었다.

“지금! 아비보고 어미를 배신하라고 말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그렇지? 그러니 너밖에 없지 않느냐?”

보일이 카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네드 자작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여인 때문에 영주가 되는 것을 포기하겠다니… 지금 날 기만하려는 것이냐!”

네드 자작이 분노한 얼굴로 보일과 카일을 노려봤다.

“기만이라기보다 거절입니다만?”

“그 거절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생각해 봤겠지?”

“그래서 전투는 언제 시작할 겁니까? 점점 대화가 지루해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어서 빨리 저 녀석을 타보고 싶은데 말이다.”

보일이 네드 자작의 와이번을 보며 눈을 빛냈다.

“지금 이 결정…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널 사로잡아 평생 지하 감옥에서 도자기나 만들며 죽게 만들어 주마!”

네드 자작의 레드 와이번이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천천히 물러나더니 안장에서 황금빛 사슬을 풀어냈다.

차르륵-

“저 녀석,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러게요?”

카일의 와이번이 황급히 네드 자작을 피해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카일과 보일 모두 이번 전투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근접 전투, 일명 도그 파이트에서 사용하는 강화 스피어나 사슬 낫보다 중절식 라이플, 샷건이 근접 전투에서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드 자작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했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차르륵-

네드 자작의 손을 떠난 야구공만 한 황금추가 카일을 노리며 빠르게 날아들자 레토아가 가볍게 동체를 틀어 황금추를 피하며 네드 자작의 와이번을 향해 접근하려는 순간이었다. 피했다고 생각했던 황금추가 급격히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꽝-

압축된 공기가 갑자기 폭발하며 강렬한 충격파를 뿜었고, 레토아의 동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다행히 레토아가 동체를 비튼 덕분에 카일과 보일에게 전해진 충격파는 미미했지만 충격파를 직격당한 레토아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끼아악-

“빌어먹을! 저 녀석 마법 무구를 가지고 있다.”

보일이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네드 자작의 손에 벗어난 둥근 추가 빠르게 날아들고 있었다.

“피해!”

보일의 외침에 레토아가 날개를 접으며 아래로 뚝 떨어지다 상승하며 연이어 날아드는 황금추의 공격을 피해 충격파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꽝-

꽝-

꽝-

“쥐새끼 같은 놈들, 어디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네드 자작이 황금 추를 머리 위로 빠르게 돌리며 또다시 레토아의 뒤를 바짝 추적했다. 네드 자작의 사슬 추는 압축된 공기를 폭발시켜 충격파를 발생시키는 3서클 에어 붐 마법이 내장된 마법 무구로 최상급 마나석을 사용해 사용횟수를 비약적으로 늘린, 바런트 왕국에도 몇 안 되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최상급 마법 무구 중 하나였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어디 끝까지 가보자!”

어차피 비슷한 기량을 가진 레드 와이번으로 서로가 서로에게서 도망치는 건 현시점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양쪽 모두 전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승부를 가릴 수밖에는 없었다. 카일과 보일은 추적해 오는 네드 자작을 향해 샷건을 겨눴다.

차르륵-

네드 자작이 무게추를 던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던 카일이 소리쳤다.

“지금!”

펑-

펑-

강력한 폭음과 함께 샷건에서 뿜어져 나온 작은 쇠 구슬 수 십 발이 뒤쫓아 오는 네드 자작을 향해 날아갔다.

“이런!”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자작이 급히 황금추를 회수하며 다급히 사슬을 회전시켜 크게 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산탄을 방어했다.

따다당-

사슬에 맞은 쇠 구슬이 사방으로 비산 했지만, 일부는 사슬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와이번의 비닐에 부딪히며 네드 자작을 위협했다. 깜짝 놀란 자작이 급히 와이번을 세워 속도를 늦췄다. 그만큼 네드 자작도 조금 전 비터와 보일의 공격에 놀란 것이다.

“저 녀석들이 어떻게 마법 무구를!”

네드 자작도 지금껏 마법 무구를 가진 와이번과 공중전을 벌인 적은 없었다. 가진 것이 많은 네드 자작으로선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무모한 전투에 어리석게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투에 자작이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 역시 강력한 마법 무구를 바탕으로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 역시 강력한 위력의 마법 무구로 무장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는 고사하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자작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