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59화 (359/404)

외전 - 93. 크로먼 상단

어두운 밤, 하늘 위로 수십 마리의 와이번들이 창공을 선회하다 천천히 평원으로 내려앉았다.

“무어 경, 어서십시오.”

“흠, 오랜만이군. 그래, 네드 경은 도착했느냐?”

거대한 블랙 와이번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내린 중년의 사내가 옆으로 다가온 기사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이미 네드 경께서는 도착해계십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군.”

피식 웃음을 지은 무어 자작이 천천히 기사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막사로 다가갔다.

펄럭~

막사를 열고 안으로 들어선 무어 자작이 거침없이 네드 자작에게로 다가갔다.

“여~ 일찍 와있었군.”

반가워하는 무어 자작의 말에도 네드 자작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차를 마실뿐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동부에서 이곳까지 멀리도 왔구먼!”

“하하! 이런 일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그리고 셋째 녀석도 독립할 나이가 되었으니 땅덩이 하나는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흥! 아직도 땅 타령인가!”

“모르는 소리. 재물은 사람을 배신해도, 땅은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네.”

“그럼 땅은 자네가 다 가지게, 난 땅 같은 건 필요 없으니 말이야.”

“그럼 자넨 이곳에 왜 온 건가?”

“난 그저 한 가지만 얻으면 족하네. 다른 건 필요 없어.”

“한 가지?”

무어 자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그는 손에 든 옹기 찻잔을 보며 얇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뭐 땅이 필요 없다면 나야 좋지! 그럼 자넨 남쪽으로 가나?”

“그래! 이미 작전이 짜여있지 않나? 그쪽은 몇 명이나 왔지? 내 알기로는 그쪽 아이들은 이번 작전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네드 자작의 말에 무어 자작이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곧장 얼굴을 잔뜩 찌푸리곤 바닥에 뱉어 버렸다. 그는 찻잔에 들어있는 찻물을 몽땅 바닥에 버리고 품에서 작은 황동 술병을 꺼내 찻잔에 따랐다.

“뭐, 그런 녀석들도 있지만 그래도 한 30여명은 데려왔네!”

무어 자작은 대답과 동시에 찻잔에 있던 와인을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네드 자작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무어 자작이 버린 차는 제국 북쪽에서 1년에 한 번 채취하는 아주 귀한 찻잎이기 때문이었다.

네드 자작은 무어 자작의 단순하고 괴팍한 성격을 알기에 인상만 찡그릴 뿐이었다.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어때! 제법 많지? 녀석들 모두 영지를 받지 못하는 차남이나 삼남 중 차출해 왔다네.”

“제법 머릴 썼나 보군.”

“하하! 당연하지. 그럼 남부에서는 얼마나 왔나!”

“우린 한 20명 정도 왔네! 사실 우리야 티렐 백작가의 후방만 공격하면 되니 이 정도도 많은 편이지!”

네드 자작의 말에 무어 자작 역시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드 자작은 바런트 왕국 부유한 남부의 귀족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를 쌓은 페네시스 성의 성주이자 남부 최대의 무역 항구인 페라네트 항구의 주인이었다. 굳이 이번 작전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의 조력이 조금 의외일 뿐이었다.

“내일 새벽이면 우린 남쪽으로 갈 거다. 지난번 했던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네드 자작의 말에 무어 자작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쪽엔 관심도 없었다. 걱정 마라! 약속은 지킨다.”

“믿어 보겠다.”

“헌데 왜 그곳에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이지?”

“넌 알 것 없다. 그저 약속이나 지키면 돼!”

“녀석! 정색하기는. 걱정 마라. 약속은 지킬 테니.”

무어 자작의 대답에 네드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여있는 간의 침상에 누웠다.

“예전 야전 침대만 못하군!”

“잔소리는 그쯤 하지, 밖에 부하들은 천막도 없이 야영해야 할 판이니.”

“불평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무어 자작은 네드 자작의 말에 더 이상 불평도 못 하고 침상에 얼굴을 묻었다.

* * *

“크로먼 상단의 부단주 캐프만입니다.”

“공방의 책임자 카일입니다. 헌데 크로먼 상단에서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카일의 눈을 의아한 얼굴로 캐프만을 바라보며 물었다.

