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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349화 (349/404)

외전 - 83. 베지톤 백작(2)

라이플을 어깨에 두른 카일이 절벽을 타고 옆으로 이동했다.

사방을 조망하면서도 적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매복하기 위해서였다.

카일은 절벽 좌측으로 이동했다. 절벽을 오르기 전 이미 사격하기 좋은 위치를 선정해 두었기에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카일이 멈춰 선 곳은 마크와 비터가 있는 위치보다 좌측으로 더 위쪽으로 올라간 곳으로, 절벽 한쪽 갈라진 틈으로 사이로 굵은 나무 한 그루가 무성한 가지를 뻗은 채 자라고 있었다.

“딱 좋군.”

카일은 나무줄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나무는 두 사람이 올라서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굵었고 뿌리가 바위틈에 단단히 박혀있어 바람이 많이 부는 절벽 위쪽이지만 흔들림도 적었다.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자란 덕분에 몸까지 완벽하게 가려주는 최고의 매복지였다.

카일은 단도를 뽑아 나무 위쪽 가지 일부를 쳐내 시야를 확보하고 나무줄기와 가지 사이에 기댄 다음 가죽끈으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몸을 묶었다. 그리곤 편안하게 가지에 등을 기댄 다음 라이플에 장착한 스코프를 통해 주변을 살폈다.

“이정도면 충분히 시야는 확보되겠군.”

나뭇가지에 라이플을 거치한 뒤 개머리판에 고리 끈을 연결하곤 벨트에 묶었다. 혹 라이플을 아래로 떨어트리지 않게 벨트에 고리를 연결한 것이다.

카일이 모든 준비를 끝냈을 땐 이미 주변은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휴~.”

모든 일을 끝낸 안도감인지 깊은 한숨을 내쉰 카일이 나무에 몸을 기댔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겨우 이제야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멋지군.”

카일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숲과 푸른 빛 하늘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답답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감상에 젖은 듯 넓게 펼쳐진 숲을 바라보던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스코프로 눈을 가져갔다. 마냥 감상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어제 카일과 마크가 이동한 경로를 유추해 길을 따라 추적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적들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돌아간 걸까?”

이미 날이 밝았다. 추적을 시작했다면 지금쯤 모습을 보였어야 했지만,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카일은 스코프를 통해 주변의 지형을 함께 살펴보았다. 어두운 밤에 무작정 숲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정확한 방향을 살필 수 없었다. 다행히 절벽 위 높은 곳에서 넓게 조망하고 있어 어느 정도 방향을 되짚어 살필 수 있었다.

“추적자!”

지형을 되짚어 살펴보던 카일의 눈에 손목을 가죽으로 단단히 묶은 기사가 잡혔다.

“저 녀석… 아직 살아 있었군.”

기사의 얼굴을 확인한 카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둠 속이었지만 카일이 직접 손목을 잘라냈기에 기억할 수 있었다. 일부러 죽이지 않고 살려 놓은 것도 추적을 조금이라도 지체하기 위해서였다. 치료가 늦으면 어차피 과다출혈로 죽거나 살더라도 중상으로 움직이지 못할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 포션을 썼어도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그저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추적자 중 가장 선두에서 다른 두 기사를 이끌고 있었다. 그것도 카일 일행이 지나온 경로를 정확히 뒤따르면서 말이다.

“괜히 살려 뒀군.”

카일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무래도 저 기사가 추격에 능한 자 같았다.

“곧 절벽까지 도달하겠는데….”

우선 추격해오는 기사를 죽여야 했다. 카일은 숲을 헤치며 빠르게 달리는 기사를 조준했다.

* * *

머트로는 땅이 팬 방향, 나뭇가지나 풀이 눌린 자국 등을 쫓아 방향을 잡으며 빠르게 전진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흔적이 사방에 남아있어 머트로에겐 그리 어려운 추적은 아니었다. 다만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왜 그러나?”

바닥에 남겨진 흔적을 살피며 고민에 쌓인 머트로에게 베지톤 백작이 다가와 물었다.

“흔적이 이상합니다. 분명 셋이어야 하는데, 남은 흔적은 둘뿐입니다.”

“한 명이 사라졌단 말인가?”

“아닙니다. 짓눌린 흔적으로 봐서는 한 명을 업고 달린 것 같습니다.”

“달려?”

“네… 그런데, 속도가 빠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한 명을 업고 달렸는데도 전혀 속도가 줄지 않았습니다. 여기 짓눌린 자국을 보면 앞쪽, 특히 엄지발가락 부분이 깊숙이 짓눌렸습니다.”

