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52화 (352/404)

외전 - 86. 베지톤 백작(5)

꽝-

베지톤 백작을 막아낸 카일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백작은 밀려나는 카일에게 바짝 따라붙으며 더욱 강하게 검을 내려그었다.

특이한 검술과 체술, 그리고 급격히 떨어진 체력과 부상으로 더 이상 근접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되자, 백작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강력한 오러를 이용해 카일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꽝!

꽝!

꽝!

“크윽, 빌어먹을!”

연이어 날아든 백작의 강력한 오러 소드에 카일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얕은 비명을 토했다.

백작의 검은 직선적이고 단순했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고 강해서 오러의 충격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카일로선 공격을 흘러내거나 피할 여유가 없었다.

“좋다! 끝까지 가보자!”

결국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카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백작이 오러 대결로 승부를 몰고 간 이상 카일로서도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카일은 달려드는 백작에 마주 달려들며 청백색 오러로 물든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꽈광!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충격파에 카일은 물론 백작까지 급격히 뒤로 물러났다.

“쿨럭…!”

카일이 격한 기침과 함께 붉은 피를 토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충격은 카일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백작의 몸에서 가라앉았던 상처들이 터지며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방금… 뭐지?”

백작이 카일을 노려보며 물었다. 분명 조금 전 충격은 이전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궁금하시면 한 번 더 보시죠.”

입가로 흐르는 피를 닦아낸 카일이 다시 한번 백작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내려그었다. 백작 역시 지지 않으려는지 검을 마주 휘둘렀다.

꽈광!

공중으로 뛰어올랐던 카일이 뒤로 튕겨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백작은 카일의 강력한 검력에 밀려 발목까지 바닥에 파고들었다.

“이건…!”

“연격이죠.”

카일이 비틀거리며 다리에서 일어났다.

“쌍검술!”

백작과 검을 부딪치던 순간, 카일은 오러가 약해진 틈을 노리며 연이어 도격을 날려 그에게 돌아갈 충격을 배가시킨 것이다. 충격파를 제대로 해소하기 전 또 다른 도격이 이어졌으니 백작에겐 치명적인 공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비록 경지가 더 높고 강할지언정 이미 수없이 날아든 탄환을 막느라 오러와 체력을 급격히 소모한 백작이었다. 충격이 이어질수록 탄환이 관통된 어깨와 팔, 허벅지에서 쏟아지는 핏물의 양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 다시 가겠습니다.”

카일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하며 곧장 백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광-

또다시 카일과 백작이 뒤로 밀려났다. 카일이 곧장 일어나 다시 백작을 향해 달려들며 도끼를 패듯 힘차게 검을 내려쳤다.

꽈광-

연이어진 충격에 백작도 뒤로 밀려났다. 카일의 코에서 붉은 핏물이 쏟아 내렸다. 하지만 카일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 더욱 차갑게 굳은 얼굴로 거듭 달려들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처절하게 달려오는 카일의 모습에 백작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꽈광!

이어진 검격.

하지만 이번엔 이전과 달랐다. 카일은 단 다섯 걸음만 물러났지만 백작은 뒤로 튕겨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카일의 기세에 위축되면서 오러를 제대로 검에 실지 못했을 뿐 아니라 허벅지의 상처가 연이은 충격에 급격히 벌어지며 신체의 중심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쿨럭!”

검을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난 백작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카일을 사납게 노려봤다.

“네놈이… 감히!”

분노한 백작의 사나운 눈빛에도 카일은 담담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백작만큼이나 카일 역시 만신창이었다. 백작의 강력한 오러에 이미 내부는 만신창이었고 그만큼 피를 흘려서인지 얼굴은 창백했다.

“끝을 봅시다.”

카일이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청백색 오러가 검을 감쌌지만 불완전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백작의 오러 역시 이제 와선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

“와라, 이놈! 죽여주겠다.”

백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 카일이 백작의 머리 위로 뛰어오르며 검을 내리그었다. 백작 역시 힘껏 검을 휘둘렀다.

꽝!

챙!

