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40화 (340/404)

외전 - 74. 도예 공방(4)

텅~

커다란 나무망치로 단단히 막아 놓았던 가마의 입구를 부쉈다. 무려 이틀 동안 밤낮없이 뜨거운 불길과 싸운 뒤 일주일간 천천히 가마를 식혔다. 뜨거워진 가마를 개봉했다간 급격한 온도 차로 자칫 도자기가 터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마티슨이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켰다. 앞으로 닷새 뒤가 트라발트 공녀의 탄신 일이다. 도자기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오늘 헬레나 영애는 떠나야 한다. 다시 말해 도자기가 실패하는 순간 트라발트 공녀에게 상품을 진상할 기회가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초벌 작업에서도 보셨듯 괜찮은 물건들이 제법 많이 나왔습니다.”

“허허, 나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 중이긴 하지만 쉽지 않군.”

마티슨이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나옵니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마티슨의 시선이 가마 입구에 앉은 카일에게로 향했다.

“여기 있다.”

비터가 조심스럽게 도자기 주전자 한 점을 들어 밖으로 꺼냈다. 도자기 특유의 유백색 바탕에 대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양화 특유의 흑갈색 난초무늬가 아름답고 선명하게 새겨진 철화백자다.

“와아~.”

마티슨과 토일은 물론 상단 일꾼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 성공이다.”

유백색 아름다운 빛깔과 선명한 문양, 그리고 이색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화풍까지 독특하면서도 귀족들의 취향을 확실하게 저격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퍼석-

이리저리 주전자를 확인하던 카일이 굳은 얼굴로 단호하게 주전자를 박살 냈다.

“으악!”

“세, 세상에!”

“안돼!”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티슨과 토일이 기겁한 얼굴로 카일에게 달려갔다.

“이게 무슨 짓인가! 갑자기 도자기를 부숴버리다니!”

“자네 미쳤나!”

“물러나십시오.”

카일이 두 사람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도자기는 유약이 제대로 녹지 않았습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꼭 부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냥 조금 싸게….”

“지금 제게 완전하지도 못한 도자기를 세상에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전 그럴 수 없습니다. 가마 속 도자기를 모두 박살 내는 한이 있어도 완벽하지 않은 도자기를 반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물러나십시오.”

“하지만….”

“물러나십시오.”

“이보게….”

마티슨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며 앞을 막아선 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자 카일의 얼굴이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아무리 아일론 상회가 공방 건설에 도움을 줬다고는 하지만 카일은 아일론 상회에 종속된 존재도 아니었고, 공방 역시 온전히 카일의 것이다. 당연히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행위는 카일의 뜻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티슨과 토일의 행위는 마치 자신들이 공방의 주인이고 카일을 고용인 쯤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에토….”

카일의 낮은 목소리에 카일의 옆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에토가 황급히 다가왔다.

“예, 스승님!”

“내 검을 가져오너라!”

“거, 검을요?”

“어서!”

“아, 알겠습니다.”

에토가 황급히 저택으로 달려가자 그제서야 마티슨과 토일이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났고, 상황을 주시하던 코퍼도 급히 달려나와 마티슨의 앞을 막아섰다.

“카일, 진정하게. 굳이 이런 일에 검까지 가져올 필요가 있겠나!”

코퍼가 카일을 진정시키려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카일은 오히려 더욱더 단호한 어조로 마티슨과 토일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아일론 상회에 종속된 사람이 아닙니다. 두 분의 뜻대로 절 움직이려 하지 마십시오.”

“무슨 소린가! 종속이라니, 우린 단지….”

“도자기는 두 분이 아닌 제 뜻에 따라 만들겠습니다.”

카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택 안에서 달려나 온 에토가 카일에게 검을 건넸다.

“자네!”

“걱정 마십시오. 두 분을 향해 검을 뽑진 않을 겁니다. 단지 절 방해하시면 이대로 가마를 무너트리고 도자기 생산을 중단하겠단 말씀을 드리기 위해 가져온 것입니다.”