“체중이 앞으로 깊이 쏠렸다는 말이군.”

“네,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는 뜻입니다.”

머트로의 말에 베지톤 백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상급 엑스퍼트라도 건장한 사내를 업고 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러를 일시적으로 폭발시켜 속도와 체력을 끌어 올릴 수는 있지만, 장시간 달리는 건 오러가 아닌 체력과 힘의 문제였다.

“그놈이군.”

“발 크기를 통해 유추하면 그 녀석이 분명합니다.”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란 말이군. 머트로! 녀석을 보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놈들은 대략 2~3시간 정도 앞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조금 더 속도를 내 보도록!”

“알겠…!”

퍽-

머트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달려 나가려는 순간 머트로의 좌측 나무가 터져 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낮은 폭발음이 사방으로 펴져 나갔다.

타앙-

머트로를 비롯한 베지톤 백작과 지그톤이 서둘러 나무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뭐냐! 어디서 날아온 거지?”

베지톤 백작은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폭음으로 봐선 마법 물품 같습니다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저도 보지 못했습니다.”

머트로와 지그토의 외침에 얼굴을 찌푸린 베지톤 백작이 주변을 살폈지만, 숲속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마법의 발현 거리는 200m, 놈은 그 안쪽에 있다!”

베지톤 백작의 말에 머트로와 지그토는 고개를 더욱 낮추며 마법 공격이 날아왔을 만한 곳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살폈지만 도저히 마법을 사용한 적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지그토! 무슨 마법인지 알겠나?”

베지톤 백작이 마법이 작렬한 나무 근처에 몸을 숨긴 지그토를 향해 물었다.

“나무에 생긴 흔적이나 파편이 비산한 형태를 봐선 강력한 회전이 실린 바람 계열 마법 같습니다.”

지그토의 말에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지 않을 정도의 빠름과 관통력을 지닌 마법은 윈드 마법이나 아이스 마법이었다. 그중 회전력까지 실렸다면 윈드 마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흔적이 너무 작다.”

바람의 마법 중 이정도 흔적을 남길 만한 마법은 윈드 에로우, 바람의 화살이다. 3서클 대인 마법이다. 강력한 회전력이 실린 바람의 마법으로 직진성이 뛰어나고 파괴력이 강해 나무에 난 흔적과 비슷한 위력을 낼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파괴력 면에선 나무에 난 것보다 강한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통력에선 적들이 사용한 마법 공격이 월등히 강해 보였다.

퍼억-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던 머트로의 머리 위로 또다시 마법 공격이 작렬했다.

타앙-

뒤이어 들려오는 낮은 폭음소리.

“정확도가 높아졌다.”

조금 전 마법 공격이 머트로의 좌측 나무에 박혔다면 이번 공격은 정확히 머트로의 머리 위에 박혔다. 마법을 사용할수록 정확도가 더욱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전 정말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비겁한 놈! 원거리에서 마법이나 날리다니….”

나무 밑둥에 몸을 숨긴 머트로가 분노한 얼굴로 앞으로 바라보았지만 보이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엉성한 나뭇가지뿐이었다.

“머트로!”

“네! 말씀하십시오.”

“이대로 시간만 지체할 수는 없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머트로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일어나 주변을 살피더니 앞으로 맹렬하게 달려 나갔다. 뒤이어 지그토와 백작이 연이어 숨어있던 곳에서 벗어나 앞으로 뛰어들었다.

타당-

연달아 날아든 총탄이 나무와 바닥에 작렬했지만, 백작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 사이를 옮겨 가며 지속적으로 전진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마법 공격을 대비해 가면서 전진했기에 속도는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헉헉-”

거친 숨을 토해낸 머트로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힘겹게 바닥을 살폈다. 상급 포션 덕분에 상처를 치료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많은 체력을 소모한 머트로였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날아오는 마법 공격을 피하며 추적을 이어가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일이었다.

고개를 숙여 흔적을 찾던 머트로가 고개 들어 절벽을 바라보았다.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물체를 찾아낸 머트로가 급히 손을 들어 나무를 가리켰다.

타앙-

퍼억-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머트로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그의 몸체가 뒤로 넘어가 버렸다.

“머트로!”

“안돼! 멈춰!”

지그토가 황급히 달려 나가려 했지만, 백작이 서둘러 지그토를 붙잡아 나무 뒤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타앙-

퍽-

조금 전 지그토가 있던 자리에 정확히 탄환이 박혀 들었다.

“정신 차려! 지금 나간다면 우리도 머트로처럼 죽을 거다.”

