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91. 대단한 아들
꽝-
강력한 힘에 뒤로 날아간 중년 사내가 처참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사내가 검을 지팡이 삼아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상대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이만하는 것이 어떤가? 게이츠 경.”
“…바르칼! 너 같은 위선자에게 목숨 따윌 구걸할 생각은 없다.”
분노한 게이츠가 바르칼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바르칼이 고개를 저으며 거검을 움직여 게이츠의 검을 막았다.
꽝-
느릿하게 움직인 바르칼의 검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게이츠의 검과 충돌하는 순간 게이츠의 신형이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단장님!”
비참하게 쓰러진 게이츠를 향해 기사들이 다가서려 했지만 앞을 막아선 용병들을 뚫은 기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0명이 넘는 기사를 그 절반도 되지 않는 용병들이 어렵지 않게 막아내는 모습에서 그들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쿨럭-”
바닥에 처박혔던 게이츠가 검은 피를 토하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바르칼을 노려봤다.
“이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어떤가?”
“흥! 나 게이츠, 명예를 아는 기사다. 네놈 같은 배신자와는 다르단 말이다.”
“…맞다. 나로 인해 소영주 부부가 목숨을 잃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나에 대한 복수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허나… 헬레나, 그 아인 아무런 잘못이 없다.”
바르칼의 말에 게이츠의 얼굴이 잠시 구겨지다가 이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위선자의 말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단어 하나하나에 구린내가 진동하니 말이다. 복수? 당신과 당신 용병대로 인해 십수 년을 키워온 기사단이 무너졌다. 이걸 보고 그런 말을 하는가?”
“….”
“그리고, 뭐? 헬레나 영애에게 잘못이 없다? 흥,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잘못이다.”
게이츠의 말에 바르칼의 눈빛에 분노가 어렸다.
“…죽고 싶은 건가??”
“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가? 영주위를 물려받은 에비던은 분명 다음 영주위를 아가씨에게 이양하겠다 약속했다. 바르칼! 당신이 기사라면 말하라! 이것이 거짓인가?”
“난… 이미 자작가를 떠난 지 오래다.”
바르칼은 이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그 역시 현 그리미엄 자작 에비던의 약속을 직접 들었던 당사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역시 위선자의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구나! 그럼 묻겠다. 바르칼! 그대는 무슨 자격으로 울프팩 기사단을 공격한 건가? 이건 명백히 그리미엄 자작가 내부의 일이자 후계싸움이다. 외부인이라 자처하는 그대가 왜 이번 일에 간섭하는 거지?”
게이츠의 말에 바르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게이츠의 말엔 틀린 게 없다. 비록 헬레나 영애가 자신의 외손녀라 해도 스스로 자작가를 떠났다고 말한 이상 그리미엄 가의 후계싸움에 바르칼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비록 자작가를 떠났지만, 목숨을 위협받는 헬레나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것이 자신을 자작가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에비던의 계획이라 해도 말이다.
“휴… 그래, 맞다. 명예와 신념을 가진 기사가 되려 했지만, 딸아이를 위해 눈을 감았다. 헬레나를 위해 위선자가 되는 것이 두렵겠나? 베아트리 영애만 없다면 더는 이런 소모적인 전투도 필요 없겠지.“
바르칼의 말에 게이츠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사로서 명예를 중시하던 바르칼이 위선자임을 자처했다. 그 속엔 헬레나 영애를 위해선 어떤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흥! 쉽지 않을 거요.”
“그대 덕분에 영애가 숨은 곳을 알았으니, 곧 끝낼 수 있을 거라네.”
“설마, 내가 영애의 위치를 토설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곳으로 왔다면 갈 곳은 단 한 곳뿐인 것을….”
“하하! 피라네시아 평원, 하하! 설마 이곳에 영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가씨를 부상 입힌 원수 놈과 함께?”
게이츠가 크게 웃으며 묻자 바르칼의 얼굴도 굳어졌다. 피라네시아 공방의 카일. 아일론 상회에 고용된 용병으로, 단독으로 몬스터를 돌파해 헬레나를 구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가장 핵심적인 용병 중 하나다. 때문에 처음엔 그도 베아트리 영애가 이곳에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몇 달 전 베아트리 영애의 장원에서 생산된 곡물이 이곳으로 유입되자 점점 의심이 자랐고, 지금 게이츠를 만남으로써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게이츠의 말엔 바르칼을 혼란시키기에 충분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베아트리 영애를 부상 입힌 장본인이 그 녀석이란 말인가?”
비밀거점들을 하나씩 무너트리면서 바르칼 역시 베아트리 영애가 중상을 입고 한동안 위중했음을 알고 있었다.
“이거 괜한 이야기를 했군! 당신이 날 대신해 카일이란 녀석을 죽여 줬을 텐데 말이야!”
게이츠의 말이 이어질수록 바르칼의 얼굴은 점점 구겨졌다.
