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70화 (370/404)

외전 - 104. 포윅숲 전투(1)

두두두-

어둠을 틈타 도강을 마친 크롤 기사단과 기병대는 빠르게 산맥을 벗어나 평원으로 들어섰다.

“숍 남작!”

“코엘 자작님!”

“자네가 남부였던가?”

“그렇습니다. 소관이 남부를 맡았습니다.”

“허면 우린 이쯤 헤어져야 할 것 같군!”

“예! 보름 뒤 다시 뵙겠습니다.”

“무사히 약속한 기일까지 도착하게, 그럼 자네에게 술 한잔 사주지!”

코엘 자작의 말에 숍 남작이 빙그레 웃었다.

“고작 술 한잔입니까?”

“허! 다들 날 겁내는데, 자넨 날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군!”

“제가… 무서워해야 하는 겁니까? 전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만?”

숍 남작이 고갤 갸웃거리며 말하자 코엘 자작이 크게 웃으며 품 안에서 작은 단검 하나를 꺼냈다.

“하하! 좋아, 오랜만에 날 웃게 해줬으니… 이걸 주겠네, 무사히 약속한 기일까지 도착한다면 말이지.”

“이건…?”

“왜 그러나? 낡은 단검이라 실망했나?”

자작이 피식 웃으며 낡고 손때 묻은 단검을 들고 말을 이었다.

“이게 보기엔 낡았어도 제법 행운이 깃든 물건이라 할 수 있지, 날 세 번이나 살려줬거든.”

코엘 자작의 말 때문인지 시큰둥하던 숍 남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검으로 향했다.

“어때, 관심이 좀 가나?”

“자작님께 중요한 물건 같은데… 절 주셔도 되겠습니까?”

“이젠 단검의 행운에 기댈 정도로 약하진 않거든.”

“좋습니다. 반드시 약속한 시각에 도착해 자작님께 단검을 받겠습니다.”

“하하! 기대하지.”

코엘 자작의 말에 고개를 숙여 보이곤, 숍 남작이 말머리를 돌렸다.

“가자! 우린 포윅 숲으로 간다.”

숍 남작의 명에 기사단과 삼백의 기병들이 빠르게 남하하기 시작했다.

* * *

구릉을 따라 이어진 숲과 그 사이로 형성된 좁고 긴 협로 위로 긴 행렬을 이루며 수백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볼란을 선두로 열 명의 기사와 얀과 조셉이 이끄는 2백의 자경단이었다.

“이곳이 포윅 숲입니까?”

“그렇네. 여기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금지된 영주의 사냥터인 크레센트 숲이 나오지.”

“금지된 사냥터라니요?”

“현 아킨스 자작이 영주에 등극하면서 사냥터를 폐쇄했다네, 물론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

“그럼 사냥터는 폐쇄된 채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왔다는 말이군요.”

“뭐, 정확하진 않지만 그렇게 볼 수 있지.”

“한번 가 보고 싶군요. 어떤 곳이기에 금지로 만들었는지 말입니다.”

얀의 말에 볼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게, 귀족이 감추려 하는 비밀을 엿보려 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냐. 때론 명을 단축시킬 수 있으니 조심하란 말이네!”

“아!”

“기사란 모름지기 입이 무거워야 해! 특히 귀족의 비밀은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알려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덕목이라 할 수 있지,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얀이 볼란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볼란은 얀과 조셉에게 기사가 알아야 할 것과 조심하거나 몰라야 할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짧은 시간이지만 기사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던 두 사람에겐 정말 큰 도움이 아닐 수 없었다. 켈토 단장이 자신의 수행 기사 볼란을 동행시킨 이유는 아마도 사라진 자경단원에 대한 추적보다는 앞으로 기사가 될 두 사람을 배려해서였을 것이다.

“멈춰!”

앞서가던 조셉이 급히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춰 세우더니 얀과 볼란을 향해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저길 봐라!”