“하, 하지만 주군…!”

“머트로의 일은 안타깝지만, 이대로 나서면 머트로와 라호크의 죽음이 헛되게 된다. 지금은 놈을 잡아 복수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머트로가 죽은 이상, 놈들을 더 이상 추적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이젠 방법이 생겼다.”

백작이 굳은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머트로를 바라보았다.

머트로의 목에 걸린 황금빛 토파즈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한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동시에 허공이 갈라지며 금빛의 동체가 외부로 빠져나왔다.

끼아악-

슬픔을 알리는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릴 토해낸 와이번이 죽은 머트로를 중심으로 허공을 맴돌더니 이내 방향을 바꿔 절벽을 향해 날아갔다.

“찾았다.”

벡작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절벽을 바라보았다.

* * *

“젠장! 역시 스코프 영점을 맞췄어야 했는데….”

고투에게 스코프를 받은 건 상행을 떠나기 대략 보름 전, 그러니까 카일이 고투에게 스코프의 구조와 형태를 알려주고 의뢰 한지 거의 한 달여 만이었다. 스코프의 핵심은 맑은 수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렌즈로 가공하는가에 달려있기에 세공사인 고투에게 의뢰한 것이다. 처음엔 큰 기대 없이 접이식 망원경 수준 정도면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투에게 받은 스코프는 상하좌우 편차까지 완벽히 조절 가능한 정교한 스코프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정의 투명도 때문에 선명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지만, 재료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사격하면서 편차를 줄일 수밖에….”

카일은 다시 신중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첫발이 탄착한 나무를 기준으로 신중하게 스코프를 조절했다.

“거리 550야드, 편차는… 빌어먹을 녀석들. 쉴 틈을 안 주는군!”

타앙-

카일은 나무를 벗어나 앞으로 달려가는 머트로와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 백작 일행을 향해 탄환을 날렸다.

타당탕-

연달아 날아드는 탄환을 피하며 달라는 세 사람에 카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생에선 저격수로서 나름 인정받았던 카일이다. 스코프를 이용한 첫 장거리 사격이라지만 벌써 10발이나 사격하고도 단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이젠 추적을 저지하는 문제를 넘어 저격수로서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다.

카일은 머트로가 멈춰선 지점을 조준한 채 숨을 길게 내쉬며 처음 저격 교관에게 받았던 교육을 떠올렸다.

“방아쇠는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호흡을 멈추는 순간.”

타앙-

고개를 든 머트로의 눈과 카일의 눈이 정확히 마주치는 순간 카일은 방아쇠를 당겼다.

퍼억-

머트로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죽은 머트로의 몸에서 황금빛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이 갈라지며 공간이 열렸다.

“저… 저건!”

몸을 웅크리고 있던 황금빛 동체가 공간을 비집고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와이번 나이트였어!”

카일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황금빛 와이번을 보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골드 와이번은 와이번 중 가장 작은 동체를 가진 종이라고 들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놈의 크기는 상상한 것보다 더 크고 대단했다.

“맹약!”

와이번은 맹약자가 죽으면 지체하지 않고 다른 맹약자를 찾는다. 언젠가 비터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카일은 목에 걸고 있던 투명한 수정 목걸이를 꺼냈다. 와이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만든 수정 무속성 맹약석이다.

“이것만 있으면 와이번과 맹약을 맺을 수 있다.”

손에 쥔 맹약석을 바라보던 카일의 시선이 골드 와이번을 지나쳐 절벽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두 기사에게로 향했다.

“빌어먹을!”

잠시 망설이던 카일이 다시 라이플을 손에 쥐었다. 이대로 맹약을 맺기 위해 시간을 지체했다간 백작이 절벽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전에 백작을 막아야 했다.

카일이 와이번에서 다시 백작 일행에게로 관심을 돌리자 카일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골드 와이번이 방향을 틀어 비터와 마크가 숨어있는 절벽 쪽으로 향했다. 카일의 관심이 떠나버리자 골드 와이번 역시 자연스럽게 카일을 대신할 새로운 주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백작 일행 역시 와이번을 따라 마크와 비터가 숨은 절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이다.

“와이번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구나!”

카일은 일단 가장 앞서 달리는 기사를 조준했다. 이미 두 사람은 절벽 가까이 도착한 상황이다. 카일은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라이플에서 발사된 탄환이 총구를 벗어나 앞서가는 지그토의 심장으로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이미 은폐물에서 벗어나 달려오는 중이었기에 카일은 탄환이 심장에 적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그토의 앞으로 뛰어든 백작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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