맞는 말이다. 정말 카일이란 녀석이 베아트리 영애에게 중상을 입혔다면 단순히 헬레나 영애의 암살을 방해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 카일이란 존재는 원수나 다름이 없을 터. 베아트리 영애가 공방에 숨어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일까? 정말 카일이란 녀석이 호위 기사들을 뚫고 베아트리 영애에게 중상을 입혔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널… 어떻게 믿지?”
“흥, 믿어 달라고 한 적 없다.”
“흠….”
게이츠는 일부 충동적이고 성격도 급하지만, 충성심이 강하고 무엇보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거짓을 말하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한때 직접 검술을 지도한 적이 있어 게이츠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하는 바르칼이었다.
“거… 짓이 아니군.”
바르칼의 말에 게이츠가 곧장 부정했다.
“아니, 거짓이다. 영애는 공방에 숨어 있다. 어서 카일이란 녀석을 찾아가 추궁해라! 그래야 평생 헬레나 영애의 미움을 받을 것 아닌가?”
“네놈이… 그걸 어떻게!”
“큭큭, 헬레나 영애의 움직임 정도는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게이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다. 헬레나는 카일이란 녀석에게 관심이 있다. 바르칼이 의심을 하면서도 곧장 공방을 찾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헬레나 영애는 트라발트 공작령을 떠나 최근 왕도에 머물고 있다. 카일에게 받은 빚을 갚는다며 아일론 상회를 도와 녀석과 녀석이 만든 도자기를 귀족사회에 널리 알리고 있었다.
물론 헬레나가 카일을 돕는 이유가 단순히 생명을 구해준 빚 때문만은 아님을 바르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넨 나와 함께 가야 할 것 같군.”
굳은 바르칼의 표정에 게이츠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 손잡이를 꽉 말아쥐었다.
“흥! 날 데려가긴 쉽지 않을 거요.”
게이츠가 검을 들어 목으로 가져갔다. 고문을 받으며 고통 속에 죽기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게이츠의 행동에 놀란 바르칼이 급히 달려가려 했지만 그를 막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쉬익-
그때,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온 강력한 기운이 게이츠의 검을 때렸다.
꽝-
큰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게이츠가 들고 있던 검을 놓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크윽-”
게이츠가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으며 찢어진 손을 붙잡았다.
“누구냐!”
바르칼의 고함 소리에 기사들과 용병들이 급히 뒤로 물러나더니 전투를 멈추곤 사방을 경계했다.
저벅저벅-
낮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숲에서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과 두 청년이 걸어 나왔다. 멀지 않은 곳에 두 사내가 끄는 짐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다급한 상황이라 힘이 과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무렇지 않게 두 무리 사이를 지나친 사내가 바닥에 쓰러진 게이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시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게이츠가 결국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소.”
“별말씀을, 그보다 한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뭘 말이요.”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던 말 중 카일이란 이름을 들었습니다. 혹 이 마차들, 피라네시아 장원, 아니 공방으로 향하는 겁니까?”
“그렇소, 모두 곡물들이요.”
“곡물 마차라…. 공방엔 아주 중요한 것들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소.”
게이츠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날아든 돌멩이에 검을 놓치긴 했지만, 이미 기력이 빠진 상태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바르칼 경이 순순히 사내에게 길을 내어 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일은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네, 일행과 함께 그만 물러나는 것이 어떤가?”
바르칼이 되도록 정중하게 말했지만, 그 속엔 괜한 참견으로 일행들이 다칠 수 있음이 은연중 내포되어 있었다.
“노인장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공방의 일이면 제 일이기도 해서요. 죄송합니다만 참견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네가 공방 사람이란 말인가?”
노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요. 전 보일이라 합니다. 카일이란 이름의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카일!”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이번 일에 관여할 자격은 충분한 것 같은데요? 듣자 하니 노인장도 손녀를 위해 나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보일의 말에 바르칼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설마 이곳에서 카일의 아비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건 보일이란 자의 기운을 전혀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자… 결코 내 아래가 아니다.’
상대의 경지는 최소한 소드 엑스퍼트 상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바르칼의 눈가에 강한 호승심이 떠올랐다. 이미 머리칼이 은발로 뒤덮일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검객으로서의 승부욕은 강하게 남아있었다.
“거부한다면, 어쩔 텐가?”
“늙어서 다치면 고생이 심할 텐데요? 포션으로 잘 낫지도 않을 겁니다.”
보일이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게이츠가 당황한 얼굴로 보일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하룻강아지가 범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군, 저러다 다치면 아가씨께서 곤란해하실 텐데….’
고개를 저으며 게이츠가 보일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저 노인은 바르칼 경이요.”
“바르칼?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보일이 활동했던 시기는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에 반해 바르칼이 용병단을 조직하고 두각을 나타낸 건 이후의 일이니, 보일이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게이츠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용병기사이자 상급 엑스퍼트인 바르칼을 모르는 검사가 있다니 황당한 노릇이었다.
“바르칼 경을 모르다니, 당신 어디 오지에서 살다 온 거요?”
“어? 그걸 어떻게, 맞습니다. 샤론 마을이라고, 남부 최 끝단에 있는 마을이죠.”
보일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게이츠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지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감히 바르칼 경을 놀리다니! 이놈, 죽고 싶은 거냐?”
