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50화 (350/404)

외전 - 84. 베지톤 백작(3)

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백작이 사나운 눈으로 카일이 있는 절벽 위 나뭇가지를 노려보았다.

“탄환을 검으로 막아 내다니… 설마!”

상급 엑스퍼트부터는 기감을 인지하는 반경이 급속도로 확장된다. 덕분에 상대의 공격이나 접근을 빠르게 파악하고 미리 대처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공역은 경지가 높아지고 완숙해질수록 점점 확장된다. 하지만 탄환의 궤적을 정확하게 인지했다고 해도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탄환을 검으로 막거나 쳐내는 것은 상급 엑스퍼트도 힘든 일이었다.

베지톤 백작의 기감은 이미 상급 엑스퍼트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베지톤 백작이 당당하게 검을 늘어트린 채 칼날 같은 매서운 시선으로 당당히 절벽 위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카일이 그 모습을 차갑게 굳은 얼굴로 바라보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끓어오르는 호승심에 당장이라도 백작과 결투를 벌이고 싶었지만 차가운 이성으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미안하지만 난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가 아니라서 말이야!”

날아오는 탄환을 검으로 막아낼 정도의 실력자다. 경지에 오른 한 명의 검사로서 호승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카일은 이제 막 상급 엑스퍼트에 올랐다. 아무리 강한 검술을 익혔어도 최상급에 근접한 기사를 상대로 질 것이 뻔한 결투에 응할 만큼 카일은 멍청하지 않았다.

카일은 안쪽 주머니에서 12발 탄환이 정렬된 클립을 꺼냈다. 장전을 한 번에 쉽게하기 위해 클립에 엮어 놓은 것이다. 카일은 볼트(노리쇠)를 당긴 뒤 안쪽에 탄환을 밀어 넣었다.

이미 백작과 지그토는 스코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그럼 조금 빠르게 가 볼까?”

카일은 검을 든 백작을 향해 다시 사격을 시작했다.

* * *

“마법 공격이… 아니었단 말인가?”

백작은 그동안 날아온 공격이 마법 무구를 이용은 공격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검과 부딪히며 튕겨 나간 것은 작은 금속물체, 즉 물리력이 가해진 공격으로 오러나 마나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이 사용한 공격방식은 지금까지 백작이 알고 있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공격이란 뜻이었다.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와 중급 엑스퍼트가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것과 비슷한 물리력, 그리고 놀라운 사거리와 정확도까지… 도대체 어디서 이런 무구를 얻은 것이지?”

백작은 아직도 아릿한 충격이 남은 손을 바라봤다. 이 공격을 막기 위해선 순간적으로 중급이상의 오러를 검에 집중시켜 충격을 해소해야만 했다. 아무리 최상급에 근접한 백작이지만 이런 식의 물리적인 공격이 지속적으로 날아들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녀석의 공격은 횟수가 제한된 마법이 아닌 물리력을 가진 작은 금속탄환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공격이 계속해 날아들지 백작으로서도 짐작할 수 없었다.

백작은 공격이 날아온 절벽 위 나뭇가지 사이를 도발하듯 노려봤다.

아직 감정에 치우치기 쉬울 어린 카일의 호승심을 자극해 정면 대결을 유도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탕탕탕-

낮은 폭음이 연달아 울리며 세 발의 탄환이 연속해서 백작에게 날아들었다.

“빌어먹을… 속사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백작은 급하게 검을 휘두르며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콰앙~ 쾅-

두 번의 강력한 충격이 연속해서 검신을 때리고, 아슬하게 비껴간 총탄이 바닥에 박혔다. 그동안 단발로 날아오던 공격이 갑자기 연이어 날아들자 당황한 백작이 연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젠장!”

나무 뒤에 숨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지그토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참지 못하고 말아진 주먹을 나무에 힘껏 내려쳤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주군인 베지톤 백작을 위해 검을 들고 싶지만, 자신이 나서봐야 백작에겐 오히려 짐만 더할 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끼아악-

그때 멀지 않은 절벽에서 들려온 골드 와이번의 울음소리에 지그토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백작과 지그토가 공격을 받는 동안 와이번은 이미 절벽 한쪽에 내려앉고 있었다.

“녀석들이다!”

와이번이 절벽에 내려앉았다는 건 새로운 계약자를 찾았다는 뜻과 같았다. 즉 도주했던 셋 중 나머지 두 명이 절벽 위에 숨어있다는 뜻이다.

지그토는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주군! 와이번이 다른 녀석들을 찾아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잡아 오겠습니다.”