연이어 울린 이질적인 소리

백작과 카일의 검이 충돌하는 순간 카일의 검이 뒤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 아무리 카일이 상급 엑스퍼트라 해도 경지에 오른 지 이제 한 달이 막 넘었을 뿐이다. 최상급에 근접한 백작의 오러를 감당하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다만 이어진 카일의 도격이 조금 달랐다.

카일의 환도와 부딪힌 백작의 검 역시 무사하진 못했다. 원거리에서 날아든 탄환 수십 개를 검면으로 받아 튕겨 보낸 데다 연이어진 강력한 검격과 충격파를 모두 버티다 보니,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고 끝내 부러져 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부러져 나간 검에 깜짝 놀란 백작이 주춤 물러난 사이 카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백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악!”

카일이 위협적인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자 백작이 다급하게 부러진 검을 휘둘렀다. 절반 이상 부러져 나가긴 했지만 푸른 오러가 맺힌 백작의 검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카일은 백작의 검을 밀어내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팔꿈치로 강하게 백작의 턱을 날렸다.

퍽!

“큭-”

낮은 신음을 내뱉은 백작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카일은 물러나는 백작의 어깨를 바짝 끌어당겼다.

“크악!”

부상 당한 어깨를 빼앗긴 백작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카일이 더욱더 강하게 백작을 끌어당기며 숙인 백작의 복부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퍽!

“컥!”

복부에 가해진 강력한 충격에 백작의 숨이 턱 막혔다. 옆구리에 난 상처가 찢어져 붉은 피를 쏟아냈다.

물론 백작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거리를 벌리기 위해 폼멜과 주먹으로 격하게 저항하며 카일을 막으려 든 것이다. 그러나 검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밀착된 상황에서 카일의 생소한 격투술을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다.

절묘하게 몸을 틀며 중심을 무너트리는 공격엔 베지톤 백작도 몇 번이나 쓰러질 뻔했지만, 필사적으로 버틴 덕분에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헉헉… 놀랍군요. 아직도 버티고 있다니….”

카일이 지친 얼굴로 백작을 보며 말했다. 어깨와 팔을 잡힌 백작으로선 카일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는 없었다. 수없이 이어지는 팔꿈치와 슬격에 이어 오러가 실린 강력한 정타를 몇 번이나 허용했으니, 버티는 것만으로도 백작의 정신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크윽… 헉헉!”

백작이 거친 숨을 내쉬더니 격하게 피를 토했다. 마지막 심장을 향해 날린 정타가 치명적이었다.

“큭큭큭!”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토하던 백작이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웃기 시작했다.

“내가 설마 주먹에 맞아 이 지경이 될 줄은 정말 몰랐군! …이봐, 카일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몇 살인가? 나이 정도는 알려줘도 될 것 같은데?”

“19살입니다.”

“큭큭, 열아홉이라! 정말 대단한 천재를 만난 것 같군.”

백작이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봤다. 파란 하늘 위 새하얀 구름이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날이 참 좋군!”

백작이 피식 웃으며 카일을 돌아봤다.

“자네가 익힌 체술, 겪어보니 아주 실용적이었네. 근접전에선 제대로 당해내기 힘들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결과는 좀 지저분하군.”

백작이 만신창이가 된 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난 바런트 왕국 베지톤 백작이라네, 아무리 승부에서 졌다고 해도 주먹질을 당해 비참하게 죽고 싶진 않네. 마지막은 검사의 검으로 부탁하네.”

“…바라는 건 그것뿐입니까?”

“여기서 뭘 더 바라겠나! 그것으로 난 족하네.”

“알겠습니다.”

카일이 튕겨 나간 검을 주워들고 백작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휴… 이제야 먼저 간 부하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군.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야!”

백작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카일은 착잡한 마음으로 백작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크윽! 고맙네. 그래도… 부탁에 대한… 보답은 할 수… 있겠군!”

백작이 고개를 떨구자 백작의 몸에서 붉은 광채가 떠오르다가 퍽 꺼지며 하늘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깜짝 놀란 카일이 황급히 하늘을 올려보자 하늘 위로 거대하고 붉은 동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드 와이번!”