“그게 무슨….”

토일과 마티슨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설마 애써 만든 가마와 도자기를 파괴할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일은 한순간에 터졌다.

스르릉-

카일의 검집에서 부드럽게 빠져나온 검에 청백색 오러가 서리더니 가장 끝단, 마지막 가마에 작렬했다.

쿠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마가 폭삭 무너져 내리며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번졌다. 놀란 코퍼가 황급히 마티슨과 토일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상단 일꾼들도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으악-”

“물러나!”

“가마가 무너졌다.”

“저런… 미친!”

“정말 무너뜨렸어!?”

사람들이 뒤로 물러난 가운데 첫 번째 가마 안에 있던 비터도 놀란 얼굴로 황급히 가마 밖으로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안에서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비터 역시 카일이 정말 가마를 무너트릴지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너, 너….”

마티슨이 당황한 얼굴로 무너진 가마를 바라보았다. 설마 진짜 가마를 무너트릴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계속 방해 하시겠습니까?”

카일이 다음 가마로 다가가자 마티슨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물러나겠네, 물러난다고!”

“그만, 그만!”

토일도 황급히 손을 저으며 물러나자 카일이 비터를 돌아봤다.

“그럼 계속하시죠.”

“빌어먹을, 알겠다. 이 미친 녀석아!”

피식 웃음을 지은 비터가 다시 가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 아름다운 자기 찻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퍼석-

또다시 카일이 가차 없이 망치를 휘둘러 찻잔을 부숴버렸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지 마티슨이 결국 눈을 감고는 고개까지 돌려 버렸지만, 귓가로 부서져 나가는 도자기 소리가 아련히 들려와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때였다.

“우와아~!”

앞서 들렸던 탄성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큰 함성이 들려왔다.

결국 마티슨이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전보다 더욱 맑고 투명한 유백색 광택의 찻주전자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위로 그려진 탐스럽게 익은 포도송이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앞서 부서져 나갔던 도자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물건이었다.

“제, 제발!”

옆에서 토일의 작은 목소리가 들여왔다. 아니, 주변을 둘러싼 상단 일꾼들까지 두 손을 맞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카일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드디어 카일의 손에서 처음으로 합격 판정을 받은 도자기가 탄생했다. 이를 기점으로 하나둘 카일에게 인정받은 도자기의 숫자가 늘어났다. 가장 안쪽 가장 고온에서 구원진 도자기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도자기는 모두 30점. 백여 점의 도자기 중 70여 점의 도자기가 부서져 나간 셈이다. 그나마도 다기 세트를 제외하면 크고 작은 접시와 그릇, 그리고 항아리가 전부였다.

“휴~ 그나마 다행인가?”

마티슨이 눈앞에 놓인 다기 세트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단주님!”

“헬레나 영애께서 기다리니, 서둘러 주게.”

“네!”

토일이 미리 준비해온,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천에 다기 세트를 소중히 감싼 후 고급스러운 가죽 상자에 넣어 포장했다.

“먼저 가시지요. 나머지도 챙겨서 곧 뒤따르겠습니다.”

“부탁하지.”

마티슨이 황급히 도자기가 든 가방을 챙긴 뒤 마차를 타고 황급히 장원을 벗어났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토일이 고개를 저었다.

“깨지지 않고 조심해서 넣어라!”

“알겠습니다.”

토일이 일꾼들에게 세심하게 지시를 내린 뒤 굳은 얼굴로 카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번 일은….”

“제가 심했다고 생각합니까?”

“…한 명의 장인으로서 너의 생각을 존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단주께서는 네게 호의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겠느냐?”

“그럼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건….”

“아마도 제가 양보하길 바라셨겠죠.”

“이번 한 번이다. 도자기가 첫선을 보이고 귀족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 충분히 물건이 공급되어야 꾸준히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설령 작은 흠결이 있다고 해도 거래 과정에서 조정을 거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토일의 말에 카일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무슨… 뜻이냐?”