지그토가 힘겹게 탄환을 막아내는 백작을 향해 외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절벽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멀어져 가는 지그토를 바라보던 백작의 눈빛에 안도감이 어렸다. 지그토가 다른 녀석들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막막하기만 한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와라, 얼마든지 막아주마!”

베지톤 백작이 절벽 위를 노려보며 외쳤다.

* * *

“무사해야 할 텐데….”

비터를 살피던 마크가 연이어 들여오는 낮은 폭음 소리에 카일이 올라간 절벽 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폭음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카일 혼자 힘겹게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일에게 갈 수는 없다. 당장 밧줄 하나 없이 절벽을 기어 올라갈 능력도 없었고 설령 올라간다 해도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와 계약하겠느냐!-

그때 마크의 머릿속으로 한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헉! 이건……!”

머릿속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마크가 깜짝 놀라 동굴 밖으로 달려 나와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인간, 나와 계약을 맺겠느냐!-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 그리고 일어난 거센 바람과 함께 거대한 골드 와이번 한 마리가 황금빛 동체를 뽐내며 절벽 한쪽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골드… 와이번!”

마크 역시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와이번 라이더를 꿈꾸는 용병이었다. 언젠가 있을 맹약을 꿈꾸던 마크이기에 지금 상황을 인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 들리지 않나? 들리지 않는다면 다른 맹약자를 찾겠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멍청하게 서 있는 인간이 못마땅한지 골드 와이번이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날개를 활짝 펼쳤다. 깜짝 놀란 마크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주 잘 들린다.”

-흠, 다행이군.-

와이번이 마크를 이리저리 살피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절벽 위 인간보다 한참 떨어지지만, 마나의 향기를 지녔으니 계약조건은 충족한다. 인간 나와 계약하겠나?-

“무, 물론이다. 계약하겠다.”

절벽 위 인간, 마크는 와이번이 말한 인간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카일이 맹약을 거부해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왔는지는 모르지만, 마크는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좋다. 인간, 맹약석을 가지고 있나?-

“물론!”

마크가 급히 목에건 수정 맹약석을 꺼냈다.

-무속성의 수정 맹약석이군. 좋다! 그럼 계약을 진행하겠다. 인간, 이름을 말하라!-

“마크! 내 이름은 마크다.”

마크가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골드 와이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 골드 와이번 마에른, 태초 드래곤이 정한 율법과 법칙에 따라 그대 마크와 영혼의 맹약을 맺는다. 이 맹약은 둘 중 어느 하나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리라!-

머릿속에서 골드 와이번의 목소리가 울리며 수정에 새겨진 마법진이 밝은 빛을 뿜어냈다.

-마크! 그대와 나의 맹약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나,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마에른!”

-물론이다. 나 마에른은 널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 전 이전 주인의 죽음으로 심령에 타격을 받은 상태이다. 당장 너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원래 영혼과 이어진 맹약이 죽음으로 깨어지면 맹약을 맺은 와이번이나 인간 모두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인간이 잠시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에 반해 와이번의 경우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어 한동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나도 알고 있다. 당분간 맹약석에 있어야 한다는 걸.”

-맞다. 십 여일 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 맹약석으로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 십 일 후에 다시 부르겠다, 마에른.”

마크가 허락하자 맹약석이 은은한 빛을 발하더니 허공이 갈라지며 골드 와이번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투명한 수정 맹약석 안엔 골드 와이번 한 마리가 동면하듯 몸을 웅크리며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와이번 라이더가 되다니!”

마크가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멍하니 맹약석을 바라보았다.

“축하한다, 마크!”

갑자기 들려온 말에 뒤를 돌아보자 절벽 한쪽에 등을 기대고 선 비터가 마크를 보며 웃고 있었다.

“너 언제 깬 거야!”

“와이번이 공간 속으로 사라질 때, 일어나 있었다.”

“아!”

내상을 입고 기절한 비터를 놓아두고 와이번과 맹약을 맺고 좋아하고 있었다니. 마크는 비터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만약 비터가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와이번이 자신과 계약을 맺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크가 비록 엑스퍼트에 먼저 오르긴 했지만, 비터 역시 오래지 않아 엑스퍼트에 올랐고 검술 역시 누가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마크가 운이 좋았고 비터가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었다.

“설마, 와이번 라이더가 되었다고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그럼 죽을 줄 알아!”

비터가 사납게 노려보며 주먹을 들어 올리자 마크가 피식 웃으며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비터를 바라봤다.

“흥! 간도 크군. 감히 와이번 라이더와 동급으로 놀려고 하다니!”

“아이쿠, 그러십니까? 이런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당당하던 비터가 간사한 표정으로 손을 마주 비비며 마크를 향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 마크 님께서 적당히 데리고 다녀 주지!”

