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61화 (361/404)

외전 - 95. 가신회의(2)

“크음,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벽돌을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것인가! 그만한 장점이 있다면 벌써 시중에 판매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작의 말에 케프 남작은 담담하게 말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을과 수로 건설에 소용되는 벽돌의 규모가 하루에도 수 천장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벽돌을 판매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수천 장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수로 공사를 하며 파낸 흙을 빈민가 여인과 아이들이 벽돌로 만들어 공방에 팔고 있다고 하는데, 그 수량에 하루에 만장이 넘는다 합니다. 이걸 가마에 구워 단단한 벽돌을 만드는 것이죠. 듣기로는 이렇게 만든 벽돌 대부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재정관 케프 남작의 말에 관리들과 가신들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 많은 벽돌을 수로 공사에 모두 투입하고 있단 말입니까?”

“제가 알아본 바론 그렇습니다.”

“도대체 수로의 규모가 얼마나 크기에 그만한 벽돌이 들어간단 말입니까?”

처음 피라네시아 평원에서 수로 건설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만 해도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저 장원에서 흘러나온 물길을 평원 쪽으로 돌려 농토를 만들려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에 소용되는 벽돌 양이 수천 장이면 이야기는 달랐다. 평원에서 수로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단순 계산 만해도 수로 공사에 사용된 벽돌이 벌써 수십만 장 이상이었다. 지금 이루어지는 공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방대하다는 방증과도 같았다.

“정말 일게 공방에서 그 정도로 대단위 수로를 파고 있다는 말이요?”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기사단장인 레하트 남작까지도 놀란 얼굴로 케프 남작을 향해 물었다.

“그렇습니다. 알아본 바론 폭이 2m, 깊이 1m 정도의 수로라고 합니다. 1차로 동쪽 산맥에서 시작해 장원 앞쪽 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수로를 건설할 계획이라더군요.”

“허… 그것만 해도 재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그것이 1차 계획이란 말입니까?”

“재정이라… 아직 도자기와 옹기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보군요.”

케프 남작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모르다니 무슨 말이요?”

“혹시 기사단장께선 도자기란 물건 한 점에 얼마나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한 점 가격 말이요?”

“그렇습니다.”

“흠… 뭐 대략 2~3실버 정도라고 생각하오. 이것도 나름 비싸게 부른 것이고.”

레하트 남작의 말에 케프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레하트 남작이 동부에선 제법 대단한 기사이긴 하지만 크로먼 백작가에 갇혀있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틀렸습니다.”

“틀렸다. 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된단 말이오?”

“비싼 정도가 아닙니다. 최근 왕도에서 경매에 나온 대형 도자기 한 점이 3백 골드에 왕실 대리인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지금… 3백 골드라고 했습니까?”

총관인 샤페론 남작이 깜짝 놀라 케프 남작을 향해 물었다. 샤페론 남작은 오래전부터 크로먼 백작가의 총관을 맡아오던 포물런 남작가의 당대 가주임과 동시에 총관이었다

“물론 모든 도자기가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은 수 골드 정도에 거래되고 있지요.”

“허허, 미쳤군. 고작 식기 하나에 수백 골드를 낭비하다니!”

레하트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기사인 그로서는 식기 매입에 수백 골드를 사용한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케프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도자기는 단순한 식기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요?”

“도자기를 만들 때 한가지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수천 수 백개의 도자기 중 공방장이 인정한 최고의 도자기만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나머지 도자기는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설마 공장에서 그대로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레하트 남작의 물음에 케프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판매하지 않은 도자기는 가차 없이 부숴버립니다.”

“지금 부순다고 했습니까?”

“네. 오직 최고의 도자기만을 세상에 공개하는 거죠. 더구나 도자기를 만들려면 특수한 재료가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 않아 생산량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소량생산에 고급화 전략이라… 확실히 고위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군요.”

“그렇습니다. 그 중 트라발트 공녀께서 도자기 수집에 열정적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위 귀족은 물론 왕실에서도 도자기 수집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엔 도자기 한 점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교계에 발도 들이지 못할 정도라고 하죠.”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로를 만들 정도는 아는 듯 보이는데?”