조셉이 멀지 않은 구릉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서 수십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정신없이 도망쳐오고 있었다.

“저들은…!”

“아시는 분입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중남부에 위치한 플랍 남작가 같네. 기사단은 그리 강하진 않지만 병사의 수나 질에선 남부에서도 제일이라 할 수 있는데… 헌데 저들이 왜?”

“아마도 티엘 백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이동하던 병력 같습니다.”

얀의 말대로 중남부에 있던 플린 남작가가 동부까지 병력을 끌고 올 이유는 변경백인 티엘 백작가의 지원 요청 때문일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도대체 누가 저들을 공격한단 말인가?”

“저도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저희도 대비를 해야겠습니다.”

얀이 굳은 얼굴로 황급히 자경단에 수신호를 보내 자경단을 낮은 좌측 언덕으로 이동시켰다. 우측 언덕의 경우 지형이 높고 가파를 뿐 아니라 나무도 빽빽하게 들어선 곳이라 빠르게 병력을 운용하기엔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건 또 뭐야!”

막 낮은 구릉 위로 올라선 조셉의 외침에 자경단의 시선이 조금 전 플랍 남작가의 병사들이 도망 온 구릉 위로 향했다.

“기병?”

얀은 물론 조셉과 볼란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구릉 위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기병의 수가 곧 수백 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남부에… 저렇게 많은 수의 기병을 운용하는 곳이 있습니까?”

“기병은 돈이 많이 드는 병종이다. 가난한 남부에서 수백의 기병을 운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볼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릉 위로 늘어섰던 기병들이 빠르게 구릉을 내려오며 도망치는 플랍 남작가 병사들의 뒤를 덮쳤다.

퍽-

남작가 병력의 뒤를 순식간에 따라 잡은 기병의 장창이 도주하는 병사의 등을 꿰뚫었고, 장검이 목을 잘라버렸다.

“이놈들!”

정신없이 도망치던 기사 하나가 급히 몸을 돌려 달려오는 기병의 장창을 향해 오러로 물든 검을 휘둘렀다.

꽝-

강력한 기병의 일격을 막아낸 기사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소드 엑스퍼트라도 가속이 붙은 강력한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기병 공격을 막아냈다고 해서 공격이 끝난 건 아니다.

쉬익-

충격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비틀거리는 기사의 좌우로 두 기의 기병대가 따라붙으며 창을 찔러왔다. 깜짝 놀란 기사가 급히 좌측으로 몸을 틀어 장창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자세가 무너진 상태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퍼벅-

두 개의 장창이 연달아 기사의 가슴과 어깨를 잔인하게 뜯어내며 스쳐 지나갔다.

“…이럴 수가!”

볼란의 얼굴의 창백하게 굳었다. 기병들은 철저하게 기사들을 흩어 놓은 뒤 두세 기가 합심해 사냥하듯 기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분명 기사를 전문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해 온 정예기병대가 분명해 보였다.

“어디서 저런 녀석들이!”

아무리 분쟁 중인 귀족들의 전투라도 포로를 잡지 않고 병사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전멸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저들은 우리 역시 노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얀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기병들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얀의 외침에 자경단원들은 마치 준비했다는 듯 화살을 바닥에 꽂고 장궁과 투창을 점검했다.

* * *

“이거, 운이 좋은 건가?”

얼굴 위로 뛴 붉은 핏물을 닦아낸 숍 남작이 피식 웃었다. 숍 남작이 포윅 숲에 도착한 건 십여 일 전, 벌써 두 개의 중소 상단과 남부 귀족 가문에서 티엘 백작령으로 보낸 병력 수백을 전멸시킨 뒤였다. 그리고 조금 전 풀랍 남작가의 기사와 5백의 병사들을 전멸시킨 뒤, 또 다른 사냥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풀랍 남작가의 병력 일부가 포위망을 탈출하면서 새로 나타난 사냥감이 자신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가문인지 알 것 같은가?”