마크의 말에 비터가 억울한 듯 주먹을 쥐었다가 힘없이 내려놓았다.

“마크! 그래도 술 한잔은 사라, 이제 S급 용병인데!”

비터가 힘없이 절벽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한잔 정도야 얼마든지!”

* * *

“녀석! 드디어 움직였구나!”

카일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지그토를 바라보았다. 카일은 애초부터 백작이 아닌 기사 지그토를 노리고 있었다. 백작을 공격하면서도 지그토를 계속 관찰하며 녀석이 방심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나무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베지톤 백작이 와이번을 이용해 카일 일행의 위치를 파악한 것처럼, 카일은 와이번 덕분에 숨어있던 지그토를 끌어낼 수 있었다.

“저쪽이다!”

지그토는 빛과 함께 사라지는 와이번을 보며 새로운 맹약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그토는 다시 전력을 다해 절벽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좋아! 조금만 가까이….”

지그토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던 카일이 백작을 향해 탄환을 연속해서 날렸다. 일단 백작이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곧장 총구를 돌려 달려가는 지그토를 조준했다.

무방비 상태로 전력을 다해 달리는 지그토의 모습이 조준경에 정확히 잡혔다.

“잘 가라!”

탕탕-

퍼퍼벅-

두 발이 연달아 가슴에 박히며 지그토가 바닥에 쓰러졌다.

“안돼!”

백작이 깜짝 놀라 황급히 지그토를 향해 달렸다. 카일은 지그토를 향해 달려가는 백작을 놓치지 않고 연달아 탄환을 날렸다.

탕! 탕! 팅-

“젠장!”

빈 클립이 튕겨나 가자 카일은 황급히 탄환이 엮인 클립을 꺼내 재장전했다. 그사이 백작은 붉은 피를 쏟아내며 쓰러진 지그토를 당겨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주군!”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지그토가 백작을 올려다봤다.

“지그토!”

“헉헉! 주군,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긴 싫었는데.”

“말하지 마라… 조금만 기다려라! 상처를 치료할 테니!”

백작이 급히 포션을 꺼내 상처에 부었다. 부글거리며 하얀 거품이 일었지만,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탄환이 내부를 휩쓸었기에 하급 포션 만으로 상처를 치료하긴 힘들어 보였다.

“그, 그만하십시오, 헉헉! 전 이제… 틀렸습니다, 주군.”

“말도 안 되는 소리!”

백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지그토는 백작의 손을 꽉 움켜쥐며 고개를 저었다.

“주군…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녀석의… 마법무구는 악마의 무기입니다.”

“빌어먹을! 수하를 모두 잃은 자가 어딜 간단 말이냐!”

“아, 안됩니다. 주군까지…!”

지그토는 흐려져 가는 백작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툭 떨궜다. 겨우 숨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미 소생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탕! 탕! 탕-

동시에 백작이 몸을 숨긴 나무를 향해 또다시 탄환이 연달아 날아들며 나무 파편들이 사방에 비산했다.

“이놈… 감히!”

베지톤 백작가 최고의 기사 셋을 동시에 잃었다. 아무리 백작이라도 이대로 물러나기엔 명예로운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지그토. 난 절대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

백작이 지그토의 손을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 위 올린 뒤 바닥에 박아놓았던 검을 뽑아 빠르게 절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탕! 탕! 탕

백작이 가슴과 목, 그리고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탄환을 향해 검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꽈광-

검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충격을 직접 몸으로 감당하며 달리던 백작이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큭!”

절벽과 가까워질수록 탄환의 위력은 강해지고 정확도는 더욱 높아졌다. 무엇보다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무리하게 오러 소드를 유지하려니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러의 소모가 극심했다.

타탕-

쾅-

두 발의 총탄이 동시라고 할 만큼 빠르게 검과 부딪히자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백작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크윽… 젠장!”

겨우 절벽과 가까워지긴 했지만 조금 전 공격처럼 충격을 해소하기 전 연이어 같은 곳을 노리면 백작으로서도 충격을 쉽게 감당하기 힘들다. 마음 같아선 와이번을 불러내고 싶지만 높게 자란 고목으로 인해 와이번에 탑승하기도 쉽지 않았고, 녀석이 숲으로 몸을 숨길 경우 오히려 놈을 찾긴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백작만의 몫이 아니었다. 카일 역시 이미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탄환을 사용했고 남은 탄이라고는 장전된 10발이 전부였다. 카일 역시 백작이 물러나지 않는 이상 끝 까지 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카일은 라이플을 어깨에 둘러메고 천천히 절벽을 내려와 비터와 마크가 있는 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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