수백 점 도자기를 만들어도 대부분을 부숴버리고 실제 판매되는 양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것도 아일론 상회와 나눠야 하니 정작 공방에서 얻게 되는 골드는 수백 골드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확실히 총관께서 정확히 보시는군요. 맞습니다. 도자기에서 큰돈을 벌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수천에 이르는 빈민을 먹여 살리면서 수로까지 건설하긴 힘들 겁니다.”

“그럼 다른 수입원이 있단 말이요?”

“도자기와 함께 판매하는 옹기라는 게 있습니다. 대부분 상회나 하위 귀족들, 평민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수익이 만만치 않습니다.”

“평민들에게 판매하는 거라면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부총관인 도포프가 물었다. 도포프는 샤페론 남작의 아들로 삼십 대 후반에 벌써 백작가 내에서도 차기 총관으로 내정된 인물이었다.

“공방에서 생산되는 옹기의 수량은 최근 한달 동안 급격히 늘어 대략 3천~4천 점에 달합니다. 이를 아일론 상회에서는 크기에 따라 달리 매입하는데 작게는 2실버에서 많게는 2골드에 구매를 하는데, 이걸 아일론 상회는 2~3세트로 묶어 4~5골드에 판매를 하지만, 항상 수량이 부족하다고 하다고 한다네.”

“…그 정도면 한달 수입이 수천 골드에 달할 것 같은데, 대단하군요. 공방의 수입이 백작가의 한 해 수입을 가뿐히 넘을 정도라니…. 그런데 케프 남작께서는 공방 사정을 어떻게 그 정도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겁니까?”

“수로 때문이요. 공방에서 수로를 건설한다기에 아일론 상회를 통해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 놀랐다오.”

“그럼 제 정관께서는 공방에서 찾아낸 새로운 수원이 어딘지 알고 계시겠군요.”

총관인 샤페론 남작 물었다. 그도 젊은 시절 피라네사아 평원과 장원을 돌며 한동안 새로운 수원을 찾기 위해 헤맨 적이 있었다. 물론 모두 실패하고 결국 장원까지 버려졌으니 그로서는 궁금할 수밖에는 없었다.

“아쉽지만 알아내지 못했소, 그건 오직 공방장만이 알고 있다고 하더군. 다만 공방장이 도자기의 재료를 찾기 위해 한동안 에바크 산맥 일대를 뒤지고 다녔다고 하니 그 과정에서 수원을 찾았을 거라 짐작 중이오. 수로는 가을 전까지 완공할 거라 하더군.”

“가을이면 본격적으로 가을농사를 시작하겠다는 말이군요.”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소. 만약 성공 한다면 어쩌면 피라네시아 평원이 다시 동부 최대의 곡창지대가 될 수도 있겠지.”

케프 남작이 말이 끝이 나자 가신과 관리들의 소란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피라네시아 평원이 다시 동부 최대의 곡창지대가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문제는 현재 평원의 주인이 백작가가 아닌 자유민 출신 용병에 공방의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최근엔 백작가의 요청으로 받아들여 공방에서 사라진 남작가를 대신해 왕실에 세금을 납부하기 시작했다. 백작가에선 조금이라도 왕실 납부 세금을 줄여 보겠단 생각에 공방에 요구한 것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백작가가 평원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는 계기를 만들어 버렸다. 가신들 사이에서 논란이 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동안 소란이 계속 이어지자 참다못한 백작이 가볍게 탁자를 쳤다.

탁!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지면서 백작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재정관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있겠군요. 일단 말을 꺼냈으니 마무리를 지으시지요!”

백작의 말에 케프 남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카일 공방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관계 개선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지금까지의 벌어진 일련의 일에 공방이 입은 피해는 전무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챙겼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과정이 아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공방에 피해가 없다 뿐이지 백작가에 가지는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할 겁니다.”

“쯧… 그 말씀은 우리 백작가가 고작 공방 따위에 허리를 숙여야 한단 말입니까?”

“허리를 숙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적대적인 관계를 개선하고 공방이 타 영지로 옮겨 가는 것을 막자는 겁니다. 비록 몇 가지 일로 백작가가 큰 손해를 보긴 했지만 사실 공방이 들어오면서 세수가 급증한 건 사실입니다.”