레드 와이번은 조금 전 보았던 골드 와이번과는 비교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와이번은 하늘 위를 한참 동안 선회하더니 조금 떨어진 쓰러진 거대 고목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놀라운 일이군. 아서를 죽인 자가 아서 보다 약하다니!”

레드 와이번이 붉은 눈동자로 카일을 잠시간 살피다 이내 말을 이었다.

“그대는 강한 마나 향을 지녔다. 인간, 나와 맹약하겠나?”

“난 그대의 주인을 죽인 사람이다!”

“아서는 단지 나의 맹약자일 뿐, 주인은 아니다. 그대 역시 나와 맹약을 맺는다 해도 나의 주인은 될 수 없다.

레드 와이번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베지톤 백작의 선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좋다! 맹약하겠다.”

카일은 목에 건 수정 맹약석을 꺼내었다.

“수정 맹약석이군. 어쩔 수 없지, 맹약을 진행하겠다. 다만 이후에 루비로 맹약석으로 바꿔 주길 바란다. 수정 맹약석은 안정감이 떨어지니 말이야!”

“맹약석을 바꿀 수도 있나?”

“물론! 맹약석은 단지 아공간과 연결된 매개물일 뿐이다! 그럼 이제 맹약하겠다.”

레드 와이번은 잠시 눈을 감으며 맹약을 하기 시작했다.

“나! 레드 와이번 레토아, 태초 드래곤이 정한 율법과 법칙에 따라… 인간 이름을 말하라!”

“내 이름은 카일!”

“…그대 카일과 맹약을 맺는다. 이 맹약은 둘 중 어느 하나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리라! 이로써 맹약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난 지금 아서와의 맹약이 깨지며 심령이 크게 손상되었다. 날 소환하는 건 일주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좋아! 그럼 일주일 후 다시 만나자!”

“기대하지!”

그 말을 끝으로 곧 공간이 갈라지며 레토아를 집어삼켰다.

“끝났군.”

카일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맹약을 위해 겨우 버티고 있었을 뿐 카일 역시 백작과의 전투로 만신창이였다. 만약 마지막에 백작의 검이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아니 백작이 체술에 능했다면 지금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백작이 아닌 카일이었을 것이다.

카일은 멀지 않은 곳에 쓰러진 백작을 바라보다 나무 둥치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조금, 쉬어야겠군.”

* * *

“아무래도 내려가야겠다.”

절벽 위에서 걱정스럽게 카일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마크가 참지 못하고 밧줄을 절벽 아래로 내렸다.

“내려가서 어쩌려고! 상급 엑스퍼트들의 대결이다. 우리 같은 초급이 간다고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무리 상급 엑스퍼트라도 지금쯤이면 대결이 끝났어야 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건 어쩌면 부상 때문일지 일지 모른다.”

비커가 밧줄을 몸에 묶는 마크의 손을 붙잡았다.

“승자가… 카일이 아닐 수도 있다.”

비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내려가야 한다. 만약… 승자가 보샤트 남작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카일의 복수를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너… 휴, 말린다고 들을 녀석이 아니지!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자!”

“넌 아직….”

“부상? 어차피 승자가 보샤트 남작이면 어차피 부상 중인 난 도망치기도 어렵다.”

“정말 괜찮겠냐?”

“큭! 그래, 괜찮다. 평생 하급 용병에만 머물 거라 생각했던 내가 엑스퍼트에 오르고, 오늘은 꿈만 꾸던 와이번과 맹약도 맺었다. 이 정도면 지금 죽는다 해도 딱히 여한은 없다. 물론 아직 죽기는 싫지만 말이야.”

비터가 목에건 맹약석을 말아쥐며 말했다. 카일이 떠나고 얼마 후 날아온 골드 와이번과 맹약을 맺은 비터였다.

“좋다. 그럼 함께 가자!”

마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쪽에서 카일의 가방을 짊어지고 나왔다.

절벽은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더구나 부상 당한 비터까지 함께 내려와야 했으니, 두 사람이 바닥에 닿았을 때에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서두르자! 곧 날이 저물 것 같다.”