“평원에 빈민들을 위한 마을을 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캐프만이 손에든 옹기 찻잔을 매만지며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예, 갑자기 빈민들의 유입이 늘면서 마을과 공방을 확장 중입니다. 작긴 하지만 수로도 건설 중이지요.”

카일의 말에 놀란 캐프만은 마시던 차를 급하게 삼키곤 놀란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규모의 수로라도 건설엔 막대한 비용이 소비될 수밖에는 없었고, 그에 따라 석재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갈 터였다.

캐프만이 마른침을 삼키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수로라면 결코 쉬운 공사가 아닐 텐데, 대단하군요.”

“대단할 것까지야… 그보다 우리 공방과 거래가 없는 크로먼 상단이 어쩐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카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만 캐프만은 상단에서 오래 지낸 상인인 만큼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하하! 요즘 인기를 끄는 도자기와 옹기 공방에 상인으로서 관심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저희 상단과도 도자기와 옹기를 거래해 보는 것이…. 아무래도 같은 백작령에 있는 만큼 우리와 거래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캐프만의 말에 카일이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그 뻔뻔한 속내를 알기에 당장이라도 내쫓고 싶은 심정이었다. 캐프만은 백작령의 직영 상단인 크로먼 상단의 부단주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카일은 화를 꾹 눌러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어디 조금 뒤에도 뻔뻔한 얼굴로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하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옹기나 도자기에 대한 판매는 이미 아일론 상회와 계약이 있어서요.”

물론 카일의 말은 전부 거짓이지만 캐프만으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아쉬운 말씀이군요. 이미 아일론 상회와 계약을 했다니… 하지만 때론 예외적인 상황이 있으니 거래에 대해선 차차 이야기해 보도록 하고, 오늘 제가 찾아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석재를 거래하고 싶습니다.”

캐프만의 말에 카일은 짐짓 모르는 척 대답했다.

“크로먼 상단에서 석재도 거래하셨군요.”

“요즘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알아보니 요즘 석재 수급이 어렵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저희 상단에서는 석재 한 수레에 1골드 50실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캐프만의 말에 카일은 입에서 나오려는 욕을 겨우 참아냈다.

평소 석재 한 수레가 50실버인 걸 생각하면 무려 3배를 부른 것이다.

“휴! 대단히 비싸군요. 일전에 거래할 때는 50실버에 거래를 한 기억이 있는데.”

“요즘 석재사용이 늘면서 제법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렇군요.”

“마을 대부분을 석조건물로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공방장께서 추진하는 수로 건설에도 제법 많은 석재가 들어갈 것 같은데 그런 대규모의 석재를 영지에서 공급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우리 크로먼 상단뿐이지요. 혹 현금이 부족하시다면 공방장님께는 특별히 현물거래도 해 드리겠습니다.”

캐프만이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캐프만은 이번 기회에 석재 대금 대신 옹기와 도자기를 공급받아 이익을 높일 생각이었다. 만약 카일이 벽돌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 캐프만의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만약 석재가 필요하게 된다면 크로먼 상단의 제안을 생각해 보겠지만, 아쉽게도 공방에서는 더 이상 석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카일의 말에 캐프만의 얼굴이 어둡게 굳어져 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알기론 영지에서는 석재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을이나 수로 작업도 한창인데 석재가 필요 없다니요?”

캐프만은 분명 카일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라니, 그럴 리가요. 부 상단주께서 제 말을 믿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그럼 공사 현장을 직접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확인시켜 주시겠다면 못 볼 것도 없지요.”

“그럼 함께 가시죠.”

카일의 말에 캐프만과 카일이 곧장 공방을 벗어나 북쪽 수로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부터가 본격적으로 수로의 바닥과 외벽공사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석재가 필요한 곳은 수로 바닥뿐이라 그동안 들여온 석재로도 충분하답니다.”

카일은 웃으며 설명했지만, 캐프만은 멍한 얼굴로 수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일의 말대로 현재 공방에서는 석조 건물을 철거해 수로 공사에 사용하고 있었고 양쪽 수로 벽엔 처음 보는 특이한 형태의 작은 돌을 쌓고 있었다.

“수로 양쪽 벽에 쌓고 있는 저건 뭡니까? 분명 석재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 저것 말입니까?”