현재 공방이 백작성에 내는 세금은 한 달에 대략 100여 골드 정도를 납부하고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빈민이었던 사람들이 카일 공방에서 벌어들인 골드를 영지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침체되었던 영지의 경제가 살아나고 물류가 돌아 세수가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었다.

“음… 재정관께서는 마치 카일 공방이 타 영지로 이전할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막대한 골드를 들여 수로까지 만드는 공방이 과연 이전을 고민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케프 남작의 말을 듣고 있던 샤페론 남작이 물었다.

“물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타 영지에서 장원과 공방 건설비용을 지원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 벽돌이란 물건만 있다면 새로운 공방도 빠른 시간 안에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저와 같은 재정관 정도면 카일 공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금방 파악할 테니 더더욱 적극적이겠죠.”

케프 남작의 말에 이번에는 부총관인 도포프가 가만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저… 아무리 카일 공방이 명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백작성에 소속된 공방이 함부로 타 영지로 이전 한다면 영지에서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도포프의 말에 옆에 앉은 총관인 샤페론 남작이 못마땅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허! 부총관이란 녀석이 아직도 시세를 파악하지 못하느냐!”

샤페론 남작의 말에 도포프가 고개를 숙였다.

“총관님! 너무 화를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가 아닙니까?”

케프 남작이 총관을 달랜 뒤 부총관을 보며 말을 이었다.

“부총관 말대로 일반적인 공방이었다면 나 역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수 있을 것것이네. 그러나 카일 공방은 다르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세. 자네도 알겠지, 카일 공방이 거래하는 상단이 어디인지?”

“예! 알고 있습니다. 아일론 상단으로 이번에 백작가에 있던 본점을 트라발트 공작령으로 옮겼다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공작에게 남작의 작위를… 그럼!”

“그래, 이제 알겠나? 아일론 상단의 뒤에는 트라발트 공작이 버티고 있다네. 최근엔 본가인 아틸런 자작가와도 적극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면서 힘을 실어 줄 테지. 물론 그와 별개로 다른 문제도 있지만, 일단 공방을 건드렸다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거야!”

“자칫 트라발트 공작이 나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공작이 아니라도 고위 귀족 여럿이 나설 수 있지, 당장 아틸런 자작가도 우릴 압박하기 시작할 거라네.”

케프 남작은 도포프를 보며 말했지만 결국 가신들과 관리는 물론 백작에게도 은근히 카일 공방을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를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부총관인 도포프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다시 한번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단 공방장인 카일이란 용병을 제압하고 옹기와 도자기의 기술만 빼낸다면….”

도포프의 말에 백작도 관심을 가지며 넌지시 기사단장인 레하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레하트 남작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일전에 말했듯이 카일 공방의 위치는 천혜의 요새에 가깝다. 물론 기습적으로 정문을 확보한다면 점령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공방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피라네시아 평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접근도 하기 전 발각당할 텐데, 녀석들이 성문을 닫고 농성을 벌인다면 점령하긴 힘들 거다.”

“요새의 규모가 작다고 들었네. 장기전으로 간다면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은데?”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백작이 물었다.

“그건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인가?”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외부로 알려지는 건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흠… 아틸런 자작가에 빌미를 줄 수 있겠군.”

레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방의 전력 역시 제법 탄탄합니다. 알아보니 최근 새로운 병력이 합류하면서 최소 50여 명이 넘는 검사가 있다고 했으니 만만하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더구나 공방장을 사로잡으려면 장원 전체를 포위해야 할 텐데, 뒤쪽 산까지 막으려면 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해야 합니다.”

“결국 어렵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물론 와이번을 동원한다면 병력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쯧, 됐습니다. 공방하나 접수하는데 와이번까지 동원할 수는 없죠.”

백작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공방이 욕심나도 영지의 최고전력이라 할 수 있는 와이번까지 동원하면서까지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만약 와이번까지 동원해놓고 실패한다면 백작가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레하트 단장께선 왜 공방을 살피신 겁니까? 재정관이야 세수와 관련된 일 때문이라지만 단장께선 공방을 살피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샤페론 총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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