마크가 카일의 가방을 짊어지고 천천히 지난밤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카일이 어디서 결투를 벌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일단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다. 보샤트 남작이 자신들을 추적해 왔다면 지난밤 남긴 흔적을 쫓아왔을 것이다.

마크는 신중히 길을 살피며 한참을 전진했다.

“마크! 저쪽이다.”

비터가 다급히 마크를 불렀다. 멀지 않은 나무 둥치 아래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다급히 달려가 쓰러진 사람을 살폈다.

“보샤트 남작을 수행하던 기사다.”

쓰러져 있던 자는 기사 지그토였다.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다.”

“분명 마법 무구 같은데… 어떤 마법에 당했는지 짐작도 못 하겠다.”

비터가 죽은 지그토의 사체를 이리저리 살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 근처부터 찾아보자, 아마도 멀리 가진 않았을 거다.”

“상급 엑스퍼트 간 결투다. 아마 주변에 흔적이 많이 남았을 거다.”

비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마크가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비터의 말대로 결투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흔적과 잘려나간 나뭇가지, 사방에 새겨진 깊은 검흔들은 결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으으, 살벌하군.”

“왕국에 몇 없는 상급 엑스퍼트 간 결투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해야지.”

“하긴, 그렇긴 하지!”

비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숲 안쪽으로 들어가자 눈앞에 엄청난 전투 흔적이 펼쳐졌다. 오러의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 나무 파편과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땅바닥이 숲 한쪽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기! 보샤트 남작이다.”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간 중심,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보샤트 남작을 바라보며 비명처럼 비터가 고함을 질렀다. 마크 역시 보샤트 남작을 발견했는지 황급히 달려갔다.

반 토막 난 검을 말아쥔 보샤트 남작은 처참한 몰골에도 불구,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결국… 카일이 이겼군.”

마크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백작이 저리도 상처를 입었다면 카일 역시 온전하진 못했을 것이다.

“카일을 빨리 찾아야 한다.”

“다시 절벽으로 돌아간 건 아닐까?”

“아니, 사체가 차갑다. 경직된 지도 한참이 지났고. 죽은 지 제법 되었단 말이다.”

“그럼, 여기 어디 쓰러져 있다는 말인데… 일단 찾아보자!”

비터가 황급히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마크 역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 밑동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카일으 발견했다.

“카일!”

마크가 황급히 카일을 흔들었지만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어때?”

“상처는 크지 않지만, 내상이 심한 것 같다.”

마크의 말에 비터가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중급 포션이다.”

고작해야 반병도 안되는 적은 양이지만 용병에겐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비터 역시 아주 오래전 우연한 기회로 얻은 물건으로 자신의 부상에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소중하게 간직한 물건이었다.

“양은 적지만 하급 포션과 섞어 사용하면 괜찮을 거다.”

“너….”

“뭘 하는 거야! 어서 먹이지 않고!”

“고맙다.”

“감사는 카일이 살아난 뒤에 들을 테니 걱정 말라고.”

비터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은 마크가 품 안에서 하급 포션을 꺼내 섞은 후 카일에게 먹였다. 다행히 포션의 효과가 괜찮은지 창백했던 카일의 얼굴이 다소 안정을 찾은 듯했다.

“이대로 멀리 가진 못한다.”

“할 수 없지.”

“일단 넌 여길 지키고 있어라! 난 사체를 정리하고 올 테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남은 흔적들이 만만치 않은데?”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신분이 드러날 만한 흔적은 지워야지. 괜히 흔적이 남았다간 골치 아파진다.”

“하긴, 귀족이 죽었고 와이번이 두 마리나 사라졌으니… 추격대가 구성될 수도….”

“맞아! 분명 와이번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추격대가 결성될 거다. 그럼 가장 먼저 용병 길드부터 뒤질 거다. 그러니 길드엔 얼씬도 하지 말고 쥐 죽은 듯 숨어있어야 한다.”

“뭐, 우리야 공방 일도 바쁜데 용병 길드에 갈 일이 있을까?”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일단 흔적이 될만한 물건은 모두 걷어 오겠다.”

마크가 죽은 백작을 향해 달려간 사이 비터는 피풍의로 카일을 덮어준 뒤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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