캐프만의 물음에 카일이 직접 말에서 내려 벽돌 한 장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이건 공방에서 개발한 벽돌이라는 물건입니다. 이것 때문에 공사의 진척이 아주 빨라졌죠. 한번 보시겠습니까?”

캐프만은 급히 벽돌을 받아 세심히 살펴보았다. 사각형 모양에 검은색 광택을 가진 것이 마치 단단한 돌처럼 느껴졌다.

캐프만이 보기에도 이런 돌이 있다면 굳이 석재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 완성된 수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자 벽돌로 잘 다듬어진 수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보시면 알겠지만, 더 이상 석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카일의 말에 캐프만의 얼굴은 이제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럼 우리 상단에서 가지고 있는 석재는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희 공방에선 석재를 주문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이상하군요? 혹 아일론 상단과 거래를 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아일론 상회에도 석재 매입을 취소해 달라 통보했는데요?”

카일의 말에 캐프만은 고개를 저었다.

“아… 일론 상회와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캐프만은 당연히 아일론 상회와 연결될 리 없었다. 캐프만은 몇 번 더 카일에게 석재 구입을 타진했고 가격을 기존 50실버의 절반인 25실버까지 떨어트렸지만 카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대부분 석조 건물을 해체해서 석재를 확보한 상황에서 또다시 석재를 구입해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남아있는 석벽에 벽돌을 연결해서 집을 짓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캐프만은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 막대한 상단의 비용을 석재를 구입에 동원했다. 수많은 석재가 상단 창고에 쌓인 것은 물론이고 채굴장에도 아직 가져오지 못한 석재가 가득했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의 석재는 아무리 싼 가격에 내어놓아도 당장 판매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캐프만! 이것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케프 남작이 캐프만의 발치에 들고 있던 벽돌을 던져다.

“이건 벽돌이란 물건으로 카일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주 잘 알고 있군. 그럼 이걸 카일 공방에서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겠구나?”

남작의 말에 캐프만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하다…. 감히 내 허락 없이 백작과 독대를 통해 일을 추진하더니… 상단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그렇다. 이번에 캐프만이 카일 공방을 상대로 석재를 매점한 것은 케프 남작을 통하지 않고 백작과 독대하여 따로 허가를 받아 추진한 일이었다.

“이번에 들어간 자금 중 일부가 백작님의 개인 자금이라 알고 있다. 사실이냐?”

케프 남작의 말에 캐프만의 얼굴이 더욱더 굳어졌다.

백작의 자금을 운영했다는 사실은 백작가의 일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캐프만의 인정에 케프 남작은 결국 머리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자네 지금 상단에 무슨 짓을 한지 알고 있나! 만약 이번 자네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백작의 자금이 상단에 들어왔을 거다! 이젠 상단을 백작에게 들어 바칠 생각인가!”

원래 케프 남작은 크로먼 백작가의 방계이지만 처음부터 백작가에 소속되어있지는 않았다.

당시 중부지역에서 상단을 운영하던 케프 남작의 선대가 본가의 어려움을 알고 이곳 백작가에 들어와 가신이 되었고, 여기에 고마움을 느낀 선대 백작이 남작의 작위를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케프 남작가는 비록 백작가의 가신이지만 철저하게 상단과 백작 가문을 분리시켜 운영하고 있었다.

케프 남작가의 선대는 상단만이 자신들의 안전과 위치를 지켜줄 보루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약 캐프만으로 인해 백작의 자금이 상단으로 유입되었다면 상단에 백작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테고, 결국 상단은 백작가에 귀속되었을 것이다.

“내가 왜 자네를 여태 후계로 선정하지 않았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나! 아무리 뛰어난 상재를 가지고 있어도, 백작의 명을 따른다면 자네를 후계로 임명할 수 없네! 나는 상단을 지킬 후계를 원했지 상단을 백작에게 바칠 후계를 원한 건 아니니까!”

케프 남작은 캐프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자네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네!”

캐프만은 그때서야 왜 케프 남작이 자신을 후계로 결정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케프 남작은 남작가의 후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상단의 후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케프만은 상단을 남작 가문에 딸려 오는 것 정도로 보았지만, 실상은 케프 남작이 상단의 후계에게 남작 가문을 물려주는 것이었다.

그의 기억에도 남작은 언제나 상단의 후계를 찾았지, 남작 가문의 후계를 찾지는 않았었다.

캐프만은 눈을 감은 케프 남작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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