“첫 거래에서부터 그런 식으로 저가의 하자품이 거래되면 귀족들이 도자기를 어떻게 볼 것 같습니까?”

“그거야….”

“아마도 도자기는 싸구려라고 생각할 겁니다. 공녀를 통해 최고의 명품이 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겁니다. 다음이라고 하셨습니까? 최고를 찾는 귀족들에게 과연 다음이 있을 것 같습니까?”

카일의 말에 굳은 얼굴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토일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마티슨과 자신의 마음이 조급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말이 모두 맞다고 해도, 이번 너의 행동은 과했다. 아무리 단승 작위지만, 상단주님은 귀족이다. 이번엔 그냥 넘어갔지만, 마음에 앙금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토일의 걱정에 카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이 느낀 마티슨 상단주의 눈빛도 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이번 일에 대해선 최대한 단주님께 설명해 보겠다.”

“감사합니다. 저도 따로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토일이 미소를 지으며 카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카일과 토일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상단 일꾼들이 남은 도자기의 포장을 마치곤 토일에게 다가왔다.

“그만 가보마!”

“부디 도자기의 가치를 최대한 인정 받아 주십시오.”

“하하! 최선을 다하마.”

그렇게 토일과 상단 일꾼들이 모두 떠난 뒤 마크와 함께 비터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불안한데?”

비터의 말에 마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절 바라보는 눈빛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널 건들지는 못 할 거다. 어쨌든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걱정이고요.”

“흠… 하긴, 널 건드리는 것 보다 에토와 토마를 노리는 게 쉽겠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일단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넓은 장원을 저희 세 사람이 모두 지킬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확실히 충분한 병력이 필요하긴 하지. 마침 생각나는 사람도 있긴 한데, 거리가 너무 멀어 걱정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물론, 일반적인 용병과는 다른 사람들이니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거다. 다만 그들을 모두 데려오려면 시간도 문제지만 상당한 골드가 필요하다.”

“골드는 걱정하지 마세요. 필요하다면 이번에 판매한 도자기 대금까지 전부 쓸 용의가 있으니 말이죠.”

카일의 말에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다. 내일 당장 출발하마!”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무슨, 이번 일은 장원에 사는 우리 모두의 안전이 달린 일이다. 나도 소홀히 할 수는 없지!”

마크가 카일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 깜빡했군요. 잠시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카일이 반쯤 무너진 마지막 가마로 다가가더니 무너진 가마에서 흙더미를 치우기 시작했다.

“무너진 가마는 왜?”

“가마는 무너졌지만 안에 든 옹기는 부서지지 않았을 겁니다.”

“뭐!”

카일의 말에 비터과 마크가 카일을 도와 무너져 내린 흙더미를 걷어냈다. 그러자 가마 안쪽에 커다란 옹기 다섯 개가 온전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검으로 교묘하게 옹기가 없는 부분만 무너트려 사람들을 속인 것이다.

“이런 영악스런 녀석!”

“하하! 아무리 그래도 힘들게 만든 옹기를 부술 수는 없죠.”

“그런데 이건 왜 만든 거냐? 아무리 봐도 도자기란 녀석하고는 다른데?”

“이건 술독입니다.”

“술… 독?”

“네, 술을 담글 때 사용하는 항아리란 말이죠.”

“아!”

마크와 비터가 낮은 탄성을 터트리며 상행 중 마셨던 술이 떠올랐는지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커다란 항아리를 번쩍 들어 밖으로 끄집어냈다.

“카일, 뭐해! 어서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세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무렵, 한 대의 마차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피라네시아 평원으로 접어들었다.

“아가씨! 곧 피라네시아 장원입니다.”

대궁을 어깨에 비끄러맨 사내가 마차로 다가와 말했다. 그러자 작은 창이 열리며 하얀 피부와 은은한 청녹색 머릿결의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의 얼굴엔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드디어… 그를 볼 수 있겠군요.”

“아가씨….”

“조금 더… 서둘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마지 못해 고개를 숙인 사내가 마부를 재촉해 마차의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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