게이츠와 보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용병 하나가 분노한 얼굴로 달려 나와 소리쳤다. 하지만 용병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본 보일이 이내 관심을 접었다.
“죽일 수는 있고?”
“뭐라!”
“귀찮으니 꺼져라! 그러다 맞으면 아프다.”
보일이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바르칼 용병대의 10대 용병 중 하나로 자부심 높은 알튼에게 보일의 행동은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알튼이 보일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하지만 보일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다가오는 알튼의 검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스릉-
그때였다. 보일의 옆에 서 있던 매튜가 검을 뽑아 곧장 알튼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꽝-
강력한 오러 소드가 서로 충돌하며 두 사람의 검이 격렬하게 맞붙는 듯 보였지만, 승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열 합도 버티지 못하고 매튜의 검에 어깨를 찔린 알튼이 손에서 검을 놓치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경지에 올랐지만, 검술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갈린 것이다.
“매튜! 결투에서 실력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해 실력을 감추는 건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보일의 말에 매튜가 고개를 숙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결국 알튼을 열 합에 쓰러뜨린 것도 그나마 매튜가 상대를 배려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익!”
매튜와 보일의 대화는 용병들을 완전히 깔아뭉개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알튼을 데려와라!”
“대장! 제가 나가겠습니다.”
“소용없다.”
바르칼이 용병들을 밀쳐내며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거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자네의 실력을 한번 확인해야겠군.”
“쯧, 그냥 돌아가면 좋을 텐데.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제가 이기면 허락 없인 이곳 피라네시아 평원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이긴다고 확신하는 것 같군.”
“이건 노인장에게도 좋은 조건입니다.”
“내게도 좋다?”
“물론이죠, 적어도… 살려는 드리지 않습니까?”
보일이 바르칼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깜짝 놀란 바르칼이 황급히 사방을 살피는 순간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다!”
깜짝 놀란 바르칼이 급히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장대한 체구의 보일이 하늘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당황한 바르칼이 황급히 거검을 들어 보일의 은빛 검을 막았다.
꽈앙-
강렬한 오러의 충격와 함께 바르칼의 발이 발목까지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갑작스런 충격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바르칼이 힘겹게 버텼지만 여의치 않자 허리에서 뽑아낸 단검으로 보일의 가슴을 기습적으로 노렸다. 힘에서 밀리자 임기응변을 발휘해 단검으로 가슴을 찔러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정교하고 위협적인 공격을 카일에게 수없이 당했던 보일에게 지금의 공격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보일은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단검을 쳐내고는 오른쪽 옆구리로 무직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비록 오러가 실리지는 않았지만, 천부적인 힘과 스피드가 담긴 공격은 바르칼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겨줬다.
“큭-”
바르칼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카일은 검을 더욱 바짝 내리누르며 바르칼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쯤 하시죠. 여기서 물러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날… 죽일 수 있을 텐데?”
“할 수는 있지만, 그럼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요?”
바르칼이 주변을 돌아보자 용병들이 당장이라도 보일을 향해 달려들 태세였다.
“어떻게, 계속하시겠습니까? 계속하시겠다면 더 이상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습니다.”
“…좋네, 여기서 멈추도록 하지.”
“그럼, 셋과 동시에 떨어지도록 하죠.”
보일의 말에 바르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일의 말에 따라 셋과 동시에 멀어졌다.
“오늘은 비긴 것으로 하시죠.”
보일이 검을 거둬들였다.
“그렇게… 하지.”
바르칼 역시 검을 거두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결투를 지켜보던 용병들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게이츠, 운이 좋군.”
바르칼의 말에도 게이츠는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르칼을… 압도했다.”
단 두 합에 불과했지만 분명 보일이란 자가 신과 같았던 바르칼을 압도했다. 즉 보일이란 자의 실력이 바르칼과 비등한, 어쩌면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뜻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일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카일이라 했나? 자네 아들 말이야!”
“그렇습니다. 제 하나뿐인 아들이죠.”
보일의 말에 바르칼이 피식 웃었다.
“자네 아들은, 훌륭한 아비를 뒀군!”
“하하! 이런 잘못 아셨군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대단한 아들을 뒀지요. 하하!”
보일이 크게 웃으며 멀어지자 게이츠와 기사들이 황급히 마차를 끌고 뒤를 쫓았다.
“대단한 아들이라….!”
멀어져가는 보일과 게이츠를 바라보던 바르칼이 고개를 돌렸다.
“대장! 녀석을 들을 쫓아…!”
“쿨럭-”
용병들이 바르칼에게 다가가는 순간, 바르칼이 허리를 급격히 숙이며 격한 기침과 함께 검은 피를 토했다.
“대장!”
“호들갑 떨 것 없다. 작게 내상을 입은 것뿐 대단할 것 없다.”
“하지만…!”
“너희들은 보일과 카일이란 자에 대해 알아봐라!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들 같다.”
“알겠습니다. 대장!”
바르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평원 너머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비보다 대단한 아들이라… 이거 기대되는군.”
바르칼이 피식 웃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