“인장이나 깃발이 없는 걸로 봐서는 용병일 수 있습니다.”

“용병?”

“복장을 봐선 영지병이라기 보다는 용병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확실히 자경단의 복장이나 무장은 일반적인 용병들의 무장이라기보다는 용병에 가까웠다.

“상관없다. 어차피 저 용병단도 티엘 백작가를 돕기 위해 가는 병력일 테니, 도망치는 녀석들과 함께 단번에 정리한다. 모두 가자!”

검을 뽑아 든 숍 남작이 선두에서 말을 몰아 구릉을 빠르게 내려오며 도망치던 병사와 기사들을 전멸시켰다. 그들은 여세를 몰아 곧장 자경단이 진을 친 구릉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낮고 완만한 구릉이기에 기마대는 망설이지 않고 구릉 위로 올랐다.

“지금이다. 쏴!”

얀의 명에 이 열로 길게 늘어선 자경단들이 일제히 화살을 시위에서 놓았다. 하늘 위로 올라간 수백 개의 화살이 일제히 기병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장궁병이다!”

“계속 달려라! 속도를 더 높여라!”

숍 남작이 급히 명을 내리는 동시에 더욱 강하게 박차를 가하며 속도를 높였다.

퍼버벅-

“으악!”

“커억-”

연이어 날아든 화살을 맞은 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지고 말발굽에 밟혀 처참하게 죽어 갔다. 상대의 전력도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공격에 나섰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큰 피해가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하지만 자경대의 공격은 단지 화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병들이 구릉 가까이 접근하자 선두에 늘어섰던 자경단이 바닥에 꽂아 두었던 투창을 일제히 손에 들었다.

“모두 말을 공격해!”

“공격해! 말을 노려라!”

조셉의 외침에 자경단의 투창이 선두서 달려드는 말을 집중적으로 노리며 날아들었고 이 열에서 활을 날리던 궁수들도 기병과 말을 집중 공격했다.

꽝-

정면에서 날아든 투창을 걷어낸 숍 남작이 쓰러지는 기병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병력 피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우회! 양쪽 측면을 공격해!”

선두 기병이 쓰러지며 기병의 속도가 줄어들자 숍 남작은 즉시 병력을 나눠 길게 늘어선 자경단의 좌우로 달려들었다.

퍽-

온몸에 투창과 화살을 뒤집어쓴 기병이 전열을 뚫고 자경단 진형으로 뛰어들면서 일시적으로 진형이 무너지자, 기병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진형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스각

긴 장검을 능숙하게 휘두르며 기병들이 밀려나는 자경단을 베어 넘겼다.

“이놈들이 감히!”

분노한 조셉이 곧장 검을 뽑아 들며 기병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진형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병력의 숫자 역시 월등했기에 갈수록 자경대의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었다.

“후퇴해야 한다.”

붉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볼란이 얀에게 황급히 달려왔다.

“안 됩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기병대에 유린당할 뿐입니다.”

“이대로 있어도 전멸하긴 마찬가지야! 차라리 물러나 숲에서 싸우는 것이 나을 거야!”

볼란의 말에 얀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진형이 붕괴된 이상 이대로 전투가 진행된다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좋습니다.”

“얀!”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다 죽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건 아니다.”

입술을 꽉 깨문 얀의 음성엔 분노가 어려 있었다

“빌어먹을!”

조셉이 고개를 끄덕이자 얀은 급히 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원 후퇴한다. 숲으로 후퇴!”

볼란과 기사들을 선두로 얀과 조셉이 황급히 후퇴를 외치며 구릉 아래로 달리자 수십 명 단위로 모여 겨우 버티고 있던 자경단원들도 황급히 구릉 아래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추격하라! 모두 섬멸하라!”

숍 남작이 앞을 막아선 자경단의 목을 잘라내더니 말을 몰아 도망치는 자경단원들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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